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9월, 경기도 양주에서 85세의 한 할머니가 도토리를 주우러 갔다가 실종됐다. 가족과 지역주민 구조대원들이 이틀 동안 찾아 나섰지만 할머니의 행방은 묘연했다. 사흘 째 되던 날 아침 인명구조견 ‘노을’이 수색에 나섰다. 오전 10시경 노을이 갑자기 큰 소리로 짖기 시작했다. 구조대원들이 전날 지나간 지역에서 할머니를 찾아낸 것이다. 다행히 할머니는 가벼운 타박상만 입은 채 건강한 상태였다.
지난 10월19일 미국 오리건 주 애덤스 산맥에선 데릭 매머액이라는 27세의 청년이 5일 만에 눈 속에서 구조됐다. 해발 3300여m까지 올라갔던 그는 하산하던 중 눈에 미끄러지면서 추락해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간신히 기어서 지네 등 벌레를 잡아먹으며 버티던 그는 구조견 덕분에 귀환하게 됐다.
이처럼 구조견이 실종된 사람을 찾아냈다는 반가운 소식은 국내건 국외건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준다. 남의 얘기를 통해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 못지않게 큰일을 하는 구조견들이 지금 전국 8개 소방본부에서 소리 없이 조용하게 활약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구조견센터에 소속돼 있다가 출동해 경기도 양주에서 할머니를 구했던 독일산 셰퍼드 ‘노을’은 지금 전남 순천소방서에 배치돼 인명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중순 용인 에버랜드 옆에 자리 잡은 삼성생명구조견센터에는 ‘노을’을 비롯해 전국 소방서에서 활동 중인 구조견들이 모였다. 119에 구조견이 처음 배치된 지 10년 되는 것을 기념해 열린 전국119구조견경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실제 상황과 똑같이 구성된 붕괴현장에서 구조시범이 있었다.
구조훈련에 나선 진주소방서 박기호 소방교가 파트너인 독일산 셰퍼드 ‘강찬’을 몇 차례 어르더니 큰 소리로 지금부터 찾는다고 외쳤다. ‘강찬’은 무너진 시멘트 덩어리를 타고 넘어 순식간에 시멘트 더미 깊숙이 숨은 목표를 찾아냈다.
이런 구조견 18마리가 현재 전국 소방본부별로 배치돼 있다. 모두 삼성 측이 키워 소방방재청에 기증해 현재 구조장비로 등재된 정부 자산이다.
초기엔 요청이 올 때마다 삼성에서 개와 인력을 파견했으나 시간을 다투는 구조업무의 특성을 감안해 일선에 배치했다고.
국내엔 이들 외에 삼성생명구조견센터가 보유한 3마리와 민간구조단체에서 활동 중인 개까지 포함해 모두 30여 마리의 구조견이 있다.
얼마 안 되는 것 같지만 얕볼 게 아니다.
올해 국제인명구조견협회(IRO)와 UN이 공동으로 실시한 인명구조견 인증심사에선 아시아에선 한국 개 3마리와 일본 개 1마리가 합격했다.
삼성에선 4마리가 출전해 2마리가 국제인명구조견으로 인증 받았다. 일본에서 13마리가 나와 1마리만이 인증을 받은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이 같은 실력을 인정해 IRO는 동북아지부를 삼성구조견센터에 두고 있다.
실제 성과도 크다.
삼성에버랜드 장재원 차장은 “1995년 삼성이 처음으로 구조견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43명을 구조했고 59구의 사체를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 대구 어린이 실종사건 때는 경찰과 주민들이 2주 동안 헤매도 찾지 못한 것을 구조견이 출동해 3일 만에 찾아내기도 했다. 지난 95년엔 전남 나주에서 폭설로 실종된 40대 경찰관을 사흘 동안 찾지 못하다가 나흘 째 되는 날 구조견이 출동해 1시간 40분 만에 찾아낸 바 있다.
장 차장은 “국외 파견도 나간다. 올해 스촨성 지진 뿐 아니라 1999년 대만 지진이나 터키 대지진 때도 인명구조 활동을 했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구조견은 국내외에서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나서서 톡톡히 역할을 해낸다.
10년 동안 구조견 핸들러(구조견을 다루는 전문가)를 하다가 탐지견 쪽으로 옮긴 삼성의 박남순 핸들러는 “외국에선 산악구조견과 건물구조견(재해구조견)을 나눠서 훈련을 시키는데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하기 때문에 그만큼 철저히 오랫동안 훈련을 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구조견에 대한 인식이 아직 크게 퍼지지 않아 며칠 씩 사람만으로 수색하다가 안 되니 구조견 파견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구조견이 나가면 순식간에 찾아내는데 때로는 사람들이 너무 냄새를 피운 뒤 나가게 돼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구조견 어떻게 되나
인명구조견이 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아울러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구조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구조견으로는 독일산 셰퍼드나 캐나다산 래브라도 리트리버, 양몰이에 많이 쓰이는 영국산 보더 콜리 등 중형 이상의 큰 개가 주로 이용된다.
험준한 산악을 오르내리려면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할 뿐 아니라 장애물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체격이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친해야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공격성이 있다면 구조견으로선 실격이다.
그렇다면 진돗개는 어떨까.
박 핸들러는 “진도개도 몇 번 훈련을 시켜봤다. 그렇지만 핸들러와 호흡을 맞추기보다 너무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박 핸들러는 구조견을 양성하는 데는 적어도 2년이 걸린다고 한다. “생후 8개월 정도에 걸쳐 사회화와 소유욕을 키우는 훈련을 한다. 사람과 친해지고, 무언가 가지려는 집중력을 키우는 기간이다.”
이런 훈련을 거쳐 많은 사람들이 몰리거나 소음이 심한 사건현장에서도 위축되거나 거부하지 않고 일을 잘 한다는 것. 실제 구조견센터에서 만난 구조견들은 처음 보는데도 사납게 굴지 않았다.
소유욕이 강할수록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핸들러가 시키는 훈련이나 지시를 잘 한다고. 소유욕을 키우는데 공을 주로 이용한다.
아무리 우수한 종의 개라도 공격성이 강하면 이 단계에서 탈락한다. 이 경우 군견이나 경비견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나산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도 달려가 2명을 찾아내는데 일조했다.
“포크레인이 쓰러지며 쏟아져 나온 기름 냄새 때문에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백두가 정확한 지점을 확인시켜 줬다”고 했다.
일반 소방업무를 하다가 구조견을 운용하는 그는 처음엔 갈등도 많이 겪었다고 했다.
“말 못하는 짐승을 다루는 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거의 포기할 뻔했다. 그 상태를 넘어 일이 풀리니 재미가 업그레이드되더라.”
그는 올해 백두와 함께 많은 훈련을 했다. 한 여름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를 장시간 달리면 개가 발바닥 부상을 당한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됐다.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했는지 백두의 체중이 4kg이나 줄었다.”
35kg 나가는 개의 체중이 그 정도 줄었을 정도면 그의 몸무게는 얼마나 줄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러면서 개한테도 배울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 동안 성격이 급했는데 이제는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는 법을 익히게 됐다.”
자료제공 :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