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편
출정!
일본 시각으로 1941년 12월 8일(하와이 시각 12월 7일)의 이른 아침,
하와이의 마지막 정보가 도쿄로 전달되었는데 항모는 한 척도 없으며 전함들은 여전히
정박중이며 진주만 상공의 허술한 대공경계와 어뢰 방어망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항모가 한척도 정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분명히 좋은 뉴스였다.
게다가 오아후 섬 주변의 날씨도 점차적으로 좋아졌던 것이다.
이것은 실시간으로 청취하고 있었던 호놀룰루의 라디오 방송에서 얻은 정보였다.
기습편대를 출격시키기에는 아직 최상의 기상 조건은 아니지만 일단 출격시키고 나면
문제는 절로 해결될 것이었다.
공격부대중에서 잠수함이 가장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잠수함 부대가 특수잠항정을 발진시켰다.
남하하는 하와이 기습 공격 항모기동부대.
공격목표가 가까워지자 항공기의 발진 준비를 마쳤다.
기함 아카기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좌로부터 항모 가가, 전함 히에이, 기리시
발진명령을 기다리며 항모 아카기 비행갑판에 주기 중인 제로센 21형 전투기.
해 뜨기 조금 전,
달은 아직도 구름에 가리어져 있었으나 해상의 기동 부대는
오아후 섬 북방 370km의 함재기 출격 지점에 도착했다.
항공모함의 비행갑판에는 기습편대가 출격을 위해 정렬했다.
함대는 속력을 늦추고 거센 파도에 흔들리면서 항공기의 엔진을 시동하고 있었다.
나구모 사령관은 여기서 작전 계획에 없었던 하나의 행동을 취하기로 작정했다.
오전 5시, 순양함 씨쿠마와 도네에서 1 대 씩의 수상정찰기를 목표지점을 정찰하도록
발진시켰 것이다. 하지만 한시간이 지나도록 2대의 정찰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날씨가 험상 궂었다.
때문에 항공기를 발진시키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발진이 빠르면 빠를수록 기습의 찬스는 많을 것이다.
나구모는 기습공격 시간이 노무라 대사와 구르스 특사가 사실상의 선전 포고를
미 국무성에 통고하는 시간과 30분 이내의 차이가 날때 실행하도록 지시받았었다.
최후통첩 즉, 선전포고를 받은 미국은 바로 30분 뒤 공격당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구모는 작전의 성공을 위해 이 점을 고려할 생각이 없었다.
나구모는 겐다 항공참모에게 무겁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제군의 어깨에 모든 책임이 달려있다."
조종사 대부분이 머리에 흰 띠를 동여매고 있었다.
베테랑 조종사들도 공포심보다 긴장된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훈련을 갓 끝냈을 뿐인 청년 장교들에게는 공포와 흥분이 뒤섞여 있었다.
출격직전, 진주만 공격대 조종사들에대한 작전설명 / 항모 가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침 6시, 항모 아카기의 비행 갑판에서 후치다 미츠오 중좌의 출격 명령이 내려졌다.
우렁찬 만세 소리, 찢어질 듯이 흔드는 전투모의 전송을 받으며 기습편대는
새벽 먼동이 터오르는 오아후의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작전에 참가한 6척의 항모에 탑재된 제로 전투기 43대, 수평 폭격기대 49대,
급강하 폭격기대 51대, 뇌격기대 40대(아카기 12대. 소류 8대. 가가 12대. 히류8대),
합계 183대의 제1차 공격대가 불과 15분만에 무사히 발진했다.
큐슈에서 발함 훈련을 받을 때에는 좋은 날씨에도 30분이 걸렸지만 실전에서는
발함시간이 15분 정도가 단축되었으며 겨우 2대의 항공기가 사고를 당했을 뿐이었다.
항모 가가의 함상공격기 1대가 엔진 고장을 일으켰고 제로기 한 대가 항모 히류의
비행갑판에서 물 속으로 추락했던 것이다. 97식 함상공격기에 탑승한
제1차 공격 비행대 지휘관 후치다 중좌 휘하의 조종사들은 함대 상공을 선회하며
편대를 이룬 다음 하와이를 향해 비행했다.
항모 아카기에서 발함하는 제1차 공격대 제공대의 제로센 21형 전투기
발함하는 제로센 21형 전투기 / 항모 아카기
800kg폭탄을 장착하고 발함하는 97식 함상공격기
항모 가가에서 발함중인 99식 함상 폭격기 d3a1
진주만을 향해 박차오르는 99식 함상 폭격기 11형 (d3a1 "val")
항모 쇼가쿠에서 발함하는 97식 함상 공격기 b5n2 "kate"
하와이 시각 12월 7일 오전 6시 15분.
미 역사상 가장 치욕된 날을 맞이하게될 호놀룰루는 일요일 아침을 맞아 아직 고요 속에
잠자고 있었다. 후치다 중좌가 이끄는 제1차 공격대가 발진하자 항공모함의 승조원들은
다음 공격대의 항공기를 비행 갑판에 정렬했다. 이 기습공격에는 총 합계 353대가
참가했으나 이 같은 공군력의 집중은 당시까지의 전사에서는 역사상 최대의 규모였다.
또 공격비행대 외에 39대가 기동부대의 상공을 엄호했으며 40대가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었다.
아카기의 작전실에서 항공참모 겐다는 후치다로부터 날아올 제1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겐다 참모는 "나는 아무런 근심걱정도 잊어 버리게 된 나 자신에 놀랐다.
만전의 준비로 모든 것을 완수했다"고 말했다.
일본 본토 구레 군항의 야마모토 연합함대 사령장관은 군령부 제독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 속에서 자신의 기함인 나가토에 승선한채 하와이의 소식을 고대하고 있었다.
하와이 시각 오전 7시 5분. 제1차 공격대가 발진한 직후 항모 아키기에서 제2차 공격대가 발진 준비중이다. 제1차 공격대가 출격한지 1시간 15분이 경과한 7시 15분부터 아카기에서 발진한 2차 공격대는 제로센 9기, 99식 함상폭격기 18대이다.
후치다의 제1차 공격대에게는 일본의 운명이 걸려 있었으나 후치다는 이제
진주만으로부터 수십분의 거리로 다가가고 있었다. 후치다는 자신들보다 1시간 먼저
발진했던 2대의 정찰기중 1대로부터 진주만은 미군 함정으로 가득찼으며
경계의 기색은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후치다의 공격대가 목표에 접근함에 따라 날씨는 점점 맑아져 갔다.
7시15분, 후치다는 호놀룰루의 라디오 방송국에 파장을 맞추고 "일부 흐림, 구름은
대체로 산악 지대에..."일기예보를 흐뭇하게 청취했다. 이러한 일기조건은 기습편대가
구름 속에 숨으면서 목표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약속받은 셈이다.
초록빛 일색인 오아후 섬은 쾌적한 날씨와 더불어 아침을 맞이했다.
호놀룰루의 푸른 하늘에는 양털같은 구름이 몇 조각 떠 있었다.
산등성이에는 뭉게 구름이 걸리고 신선한 북풍이 불고 있었다.
그 북풍을 타고 붉은 일장기를 그린 일본의 기습편대가 나타났다.
일본군에게는 모든 것이 완전무결 이었다. 특히 오아후 섬의 아름다운
아침을 즐기려고 일찍 일어나는 미군 장병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섬의 북쪽 오파나의 레이더 기지에는 조셉 로커드와 죠지 엘리오트라는 두 병사가
오전 6시 45분, 오아후 섬으로 다가오는 한 대의 국적 불명기가 레이더 스크린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오파나는 오아후 섬 주변의 전략지점에 설치된 다섯 개의
이동식 레이더 기지중의 하나였다. 이 기지들은 공습 경보 센터와 연결되고
레이더 기지가 발견한 물체를 추적하게끔 되어 있었다.
두 병사는 일요일이면 그 네시간 동안의 새벽 근무 동안에 통상 25대의 미군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또 오파나 기지의 운용은 대체로 관계
요원들에게 맡겨져 있었다. 기지는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규율도 엄격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레이더 스크린에 발견된 물체에 대해서도 한가롭게 보아 넘기곤 했다.
이리하여 일본군 기동부대가 먼저 발진시킨 2대의 정찰기 중 한 대가 레이더에
포착되었는데도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 레이더 스크린이 북방 약 200km에 대편대라고 여겨지는 것을 포착하기 시작했을 때,
두 병사는 경보 센터에 보고할 것을 결정했다. 그들이 공습 경보 센터에 전화했을 때가
아침 7시였다. 당직 장교는 경험이 부족한 젊은 중위로서 훈련을 위해 거기에
배치되었는데 전화를 받고는 "걱정말라"고만 대답했다.
중위는 두 병사가 발견한 것은 히컴 비행장으로부터의 정찰기가 아니면
캘리포니아에서 도착 예정인 b-17 폭격기가 틀림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사실 12대의 b-17 폭격기가 바로 이순간 북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오파나의 레이더에 비친 비행기는 다소 동쪽에 치우쳐 있고
또한 댓수도 많았으며 좀 더 접근해 있었다.
1: 7시 40분, 오아후 섬 북단 카후쿠 포인트 도달
2: 7시 49분, 후치다 중좌 공격개시 하달. 도,도,도...
3: 항모 가가 발진 9대의 제로센(시가 대위)의 호위아래 후치다 중좌 휘하 49대로 구성된
수평 격기대가 1만 피트 고도를 유지하며 와이아네 산 서쪽 해안을 따라 진주만으로 비행.
4: 8시 5분경, 후치다의 수평 폭격기대는 진주만 내의 전함 공격,
시가 대위의 제로센은 히컴 비행장 공격(비행중 상공에서 만난 민간 항공기 격추)
5: 뇌격기대와 제공대가 와이아네 산을 사이에 두고 2개로 나뉜다.
항모 아카기와 가가 발진 40대의 뇌격기대(아카기 비행대장 무라타 소좌 지휘)가
히류 발진 6대의 제로센(오카지마 대위)이 저공비행으로 진주만으로 비행,
오카지마 휘하 8대의 제로센 에와 해병항공기지로 비행.
6: 오카지마 대위 휘하 8대의 제로센 제공대 7시53분 에와 비행장 기총소사 공격
7: 7시 51분, 항모 즈이가쿠 발진 99식 함상폭격기 25대(사카모토 대위)가 소류 발진
제로센 전투기 8대(쓰가나미 대위)의 호위를 받으며 휠러 비행장 공격
8: 다카하시 소좌 휘하 항모 쇼가쿠 발진 26대의 급강하 폭격기와 이타야 소좌 휘하
항모 아카기 발진 9대의 제로센 전투기 쿨라우 산 서쯕 측면을 따라 비행.
9: 7시53분, 이타야 소좌의 제로센 전투기들이 2대의 민간 훈련기 공격하여 1대격추
(조종사 낙하산 탈출). 7시55분,항모 쇼가쿠 발진 급강하 폭격기대 포드 섬과
히컴 비행장 공격 위해 기수를 서쪽으로 향함. 이타야의 제공대 제로센은
호놀룰루 쪽에서 히컴 비행장 공격 돌입.
10: 가네코 대위 휘하 5대의 제로센(항모 쇼가쿠)와 사토 대위 휘하 6대의 제로센
(항모 즈이가쿠)으로 이루어진 제공대는 쿨라우 산 동쪽 측면으로 돌아 바행하여
카*헤 비행장으로 향했다. 상공에 한 대의 미군기도 발견되지 않자 7시 53분,
비행장을 습격했다.
11: 항모 엔터프라이즈로부터 발함한 sbd던트레스 쓰가나미 대위 휘하 제로센에게
공격당함. 던트레스 에와 해병대 비행장 등 다른 비행장으로 도피.
97식 1호 함상 공격기에 800kg급 91식 항공어뢰를 장착하는 모습.
진주만 공격에 참가하는 97식 3호(12형으로 개칭된다) 함상 공격기에는 낮은 수심에서 작전이 가능한 1발의 91식 개2 항공어뢰를 장착했다.
오전 7시 15분경,
후치다의 기습편대는 진주만까지 45분 거리에 접근했다.
아직도 경보를 내려 미군 조종사가 공중에서 침입자와 싸우고 수병이 함포 사격 배치에
들어가기 위한 시간은 충분했다. 그것은 진주만의 미군에게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파나의 레이더가 잡은 그림자를 b-17폭격기라고 무시해 버렸을 때
그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아카기에서 출격한 제1차 공격 편대 총 지휘관인 후치다 중좌는
800kg급 철갑폭탄을 장착한 수평 폭격기대 49대를 인솔하고 있었다.
그 우측에는 항모 아카기의 비행대장 무라타 시게하루 소좌가 인솔하는 뇌격기대 40대가
비행하고 있었다. 후치다 편대의 좌측에는 항모 쇼가쿠의 비행대장 다카하시 가쿠이치
소좌가 이끄는 급강하 폭격기대 51대가 뒤를 따랐으며 또 그 상공은 항모 아카기의
비행대장 이타야 시게루 소좌가 이끄는 제로 센 전투기 43대가 호위하고 있었다.
이들 지휘관들은 모두 베테랑이었고 그 휘하의 비행사들은
일본 해군 항공대에서 엄중 선발된 우수한 조종사들이었다.
내일이면.. 공격 하겠네^^ 16편에서.....
자료제공 : h/채널 (히스토리/20세기전쟁사편 중에서)
그리고..........
대한민국 유일의 사병출신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를 표합니다. 항상 서민의 편에서 생각하고 노력해 온 대통령...
진심에 진심을 담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노동자의 편에 서서 트레이너 위에서 폈던 그 담배 한 개비. 대통령으로서 모범이 되지 못할 까봐 숨겨 가며 폈다던 그 담배 한 개비. 마지막 순간에 차마 못 피고간 그 담배 한 개비. 이제 편하게 피십시요.
노무현 대통령 - 인간으로 살다가 인간으로 죽다.- 죽지 않는 돌고래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덧. 전과 14범에게 전과 15범은 문제도 아니라는 말이 와닿는 슬픈 현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삼 가 고 인 의 명 복 을 진 심 으 로 빕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