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일본의 2차대전시 TYPE-3 형 치누 전차는 TYPE 97 치하전차의 또다른 개량형 모델이었다.
이 중전차(Midium Tank)의 기원은 TYPE-1 치해(Chi He)전차였다.
TYPE97 형에 비해서 TYPE-3 형이 다른점은 내부포탑의 공간이 넓어졌고 상부트래트가 길어졌으며 바퀴구조가 1조 더붙어 전장이 넓어진 형태가 되었으며 완충장치의 대형스프링이 측면의 중간에 길다랗게 1조를 더붙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점이다.
2차대전 초기부터 본다면 일본이 제작했던 전차중 제일 발전된형태의 개량모델이었다.
이 3형전차의 디자인은 미군 M-4 샤만전차 와의 전투에서 일본군이 얻은 전훈으로 비롯되었다.
태평양전쟁의 유황도,사이판,이오지마,오키나와,과달카날등의 전투에서 샤만탱크의 75mm 주포의 화력에 일본군 치하(Chi- ha) 97식경전차와 하고(Ha-Go) 경전차는 그야말로 손쉬운 사냥감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것이다.
그러한 뼈아픈 경험의 전례로 일본은 75mm포의 비교적 대구경포를 장착한 전차를 제작하게 된것이었다.
75mm의 전차포는 포신길이가 2.88m였으며 높은 포좌는 -10 과 +25 각도의 계측으로 포구에서 초속680m의 발사속도로 100m 이내에서 90mm의 철판을 관통시킬수 있었다,
또한 1000m 이내에서 65mm의 철판을 관통시킬수 있었다.
이 TYPE-3 형의 포는 90식 프랑스의 1919 75mm 슈네이더 산악포 (Shuneider Mountain Gun)를 기초로 제작되었다.
치누전차의 개발은 2차대전이 끝나기 1년전 1944년 5월에 개발되어 10 월에 마쳤던바 약 6개월의 시간에 제작되었다.
치누전차는 일본육군의 마지막 전차로써 전잰이 종결되기직전에 나왔던 전차였던것이다.
TYPE-3 형전차는 2차대전의 막바지에 연합군의 일본본토침공에 의한 본토 방위용으로 제작되었던것이다.
그래서 2차대전시의 다른전선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것이다.
큐우슈우와 혼슈섬의 연대병력부대에 각각 6 대씩 배치 되었다.
최근의 소식통에 의해 발표된정보에 의하면 TYPE-3 치누전차는 종전까지 도합 200여대가 생산되었다고 전한다.
이것은 일본전투차량 과 태평양전쟁 그리고 주물과 금형모델 이라는 잡지의 저자 스즈끼 씨에 의한 보고이다.
2차대전의 초반전투에 투입되었을 개발과 생산시점이 너무늦어 버렸고 대수는 얼마되지 않았었지만 3형 치누전차는 2차대전중 일본이 만든 제일 나은성능의 전차 였다고 볼수있다.
중량 18.2 톤
길이 5.64m
폭 2.41m
높이 2.68 m
인원 5명
장갑 8~50mm
무장 75mm 포 1문
7.7mm 기관총 1문(hull)
엔진 미츠비시 TYPE 100 V-12디젤
엔진출력 240hp마력 (179kw)
서스펜션 Bell Crank
주행거리 210km
최고시속 39km
[2차대전중 1942년 1월 필리핀의 마닐라 시로 진격하는 구일본 89식 경전차 치로(Chi Ro)]
89식 치로(Chi Ro)는구일본의 경전차로써 1932년부터1942년까지 사용되었던 미츠비시에서 제작하여 2차대전동안 두루사용되었다.
일찌기 일본은87식Chi-1탱크를 개발했으나 중량이 무거운18톤의 무게와 저속으로 인하여 군은 새로운전차의 필요성을 요구하였다.
이에 10톤정도의 무게에 보다기동성이 빠른 전차의 생산을 필요로했던것이다.
이 계획은 전시대에 제작했던 제작자들의 쉬운경험으로 인하여매우빨리 단기적으로 이루어졌다.
초창기 일본전차의 연약한 강판보다 더강한 강철판을 덧붙여 제작됨으로써 장갑의 방호력을 증대시킨것이다
이 전차의 장갑판의 개발은 니혼세이코소 사에서 이루어졌고 니세코철강의 관련된표기를 축약시켜 니혼세이코소라 불렀던것이다.
89식전차의 디자인은 1927년 영국의 빅커스사의 마크 C형 전차를 벤치마킹 하였고90식의 57mm 주포와 91식의 6.5mm 동축기관총을 장착하였다.
새로제작된 탱크용 디젤엔진은 이미전에 제작되었던 95식경전차에도 사용되었다.
이 엔진은 조작이 쉬웠고 그성능에 따른 지속적인 확신감을 주었던것이었다.
새롭게 제작된 Otsu 공냉식엔진의 전차모델은 그전에 제작되었던 KO수냉식 엔진의 전차모델보다 엔진성능이 더 강력했던것이다.
1929년 신형경전차는 제작을 마치고 중량 9.8톤으로 출시되었다.
그것이 89식 경전차의 출현을 의미하는 첫 모델이었던것이다.
여러차례의 실험과 개조를거쳐 1931년 비로소 일본제국군의 무기로 개발이 시작된것이었다.
89식 치로 전차는 중국에서 전개된 전투에서부터 사용되어졌고 보병부대의 지원세력으로 등장했었다.
89식 전차의 57mm 포는 효과적이었으며 6.5mm의 기관총 2문은 중국군에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15mm 의 두꺼운장갑판은 중국군의 기관총공격에 관통되지 않았다.
또한 시속 25km의 속력은 보병원호 작전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었다
전투의 승리적조건을 충족시키는 전차의 기동성요구에 의한 일본군부의 지령은 미츠비시 사에게로 전달되어 탱크용 디젤엔진의 조기개발을 불러 일으켰다.
미츠비시사는 불과 2년 6개월사이의 노력끝에 탱크용디젤엔진 생산을 이루어 내었던것이다.
이것이 미츠비시A6120VD 로써 공냉식120 마력의 디젤엔진 이었다.
이로써 디젤전차엔진을 장착한 완전한 형태의 89식전차는1934년부터 양산되었던것이다.
이 89식 전차는 중일전쟁중 1932년 일본해군의 상하이상륙에 의한 상하이전투에서 첫모습을 드러내었으며 그다음으로 모습을 보인곳은 2차대전중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였다.
10여년의 세월이흐르는동안 이미그때는 97식 치하(Chi Ha) 전차가 주전탱크의 자리를 자리잡고 있을때였다.
이 89식전차의 궤적은 1930년대초 중국에서 1942년까지 중국의 기나긴 행로를 가로질러 버마와 필리핀까지 진출했던것이다.
지금의 잣대에서 보면 보잘것 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 89식전차는 외형상 보기에도 뛰어난 모습의 프랑스제 NC27전차와 같이 중국에서 사용되어졌다.
그러나 곧 르노전차는 일본의 89식 전차로 대체되었던것이다.
이 89식전차의 시대가 뒤떨어진 최악의 성능을 드러내었던 전투는 일본인들이 애써 그들의 패배를 축약시켜 부르는 노몬한사건 때였다.
1939년몽고와 소련의 국경이었던 할힌골전투(Battle of Khalkhin Gol)에서 일본과 소련의 격전때 이전차는 소련군의 BT-5 경전차와 T-26 전차에 비해 전연 전차전은 상대가 되지않았다.
시속 72km 의 BT-5전차의 45mm포의 철갑탄공격에 얇은 98식전차의 장갑은 무용지물이었고 관통력이 없다시피한 57mm포의 원시적인 관측사격은 소련전차와의 전차전에서 형편없음이 드러났던것이다.
다만 그들에게 있어 89식전차는 일본군의 상징적 전차라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들은 성능열세의 일본전차를 뒤로하고 수많은 일본병사의 수류탄과 휘발유병의 투척에의한 육탄전으로 소련전차의 공격을 저지 했던것이다.
중량 12.79톤
길이 5.73m
폭 2.13m
높이 2.56m
인원 4 명
장갑두께 6mm ~17mm
무장 57mm 포 1문 Type 90 Gun(100발적재)
6.5mm 기관총 2문 (hull, coaxial) 2745 발 적재
엔진 미쯔비시 A6120VD6 공냉식 디젤엔진
엔진마력 120 hp 마력 (90kw)
서스펜션 - 리프 스프링
주행거리 170km
최고시속 26km
만주침략[1939년]에서 쓰던 전차부터 현재의 90식전차까지의 변천사
일본의 61식전차는 1955년개발되어 1961년에 비로소 완성된 일본자위대의 전후1세대전차 였다.
일본은 이 전차의 차세대 74식육상전차, 그리고 현재의 신형90식 전차에 이르기까지 자위대방위증강을 위한 꾸준한 전차개발을 진행하여왔다.61식전차는 미쯔비시에서 생산되어 1961년부터 1975년까지 도합560 대가 생산되었다.
2차대전까지 전차제조 경험이있었던 일본은 종전후 그전의 자국전차들의 수준이 서방세계의 전차와 비교해보았을때,거의원시적인수준의 장비이었음을 파악했다.
그러한 시대에 너무나 뒤떨어졌던 과학적수준을 실감하고 우선적으로 미국의 전차를 벤치마킹하게된다.
그중 M4A1E8 [Shaman]샤만의 마지막모델을 자위대의 제식전차로 편제화 하려고 했으나 ,희안한일이지만 일본인의 다리가짧은체형상 샤만탱크의 클러치페달까지 잘닿지않는 불편했던관계로 운전이원활치못해,포기해버린다.
또한 M24[Chaffee] 챠피전차도 염두에 두었으나 경전차인데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한물간 전차임을 깨닫고 이또한 포기해버린다.다만M24 챠피전차의 전륜구동시스템과 전면의 2중장갑판은 본떠만든다.
그러던중에 일본은1950년에 터진 이웃나라 한국의 6.25동란에서 소련제 T34/85 전차에 눈이 쏠리게된다.몽고국경 할힌골전투에서 T-26소련전차 와 만주에서 T34/76 전차에 치욕의 패배를 당한바있던 일본도 소련전차의 성능을 눈여겨 본것이었다.
이러한 동,서.양세력 전차들의 장점을 본따 자국전차개발을 지속시켜나갔다.
이러한 가운데 어느덧,미국은 한국전이후그동안 일선을 지켜오던 M4 샤만,M26 퍼싱전차를 역사속으로 보내고, 본토방위용 으로서의 M46패튼 의후속전차M47 패튼신형전차를 출시했다.
이에따라 그동안 자위대의 제식전차개발을 꾸준히 해오던 일본방위청은 전체적인구조와 디자인을 , 미국의M47[Patton] 패튼전차를 최종적으로 벤치마킹하여 1961년에 완성시킨다.
1961년도에 제작되었다고 전차명도 61식 전차라고 명명하였다.
주포는 90 mm포에다가, M3 브라우닝12.7mm 기관총 1정에 7.62mm 기관총1정의 무장을 장착한 일본자국산전차를 탄생시켰다, 측면으로 보면 포탑은 M47 전차의 포탑디자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한눈에 알아볼수있다.
이와는 달리 지구반대편 스위스에서는 1961년 그동안 사용하여 오던 자국의구형전차가 소련군T-54,T-55 전차와 나토군의전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수준임을 알고 독일의 레오파드와 영국의 치이프틴전차의 성능에 대등한 조건의 전차개발을 시도한다.
그리하여 1975년에 비로소 pz61의 105mm 포와 동축20mm 기관포를 장비한 제대로된 자국산전차를 개발하였다.
아이러니하게 이 스위스전차의 이름은 기갑부대 Panzer 의 약칭 을 따서 Pz 61이라 명명되었다. 즉 일본과 스위스에 똑같은 숫자의 이름을가진 동명(同名)의 전차가 지구상에 존재하게 된것이었다.
자료제공 : (주) 천년천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