미 육군 항공대는 1941년경부터 미 본토에서 이륙하여 유럽까지 비행하고 돌아올 수 있는 폭격기를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이 계획을 소위 10X10폭격기(10,000lb의 폭탄을 적재하고 10,000mile을 비행하는 폭격기)계획으로 불렀습니다.
이 계획에는 총 7개 사가 지원했으며 최종적으로 노스롭(Northrop)사의 XB-35와 콘솔리데이티드(Consolidated. 1954년에 컨베어(Convair)로 개칭)사의 XB-36이 선정되었습니다. (XB-36은 후일 이 경쟁에서 승리해 B-36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됩니다.)
당시 10X10 계획이 요구하는 성능은 기술적으로 큰 모험이었습니다. 당연히 개발은 난항을 거듭했습니다. XB-35는 1942. 07. 06~17에 실물 모형 심사를 거쳐 1942. 12. 27에는 데이터 수집기체인 N-9M이 비행했지만, XB-35 기체 자체는 기술적인 문제가 계속되어 첫 비행 예정일인 1943. 11. 22에도 여전히 미완성 상태였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 06. 25.에야 첫 비행을 하게 됩니다. (이점은 라이벌이었던 XB-36도 마찬가지로 이 기체는 1946.08.08에야 첫 비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프로펠러 구동축의 진동문제가 있었는데다 예상보다 기체 저항이 컷는지 항속거리가 요구 성능에 비해 짧고 폭탄 탑재량마저 XB-36에 비해 적어서 도저히 채택될 가망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이었는지 XB-35가 첫 비행을 하기도 전인 1944년부터 XB-35의 제트화가 논의되기 시작했고(이것이 후에 YB-49 계획으로 연결됨) 이에 따라 터보 프롭 엔진(10400hp)2기와 J-35 제트엔진 4기를 탑재한 EB-35(ERB-35 ?), J-35 6기를 기체 아래에 포트 형식으로 장착한 YB-35B(RB-35 ?)등이 YB-49와 함께 병행해서 계획되었지만 결국 모두 채택되는데 실패하고 맙니다.
여담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10X10 폭격기 계획은 과도기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1948년 6월부터 공군에 인도되었던 B-36은 1959년 말에 전 기체가 완전히 퇴역했습니다. 배치된 지 불과 11년만이었습니다. 제트시대로의 본격 진입이 시작된 상황에서 느린 프로펠러 폭격기는 어차피 오래가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B-36의 조기 퇴역에는 한국 전쟁 당시의 B-29의 경험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됩니다.)
전반적인 기체의 특징을 보면 전익기라는 것 외에도 몇가지 독특한 점이 보입니다. 프로펠러는 토크를 없애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인지 2중 반전식 이었고 조종석이 마치 전투기처럼 위로 튀어나와 시야가 좋은 편인데 묘하게도 정면에서 보면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습니다. (위로 튀어나온 전투기식의 조종석은 후에 B-47에도 채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