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70 전차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4.17 19: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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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선 실험적 전차]

얼핏보면 독일 레오파드1형의 차체와 미국 M-60 전차의 포탑 마운트실루엣을 가미한듯한 느낌을 주는 이전차는 한때 세계의 신병기로 화제가 되었던 MBT-70 전차이다.
미국과 독일전차 변천과정의 역사에 있어서 결코 빠질수없는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전차는 결과적으로 미국이 독일의 기술을 NATO 라는 공동체 방위개념하에 2중 플레이로 꼬드겨, 베껴 배워간것 외에, 독일로서는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얻은것이 없었고 단지 나중의 독일의 미군기지에 배치될 M-1 탱크 의 탄생을 앞당겨준 역할을 했었다.
독일은 그들만의 기술력으로도,자국전차개발의 진보된기술력을 갖고있었던 전차제조부분의 기술강국이었던 것이었다.
그러한점은 양국이 설계하여 실험한 제각기의 당시2 가지의 실험용MBT전차를 비교해보면 한눈에 바로 비교되는 특징을 파악할수 있다.

 

 대표적인 예를 보자면,독일은120mm포의 채택을원했고, 미국은 시렐러 대전차미사일까지 발사할수있는 대구경의 152mm를 채용할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중에 짧은포신 152mm포를 장착한 M60A2 전차나 ,같은 단포신 152 mm 포를 장착했던 M-551 경전차 가 방어력과 화력 이 미치지 못하여 조기퇴역 되었던 사례를 보더라도, 미국의 선택은 약간 무모할정도로 혁신적인 설계를 고려하였다.
MBT-70 전차는,1963년 소련의 지원아래 군비를늘린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기갑부대병력증강에 대응하여,NATO군전력증강계획에 따라 설계한 미국과 독일의 새로운 시대적희망이었다,

 

그러한 두나라의 공감대에 따른계획은 MBT-70 이라는 실험용전차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었던것이었다.
이전차의 등장된 시대적배경과 그 목적은,미국과 독일의 기술적 메카니즘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소련의 신형탱크성능을 능가하는,세계최고성능의 신형전차 를 탄생시킬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이 합작개발하려고 했던 신예전차로서,MBT-70전차는 1971년1월까지의 수차례에 걸친 공동실험후 합작실험프로젝트를 포기해버렸다.결국 양국가의 공동체이념 에따른 실험용성격의전차로서 그목적은 끝나버리고 말았던 입장이었다.

 

MBT-70 전차생산 을 포기해버렸던 주된 두가지의 문젯점은 첫째,전투시승무원의 원활한작전력을 도모하여 고려한 신형원격조준시스템의 잦은오작동과 두번째, 발사후 모든시스템이 포의 충격진동으로 시스템이 멈추어버리는 불안정한 포탑메카니즘의 문제가 큰걸림돌로 작용했었다.
또한 이러한점에서 비롯된 2차,3차 의 새로이 개발된시스템변경에 따라 처음 계획했던 비용보다,완성시 대당 5 배정도가 더드는문제점이 드러난것이었다.
그러한 최종가격은 당시 싯가로 120만달러나 들었던관계로 최종적판단 기관이었던 미의회의 승인반대로 인하여, 제작자체가 실패로 끝났던전차였다.
그러나 이 전차에서 실험된 여러유형의 시행착오는 곧바로1980년대초 부터의 미군전차의 세대교체와 주력전차로 탈바꿈할, M-1 탱크제작의 모태가되었다.

 

 

알      림 : 위 자료는 중복이 될 수 있음을 알립니다

 

 

자료제공 : (주) 천년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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