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져린교훈 디에프(Dieppe)상륙작전 ...2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7.14 20: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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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비치의 로얄연대

디에프로부터  동쪽으로 1.6km 지점에 위치한 푸이스 해안은

약 3.5m높이의 안벽과 길이 250m의 폭이 좁은 길이있는 곳이었다.

안벽과 폭이 좁은 진출로에는 독일군 기관총 진지가 있었으며

안벽의 꼭대기에는 가시 철조망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었다.
높은 암벽과 바위  투성이인 이 곳은 공격자에게는 치명적으로 불리한 자연조건이었다.

캐나다 4보병여단의 로얄 캐나다 연대는 푸이스 해안을 공략한 다음 최종적으로

디에프 항 정면의 레드비치에 상륙할 에* 스코티시연대와 연결되어야 한다.

또한 독일군 "롬멜 포대"를 온전히 점령하고 대공 방어망을 제거할 임무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포대를 점령한 후 노획한 독일군 포를 운용할 수 있도록 소수의

포병이 특별히 연대에 포함되어 있었다.

 

 

더글라스 카토 중령이 지휘하는 로얄 연대는 총554명의 병력이 3개파로 나뉘어

푸이스(블루비치)에 상륙하도록 계획되어 있었으며 그어떠한 공중 및 함포지원도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

상륙주정들이 대형수송함으로부터 전개되는 순간부터 로얄연대의 운명은

이미 결정 지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디에프로 진격하기 위하여 lcp들이 대오를 정비하느라  시간이 지연되어 버렸는데,

이것이 재앙의 결정적 원인이되었다.
연대가 블루비치 가까이 접근하였을 때의 시각이 05시 06분으로,

이것은 사전 계획보다 16분 늦은 때였다.
그동안 다른 지역으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은 푸이스지역 독일군은 비상 상태에

들어가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로얄 연대 제1파의 상륙주정들이 유효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자 독일군은 일제히 집중사격을 개시하였다.
공격 제1파는 그야말로 우산도 없이 총탄의 비를 맞는 꼴이 되어 버렸다.

 

소형 보트들은 속속 좌초당했으며 램프를 열고 뛰쳐나온 병사들은 주정의 측면에

몸을 숨겨 쏟아지는 총탄을 피하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폭이 좁은 해안은 허허벌판에

다름없었고  독일군의 기관총탄은 인정사정없이 병사들을 쓰러뜨렸다.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내달려 안벽에 최대한 밀착시켰으나 독일군의 시야를

완전히 비켜갈 수는 없었다. 상륙 제1파는 피난처를 찾느라 우왕좌왕 뿔뿔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통제력은 완전히 상실되어 버렸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용감하게 암벽 등반을 시도했던 병사들은 어김없이

기관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장교들은 암벽아래로 병력을

집결 시키려 20분간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그때, 계획된대로 제2파가 블루비치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해안에 접안한 상륙주정의 램프가 열리자마자 병사들은 곧 바로 도륙당했고

주정들은 가라앉거나 뒤집혔다. 작전은 완전히 얽혀버렸다.

10분 후, 블랙와치중대와 연대본부 병력으로 이루어진 제3파가 해안으로 들어왔다.

병사들은 절벽아래에 몸을 숨겼으나
안벽을 향해 달리든, 절벽을 기어르든 그 어떠한 시도도 곧 죽음을 의미했다.

 

121603447635899.jpg푸이스(블루비치)

 

121603451340575.jpg그린비치

 

 

그린비치의 사우스 케치세스원

 

블루비치의 로얄 연대가 꼼짝없이 도살당하고 있을 무렵, 디에프 서쪽

푸르빌 마을 해변(그린비치)에는 캐나다 사우스 세스캐치원 연대가 계획된

시각인 04시 50분 도착했다.
그린비치는 푸이스보다는 길었으나  공격자에게는 아무래도 불리한 지세였다.

해변의 동쪽은 절벽으로 이루졌고 연대가 상륙할 스시에 강 입구는

대전차 장애물로 사용키위하여 둑으로 막혀있었다.
도시로 통하는 길은 모두 절벽 뒤에 있으며 절벽 위에는 사우스 케치세스원 연대의

가장 중요한 목표인 레이다 기지가 위치했다.

해변 뒤로는 철조망이 설치된 낮은 안벽이 있으며 동쪽 절벽에는

독일군 진지가 교차 설치되어 있었다.

 

그린비치에 상륙하면 연대의 오른쪽을 담당한 b, c중대는 비치의 푸르빌로

전진하면서 동시에 서쪽 절벽의 적을 제거한다.
왼쪽을 맡은 a, d중대는 해변의 동쪽 레이더 기지를 점령한다.

그 다음에 후속부대인 캐나다 카메론 하일랜더 연대 병력이 그린비치에 상륙하여

디에프에 상륙한 전차와 함께 생오빈의 비행장 점령을 위하여 동쪽 측면을 따라

내륙으로 진격한다. 그러면서 "히틀러 포대"를 공격한 후 아르퀘스의 독일군 302

사단본부를 공격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04시 50분,

동쪽을 맡은 연대병력은 어둠 때문에 강의 서쪽 방면으로 상륙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나 작전은 속개되어 서둘러 강 다리를 건너 마을 동쪽으로 움직였다.

d중대는 푸르빌  마을의 서쪽지역을 평정하고 절벽 서쪽 독일군 진지를 성공적으로

공격하였다. 그러나 마을 동쪽과 다리 부근은 여전히 독일군이 장악하고 있었으며

2개 중대는 다리를 건너 동쪽으로 전진해야만 했다.
다리를 건너던 중대는 독일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았다. 여러번 탄막을 뚫고

다리 건너기를 시도했으나 수 많은 전사자만 남기고 퇴각해야했다.

다리가 캐나다군의 무덤으로 변하고 진격이 멈추자 사우스캐치원 지휘관

찰스 메리트 중령은 부대의 전면으로 뛰어나가 당당히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는 " 보라! 여기는 아무런 위험도 없다!"고 외치며 병사들의 진격을 독려했다.

여기에 용기를 얻은 병사들이 다리를 향해 달려나갔고 많은 병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다리를 건넌 메리트 중령은 공격을 선두에서 지휘하였으며,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 최선두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메리트 중령은 나중에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수여받는다.

사우스 세스캐치원 병사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가운데 그린비치에서는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후속부대인 카메론 하일랜더 연대 병력이 30분이나 늦은 05시 50분에

상륙했던 것이다.
하지만 카메론도 대부분의 상륙주정들을 서쪽에 접안하는 실수를 범했고,

거기에다 맨 첫 번째 전사자는 대대장 알프레드 고틀링 중령이 되어 버렸다.

대대 지휘권한을 넘겨받은 토니 로우 소령은 즉각 작전을 변경하여

스시에 강 서쪽을따라 내륙으로 전진했다.

동쪽에 상륙한 병사들은 세스캐치원 부대와 합류하기 위하여 움직였다.

내륙으로 전진하던 토니 로우 소령의 부대는 매번 적의 공격을 받았다.

로우 소령은 제1 목표인 스시에 강에 걸쳐진 아페빌의 작은 다리를 건너 디에프로

향해야 했다. 그러나 로우 소령은 다리가 이미 독일군의 수중에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오우빌 다리를 건너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독일군 제302사단장 콘라드 헤스 소장은 571연대에 경보를 발령하여

단 한명의 적도 오우빌 다리를 건너게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히 지시하였다.

먼저 독일군 제1대대의 자전거 소대가 다리를 향해 출동했고 그 뒤를 이어

대전차 중대와 보병 소대병력들이 속속 보강되었다.

다리 부근에 독일군이 대량으로 집결하자 로우 소령은 다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다고해서 우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오우빌로 통하는 모든 도로는 독일군에 의해 점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린비치 동쪽에서 합류한 카메론과 세스캐치원 병력들은 절벽 위의

레이더 기지를 공격했으나 매번 격퇴당했고 독일군 병력은 더욱 더 증강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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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비치를 공격했다가 실패한 후 lcp로 탈출한 제3특공대원들

 

디에프 항 정면 공격  / 레드, 화이트비치 -에* 스코티시, 로얄 해밀턴

도시 바로앞에 위치한 디에프 항구는 약 220m 길이의 낮은 안벽과 자갈로

이루어져있다. 자갈해변은 독일군이 도랑을 파 대전차 장애물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해변 양쪽으로 돌출된 지점에는 디에프 항구를 겨눈 독일군

진지가 교차 설치되어 있었다.

 

 

연합군은 디에프 항구를 두 개의 상륙지점으로 구분하였다.
항구 왼쪽(동쪽)을 레드비치로, 오른쪽(서쪽)을 화이트비치로 명명했으며

레드비치는 에* 스코티시 연대가, 화이트비치는 로얄 해밀턴 경보병 연대가

공격하기로 계획되었다.
에* 스코티시 연대는 디에프 항구와 도시를 점령한 다음

블루비치의 로얄 연대와 만나기위해 동쪽으로 진격하고,

로얄 해밀턴 연대는 도시의 서쪽지역을 점령한 다음 그린비치의

세스캐치원 연대와 만나 서쪽 돌출부를 공격할 예정이었다.

 

제14 캐나다 전차대대(캘거리) 소속 8대의 선도 처칠 보병전차는 화이트비치에 

상륙하여 그린비치에 상륙한 카메론 하일랜드 연대의 생오빈 비행장과 아르퀘스의

독일군 사단본부 공격을지원하도록 되어 있었다.

 

 

블루비치(푸이스)와 그린비치(푸르빌), 옐로우비치 공격이 실패한 것을

모르는가운데 디에프 항 정면을 향한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05시 02분,

해안 수 킬로미터 바깥에서는 구축함(버클리, 브리스데일, 거스, 알브라이튼)4척과

1척의 포함(로커스트)이 상륙주정들을 호위하며 디에프로 접근하고 있었다.

상륙주정들이 해안을향해 돌진해들어가자 구축함은 디에프의 표적지를 향해

10분간의 함포사격을 개시하였다.

함포 사격으로 3개의 건물이 불타오르자 구축함은 2개의 돌출부를 향하여

포문을 열었다. 동시에 영국공군기들도 방어진지와 콘크리트 벙커, 돌출부를

공격하였다. 단시간의 함포, 항공지원이 끝나고 공군기들이 상륙군 보호를위해

연막탄을 투하하였다. 상륙주정들은 예정된 시각보다 3분 늦은 05시 23분, 

레드비치와 화이트비치에 도달했다

121603472420924.jpg선체를 숨기려 lcp 주정들이 연막을 펼치고있다

 

최초상륙시 독일군의 공격은 비교적 가벼워서 상륙주정들은 큰 손실없이

병력과 장비들을 양륙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약 82m거리의 해변을 달려서 제1철조망을 절단하고 안벽을 넘으려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한다.

병사들은 안벽 위의 철조망을 넘어 폭 200m의 해안로를  가로질러가야 했는데,

언덕과 주택가의 지붕과 창문에서 기관총탄과 박격포탄이 날아왔다.
함포와 항공기의 공격에 독일군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이다.
용감하게 돌격을 시도한 병사는 어김없이 총탄에 쓰러졌고,

안벽 위로 머리를 내밀면 저격총탄이 끔찍하리만치 정확하게 날아왔다.

해안로를 가로지르려는 그 어떠한 시도도 용납되지 않았다.
병사들은 해변에서 한 뼘도 나아가지 못한 채 그저 죽은 듯 엎드려있어야만 했지만

사실상 그대로 노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측면 돌출부에서 가해지는 기관총과 박격포 사격에 의해 큰 피해를 당하고 있었다.

특히 전황을 보고하려고 안테나를 세우던 무전병들은  저격병의 제1 표적이

되었으며 병력을 지휘하려고 부단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장교들의 피해가 극

심했다. 순식간에 박격포병과 기관총사수, 공병폭파대원들이 죽어 버렸기 때문에

일반 소총수들은 죽은 척 가장하여 총탄이 비켜가기만을 기도했다.

레드, 화이트비치의 대학살이 진행되는 가운데, 병사들을 보호해주어야할 전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상륙작전의 승패를 가름하는 몇 분간의 결정적 시기를 놓쳐 버린 에* 스코티시,

로얄 해밀턴 연대병력은 속절없이 마냥 찢겨지고 있었다. 10분이 지난

05시 33분과 38분, 9대의 처칠전차를 탑재한 3척의 lct가 디에프 항구에 나타났다.
독일군은 해변으로 접근해들어오는 lct에게 공격을 집중시켰으나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곧이어 들어온 3척의 제2파 lct가 양륙을 시도하는 동안

독일군의 집중 표적이되어 해변은 혼란이 가중되었다.

lct-126과 lct-145는 각각 3대씩의 전차를 양륙시킨 뒤 해변을 빠져나가다

피격당해 침몰하고 말았다.

lct-127은 양륙하는 동안 대부분의 승무원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당했으나

겨우 해변을 벗어날 수 있었다.

lct-159와 lct-163은 포탄에 맞아 좌초되었다.

 

30분후, 해변으로 들어온 4척의 lct 제3파도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lct-124는 전차를 양륙하고 바다로 빠져나갔으나 결국 침몰했으며

lct-125는 1대의 전차만 양륙시킨 뒤 해변을 빠져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으나

승무원 대부분이 전사하고 말았다. lct-165와 lct-166도 포격으로

만신창이가된  가운데 전차를 양륙시키고 바다로 빠져나갔다.

총 30대의 전차 중 28대가 레드 ,화이트비치에 상륙하였고 2대는 물 속에 가라앉았다.

121603481887423.jpg디에프 해변에 좌초된 l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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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t에서 양륙되는 처칠전차

 

121603489396048.jpg디에프 해변의 파괴된 처칠보병전차

 

 

전차들은 시내를 향한 돌격을 시도했으나 자갈 때문에 기동이 쉽지 않았고

몇대는 고장이 나서 해변에 그대로 눌러 있어야했다.
적의 대전차포 사격을 무릅쓰고 안벽을 넘은 전차들은 콘크리트로 구축된

대전차 장애물에 의해 저지당했다. 상륙 초기에 공병 폭파대원들 대부분이

전사했기 때문에 대전차 장애물을 처리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안벽을 넘는데 성공한 15대의 전차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채로

포격을 실시하였지만 대전차포의 위협과 탄약이 고갈되어 결국 다시 해변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몇 용감한 병사들이 폭약통을 이용하여 방어선을 뚫고 시내로 전진해들어갔으나

저격당하거나 포로로 붙잡혔다.

 

 

화이트비치에 상륙한 로얄 해밀턴 경보병연대는 그나마 조금은 성공적인

전투를 하고 있었다. 카지노 부근의 장애물을 돌파한 병사들이 건물로 진입하여

치열한 총격전 끝에 내부의 독일군을 물리쳤다.
캐나다군이 카지노 건물 1층을 점거하자 독일군은 여러번 탈환을 시도했으나

창문에서 가해지는 경기관총 사격에 의해 격퇴당했다.
이를 기회로 토니 힐중위는 10여명의 병력을 인솔하여 도시로 진입해들어갔다.

그들이 대전차 장애물을 넘으려는 순간 적의 총탄이 쏟아졌다. 독일군과 총탄을

주고받으며 우회한 힐중위는 극장을 점거했다. 여기에서 또 다른 소대들과

합류했으나 독일군의 강력한 탈환 작전에 밀려 탄환이 모두 소진된 병사들은

카지노 방향으로 퇴각하고 말았다.

조지 힉슨하사의 지휘하에 18명의 병사들은 카지노 건물을 빠져나와

전화교환국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을 타고 이동했던 병사들은 탄약이 떨어지자

전화선들을 절단하고  퇴각했다.

 

 

 

캐나다 6보병여단장 윌리암 사우스햄 준장은 안벽아래에 돌을 쌓아 여단본부를

설치하였다. 그는 여단본부의 유일한 고급장교였다.

함께 해변으로 향했던 4보병여단장 셔우드 레트준장은 탑승했던 lct가 포격당해

의식을 잃어버렸고, 로얄 해밀턴연대장 라바트중령이 지휘권을 넘겨받았던 것이다.

한편, 지휘본부가 설치된 구축함 칼프의 캐나다 제2보병사단 존 해밀턴 로버트

소장은 자신의 부하들이 무참히 도륙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병사들이 디에프 시내로 진입하였다는 잘못된 보고도 들어와 있었다.

이것은 소 수의 병사들이 카지노까지 진출했던 것을 디에프 해변의 지휘부가

아비규환 속에서 잘못 판단하여 보낸 보고였다.

로버트소장은 디에프 상륙작전의 어려움은 예상하고있었으나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동쪽의 돌출부에서 가장 강력한 적의 공격이 실시되고 있다는 정보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제압하기 위하여 퓨질리어 몬트 로얄연대를

레드비치에 상륙시키기로 결정하였다.

 

 

레드비치 동쪽 돌출부의 독일군을 공격하여 에* 스코티시연대를 지원하라는

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몬트 로얄연대는 디에프 항을 향해 돌진했다.

독일군의 강력한 탄막과 해상에 넓게 펼쳐진 연막의 띠를 뚫고 전진해들어간

300명에 가까운 연대병력의 대부분이 잘못된 지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총탄이 빗발치는 혼란 속에서 대부분의 상륙주정들은 예정된 상륙지점을 벗어나

서쪽의 절벽아래에 접안하고 말았다. 절벽아래 고립된 병사들은 왼쪽으로

선회하려 노력했으나 그때는 이미 모두가 항복해 버린 후가 되므로

결과적으로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나마 후속으로 상륙한 병사들 중 자유프랑스군을 포함한 소수가 도시 깊숙한

부근까지  들어가는데에는 성공했으나 결국 포로가되거나 해변으로 후퇴하는 등 후

속 상륙부대전체가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해변은 곳곳에 늘려진 전사자 시신과 부상자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로 

지옥을 연상케했다.

독일군 저격수들은 부상자를 치료할 수 있도록 의무병을 저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탄은 의무병이든 부상자든 가리지 않고 해변의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아비규환 속에서 해밀턴연대 소속 군종신부 존 쿠트대위는 전사자와

부상자 사이를 오가며 기도했고, 나중에 부상자와 함께 철수를 거부하고

계속 해변에 남아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수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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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 버려진 폭약과 도화선.

상륙초기 공병폭파반원 대부분이 전사하여 대전차장애물을 제거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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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병 특공대원

 

지휘구축함 칼프의 로버트 소장은 원래 기습공격에 투입하려다 계획을바꿔

남겨둔 픽톤 필립스중령의 영국해병특공대를 화이트비치에 증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앞서 투입된 몬트 로얄연대가 서쪽절벽부근으로 잘못들어간 사실을 알지 못했던

로버트소장은 해병특공대에게 서쪽 돌출부를 공격하여 상륙군을 지원토록 지시하였다.

 

영국해병특공대는 8척의 상륙주정과 자유프랑스군의 체이셔에 승선하여 해안으로

향했다. 보트들은 모습을 감추기 위하여 바다에 연막탄을 던졌고, 이 때문에

해병특공대는 해변의 참극을 알 수 없었다.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강렬한 포화와  기관총탄이 쏟아졌다.
연막의 차장을 뚷고 해변에 도착한 해병특공대장 필립스중령은 비로소 해변이

도살장이 된 것을 알게되었다. 불타는 전차 양륙함, 주저앉은 전차, 곳곳에 늘부러진

시신과 부상자의 절규, 쏟아지는 포탄...
작전이 실패한 것을 깨달은 필립스중령은 자신의 보트에 우뚝 선 채

연막을 뚫고 들어오는 후속 주정들에게 되돌아가도록 수신호를 했다.
날아온 총탄이 필립스중령을 쓰러뜨렸으나 그의 수신호 덕분에 대부분의

해병특공대는 방향을 전환하여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대로 밀고들어온 주정의 병사들 대부분이 전사하고

나머지 소수는 부상을 입고 포로가되었다.

 

 

해병특공대와 함께 해변으로 돌진했던 자유프랑스군 보트의 병사들은

해변의 참극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휘구축함 칼프를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09시 15분, 구축함 칼프의 지휘본부는 작전의 실패를 인정했다.
즉각 후퇴하지 않으면 전멸당하게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로버트소장은 10시 30분에 철수작전을 개시하라고 지시하였으나

파견공군장교가 10시로 당기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그리하여 철수작전은 10시를 기해 실시되는 것으로 각급 지휘관에게 통보되었다.
해군은 lct를 각 해변에 접안시켜 병력을 철수시키는 것으로 계획하였으나

적의 포화에 큰 피해가 예상되어 포기하였다. 결국 해군은 lct를 앞바다에 두고

소형 보트로 병사들을 실어나르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각 해변의 지휘관들은 보고받은대로 철수작전이 10시에 실시되는 것으로 믿고

끝까지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나 11시나 되어야 철수작전에 사용될 보트를 모두

준비할 수 있다는 보고에따라 철수예정시각은 11시로 변경되어 버렸다.
시간의 지연은 더 많은 캐나다군을 지옥으로 밀어넣는 결과를 가져왔다.

121603507649349.jpg구조되어 구축함에 승선한 캐나다 제2사단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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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캘거리전차연대 포로

 

 

그린비치에 상륙한 카메론 하일랜드 연대와 사우스 세스캐치원 연대는

계획된 생오빈 비행장 근처에 발도 딛지 못하고 병력의 40%를 상실한 채

포위망을 뚫으며 해변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10시 45분, 6척의 구조  lca가 그린비치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레드비치에 상륙하여 철수병력을 태워야했으나 연막 때문에

방향을 잃어 푸르빌에 도착했던 것이다.
2척의 구축함이 지원 포사격을 가하는 가운데 병사들은 상륙주정을 향해 달렸다.
탄막 속에서 상륙주정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병사들을 태우려 노력했고

이 때문에 한척이 전복되어 버렸다.

용감한 상륙주정 정장들은 포화에 노출된 채 병사들을 구조하였으며,

너무 많이 태워 속도는 매우 떨어졌지만 구축함까지 도달하여 병사들을 인계하고 

다시 해변으로 되돌아갔다.

11시, 4척 이상의 상륙주정이 푸르빌해변에서 손실되었으며

2척의 구축함도 격침되고 말았다.

11시 30분까지 약 100명의 병사들이 그린비치에 남겨져있었다.

더 이상 철수가 불가능하자 카메론 하일랜드 연대와 사우스 세스캐치원 연대는

독일군에게 항복했다.

12시 15분, 상륙주정들이 구출을 위해 그린비치로 접근했으나

해변에는 단 한 명의 아군병사도 보이지않았다.
대신 포탄이 날아오자 lca들은 난바다로 다시 되돌아가야했다.

 

 

10시 20분, 8척의 상륙주정들이 레드비치를 향해 들어갔다가 이중 6척이

파괴되고 2척만이 소수의 병사들을 철수시켰다. 하늘에서는 영국공군기들이

독일기들과 공군전을 치르며 철수작전을 지원하였다.
화이트비치로 들어간 4척의 상륙주정 중 1척은 곧장 포탄에 맞아 파괴되고

나머지 3척은 각각 약 70명의 병사를 구조하였으나 2척은 나중에 침몰하였다.

독일공군 도르니에 폭격기들은 난바다의 구축함을 폭격하여 1척을 격침시켰다.

 

12시 40분,

로버트 소장은 지휘 구축함 칼프를 해안가까이 고속접근시키도록 명령하였다.
구축함의 4인치 함포가 포격을 실시하는 가운데 로버트 소장은 황망히 해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움직이는 것은 모두 독일군이었다.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자신의 눈으로 전황을 직접확인한 로버트소장은 연막탄을 발사하여

선체를 숨긴 채 난바다로 빠져나갔다.




디에프상륙작전에 참가한 6,000명 중 2,078명이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캐나다군은 56명의 장교와 906명의 병사가 전사한 것을 포함하여

총 3,367명이 죽거나, 부상 또는 포로가되었다.
9시간 동안의 전투에서 발생한 캐나다군 포로는 이탈리아전선에서

20개월 동안 붙잡은 적 포로 숫자보다 더 많았다.

특공대(코만도)는 270명을 상실했고 해군은 550명을 잃었다.

영국 공군은 48대의 항공기와 67명의 조종사를 상실했다.

독일군은 총 600명의 인명 손실이 있었다.

 

디에프 상륙작전은 독일군의 완전한 대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대승리가 몇 년후, 노르망디 패배의 불씨가된다.
독일 정보기관은 디에프 해변에서 캐나다 6보병여단장 윌리암 사우스햄 준장의 

"쥬빌리작전계획서"를 노획하여 차후 연합군의 상륙작전에 대비하였지만,

참담한 대실패를 경험한 연합군은 이를 교훈삼아 노르망디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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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살아남은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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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프 해변에서 포로들을 심문하는 독일군 장교.

                        


121603529272765.jpg푸르빌 부근에서 부상 당한 채 쓰러져있는 캐나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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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프 해안의 캐나다군 포로들

 

 

자료제공 : 사진으로 보는 2차 세계대전 자료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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