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복구 과정에서 지하벙커가 발견된 가운데 언제, 왜 이런 벙커가 만들어졌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화재 발굴조사 과정에서 지하벙커가 나온 적은 처음인데다가 벙커 속에서 발견된 표지판 양식도 육군이 사용하던 것과는 달라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일단 문화재청은 '숭례문 지하벙커'를 한국전쟁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견 당시 표지판의 글 중에 '관리책임자로 정:전투중대장, 부:동대장'과 같은 표현이 있는 점, 벙커 지역 석축(石築) 울타리가 추가로 지어진 듯한 흔적이 보이는 점 등이 그 추정의 뼈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동대장이란 표현이 있는 것으로 비춰 예비군과 관련된 벙커로 추정된다"며 "수도방위사령부에 문의해봤지만 아직 정확한 연원 및 용도에 관한 조사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예비군 벙커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으나 표지판에 새겨진 진지번호 양식이 육군이 사용하던 양식과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예비군 벙커도 아직 '설'에 불과한 상황이다.
지하벙커를 조사하고 있는 육군 제56사단은 "진지번호 양식이 군이 사용하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며 "예전 기록을 조사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 같은 진지번호를 사용한 사례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벙커 안에서 발견된 표지판에 새겨진 문구는 군 복무를 한 남성들에게는 친숙한 표현이 많아 벙커의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벙커 안에서 발견된 점검표에는 "내부에 물은 고여 있지 않은가?", "위생상태는 양호한가?", "파괴된 곳은 없는가?", "망치는 준비되어 있는가?", "흙은 허물어지지 않았는가?"와 같은 표현이 담겨있다.
또 표적성질, 사거리, 방위각, 사격 구역과 같은 현대적인 용어가 있는 데다가 사격 구역의 경우 숭례문 일대의 건물 이름이 명확히 기록돼 있다는 점이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일례로 사격구역에 등장하는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 사옥은 1965년 12월부터 1980년까지 숭례문 인근인 회현동에 있었다.
이에 따라 벙커가 1965년부터 1980년 사이, 다시 말해 박정희 정권 시절에 구축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
육군 관계자는 "진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게 없어서 정확한 경위는 모르겠지만 전투중대장이란 용어는 1982년 이전에 사용된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육군의 조사가 기록부재 등의 이유로 답보상태에 빠져있는 가운데 이유야 어쨌든 육군이 국보 1호인 숭례문 인근에 지하벙커를 구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화재 훼손'이라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자료제공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