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모함 이야기 (5부)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5.03 21: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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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군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보증을받은 19800톤 급 항모인 cv-5 요크타운이

1936년 4월 4일에 진수되자 1937년 9월 30일에 취역시키게된다. 

표준 배수량 19576톤, 10cm 정도의 두께를가진 갑판에 길이 252m,

폭 29m의 요크타운은 시험항해에서 약 33.6노트의 속도를 기록한다. 

이어서 cv-6 엔터프라이즈가 탄생한다. 

엔터프라이즈는 1934년 7월 16일 용골이 완성되고

1938년 5월 12일에 노포크에서 취역하게된다.

엔터프라이즈는 요크타운과 비슷한 사양으로 건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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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5 요크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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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6 엔터프라이즈

 

cv-1 랭글리를 애초부터 미해군의 항모 톤수에 포함시키지않고 시험함으로

분류하여온 미국은 요크타운과 엔터프라이즈가 취역하자마자 렉싱턴과 사라토가가

수명이다해 퇴역할 때를 대비한다는 구실로 새로운 항모의 건조를 요청한다.

1922년의 워싱턴 군축이나 1930년의 런던 군축 조약은 1936년에일본이 조약에서

탈퇴함으로해서 사실상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았으며 1938년에들어 세계정세가

불안해지자 항모를 더 건조해야할 필요를 느껴 그해

5월 17일에 cv-8 호네트 건조를 승인한다.

 

호네트 보다 먼저인 1934년 3월 27일에 건조승인을 받았던 cv-7 와스프는

1936년 4월 1일에 용골이 제작되어 1939년 4월 4일에 진수되고

1940년 4월 25일 취역한다.

와스프는 당시 군축조약에 의해 톤 수가 제한받았던 관계로

15000톤 급으로 제작되었는데 요크타운 급의 축소판으로

렉싱턴급보다는 훨씬 개량된 항모였다.

 

호네트는 1941년 10월 21일에 취역하게된다. 호네트는 80대의 함재기를 탑재하며

함교와 연돌을 일체화하고 3개의 엘리베이터에 유압 케터펄트를 2기 채용한 최신

항모였다. 항모건조에 박차를 가해왔던 결과로 8척의 항모를 보유한 미국은

요크타운과 엔터프라이즈를 건조하는 동안에도 또 다른 항모를 구상하고있었는데

그것은 cv-9 에*(es*)급 항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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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7 와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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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8 호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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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최초의 항모인 cv-1랭글리가 1937년 4월 수상기 모함으로 개조완료되었다.
전방의 비행 갑판이 제거되어진 랭글리

 

 

한편,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930년 체결된 런던 군축 조약은 모욕적인 굴복에

다름아니라며 몹시분노하였다. 일본군부는 미국, 영국 이 두나라와 동등한 군사력을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기에 그 분노는 극에달했다. 일본 해군당국은 8개에

해당하는 육상 항공대의 발족과 1척의 8000톤급 항모와 그 부속함정들을 건조할

목적으로 재무부에 4억6천만엔(미화 약 2억3천만 달러)의 지출을 요구했다.

해군은 이 계획들을 1936년 말까지 완료하는 것으로 계획하였었으나 결국 그 승인을

얻어내지 못하고만다. 그러다 일본 정부는 1931년 10000톤급 항모의 건조를 해군에

승인해줌으로서 일본의 4번 째 항모인 류조가 1933년에 정식 취역하게된다.

류조는 29노트의 속도에 36대의 항공기를 탑재하며 17인치 포로 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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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조

 

영국이 싱가포르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미국이 하와이로 해군력을 전진배치하는 것을

일본 군부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시했다.

마침내 일본은 1936년 12월 31일 군축 조약에서 완전 탈퇴함을 통고한다.

1930년 이후로 급속히 조선기술을 발전시켰던 일본은 2척의 항모를 더 건조하게되는데

1934년과 1936년에 그 표준 톤수가 15000톤이넘는 항모인소류와 히류의 건조를 끝낸다.

소류는 톤수 18000톤으로서 34.5노트의 속력에 63대의 항공기를 탑재하게된다.

 

히류는 그 보다 더 무거운 18500톤으로 34.3노트의 속력을 가졌는데 일본은

이 두 항모모두를 서류상에는 10050톤으로 공식명기하며 전쟁이 끝날 때 까지도

이를 숨기려했다.(쪽바리놈들은 이때에도 진실을 숨기는데 도가 틘놈들이었던

모양입니다) 거기에다 이미 중국과 전쟁 상태에들어가있던 일본으로서는

더 이상 군축 조약에 얽메일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에 대대적인 군비확장 계획을

단행하여 항모 아카기와 가가에대한  대규모 개수에 들어간다.

가가는 연돌이 감소되었고, 포탑과 함포들이 더 큰 것으로 탑재되며 새롭게 개발된

선박 기계류가 들어가면서 그 속도가 증가하였으며 최신 함교와 개량된

비행갑판을 갖추게되었다. 이 작업들은 1941년에 완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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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위) 히류(아래)

 

다시 일본은 항모 건조에 박차를 가해 쇼가쿠와 즈이가쿠 건조에 들어가는데

이것은 1937년 고속 기동 함선 보충 프로그램에의해 진행되었던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를 건조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쇼가쿠는 1937년 12월 12일 요코스카의

해군 공창에서 건조에 들어가고 즈이가쿠는 가와사키 조선소에서 맡았다.

이 두 항모는 아카기, 가가, 소류를 건조하며 얻은 기술들을 총 집결하여 건조된다.

모두 25675톤으로서 34.2노트의 속력을 목표로 설계되었으며 84대의 항공기를

탑재하도록 되었다. 쇼가쿠는 1939년 6월 1일 진수되어

그 이듬해인 1941년 8월 8일에 취역하고 즈이가쿠는 9월 25일 취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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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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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가쿠(위) 즈이가쿠(아래)

 

일본의 또다른 항모 건조 프로그램은 1936년에 추진되었던 두 척의 개조인데

경순양함을 개조한 11200톤급의 즈이호는 1940년 12월에 취역하게되며

8문의 5인치 포로 무장하고 28노트의 속력으로 30대의 항공기를 탑재한다.

17800톤의 다이요는 1941년 9월에 취역하게된다.

또한 즈이호의 자매함인 쇼호는 1941년부터 개조가 시작되어 1942년에 초에 취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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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호

 

발목을 잡혔던 군축 조약에서 빠져나온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재빠르게 대규모의

군사력 확장 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오면서 서서히 그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본군 전체가 온갖 대규모의 훈련들에 동원되어졌다.
이것은 더 큰 침략의 준비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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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이가쿠  

 

6부 개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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