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마상무예

미연시다운족 작성일 08.11.10 19: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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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상 편곤

 

편곤은 서융에서 부터 그 유래가 전해진 무기로 우리나라 기병들이 많이 애용하던 병기이다. 

실제 편곤의 위력은 기록으로도 많이 전해진다.

 

 * 명군에 속해 있던 타타르 족 기병대가 편곤만으로 왜군 수천을 무찔렀다. 

 * 고양사람 명회가 군대를 이끌고 철회편으로 왜군 400명을 죽였다.

 * 인조때 반란을 일으킨 이괄이 기병 700명을 이끌고 관군과 싸웠는데 그 위력이 대단했다.

 

이익의 성호사설엔  " 조총의 등장하니 궁노가 무용지물이 되고 편곤의 등장으로 칼이 무용지물이 됬다 "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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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상격구

 

우리나라 귀족들이 하던 스포츠로 고려시대부터 그 명칭이 기록되어 있다.

경기방법은 기마 혹은 보행의 2가지가 있는데, 먼저 선수들이 각기 공채를 가지고 경기장의 중앙에서 양쪽에 대기하고 섰다가

기녀(妓女)가 가무를 하며 공을 들고 나와 중간 지점에 던지면 동서 양편의 선수들이 규칙대로 공채로 공을 쳐서 

골대를 통과시키는 것인데 많이 통과시키는 쪽이 이기게 된다.

마상무예는 아니지만 마상무예를 익히지 않고선 쉽게 행할수 없기 때문에 무과시험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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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상쌍검

 

말위에서 쓰는 쌍검으로 길이는 일반 쌍검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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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상월도

 

도세가 큰 이점을 살린 마상 무예. 무예도보통지에 이르길,

왜검의 기술이 신묘하더라도 월도앞에선 무용지물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실제 월도의 위력은 평양성과 도산 전투에서 발휘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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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상재

 

말을 이용한 재주로 마기(馬技)라고도 한다.

선조 이후로 행해진 기록이 있으며 봄·가을에 고시 했으며,

일정한 인원 없이 무사 중에서 자원자들이 훈련도감에서 다른 무기(武技)와 같이 행하였다

단마(單馬)와 쌍마(雙馬)를 타고 재주를 보이는 것 등이 있으며

마상재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때는 400명까지 되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통신사가 일본에서 마상재를 선보이며 설명하길,

 " 재주를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적과 대전할 때에 적의 칼과 창이 늘어서 있는 곳에

마상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말에 몸을 숨기어 적의 칼 사이로 들어가 적장의 머리를 베어 온다 "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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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창(騎槍)

 

말위에서 쓰는 창술이다.

무과시험에선 표적물을 맞추는 것으로 점수를 줬는데 자세와 말의 빠르기, 정확도를 가장 중요하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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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사(騎射)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주력인 궁기병이 익혀야 하는 무예로 고대 삼국시대부터 그 유래가 전해진다.대표적인 것이 고구려의 경기병(경장기병/경마기병)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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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7년(정조 l)에 장지항(張志恒)이 왕명으로 편찬한 병학통 중 마군(馬兵)들의 진법인 마병 학익진 그림이다. 이처럼 학이 날개를 펴듯이 도열한 후 좌군이 먼저 공격하고 우군, 중군의 순서로 돌진한다. 병학통은 무예도보통지와 씨줄과 날줄처럼 짝을 이루는데, 단체진법 훈련을 위하여 편찬된 책이다.(덤으로 조선시대 기병전술 하나를 올려봅니다.)

 

기마술하면.. 몽골/훈족/여진/거란등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적으로 그들의 정복술 능력등이 있지만.. 우리 민족역시 옛부터 그들 수준에 준하는 기마술을 갖고 강력한 기병전력을 조선중기때까지도 대규모로 운용했었습니다. 가장 찬란했던 고구려시대 중장기병과 위의 벽화는 그냥 얻어진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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