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원반접시 프로젝트. 프로젝트 명, V-7

행동반경1m 작성일 09.05.08 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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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의 원반접시 프로젝트      

  

      프로젝트 명, V-7   124179092645014.jpg

■시작하면서

 

시작하기 앞서.. 일러두겠는데,
원반 전투기, 반중력 장치, 영구기관 등등 이라고 하면 과학에 위배되는 허망한 사이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미 20세기 초에 반중력 장치를 비롯한 영구기관이 모두 발명이 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미국의 포드社와 같은 유명 자동차 업체와 석유 자본가들의 무지막지한 방해 공작으로 인해 그러한 기술은 폐기되고 발명가들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던가 비밀리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오래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한번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모두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패자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긴 자들의 역사라는 소리다. 오늘의 주제에 있어서는 연합군이 옳건 나치가 그르건간에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지금은 감추어진 역사의 이면에 눈을 돌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지구상에서 최고의 지식과 과학기술을 지니고 있던 나라는 바로 나치 독일이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은 앞다투어 독일의 과학자들을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이들의 온갖 실험 결과가 이후의 과학발전에 크게 공헌했던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5백명에 달하는 기술자들과 함께 미국으러 건너갔던 나치 독일의 V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브라운 박사를 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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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그려진 독일공군의 UFO]

 

■ 하늘로 떠올라라! : 비펠드-브라운 효과 (Biefeld Brown effect)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이용한 전기추진 비행접시가 있는 1926년에 미국에 특허난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나치독일은 1억볼트의 전기를 사용해서 하늘을 날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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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펠드 브라운 장치는 맨위에 금속접시는 중간에는 절연체고 맨 밑에 금속접시로 되어있으며  맨위에는 +극을, 맨밑에는 -극이다. 원리가 어떻게 되냐면 지구는 -극이다고 한다. 하늘의 전리층도 -극이며, 비펠드 브라운 장치의 맨위의 극성은 +극이다, 전리층은 -극이다, 결국 서로 끌어당긴다. 비펠드 브라운 장치의 밑바닥은 -극이다, 지구의 땅도 -극이다, 그로인해 서로 밀어낸다,  결국 하늘을 날게된다. 전리층을 재빠르게 통과하면 비펠드 브라운 장치로도 우주를 갈수 있다고한다. 

 

절연체의 속을 파서 그안에 테슬라코일, 단극발전기, 조종석, 탄소제거기 장착하여 나치독일은 직경 90센티미터짜리의 푸파이터로 제작해서 사용했고 직경10~50센티미터 이하의 푸파이터는 테슬라의 무선송전 방식으로 작동되는 무선조종 전기추진 비행공이라고도 할수있다.

나치의 원반 접시는 거의 모두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응용한 형태이다.

 

 

■UFO 조종사들의 생명줄 : 탄소제거장치

 

일종의  실린더형 코로나 방전장치로서 공기중의 이산화탄소에서 탄소를  전기의 힘으로 제거한다, 조종사가 오랫동안 산소 없이 조종할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이장치를 잠수함, 우주선에 사용하면 산소탱크를 별도로 가지지 않아도  최장시간 작전수행가능하다.

 

원리는 사람이 밀폐된 공간에서 산소를 들이마쉬고,  이산화탄소를 내뿜는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밀폐된 공간안에서는 산소는 없고 이산화탄소만 남아서 질식사한다. 그러나 코로나 방전을 사용한  탄소제거기를 사용하면 이산화탄소에서 탄소를 제거해서 결국 산소만 남게되어서 특별히 산소탱크 없이 살수 있다. 사실상 탄소제거기는 테슬라가 발명한것으로 추정된다,  아니면 나치독일에서 개발했거나. 후에 나치독일은 장시간 운행 기능을 수행 해야 하는 나치 의 원반 접시에 장착했다고 한다.


그럼 브라운 효과과 탄소게거 장치 설명은 잠시 접어두고 본격적으로 들어가자.

 

 

■ 나치의 V-7 계획

 

베를린을 함락시킨 연합군이 비밀 공장들을 샅샅이 뒤졌고 찾아낸 비밀병기중 하나가있었다.

 

그것의 프로젝트 명은 V-7.

 

V-7 이란 폰 브라운 박사가 개발했던 V 시리즈 무인 로켓의 후속 모델이라고 할 수 있
으며, 독일의 비밀 무기로 하늘을 나는 원반 기체 였다, 나치의 과학력의 전부가 이것의 개발로 결집되었다고 한다.

 

1978년 5월, 당시 서독에서 개최된 과학 박람회에서 한 신문기사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원반형 비행기라는 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원반형 비행기의 세부 스케치가 첨부되어 있었지만 설계자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 당시 서독의 정부 당국은 이것이 공표되더라도 안전할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기사를 쓴 사람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 비행기의 발명자가 민간인이든 정부 기관이든 간에 관계없이 가까운 곳에 있는 특허 신청소에 등록되어 곧바로 극비 취급을 받아 설계자의 손을 떠나게 되었고 히틀러 직속의 연구 기관으로 보내졌다고한다.

 

그때가 바로 1938년이었다고한다, 연꽂문양의 원반이었다, 중앙에는 구멍이 여러개 뚫린 형태였다, 비펠드 브라운 효과를 응용한 형태라고한다,

 

신문에 실린 설계도면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것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명칭들이 기록되어 있다, 컴퓨터 ,전자기 모터, 레이저 레이더 등 첨단 과학 기술의 산물이 기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여러 도면들이 독일 정부에 의해 처분되었거나 어딘가에 은닉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사에 의하면 베를린이 함락되기 직전 당시의 SS(나치 친위대) 장관 겸 경찰장관이던 하인리히 히믈러의 지휘를 받고 있던 연구 기관에 의해 그 증거의 대부분이 인멸되었거나 어둠속으로 매장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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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나 증언에 의하면 V-7계획은 1930년대 후반부터 갑작스럽게 연구가 개시된 것으로 보이며 히틀러의 SS는 그 당시 뮌헨 공대의 W.O. 슈만 박사가 개발한 자기 부상장치를 입수하였고, 이것을 이용하여 비행 접시의 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다. 원래 나치의 비행 접시는 Thule&Vril 사가 만들었는데, 1935년부터 SS의 E-4 소속 과학자들이 대거 투입되어 새로운 원반 전투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들이 비밀리에 연구를 한 곳이 독일의 북서부 지방에 있는 '하우니부르크(Hauneburg)'였다. 이곳에 SS E-4는 시험 비행장과 연구 장비를 모두 갖추고 새로운 비행 접시 'H-Gerat(Hauneburg Device)'의 제작에 들어갔다. 1939년부터는 보안상의 이유로 '하우니브(Haunebu)'로 줄여 불렀으며 오늘날까지 독일 원반 전투기의 대명사가 된다.

 

 

본격으로 연구가 시작된떄는 2차대전 도중이며 나치독일은 소련 침공에 실패하고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패퇴한 히틀러는 친위부대(SS)에 새로운 형태의 비행체를 개발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깜짝 놀랄 만한 비밀병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빅터 샤우버거의 지휘하에 튜링겐 등 3개의 지하 비밀 연구소에서 중력을 제어해 비행할수 있는 원반 비행체의 개발이 추진되었으나 얼마후 이 연구소의 비밀이 미국과 영국의 정보부에 알려졌다.

그래서 히틀러는 그 연구를 대외적으로는 없던 일로 하고 비밀리에 추진하는 동시에 거짓 위장을 위해 제트 엔진의 추진력에 의한 원반 개발도 착수 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샤우버거의 연구는 프라하의 노스트 홀에 있는 BMW공장등 몇 군데로 분산되었으며 우수한 과학자들이 총집결되었다.

 

샤우버거 박사는 오스트리아의 빈에 있는 카틀사의 연구소에서 획기적인 초전도 모터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체에 사용할 합금의 완성이 1944년으로 늦춰지면서  모터 개발은 빛이 바랬다. 주동력으로 초전도 모터가 설치되고 전자파 추진으로 비행한다는 시험 제작 비행기는 비행모자(Flying Hat)라고 불렸으며 최종적으로 지름 40~70미터 급의 것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사실 나치는 연구개발 센터를 체코 수도 프라하의 자동차 생산기지였던 스코다 공장에 두고 1944년까지 날개가 없는 비행접시 형태의 시제품 15대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V-7 프로잭트중에 하우니브와 기타 UFO

 

처음 개발된 것이 하우니브 로서 '최후의 대대(Last Battalion)'의 핵심이 있는 물체이기도 하며 나치의 V-7 프로잭트중 재일 유명한 기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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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이 스케치한 독일의 하우니브1]

 

초기형인 하우니브I의 시제품 2개가 만들어졌고, 직경 25미터에 8명의 승무원, 1939년 첫 비행을 했으며 52번의 시험 비행을 했다. 그리고 비록 저고도이지만 믿기지 않는 시속 4,800Km를 달성했다. 나중에 개량된 버전은 시속 17,000Km에 달했다. 비행 가능 시간은 18시간 정도였다. 고속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마찰열을 견디기 위해 Viktalen이라는 특수한초합금을 개발하여 장갑으로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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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형은 2연장 60mm 제트 캐논 을 실험 무장으로 장비했다. 이 포탄은 10mm의 장갑 관통 성능이 있을 걸로 예상됐다. 하지만 더 대형 포를 장비한 시험 모델은 비행이 불안정해서 취소됐고, 훗날 기관총 모델과 기관포 모델이 추가로 등장했다.

 

히틀러는 폭탄을 탑재할 수 있고 레이더 망에 잡히지 않는 이 유인 원반 비행 전투 병기를 동맹국인 이탈리아의 통치자 무솔리니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고, 당시 무솔리니의 국방보좌역으로 나치의 원반 전투기를 목격한 루이기 로메르사(84)는 "특이했다. 모양은 둥글었고 가운데 조종석은 유리돔형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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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이 스캐치한 독일의 하우니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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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우니브 시리즈는 그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1942년, 30미터 직경의 하우니브II가 시험 비행을 하게 되었다. 이번엔 승무원이 9명이었고 시속 6,000~21,000Km로 55시간이나 날 수 있었다. 이 것과 나중에 나온 DoStra는 모두 두개의 Viktalen 장갑을 갖추고 있었다. 7대의 시제품이 만들어져 42년에서 44년동안 시험 비행을 거쳤다. 총 시험 횟수는 106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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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실전 투입용 모델인 하우니브II DoStra(Dornier STRAtospharen Flugzeung)가 등장했다. 2대의 시제품이 완성되었는데, 더 부피가 크고 수층 높이에 승무원은 20명이나 됐다. 이 역시 극초음속인 시속 21,000Km에 근접하게 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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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179130378107.jpg   SS는 이 기종의 생산을 융커스와 도르니에 중 어느쪽에 맡겨야 할지 고민했지만, 1945년 3월, 도르니에가 선택됐다. 하지만 종전때문에 도르니에는 생산에 들어가지 못 했다. 하우니브2 DoStra의 몇몇 사진과 SS E-IV의 서류만이 증명을 해줄 뿐이다. 다만 도르니에의 공서류에서 이 기체에 관한 문건이 전혀 없다는 점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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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독일이 스캐치한 독일의 하우니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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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한 CG]  

종전 직전에 만들어진 것이 더 거대한 직경 71미터의 전설로만 남아 있는 하우니브3 이다.
한대의 시제품만이 종전 직전에 만들어졌는데, 승무원 32명에 시속 7,000~40,000Km를 낼 수 있었다 한다. 이 기종은 3개의 Viktalen으로 덮여 있었다. 항간에 이 기종은 7~8주나 비행할 수 있다고 하니 하니 가히 움직이는 전설의 하늘의 요새가 아닐 수 없었다. 19번의 시험 비행이 있었고 1945년 3월 중 Thule&Vril사원들의 탈출 작업에 사용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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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실험 보고는 하우니브3가 마지막이지만 서류상으로는 하우니브4가 존재했었다. 자세한 성능은 전해지지 않지만 120m정도의 크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비행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나치 독일이 항복한 후 미군이 발견한 한 문서에서 V2 발사 실험 당시 그 근처에 비행물체가 감시를 하고 있었다는 독일측의 보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독일 최고 사령부 제13호실에서 발견된 암호명 URANUS가 사실상 세계 최초의 UFO 공식 조사 기록이었던 셈이다.

하우니브 예긴 잠시 접어두고,

 

독일의 전기추진 비행접시는 니콜라 테슬라의 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를 바탕으로한것과 비펠드 브라운효과를 발전시킨것과, 빅터샤우버거의 공기추진 비행접시와 제트엔진 장착 비행접시로  나눠지는데, 그중에 원반 접시인 푸파이터는  테슬라의것과  비펠드브라운 효과를 발전시킨것으로서 직경 90센티미터  1인의 소년유격병, 또는 체구가 작은 병사가 탄 형태의것이고 페달식 발전기, 패러데이의 단극발전기 또는 N머신 장착과 테슬라 코일, 그리고  직경 5~40센티미터 이하의 작은 푸파이터는  테슬라의 무선 송전 기술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참고로 푸파이터는 작지만 큰 불빛을 뛴 괴비행물채였다고 그당시 연합군 파일럿의 증언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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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 - 파이터가 찍힌 사진들]

 

그리고 V-7 프로잭트 1945년 5월에 베를린이 연합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행방이 묘연해졌다. 항공기

설계기사이자 공군 대위였던 루돌프 슈라이버는 1941년 봄에 원반형 비행기 설계를 완료했으며 1942년에는 이 장치에 대한 시험 비행을 실시 했다. 그리고 1943년 8월에 슈라이버는 신뢰할만한 세명의 동료들과 함께 하늘을 나는 원반의 실물 크기 모형을 조립했다. 그러나 다음 해 여름에 그는 프라하 근교의 BMW공장에서 가스 터빈 엔진을 제트 추진 장치로 바꾼 모델로 설계를 변경했다, 슈라이버의 말에  따르면 1944년 초 조립된 원반형 비행기는 1945년 4월에 실험 비행을 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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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전에 배치되지는 못했다. 한발 앞서 진주한 연합군 때문에 시기를 놓쳤다. 나치의 V-7 프로젝트는 이후 베일에 묻혀 버렸다. 그러나 1945년 초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침공이 위협적인 상황으로 변해감으로 인해 V-7 관련 자료와 시제품을 전부 폐기해 버렸기 때문이다완성된 1호기까지 파괴해 버리게 되었다고한다. 슈라이버는 1950년대 말에 사망했지만 당시의 일기와 원반형 비행기의 스케치 및 자료가 발견되어 그와 주변의 연구 내용이 다소나마 밝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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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반형 항공기의 개발 계획은 원래 하벨모르와 미테라는 독일의 전문가, 그리고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인 베론소 박사의 3인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벨모르와 슈라이버는 조종석을 중심으로 날개가 회전하는 가동익형 원반 비행기의 설계를 추진하고 있었고 보고에 따르면 원반 비행기는 지름이 42미터, 바닥에서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32미터 정도였다. 최고로 올라갈수 있는 고도는 13만2천미터였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2천킬로미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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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지는 사실과 비밀들

 

연합군 측은 V-7의 행방을 필사적으로 찾았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나치는 재빨리 시험 비행기와 설계도 등을 파기 또는 파괴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몇몇 정보에 따르면 V-7의 신형 엔진의 시험을 마치자 독일의 과학자들은 이것을 기체로부터 분리시켜 1941년 이래로 건설 작업을 계속하고 있던 남극의 비밀 기지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국내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미국의 UFO연구가 프랭크 스트랜지스 박사는, 전운이 기울어가는 독일이 마지막 카드로 내민 것이 바로 원반 접시 였다고 한다. 그 전에도 나치 독일은 연합군이 상상할 수도 없는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V1, V2같은 로켓은 실전 배치되어 영국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했었으며, 슈퍼건, 음향포, 초음속 폭격기, 원자 폭탄 등을 개발중이었다고 한다. 연합군들은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고 종전 후 앞다투어 독일에 입성했으며, 경쟁적으로 나치의 첨단 기술을 싹쓸이해가기에 이른다.

 

 

미국은 훗날 아폴로 계획의 주역인 브라운(W.Von.Braun)박사를 비롯 핵심 과학자들을 영입

해 갔으며, 화물 열차로 약 250대분의 V2로켓의 장비와 부품을 본국으로 실어 날랐다. 구 소련은 한술 더 떠서 공장 자체를 그대로 뜯어가 이전했으며 점령지구내에서 4000여명의 과학자와 그 가족들을 소련으로 이주시켰다.

 

이 비행기를 개발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던 샤우버거 박사는 미국으로 가서 캐나다 항공기 회사인 AVRO사와 미 공군의 공동 개발 계획이었던 인공 원반 계획이라 불리는 원반형 비행기의 개발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슈라이버와 마찬가지로 1950년대 말의 어느 날, 시카고의 길가에서 타살된 채 발견되었다. (빅터 슈라이버==> 빅터샤우버거라고 국내에 알려져 있다.)

 

경위야 어찌됐건 연합군들이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UFO관련 기술은 이미 나치에 의해 남미나 남극으로 빼돌려진 후 였으며, 현재에도 나치 잔당들은 완전한 자급자족을 이룰 수 있는 안전한 지역에서 대를 이어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지어낸 이야기라 여길 수 있지만 연구가들이 제시하는 자료의 정확함을 마냥 부정할 수 없음도 사실이다.

역사에 '만약'이란 단어는 없지만, 히틀러가 싸우고자 했던 상대가, 일반 국가가 아닌-미국을 하수인으로 내세운-유태계 주축의 프리메이슨같은 그림자 정부였다고 볼 때, 독일이 승리함으로 해서 그림자 정부의 주 수입원인 석유 에너지 개발이 사라지고 UFO같은 반중력 장치를 이용한 영구기관이 보편화 됐다면, 최소한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쾌적한 삶을 영위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라스트 바탈리온, 오찌아이 노부히꼬, 대학문화사, 1982
UFO와 초자연 X파일, 나미키 신이치로, 창해, 1998
피라미드의 과학, 이종호, 새로운 사람들, 1999
UFO한반도 프로젝트, 박찬호, 하나로, 1997
UFO硏究, 맹성렬, 석명, 1989
UFO-우주인이 오고 있다, 조경철, 창인사, 1982
UFO신드롬, 맹성렬, 넥서스, 1995
미궁에 빠진 세계사의 100대 음모론, 데이비드 사우스웰, 이마고2004
살아있는 에너지
UFO 신드롬, 맹성멸 지음

 

< 출처 : 네이버 - 롬멜원수(acucj)님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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