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세계 제 2위의 해군보유국이었다. 1위는 당연히 영국. 그러나 정작 1차세계대전에 있어 독일 해군은 한 것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유보트로 통상파괴전을 한 것이 고작이랄까? 정작 빌헬름 2세가 영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까지 감수해가며 심혈을 기울여 키운 수상함대는 유틀란트 해전에서의 전술적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는 완전히 무력화되어 독일의 항구에 틀어박힌 채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한 마디로 제대로 먹튀였다.
그것은 2차세계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1차세계대전 당시의 위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크리그 마리네는 정작 주력함인 비스마르크와 티르피츠는 항구에 짱박힌 채 - 비스마르크는 무모하게 항구를 나섰다 결국 격침되고 만다. -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 도이칠란트 등의 중순양함과 포켓전함을 중심으로 제한적인 통상파괴전만을 수행할수밖에 없었다. 역시 가장 활약한 것은 유보트 함대였고, 북해와 대서양을 누비며 통상파괴전을 펼치던 군함들도 하나둘 연합군 - 특히 영국 해군에 의해 격침되면서 사실상 전쟁중반에 이르러서는 아예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린다.
결국 독일이 놓여 있던 지정학적 한계 때문이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독일이 대양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국을 거쳐야 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독일해군이 대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영국해군의 저지선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아다시피 2차세계대전까지 세계최강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던 영국에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1차세계대전 당시에도 세계 제 2위의 해군국이라고 하지만 독일제국이 보유하고 있던 전함의 수는 18척으로 영국의 33척에 비해 절반이 약간 넘는 수준에 불과했고, 유틀란트 해전에서 순양전함 3척을 포함 14척의 영국 함선을 격침시킴으로써 국지적인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끝내 독일제국의 해군은 영국 해군에 대한 전략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 채 북해로부터 대양으로 향하는 해양로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격침시키기야 독일 해군이 더 많이 격침시켰지만 여전히 전력의 열세는 그대로였고, 대양으로 향하는 길이 막힌 독일해군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되어 전쟁이 끝나기까지 항구에 틀어박혀 있다 승전국에 전리품으로 분배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그래서 2차세계대전 당시에도 독일 해군은 영국해군을 극복하고 대양로를 확보하는 것을 포기하고, 영국의 해양로를 압박하여 자유를 제한하는 이른바 통상파괴전 - 즉 현존함대전략을 채택한다. 수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영국해군을 상대로 정면승부를 거는 것보다는 영국의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했던 해양로를 위협함으로써 전략적인 이득을 꾀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록 해군에서의 절대적인 열세로 말미암아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제한된 해군으로 가장 괴롭혔던 최선의 전략이었다.
왜 뜬금없이 독일의 이야기를 하느냐면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지정학적인 상황이 당시 독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바로 서해에는 중국이 있고, 동해와 남해는 일본에 의해 포위되듯 감싸여 있다. 어디를 가려 해도 이 두 나라를 지나야 하는데, 정작 이 두 나라는 현재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강국들이다. 한국 역시 그렇게 약한 나라는 아니지만 - 어디 가서 한국 약소국이라 하면 세계인구의 절반은 일단 한 대 때리고 시작하자고 할 거다. - 세계 제 2위의 독일제국 해군이 영국 해군을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처럼 도저히 어찌 해 볼 수 없는 격차가 현실에는 존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 이들 나라를 통과해야 이를 수 있는 대양에서의 국익이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에서도 다자간안보협정이 체결되거나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중국과 일본과 한국이 대양에서의 이익을 공유하기로 협정을 맺는다면, 굳이 두 나라를 지나 바다로 나갈 것을 걱정할 것도 없고, 오히려 두 나라가 기왕에 갖고 있는 힘에 더해 한국의 이익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당장 중국과 일본을 믿을 수 있는가? 중국도 한국과 일본을 믿지 않는다. 일본 역시 한국은 몰라도 중국을 믿지 않고. 더구나 이들 나라들에서는 최근 한창 극단적인 민족주의가 극성스레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민족주의란 결국 인접한 다른 나라와의 갈등을 전제할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상황에 과연 중국과 일본과 한국이 유럽연합과 같이 대양에서의 이익을 공유하자 서로를 믿고 약속하고 그것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게 문제다. 결국 한국의 대양전략에서 중국과 일본은 협력자이거나 동반자이기보다는 경쟁자일수밖에 없고, 그래서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과연 중국과 일본을 지나야만 대양으로 나갈 수 있는 한국의 입장에 있어 대양전략이란 어떤 의미인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의미없다. 한국 단독으로 대양전략을 구축하려 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가능성은 2차세계대전당시 나치 독일의 크리그 마리네가 했던 것처럼 해군전력을 최대한 보존함으로써 한국 영해에서의 다른 나라의 행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현존함대전략 뿐이다. 운이 좋다면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일본이나 중국에 비견할만한 함대를 보유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압도하지 못하는 이상에는 역시 독일제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대양으로의 통로를 봉쇄당한 채 고사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대양해군을 보유할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또 대양해군을 보유할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은 전략적으로 섬과 같은 위치에 있어 - 북한 때문에 대륙으로의 진출이 철저히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바다로의 진출은 그야말로 생명선인 때문이다. 바닷길을 지키지 못하면 한국은 그냥 말라죽는다. 바다를 지나 들어오는 식량과 에너지가 없으면 그 날로 한국인의 대부분은 굶어죽고 얼어죽고 병들어죽어야 한다. 대양해군이야 현실적으로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대양전략의 중요성 자체가 유명무실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의미가 없다면서도 더 할 수 없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 결국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죽자고 다른 두 나라와 경쟁하거나 다른 하나는 이들 두 나라를 압도할 수 있는 다른 이의 도움을 얻는 것이다. 사실 여기에 한국해군이 추구해야 할 대양전략의 답이 있다.
미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이다. 특히 바다에 있어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냉전시대에조차 소련마저도 바다에서의 미국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었다. 인정했기에 굳이 미국에 맞서 대칭적인 대양해군을 건설하기보다는, 미국의 함대를 섬멸하기 위한 한 가지 목적만으로 해군을 비롯 모든 전략을 짰을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동아시아의 두 강대국, 아니 러시아까지 포함해 세 강대국을 억누르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 마디로 미국의 대양전략에 묻어가자는 거다.
갈수록 함선의 건조비용은 비싸지고, 미국의 누적된 재정적자는 새로운 함선을 건조하는데 전과는 다른 많은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래서 항모의 수도 전성기에 비해 줄었고, 신형함선의 배치 역시 지지부진하다. 항모함대를 하나 구성하기 위해서는 호위함을 비롯 지원함 등 많은 함선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필요한 만큼을 모두 획득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미해군은 함대의 부족분을 일본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한국 등의 우방국의 함선들과 함께 작전을 펼침으로써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가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해군의 대양전력이 미 해군의 일부로서 미해군의 대양전략에 있어 중요한 한 부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 해군 단독으로야 당장 주위를 둘러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 경쟁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다고 경쟁을 포기하자니 바다는 한국으로서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인 생명선이다. 그런데 세계최강대국 미국이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한국해군의 대양해군을 스스로의 대양전략을 위해 한 부분으로서 필요로 하고 있다. 결국 그 말은 미국이 대양전략을 펼침에 있어 한국 해군 역시 그에 묻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즉 굳이 한국 해군 단독으로 대양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 미 해군의 일부로서, 더 정확히는 미해군의 대양전략의 일부로서 미국의 힘을 빌어 대양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민간선박이나 민간선원이 어딘가에서 해적이나 기타 불순한 무리들에게 납치되거나 했을 경우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미 해군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미 해군을 움직일 수 없다면 한국 해군이 작전을 펼침에 있어 미국 정부의 지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댓가는 유사시 한국 해군으로 하여금 미 함대의 일원이 되어 작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 함대의 한 부분으로써 미해군 항모함대와 함께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미 해군에 있어 한국 해군의 비중이 커질수록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요구도 더 커질 것이고, 미국의 해양전략에 있어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더 커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 해군이 미국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이 아니냐? 물론 종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따져야 한다. 미해군의 대양전략에 종속됨으로써 곁다리로 얻게 되는 이익과 한국 해군이 독자적인 전력을 구축해 얻을 수 있는 이익 가운데 과연 어떤 쪽이 더 큰가 하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자주국방이란 오로지 혼자서 군사적인 모든 부분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무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모든 군사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그런 건 그냥 고립주의다. 어쩔 수 없이 영세중립국이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심지어 미국조차도 이런 극단적인 형태의 자주국방은 하고 있지 않다. 대서양은 나토를 중심으로 유럽과의 군사협력을 전제하고, 태평양에서는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동맹국들과의 군사협력을 전제하는 미국조차 그런 식으로 한다면 자주국방을 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미국마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있어 그와 같은 자주국방을 한다는 것일까?
자주국방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처한 전략적 환경과 스스로 추구하는 전략적 목표에 대해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든, 아니면 다른 나라의 군사적 도움을 받든,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극복할 대안을 스스로 찾아, 그에 맞는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주도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 국방을 책임지는 자주국방이라 할 것이다. 일본과 중국에 둘러싸여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전략적 환경에 대해 미국이라고 하는 절대강자의 도움을 빌어, 그 일부가 되어 그 전략을 공유함으로써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기보다 더 큰 이익을 추구하는 것 역시 자주국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무기라고 하는 건 실전에서 쓰일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쓰일 뿐만 아니라 승리를 쟁취할 때만이 의미가 있다.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는가. 더 정확히는 어떻게 하면 나를 지키고 나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가. 그것이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군사전략이 추구해야 할 바일 것이다. 항모함대? 있으면야 좋다. 세계를 누비는 대양함대? 있으면야 물론 좋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항모를 도입하고 대양해군을 건설할 것인가? 먼저 그에 대한 답을 내리고서야 무엇을 해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본이 이지스 구축함을 몇 척 보유하고 있으니 우리도 몇 척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 항모를 건조하고 있으니 우리도 항모를 건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점에서 한국해군이 추구해야 할 것은 가능하지도 않은 해양로 확보를 위한 전투함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전략적 환경에 맞는 전력이다. 우선 미해군과의 연합작전을 고려한 호위함 및 기타 지원함 등의 대양에서의 작전이 가능한 보다 대형의 첨단전력이 있어야겠고, 한 편으로는 그와 별개로 연근해에서의 적에 대한 거부를 수행할 수 있는 연안전력 또한 병행해 추구해야 할 것이다.
흔히 이지스 구축함과 같은 최첨단의 대형함선만이 대단하고, 연안해역에서의 작전을 위한 고속정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기기 쉬운데, 제아무리 최신형 이지스 구축함이라 할지라도 고속정에서 발사한 대함미사일 한 방에 격침까지 갈 수 있는 것이 지금의 기술력이다. 체급이 다른 만큼 방어력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나지만 공격력에 있어서만큼은 크게 위력에서 차이가 나지 않는 한 방을 갖출 수 있고, 소형함정이 작전하기 용이한 연안에서 제법 세력을 갖춘 고속정에서 발사한 대함비사일 무리는 지상에서 발진한 전투기와 함께 적 함대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여기에 기밀성이 뛰어난 잠수함 전력까지 확보되면 최소한 대한민국 영해에서는 그 어떤 해군도 자유롭게 마음놓고 돌아다닐 수 없게 된다.
연근해에서의 대한민국의 이익을 지키고자 하는 방어적인 전략이라면 이와 같은 중소형함정을 위주로 한 연안해군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대양해군의 전략은 이러한 방어적인 전략으로부터 벗어나 대양에서의 보다 큰 이익만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해양전략의 이원화다. 방어야 연안해군을 중심으로 독자적으로 하더라도, 대양에서의 전략은 우리가 처한 전략적 한계를 인정하고 보다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금은 비겁하다고 할 수 있는 교활함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대놓고 하자면 교활함이 아니므로 철저히 자신을 숙여 자연스레 미국이 확보한 대양에서의 이익 가운데 우리가 필요로 하고 우리에게 허용될 수 있는 부분을 받아 챙기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대양해군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에 기왕에 미국으로부터 확보한 대양로를 통해 평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수단으로서의 대형함의 도입도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도함과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는데, 원래 유사시 대량의 전략을 투사하여 전개하기 위해 개발된 함선이지만 그런 만큼 그 수송능력이라든가 헬기를 사용한 다재다능함은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고 할 정도다. 국제사회에서 행세를 하자면 먼저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하거니와 그로써 확보한 신뢰와 지지는 국제사회에 있어 스스로의 입지를 높여 보다 유리한 환경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말하자면 보다 장기적인 이익을 바라본 전략인데, 대양해군으로 나감에 있어 평시에 해군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추구할 수 있는 대양전략이라 하겠다.(물론 그 전에 독도함에 헬기부터 채워넣어야 하겠지만. 헬기도 없이 텅빈 갑판만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긴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무어라 무어라 떠들어도 한국 해군 당국이 더 잘 알고 있다. 대하는 정보가 다르고 접하는 자료가 다르다. 평소 하는 일이 이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 판단이나 결론 역시 보다 현명하고 현실적인 어떠한 것일 게다. 아마 어쩌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보다 고차원적인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진켜보는 것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입장에서 그저 이러쿵저러쿵 수다를 떨어보는 것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있다면 그게 더 큰 문제게? 그런 거다.
알 림 :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함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