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계최초 실용 자동권총의 직계후손
1887년, 이제 막 맥심의 기관총이 군과 민간에 주목을 끌고 있을 시절, 독일의 총기 기술자인 보어하르트(Hugo Borchardt)는
맥심 기관총에 힌트를 얻어 총의 반동을 이용하여 자동으로 급탄이 되는 권총,
즉 자동권총(Semi-automatic self-loading pistol: 반자동 자동 장전 권총)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1893년, 최초의 실용 자동 권총 Borchardt C-93을 개발합니다.
맥심 기관총의 구조를 흉내내 이 총은 총 상부에 앞뒤로 움직이는 토글(toggle)이 설치된 이 총은 당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1894년부터 루드비히-뢰베(Ludwig Loewe)사에서 생산되었으나,
최초의 자동권총인 만큼 신뢰성 면에서 이미 완성되어있던 리볼버에 비해 뒤떨어졌을 뿐아니라,
길이도 지나치게 긴 감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나라 군에도 채용되지 못하고 민간 호사가들의 수집품 이상의 성공은 거두지 못합니다.
[Borchardt C93, 세계최초의 자동 권총이지만 어느나라 군에도 채택 되지 않았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길이 35.5cm, 무게 1.16kg, 7.65mmX23(7.65mm 파라블럼)8연발]
[Borchardt권총의 상부, 맥심기관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반동을 받아 탄을 재장전 시키는 토글이 달려 있다]
그러나, 이무렵 루드비히-뢰베사의 직원이었던 한 남자가 보어하르트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권총을 만들게 됩니다.
1871년 육군 중위로 전역한 게오르그 루거(Georg Luger)는 전역후 루드비히-뢰베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회사가 보어하르트의 권총을 생산하기 시작한 1894년에는 이 권총을 판매 하기 위해 미국에 건너가 미 육군과 접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에 나온 이유로 미군으로부터 거절당하고 독일에 귀국한 뒤,
DWM사(루드비히-뢰베사가 창업자의 사망후 회사는 DWM(Deutsche Waffen und Munitionsfabriken)과 DMK로 나뉨)에서 일하면서
보어하르트의 설계를 바탕으로 미군으로부터 지적받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매달리게 됩니다.
이리하며, 1898년, Luger-Borchardt 권총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루거 권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보어하르트의 설계를 발전시켜 루거 권총을 개발한 게오르그 루거(Georg Luger)]
2. 루거의 발전과 9mm 파라블럼탄, 그리고 P08
최초의 상업적인 루거 모델은 보어하르트 권총과 마찬가지로 7.65mmX23(7.65mm 파라블럼)탄을 사용했으며,
처음에는 루거-보어하르트 권총으로 불리다가,
1900년 스위스 육군에 채택된 것을 계기로 Ordonnanzpistole 00(줄여서OP00)로 불리게 됩니다
[스위스군에 채택된 OP00, 7.65mm 8연발]
이 권총은19세기 말부터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루거 M1900 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시장에서,
당시 막 등장한 콜트 M1900등과 경쟁하며 크지는 않았던 미국의 자동 권총 시장을 사실상 양분하게 됩니다
[M1900이라는 이름으로 초기 루거 권총은 미국시장에서도 어느정도의 성공을 거둔다.
사진은 6인치(200mm) 총열 버전, 미국판매용 M1900에는 그립 세이프티가 부착 되어 있었다.]
[역시 미국수출 용이었던 .45구경 루거 M1906. M1900과 마찬가지로 그립 세이프티 장비]
루거권총이 포르투갈, 칠레, 브라질, 네덜란드, 불가리아의 권용권총으로 채택된데 힘을 얻은 DWM사는
이제까지의 사용자들이 제기한 7.56mm탄이 좀 약하다는 지적에 따라,
1902년, 영국 소화기 위원회(British Small Arms Committee)에 영국육군 차기 권총을 노리고
신형 9mm파라블럼 탄 사용 모델을 제출 했습니다만,
자동권총의 신뢰성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영국육군과 소화기 위원회는 루거권총을 거절합니다
[원래는 영국육군의 권총자리를 노리고 개발되었던 9mm파라블럼탄(9mmX19).
파라블럼이라는 뜻은 당시 DWM사의 모토였던 라틴어 "Si vis pacem, para bellum: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대비하라" 에서 유래.
현대에는 가장 흔하고 널리 쓰이는 권총탄이 되었다.]
비록 영국군에 납품하지는 못하게 되었으나, 신형 9mm탄과 이것을 사용하는 권총은 1904년 독일 해군에 채택 되었으며,
[독일 해군용 Luger 9mm버전, 사진의 6인치(200mm)모델이 해군 표준이었지만, 육군과 같은 4인치(140mm)모델도 보급 되었다]
[독일육군에 채용된 P08보병용. 길이 16.7cm, 무게 930g(빈총), 9mm파라블럼탄 8연발.
140mm(4인치)총열이 보병용권총의 표준모델이었다]
[P08 홀스터]
독일 육군에 납품된 루거중 특이한 모델은 바로 31.3cm의 장대한 길이 자랑하는
일명"Long Luger", "Luger Artillery"라 불리는 포병용 루거 권총입니다.
원래는 루거 장총신 버전을 접한 독일 육군 기병대가, 마상에서의 재장전과 탄약 재충전이 불편한 기존의 Kar98카빈을 대체할 모델로,
반자동 사격과 탄창교환이라는 빠른 탄약 재충전, 그리고 작은 크기의 이점을 살리고,
부족한 위력과 사거리는 보다 길어진 총신으로 매꾼다는 발상으로 장총신 루거를 요구함에 따라 개발이 시작된 물건이었습니다.
1913년, 기존 모델에 비해서 긴 총신에, 800m까지 조준되는 탄젠트 가늠자를 부착한 모델이 군에 제식 채용되어,
1914년부터 양산에 들어갔으나,
1차세계대전이 참호전으로 바뀌면서 기병대가 사실상 보병화되면서 기병대의 수요는 사라집니다.
대신 보병에 비해서 소총사격의 기회가 적은 포병장비로, P08/NA(neues art:신형 포병용)라는 제식 번호로 지급 됩니다.
그리고 전쟁중반, Sturmabteilung(영어로 stormtrooper)라 불리는 침투/돌격부대가
기존의 루거에 비해 위력과 사거리가 우수한 데에 주목하여 대량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원래는 기병의 카빈총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 되었으나 포병에게 처음 지급 되었던 "롱 루거"]
[개머리판 겸용 홀스터와 대용량 드럼 탄창(32연발). 탄창은 MP18기관단총과 호환된다]
[홀스터와 드럼탄창을 부착한 롱 루거, MP18과 함께 Sturmabteilung에게 애용되었다.]
1차대전 발발당시 보병장교들, 포병대원, 그리고 잠수함 승무원들에게만 지급 되었던 루거는 전쟁의 격화에 따라
기관총 사수, 항공기 승무원, 그리고 참호전의 격화에 따라서 보병 하사관들에게 까지 지급되었습니다.
단도와 야전삽, 철조망을 감은 몽둥이에 중세식의 메이스나 도검류 까지 동원된 참호전에서,
적군의 리볼버에 비해서 두발 많고, 쉽게 리로드 되는 루거는 강력한 9mm파라블럼탄의 위력까지 더해져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토글액션의 복잡한 작동구조와, 진흙과 먼지가 들어가기 쉬운 설계때문에 리볼버에 비해서 쉽게 고장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4.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루거
1차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난뒤, 독일군의 군대 규모는 극도로 제한 되었고, 신무기 무기의 개발에도 제약을 받았으며,
전쟁 직후의 인플레와 20년대 말 밀어닥친 세계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루거는 1차대전때 노출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개량없이 한동안 독일의 주력 권총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23년 신생 핀란드군의 제식 권총으로 채용되는 등, 상업적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둡니다.
[1923년 핀란드군에 채택된 P08, 7.65mm 8연발]
그러나, 1930년대 후반, 히틀러 집권후 독일군의 재무장에 따라,
1938년, 보다 내구성과 신뢰성, 생산성이 우수한 신형 권총 발터 P38(Walther P 38)의 등장에 따라
주력 권총의 자리에서 밀려나 대체되어가는 신세가 되었으나,
2차대전의 격화에 따라 발터 권총만으로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덕분에 여전히 독일 육해공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동맹국이 핀란드나 불가리아등에서는 여전히 제식 권총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며,
일부 영국군장교들은 엔필드 MKI 리볼버가 위력이 부족한데 불만을 품고 사적으로 구입했던 루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소련군도 초기에는 1차대전 전에 수입되었던 물건들이 종종 나타나는 일도 있는 등,
루거P08은 2차대전에도 유럽과 북아프리카전선 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이후, 서독군은 P38의 개량형 P1을 제식 권총으로 채용하 였고, 동독군은 소련제 TT권총을 재식 체용하면서
양 독일군에서 P08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며,
브라우닝 하이파워, 마카로프 같은 신뢰성과 생산성, 내구성및 장탄능력면에서 우수한 권총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P08은 민간과 경찰용 권총으로서의 가치도 사실상 상실하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세계최초의 자동권총의 직계후손으로서, 현대에도 가장 아름다운 권총중 하나로 꼽히는 루거P08은,
당시의 자동권총중에서는 명중율도 높고, 리볼버에 비해 재장전이 쉽고 장탄수도 많다는 장점을 갖추었으나,
작동기구가 복잡하고 외부에 노출되어 흙먼지가 많은 환경에 취약하고, 외부의 충격에 오발을 일으키기 쉽다는 단점을 갖고있었습니다.
비록 1,2차대전 양차 대전을 거치며 독일군과 동유럽 추축국 군대뿐아니라 연합군에 까지 널리 사용되었고,
민간호신용 권총 시장에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전쟁후 미군 병사들의 좋은 기념품으로 미국에 9mm파라블럼탄을 알린 권총이지만
(지금도 미국에서는 9mm파라블럼탄을 9mm루거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함)
2차대전후 군용으로서나 경찰용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민간용으로서도 그 입지가 대폭 줄어들어,
현재는 감상용 골동품 이상의 가치는 갖지 못하게 된 권총입니다.
20세기초, 한때는 루거와 함께 미국제식 권총의 자리를 경쟁하고,
결국 루거를 밀어내고 미군의 주력권총의 자리를 차지한M1911(콜트.45)가,
그 탄과 함께 지금도 경찰과 민간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 중이며, 여러나라에서 군용권총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M1911.
개발 연대는 P08과 별로 차이나지 않는다.]
자료제공 : 네이버 / 밀리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