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격추당했던 미대통령 후보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9.01 19: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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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 맥케인의 조종 실력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존 맥케인의 선가 전략의 핵심은 그가

미 해군 조종사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5년 반 동안을

월맹의 포로수용소에서 보냈다는 위국 헌신의 애국자라는 점에 있다.


그는 해군 가문에 태어나서 해군 사관학교를 나오고 해군 조종사 생활을
했다.



그러나 보니 그에게도 정치적 반대자도 많이 생겼다.

그 중의 한 단체가 그를 상처내기 위한 목적이 분명한 글에서

그가 조종사로서 형편없었다고 폭로한 내용을 소개한다.


내친김에 그가 포로가 되었던 피격 과정과 포로 생활에 대한

추가한 글을 올려보겠다.


“존 시드니 맥케인 3세는 절대 미 해군 비행학교에서 졸업을

 시켜서는 안 되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생도 때 평균을 밑도는 성적불량 학생이었고

 형편없는 조종사였다.

 그가 유명했던 해군 제독의 손자였으며 또 유명하였던

 해군 제독의 아들이라는 가족적 배경이 없었다면 그는

 절대 전투기의 조종석에 앉도록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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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 존 S.멕케인은 미 해군 유럽 함대 사령관이었고

맥케인이 포로가 된 뒤에는 베트남 해역의 함대 사령관이었다 .맥케인의 할아버지는 2차 세계 대전 때인 1945년 오키나와 상륙 작전의 미 해군 항공대의
총 사령관이었다.

멕케인은 조종사로서 비교적 짧은 조종경력 동안 5 기의 미 해군기를 잃었다
4기를 사고로 잃었고 한 기를 전투 중에 격추당했다.

 

 그는 첫 번째 전투기를 1958년 이착륙 연습을 하던 중인

 콜퍼스 크리스티 베이 얕은 바다에 꼬나 박았다.

 맥케인은 바다에 처박힌 비행기가 바다에 갈아 앉는 동안 충격에

 의해서 정신을 잃었었다가 구출되었다.

 그는 두 번째 추락 사고는 그가 지중해에 근무 할 때인 스페인 영공을

 너무 낮고 너무 느리게 날다가 전선줄을 끊은 직후에 발생했다.

그 당시 언론은 마치 그의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라도 하듯이

그가 유명한 제독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의 세 번째 추락 사고는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육군과 해군의 풋볼 게임을 위해서 트레이너를 항공기로 데려다주고

혼자 귀환 비행을하다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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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케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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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케인은 긴급하게 기지에 엔진이 정지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재 점화를 세 번 시도했지만 엔진이 살아나지 않자

 300미터 상공에서 비상 탈출했다.


 그가 인적이 드문 해변에 착지한 순간 항공기는
 부근 숲에 추락했다. 


 네 번째 항공기 사고는 그가 베트남 해역의 항모 A4

 스카이호크기 조종사로 근무할 때 발생했다.


 그가 출격 이륙을 위해서 비행갑판 위의 스카이호크기 조종석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이륙 뒷 순번이던 뒷 전투기가 잘못 발사한

 로케트가 그의 기체를 때려서 대화재와 폭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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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케인이 조종하다가 격추당한 A-4 스카이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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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비상 탈출 장치를 가동시켜 바다로 사출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이 사고는 134명의 사망자와 항공기 20기를 대파시키고 항모를

 침몰시킬 뻔 했다.”


여기까지는 그의 정치적 반대 단체가 그를 정치적으로 상처내기
위해서 비난할 목적이 분명한 글이지만 벌어진 사건 자체는 거짓은

아닌 것 같아 소개했다.


맥케인의 다섯 번째 추락은 그가 하노이 교외 화력 발전소를

폭격하러 출전했던 1967년10월 26일 그의 23회째
출격에서 있었다.

그의 스카이호크기가 월맹 대공 미사일에 피격되었었고

또 다시 비상 탈출했다.


비상탈출 때 그는 두 팔과 다리하나가 부러진채 하노이 교외

트럭 바크 호수로 떨어졌다.


그를 물에서 건져낸 성난 월맹인들은 이미 중상을 입은

그에게 침을 뱉고 심하게 구타했다.


더해서 총 개머리 판으로 그의 어깨를 부러뜨리고 총검으로

그의 왼쪽 다리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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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케인의 구출 - 그러고 호되게 구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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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구출된 그는 호아 로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이 호아 로 형무소는 하노이 힐튼으로 불리던 악명 높은

미군 포로 전용 형무소였다.


이미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중태였던 맥케인은 치료대신

또다시 구타를 당하며 군사 정보를 대라는 협박을 받았다.

그는 침묵을 지키다가 나흘째 되던 날 담당 장교와 면담을

신청하고 원하는 대로 협조해주겠으니 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정보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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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맹 병원에 입원한 격추 직후의 맥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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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케인이 곧 월남 해역 함대의 사령관이 될 해군 제독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월맹은 붙잡은 적국의 황태자처럼

그를 평소 미군 포로들은 가보지도 못한 가이 람 군 병원에 급히

입원시키고 치료를 했다.(정치 반대자들의 언급)


그는 그 뒤 5년 반 동안이나 포로생활을 했다.


중간에 월맹이 그의 아버지가 미 해군의 고위 지휘관인 그를

선전적인 효과를 노리고 조기 석방해주겠다고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

  

전쟁이 끝나고 귀국했을 때 그는 거의 불구의 몸으로 절룩거리며 

걸어야 했으며 그의 지금도 이때의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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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반 뒤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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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 왔을 때 정부는 실버 스타 훈장을 비롯해

여러 훈장들을 수여했다.


그의 정적들은 단지 23회 출격에 이렇게 많은 훈장을 준 것은

명백히 과장되고 차별된 것이라고 불평했다.

그리고 아버지 덕분에 포로 생활도 편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더해서 그가 정치가가 되고 나서 그의 포로 생활을 교묘히

포장해서 매스컴의 여기저기 팔아먹어서 그의 정치적 위치를

높여갔다고 비난했다.


여기서는 그런 불만들이나 비난들의 자세한 내용은 수록하지 않겠다.


단지 그가 조종사로서 정부 재산인 전투기를 다섯 대나 잃었다는

지적중 마지막 두 기,네 번째는 그의 잘못이 아니었고

마지막 격추된 다섯 번째는 전투 상황의 손실이므로

두 기는 정치적 반대자들에 의한 무리한 포함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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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모 오리스캐니- 멕케인의 그의 항모 포레스탈이 화재가
나서 이 항모에서 마지막 전투 출격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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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로서 앞의 세 기 손실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 긴 생활의 긴 포로 생활과 고통은 그가 애국자로 자처함에

부족함은 없어 보인다


그가 포로가 될 때는 중령이었고 대령이 되자
전역해서 정계에 데뷔했다.

그리고 정치가로서 성공하여 11월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위치까지 와있다.

미국 국민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해군 집안의 전통을 이어 그의 아들도 해군 사관학교를 나와

해군 조종사로 복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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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92년 5년 반 동안
포로생활을 했던 하노이를 방문해서
자기의 포로 생활을 회고하기도했다

위 사진은 호수에 낙하한 그를 구해준
사람들중의 한 하노이 주민

 

자료제공 : (주) 천년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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