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해방 .....2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5.02 23: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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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의 실물 자료]

1944년 7월에 시작되었던 시칠리아상륙은 연합군의 작전상 분열의 상황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요소는 패튼과 몽고메리의 이탈리아 로마의 우선 해방을 목표로한 공격시간대를 앞당기려는 경쟁에서 비롯되었다.
그사이 독일군은 시칠리아를 방어하던 독일군 정예3개사단을 포함한 10만명의 병력과 장비를 이탈리아 본토로 철수시켜 본토방어망을 더욱 강화 시켰다.
이탈리아 서남부 최대의 항구도시 나폴리는 지형상 대규모의 상륙작전을 펼칠 적합한곳이 아니었으나  연합군은9월9일 상륙했었다.
이날은 이탈리아의 왕 빗토리오 에마누엘레3세가 무솔리니를 해임시켜버리고 연합군에게 항복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이탈리아의 골수파시스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사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독일군은 이탈리아 교두보를 내어 줄수는 없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살레르노 상륙을 정확히 예측하고 5개 사단을 증원시켰고 연합군에게는 앞으로 도래될 안지오전투와 몬테카시노전투와 같은 극렬한 독일군의 저항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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