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Y카타리나 수상비행정 편
해군 초계용 비행정의 개발에 여러회사와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참여,
통합합병하여 CONSOLIDATED법인을 만들었으며 입찰또한 통합하는 것으로
정리하여왔었다. 이 통합법인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주실적이 미미하여
그 타개책으로 유능한 항공 기술자인 맥 레이던을 설득하여 합류시킨다.
PBY 카타리나는 통합항공에 합류한 항공 기술자
맥 레이던(Isaac Macklin Mac Laddon)이 비행정 개발을위해
해군의 자금으로 1927년에 그 디자인을 설계했다.
(맥 레이던과 그 동료들은 피나는 노력끝에 1934년 7월 31일,
신형 수상기에대한 특허권(특허번호 92912)을 받는다.
P(patrol 초계) B(bomber 폭격) Y(consoladated 동일한 제조업자)
라는 뜻으로 이름붙였다.
미 해군 최초의 단엽 초계비행정 XPY-1
XPY-2. 로워 윙을 채택하고 엔진이 3개이나 2개로 변경된다
중 폭격기 개발을위해 시콜스키와함께 멀티 엔진개발에 참여했던 맥은
해군 초계비행정으로 운용될 단익 비행정개발팀을 지휘했다.
그리하여 훗날 카타리나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되는 장거리 수상비행기의
원형기인 XPY-1admiral이 탄생하게되는데 커다란 날개에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이 기체는 당시로서는 아주 새로운 개념의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해군은 복엽 비행정이아닌 단익의 새로운 비행정 개발을위해 1928년 2월 28일에
계약을 체결하고 XPY-1은 그해 12월에 완성된다.
통합항공은 다시 해군의 요구에 부합되는 XPY-1을 베이스로한 XP2Y를 개발하기위해
맥의 디자인팀은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모형이 해군의 승인을 받게되고 뒤이어
해군은 1931년 5월 26일에 한 대의 원형기를 제작하는 계약을 승인하게된다.
성능을 향상시키려는 방안으로 575마력 플랫 엔 휘트니 엔진을 3개 탑재하며
지지대가 적어지고 날개의 형상과 위치가 변경된다.
1932년 3월 26일 엔진 테스트에 들어가며 나중에 1개의 엔진을 제거하게된 P2Y는
초계 비행이 가능한 기체임이 판명되고 해군은 그해에 P2Y를 납품받으며 다시
쾌속운항이 가능한 형태를 가져야한다는 조건으로 새로운 초계 비행정 디자인을
받겠다는 발표를한다. 해군은 P2Y와 마틴 사의 P3M보다 더 크고 더 먼거리를
수색할 수있는 새로운 비행정을 요구했던 것이다.
메이저 항공사인 더글러스가 1933년 5월 20일에 한 대의 프로토타입의 비행정개발에대한
계약을 해군과 체결하게되어 통합 항공과 경쟁에 들어가게되었다.
더글러스 사가 개발한 기체는 XP3D-1 이었으며 통합항공의 XP3Y-1과 경쟁에
돌입하게되었다.
이 두 기종은 동일하게 새로운 엔진인 825마력 플렛&휘트니 XR-1830-58 트윈와스프를
탑재하였다. 삼엽 해밀톤 표준 프로펠러에 큰 날개와 연료탱크는 1750갤런의 연료를
적재할 수있게될 것이었다.
더글러스 XP3D-1. 1935년 샌디에이고에서의 테스트 비행
XP3Y-1
결국 해군은 XP3Y-1을 채택하게되는데 그것은 가격 때문 이었다.
더글러스에비해 통합항공은2만 달러 더 싼 가격을 해군에게 제의했던 것이다.
1933년말부터 시작된 XP3Y-1원형은 1935년 3월에 완성되어 3월 21일 통합항공
테스트 파일럿이 첫 비행을 하게되었다. 3월 28일에는 아나코스티아의 해군항공센터로
보내져 공식적인 첫 비행을 통한 예비테스트를 받게된다. 다시 노포크에서 거친
해상환경에서의 테스트를 받게되는데 여기서 기체가 손상당하지만 빠르게 수리되어
테스트를 계속 진행한다.
1935년 6월 29일 60대의 P3Y-1생산이 결정되었으며 그러한 가운데 개선을위한
테스트는 계속되었다. 6월에는 폭탄투하능력 테스트를 하여 개선될 부분을 개량하고
7월 27일 다시 노포크에서 실시된 거친환경 테스트에서도 역시 기체가 파손되어
밧줄로 끌어올려지게된다. 마침내 10월에들어 서부연안의 거친환경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게되었으며 해군은 이 기체가 쓸 만하다는 보고서를 올리게된다.
해군은 엔진에대한 개선을 요구하여 플렛&휘트니 900마력 R-1830-64엔진을
탑재하도록했다.
VP-12 소속 P3Y-1
비행중인 PBY-1. 해상에 수상기모함으로 개조된 항모 랭글리가보인다
1936년10월, PBY-1으로서 첫 번 째 생산된 기체를 시작으로 실전배치되어진다.
12대의 기체들이 1937년 1월 27일 늦게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하여 진주만의
VP-6F 비행대로 공급되었는데 이들은 21시간 48분만에 태평양을 가로질러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비록 논스톱은 아니었지만 이것은 PBY의 완벽한 초계능력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4월에 VP-11F비행대용 12대의 기체가 하와이로 공급되고,
VP-3F비행대의 23대가 파나마의 코코 솔로 해군기지에 27시간 58분간 비행끝에
도착하게된다. 마지막 기체는11월 25일에 인도되었다. 기체들은 전쟁 초부터
효율적으로 운용되었으며 잭슨빌의 비행훈련대에서 교육용으로도 쓰여진다
GUBA-I
구바는1937년 처음판매된 PBY-1으로서 파푸아뉴기니아 탐험에 쓰이기위해
네츄럴 히스토리에 민간용으로 판매되었다. PBY-2 민간용 구바-II는 1937년 12월에
파푸아뉴기니아로 전달된다. 1940년 10월에는 영국이 서아프리카 여객수송용으로
구입했으나 1944년 심한 폭풍우로인해 파손되어 폐기처분될 때까지
우수한 수송기 역할을수행했다.
소련은 화물과 우편 수송용으로 2대의 구바에대한 면허생산을 요청했다.
1937년 5월 15일 촬영된 VP-11 소속 PBY-2
PBY-2는 PBY-1이 납품되기전인 1936년 7월 25일에 50대의 발주계약이 체결되었다.
새롭게 발주되는 PBY-2는 PBY-1과 거의 동일했으나 850마력 플렛&휘트니
R-1830-64엔진을 탑재하고 수평꼬리날개가 견고하게 변경되었다. 발주기체 중에서
14대는 해밀톤이 아닌 커티스 전기식 프로펠러가 장착되었다. 첫 번 째 기체는
1937년 6월에 생산되었다.
1938년 VP-9소속 PBY-3
PBY-3는 1936년 11월에 66대의 생산이 발주된다. 먼저 생산된 기체들을 운용하여
얻은 경험들은 더 빠른 속도를 요구하게 만들었고 PBY-3에는 900마력의 새로운
플렛&휘트니 R-1830-66엔진이 탑재되었다. 이시기는 PBY의 완전독주시대로서
샌디에이고의 VP-7과 VP-9, 진주만의 VP-4와 VP-18등을 비롯해 파나마의
코코 솔로해군기지에이르기까지 거의모두가 PBY로 장비되었다
PBY-4의 프로펠러 허브 스피너 변경그림
PBY-4는 1937년 12월 18일의 계약에따라 시리즈 중 가장적은 숫자가 생산된다.
1050마력의 플렛&휘트니 R-1830-72 새 엔진을 장착, 프로펠러 허브 스피너를 보강하고
추운지역에서의 엔진결빙을 예방하도록했으며 시속은 316km이상을 기록한다.
1939년. PBY-4의 거의 마지막 기체가 납품되었을 때 더 이상의 납품은 없으리라는
예상을깨고 많은 수의 기체발주가 이루어지게된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전쟁에 돌입하게된 영국은 106대의 영국형모델 28-5(PBY-5)확보를위해
1941년 9월 15일에 계약을 체결하게된다. 영국은 10월에 PBY의 이름을
카타리나(CATALINA)라 붙여 이후부터 아예 고유명사가 되다시피한다.
유럽이 다시 전쟁에 휩쓸리자 미국은 1차대전을 거울삼아
더 광범위한 연안 초계를 위해 200대를 주문하게된다.
PBY-5의 테스트에는 마지막 납품되는 3대의 PBY-4를 포함시켰다.
플로리다 잭슨빌 해군항공센터에 전시된 PBY-5A
PBY-5 조종석. 기체에는 기본적으로는 2명의 조종사와 폭탄수겸기관총수1명,
무전수겸기관사 1명 그리고 동체양쪽의 기관총수 2명이 탑승하며 오랜시간지속되는
비행임무를 지원하기위해 침대와 저장된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조리시설이 설비되어있다
PBY-5A의 비치용과 랜딩용기어가 잘나타난 그림.
PBY-4의 직사각형 모양이었던 동체 중앙의 도어를 PBY-5에서는 반원형의 슬라이딩
방식으로 변경하여 50구경 기관총을 표준으로 장비하였으며, 1200마력 플렛&휘트니
R-1830-82엔진에 유압식 헤밀톤 프로펠러를 적용하고 공기흡입구와 배기관의
개수를통해 최고속도 320km, 최대항속거리 3144km에 이르게된다. 첫 번 째 생산기체가
1940년 9월에 해군에 인도되었다. 두 번 째 기체는 최초로 미국 해안 경비대에
공급되었는데 이 경비대는 나중에 V-189로 부대명칭을 부여받게된다.
기수의 쌍열 30구경 기관총탑 아이볼(eyeball)
동체 중앙의 양쪽에 설치된 슬라이딩 도어 총탑.
PBY는 브로우닝 M2HB 공냉식 50구경 기관총을 장비하였으며 (왼쪽)
기관총수는 조준경을 사용하여 사격한다
이 그림은 1944년 1월 부겐빌주둔 VP-81소속 PBY-5기관총수의 모습이다.
주익에 장착된 어뢰
1942년 6월 5일 미드웨이. VP-91 소속 PBY-5A주익에 500파운드 폭탄을 장착하고있다.
영국이 발주한 106대의 기체인 모델 28-5은 미국 민간비행사가 조종하여
버뮤다 지역에서 영국군에 전달되었고 여기서 다시 영국 비행사가 기체를 조종하여
영국으로 가져갔다. 영국은 넘겨받은기체들에 카타리나 I 또는 II라는 분류번호를
부여했으며 첫 번 째 도입 기체들을 209, 240연안통제 비행대에 배치한다.
이 비행대들은 16명의 경험많은 미군 조종사들의 보조하에 새로운 비행정들을
인수받았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는 칸소(CANSO)라는 명칭으로 각각36대와
16대의 PBY를 주문하였다. 한편 프랑스가 주문했던 30대는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자
영국으로 보내졌다. 이들 기체들은 총기와 무선기기를 비롯한 모든 장비들이
미국기체들과 거의 동일하게 갖추고있었다.
한편, 1939년 봄에 마지막으로 생산된 PBY-4(No.1245)는 동체 안으로 접을 수 있는
착륙장치, 즉 수납식 메인 랜딩기어를 채택한 수륙양용기체였으며 이 원형기체인
XPBY-5A는 1939년 11월 22일에 처음으로 비행하였다. 해군은 이 효율적인 수륙양용
기체들을 보유하기위해 이전의 계약을 수정하여 33대는
수륙양용기체로 생산할 것을 요구한다.
1940년, 캐나다의 보잉사는 PBY의면허 생산을하게되어 보급기지로서의
역할을 맡게된다. 1941년 6월 30일에 미국은 134대의 PBY-5A를 주문하고 이어서
10월에는 22대를 더 주문하게되는데 생산의 처음부터 시작하여 54대까지의
칸소는 미국 통합항공의 기계와 부품들로 제작된 것이었다.
1943년에는 처음으로 야기 레이더를 장착한 PBY-5A가 나온다.
캐나다의 보잉 사가 생산한 칸소
해군은 PBY를 더 개량하는 방안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그결과로 기체는 그 길이가 길어졌으며 재질과 주날개를 비롯한 꼬리날개등의
재설계를 필요로했는데 이미 발주되어 생산에들어간 기체들에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었다. 해군은 그 대안으로서 1941년, 해군 비행공장에 생산라인을
만들어 새롭게 개발한 기체인 PBN-1 nomad를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하게된다
PBN-1
PBN은 동체길이가 56인치 더 길어지고 기수하부에 넓은 폭탄투하 확인창이 설치되며
기수총탑이 동력식 회전총탑으로 바뀌고 총기는 30구경에서 50구경 기관총으로
변경된다. 주익은 재 설계되어 더 많은 연료를 적재하고 이륙시 활주 거리를 줄여주게
된다. 천천히 개수를 해오던 PBN은 1943년 2월에 156대가 제작되도록 계획되었으나
마지막으로 기체를 받게되는 1945년 3월까지 미 해군은 오직 17대만 수령할 수 있었다.
그것은 소련군에게 137대의 많은 수량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라고한다.
소련 해군 비행장의 PBN-1
카타리나 VI(PB2B-2) 비행정
보잉 캐나다에서 영국해군과 공군, 캐나다군을위해 제작한 기체이며
미군은 소 수를 사용한다. 최신레이더를 장비하고 결빙 방지 시스템을 적용하였다
PBY의 마지막 버전은 PBY-6A이며 공군용으로 OA-10A가 제작된다
1948년. 레스큐 도장을한 공군 OA-10-V1기체.
공군용 카타리나 OA-10
전쟁동안 카타리나는 야간에 레이더를 이용하여 적을 포착하고 그 정보를 아군 측에
제공하는한편 공격을 감행하기도하였다. 특히 블랙 캣으로 불리우던 기체들은
과달카날을 비롯해 솔로몬 군도의 여러섬에 배치되었는데 맨처음 과달카날에배치되었던
VP-12를 이어 VP-11,VP-52, VP-81비행대들이 속속 배치되어 태평양전선에서
활약했다. 이들 블랙 캣들은 개량된 레이더를 장착하고 주로 야간에 출격해
일본 구축함과 잠수함등을 공격하여 큰 성과를 올렸다.
승무원들 뒤의 블랙 캣 로고
카탈리나의 가장 큰 업적은 해상 구조작전에 있었다. 바다에 불시착하여 표류하던
항공기 승무원들은 자신들을 구조하기위해 날아온 카타리나를 덤보라 불렀다.
덤보는 월트 디즈니의 영화에나오는 하늘을 나는 코끼리의 이름이었다.
많은 항공기 승무원들이 바다 위에서 실종되어사라지자 미군은 구조라인을 설정하여
광대한 지역을 수색정찰하도록 조처하여 항공승무원들을 구해냈고,
승무원들은 전투 중 바다에 불시착하더라도 덤보가 자신들을 구하러오리라 굳게믿었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수의 카타리나가 다른나라로 공여되거나 판매되었으며 오지탐험,
과학탐사용 기체로또는 산불 진화작업에 쓰여졌다. 카타리나는 최대1100갤런의
물을실을 수 있었다.
생산: 비행정 총 생산 1854대. 수륙양용 총 생산 1418대. 총 생산 댓수 3272대
10부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