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날...........
진주만 공격에는 두 가지 안이 있었다.
만일 기습의 성공이 확실하다면 무라타의 뇌격기대가 최선두에서 돌입하고
그 뒤 후치다의 수평 폭격기대가 뒤따르고 다카하시의 급강하 폭격기대가
히컴 비행장과 포드 섬의 항공 기지를 공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만일 미군측이 경계하고 있을 경우에는 다카하시의 급강하 폭격기대가
가장 먼저 비행장을 강습한 뒤 후치다 편대가 이어서 대공포 진지를 폭격,
마지막으로 혼란을 이용하여 뇌격기대가 항내의 전함을 공격하게 되어있었다.
작전은 7시 55분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며 어느 방식을 취할 것인지는
후치다가 신호탄을 발사함으로써 신호하기로 되어있었다.
한 발이면 기습 공격이고 두 발이면 제2의 안이 실행된다는 것이었다.
모함을 발진한지도 이미 1시간 40분,
후치다 편대는 오아후 섬의 북부 해안선을 통과했다.
시간은 바로 오전 7시 40분, 기습편대의 3000m 아래에는 오아후 섬이
유독 아름다운 새벽의 부드러운 햇살과 평화에 감싸여 조용히 가로 누워있었다.
비행장에는 미군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장난감처럼 가지런히 열을 짓고 있었다.
항구의 함선에서는 한가닥의 연기도 오르지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이 잠자고 있는 듯 했다.
후치다는 이 조는듯한 평화스러운 분위기 속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일본에게 이만한 길조는 다시 없다고 생각했다. 후치는 나중에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눈 아래에는 미 태평양 함대의 전부가 늘어져 있다.
더구나 어떠한 낙관적인 꿈에도 나타난 일이 없는 대형이었다.
나는 일찍이 키일 군항의 독일 함대가 집결한 것을 보았다.
또 브레스트 항구에 프랑스 전함이 모여있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관함식에 일본 군함이 집결한 것도 보았다.
군함이 이토록 접근된 거리 간격으로 정연하게 정박하고 있는 것을
아무리 평화 시라도 본 일이 없다. 기습 공격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함대는 항상 경계 태세를 갖추어야만 한다. 이 눈 아래의 광경은 정말 이해하기
어??것이었다. 미국인들은 여순 항의 기습 공격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었던 것일까?"
폭풍전야를 맞은 진주만의 사우스이스트 로치의 한가로운 정경.
사우스이스트 로치는 잠수함기지, 태평양 총사령부와 인접해 있으며 히컴 비행장과도
인접해 있는 곳이다. 왼쪽으로는 포드 섬과 전함 정박지가 있고 뒤로는 진주만 시가지
(펄 시티)가 희미하게 보인다.
호놀룰루의 라디오 방송국은 여전히 경음악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후치다는 기습의 성공을 확신하고, 비행기 조종석의 캐노피를 열고 신호탄 한 발을
발사했다. 그러나 전 작전에서 예정이 어긋난 단 한 가지의 실수(아주 보잘것없는
실수이지만)가 바로 일어났다. 즉, 호위 전투기 편대장의 한 명이 순간적으로
구름 때문에 시계가 가리워졌으므로, 신호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후치다는 그에게 주의를 일깨워주기 위해 또 한 발의 신호탄을 발사했다.
그러나 두 발은 기습이 성공하지 않았을 경우인 강습의 신호였고, 폭격기가 최초로
공격하라는 명령이었다. 이 때문에 다카하시 소좌는 휘하의 급강하 폭격기 51대를
고도 4500m까지 끌어 올려, 두 편대로 나누었다. 이어 타카하시 소좌가 이끄는 편대는
포드 섬과 히컴 비행장을 향했고 사카모토 아키라 대위가 이끄는 편대는
휠러 비행장으로 돌입했다.
뇌격기대 지휘관 무라타 소좌는 다카하시가 신호를 오인했음을 알았지만,
그는 이미 제1안을 따라 전함 그룹을 공격하기 위해 해면을 스칠 듯
초저공 비행을 하고 있었으므로 가급적 신속히 작전 임무를 완료할 수밖에 없었다.
급강하 폭격기대가 뇌격기대보다 조금 앞서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별 잘못도
아니었다. 기습은 대성공이었으므로 어느 쪽이건간에 반격은 받지 않았다.
후치다는 신호탄을 발사하고나서 최초의 폭탄이 투하되기 까지의 2분 동안에, 사태의
전모를 알아차렸으며 곧 무전사에게 미리 준비한 일본어로 돌격(突擊-도츠게키)의
첫음인 도.도.도를 연거푸 타전 하도록 명령했다.
이때가 오전 7시 49분, 도,도,도는 전군 돌격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아직 1대의 미군전투기도 떠오르지 않고 1발의 대공포탄도 날아오지 않았다.
완벽한 성공이었다. 후치다 중좌는 다시 모르스 신호를 타전했다.
호랑이를 의미하는(虎) - 도라,도라,도라...기습에 성공함!
진주만을 공격하는 항모 히류 발진 나카지마 97식 3형 함상 공격기
수평 폭격기대로서 800kg 99식 폭탄 1발을 장착했다.
일순간에 불지옥으로 변해 버린 진주만. 웨스트 로치에서 바라다본 광경
일본군으로서는 기습편대에 반격할 미군의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으며
이 임무도 51대의 급강하 폭격기대가 담당했었다. 또 공중에서의 반격이 없었기 때문에
제로센 전투기의 제공대도 폭격기대의 뒤를 이어 비행장에 기총소사를 가할 수가 있었다.
최대의 위협이 되리라고 생각되었던 휠러 비행장에는 p-40, p-36등 50대 이상의
전투기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었으므로, 이 전투기들을 단시간내에 파괴시켜
활동불능상태로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항공기 보호 엄폐물은 사용되지 않았으며 미군 경비병들이 쉽게 감시할 수 있도록
전투기는 격납고 앞에 가지런히 줄지어 정렬되어 있었다. 사카모토 대위의 급강하
폭격기대는 그 위로 덮친 것이다. 미군기는 손 쉬운 먹이었으며, 최초의 공격으로
기지의 4분의1이 파괴되고 이어서 이타야 소좌의 제로센 전투기대가 습격에
가담하여 기지는 순식간에 불지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미군기 한 대가 공격을 받자 순식간에 불덩어리가 되고 연쇄적으로 옮겨붙어 격납고 앞은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공격이 끝나기 전에 항공기의 3분의 1이 파괴되고 격납고는
크게 폭파되었으며 막사가 폭발되는 바람에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진주만 기습 제1공격대에 강타당한 휠러 비행장
휠러 비행장에 질서정연하게 주기된 약 120대의 p-40을 비롯한
미군 전투기들이 일본기의 공격을 받아 연쇄적으로 폭발하고있다.
왼쪽의 겨우 몇 열만이 아직 피해를 당하지 않은 상태이다.
불타 버린 휠러 비행장 격납고앞에 p-40 전투기와 카타리나 수륙양용 비행정이 고철로 변했다.
휠러 비행장 격납고와 p-40c 전투기들의 뼈대만 앙상히 남았다.
완전히 불타 버린 p-40b 전투기 / 휠러 비행장
휠러 비행장에는 반격이 있었지만 승패의 운명은 이미 명백했다.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사린진 뒤 휠러 비행장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일본군 조종사에게는 훈련보다도 더 쉬운 기습 작전이었다. 다른 급강하 폭격기대를
지휘하는 다카하시 소좌는 휠러 비행장에 폭탄이 쏟아지는 것보다 몇분 빠르게
히컴 비행장으로 덤벼 들었다. 휠러 비행장은 격납고 앞에 가지런히 늘어선
항공기 대형이었으나, 히컴 비행장은 폭격기 기지였으므로 70대의 폭격기 가운데에는
12대의 b-17폭격기가 포함돼 있었다. 이때 다카하시 편대의 조종사들이 휴대했던 지도는
사실상 잘못된 것이었다. 스파이 요시카와의 정보는 실제와는 달랐던 것이며,
후에 그의 스파이 활동은 실패한 것으로 판정된다. 그러나 기습편대에게 지장은
되지 않았으며, 다카하시 편대의 공격으로 이들 폭격기 대부분을 사용 불능상태로
파괴 시킬 수 있었다.
오아후 섬의 동해안 카*헤의 해군 비행정기지, 포드 섬의 미완공된 에와 해병대
항공기지역시 공격을 받았다. 이들 기지는 진주만에서 단숨에 날아갈 수 있는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항공기가 파괴되었다.
폐허로 변한 히컴 비행장.
동체의 절반이상이 잿더미가 되어버린 b-17c폭격기 / 히컴 비행장
공격당한 히컴 비행장의 트럭
벨로우즈 비행장에서 격파된 p-40 전투기
에와 해병 항공기지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일본기의 공격을받아 불타는 sbd 던트레스 급강하 폭격기
99식 함상 폭격기의 공격을 받아 불타는 카*헤 비행장
카*헤 비행장의 병사들이 pby-5 카타리나 수상비행정의 불을 끄고 있는 모습
"진주만 공습, 이건 연습이 아니다! 이건 연습이 아니다!"
라고 극적인 구호를 포드 섬에서 방송한 사람은 하와이 해군 항공대 사령관 베린저 소장
(베린저 소장은 일찍이 하와이가 공격당할 것이라는 경고의 보고서를 제출한 사람이었다)
의 참모 로건 람제이 중령이었다. 그는 마틴 육군 항공대 사령관과 더불어 약 1년 전부터
기지의 준비 부족에 대하여 강력히 불만을 표시하며 시설 및 장비 확충에 고심해 온
사람이었다.
아침 8시 킴멜 태평양 함대 사령관의 기습보고는 샌프란시스코의 미 해군기지를 거쳐
다시 워싱턴으로 중계되어 즉각 녹스 해군 장관에게 전달되었다.
녹스 해군장관은 자신의 집무실로 달??미 해군 작전부장인 해롤드 스타아크
해군대장으로부터 로건 람제이 중령이 하와이에서 타전한 긴급전문을 전달 받았다.
"진주만 공습! 연습이 아님!"
전문을 읽은 녹스 해군 장관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스타아크 작전 부장은 "아닙니다. 진주만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시각은 미국 본토시간으로 대략 오후 1시45분쯤 이었다.
녹스는 바로 진주만 현지에 긴급 전화를 요청했고,
이어 백악관 직통전화를 걸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이사실을 전했다.
루즈벨트 대통령과 코델 헐 국무장관이 진주만 공격의 긴급 보고를 받은 것은
워싱턴 시각으로 오후 2시가 조금 못 되었을 때였다. 바로 이때, 일본의 노무라 대사와
구르스 특사는 일본의 최후 통첩을 전달하기 위해 헐 장관의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비무장 상태인채 미 본토로부터 하와이까지 날아온 미 육군 항공대의 b-17 폭격기들은졸지에 일본기들의 공격을받게된다. b-17 승무원이 찰영한 사진으로서 진주만을 공격중인 일본군 99식 함상 폭격기가 보인다
8시경, 장거리 비행으로 미 본토에서 오아후 섬까지 날아온 하늘의 요새 b-17폭격기
12대가 공격이 한창이던 히컴 비행장에 도착했다. 이 폭격기들의 도착은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오파나의 레이더 기지에선 스크린에 포착한 항공기가 일본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폭격기들은 편대를 짜고 비행해 온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14시간의 장거리 비행 끝에 승무원들은 피곤했으며 일부 폭격기는 연료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또한 폭격기들은 모두 비무장 상태였다.
구름을 헤치고 히컴 비행장으로 접근했을 때, b-17은 제로센에게 추적 당한 채
총탄이 날아들고 있었으며 탑승원들이 아래를 내려다 보았을 때 지상은 이미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조종사들은 히컴 비행장 관제탑의 착륙지시에 따라 총탄이 빗발치는
속에서도 침착하게 폭격기들을 착륙시키는 감투정신을 발휘했다. 한 대는 오아후 섬
남동 해안의 다른 비행장에, 또 한 대는 북서 해안에 긴급 착륙하는 등
나머지 대부분은 히컴 비행장에 착륙했다.
일본기들에게 공격받는 와중에 b-17 승무원인 리 엠브리하사가 찍은 99식 함폭 추락모습.오른쪽 상공에 선회하고 있는 항공기는 제로센으로 보인다.
벨로우즈 비행장에 비상착륙한 b-17c 폭격기
이건 워밍업에 불과하다!
17편에서 계속....
자료제공 : h/채널 (히스토리/20세기전쟁사편 중에서)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