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부인 - 에바 브라운-히틀러(Ewa Braun-Hitler)

행동반경1m 작성일 09.05.09 1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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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사실상 끝나 있었다. 히틀러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베를린의 총통관저 지하벙커 속에서 최후의 반격을 명령하며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군대를 지휘할 뿐이었다. 육체적으로도 급속히 망가지고 있을 때, 23세 연하의 정부(情婦) 에바 브라운이 지하벙커에 나타난다. 두 사람의 만남은 브라운이 히틀러의 전속 사진기사 밑에서 조수 노릇을 하고 있던 1929년에 처음 이뤄졌다. 그러나 브라운의 아버지가 히틀러를 싫어했고, 히틀러 역시 생애 처음 정열적인 애정을 바쳤던 조카딸이자 연인이었던 겔리 라우발을 의식해 둘의 관계는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본격적인 만남은 1931년 라우발이 자살하고 나서야 시작됐다. 히틀러는 조심성 있고 경망스럽지 않은 브라운에게서 마음의 안식처를 찾았다. 그러면서도 공적인 자리에는 좀처럼 브라운을 대동하지 않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의 독일인은 브라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브라운은 이런 자신의 현실을 불만으로 여겼다.

 

 히틀러가 마련해준 산장에 틀어박혀 수영과 스키를 즐기거나 대중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소일했다. 이별의 시간을 참을 수 없어 1932년과 1935년 두 차례나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히틀러 없는 독일’은 그녀에게 무의미한 존재였다. 그래서 결혼과 죽음의 의식을 한꺼번에 치르기 위해 지하벙커를 찾은 것이다.

 

두 사람은 4월 29일 새벽에 결혼했다. “결혼은 당이 정권을 획득하고 국가를 높은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히틀러였다. 둘은 괴벨스를 증인으로 내세워 ‘순수한 아리안 혈통에 유전질환이 없음’을 선언했다.

 

브라운은 결혼증명서 서명란에 ‘에바 히틀러, 탄생 성 브라운’이라고 적었다. 그날 하오, 침략자의 길동무였던 무솔리니가 애인과 함께 최후를 마쳤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히틀러도 최후를 준비했다. 4월 30일 오후 3시30분쯤, 한 발의 총소리가 울렸다. 히틀러는 입 속에 총을 쏘았고 브라운은 청산가리를 마셨다. 단 하루 동안의 부부는 이렇게 마지막 길을 동행했다.

 

- 주간조선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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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 파란하늘(ddody11)님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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