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오늘은 '이등병 생존전략 완결'인 만큼, 주의할 점과 처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보겠다.
1. 이등병 휴가 복귀, 군생활의 시작
휴가를 다녀온 이등병은 이제 진짜 군인이 된 것이다.(응?) 부대로 복귀 한 뒤 하룻밤 자고 나면, 사회에서의 일들이 꿈처럼 느껴지고, 악당들 가운데 던져진 순수한 소년 같은 마음이 들며, 까마득한 군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정말 긴장해야 할 시간이 왔다. 이제는 가르쳐 주는 일 보다 갈구는 일이 더 많아지는 때다.
내가 있던 부대의 백병장(부산거주,현재연락두절)의 경우, '싫어하는 것'을 써 넣는 칸이 있으면, 그곳에는 항상 이렇게 써 넣었다.
싫어하는 것 : 이등병
보통 부대 정문을 지키는 위병소의 경우, 차가 들어오는 것을 잘 봐야 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위병조장이 달려와 장애물을 치우고 차를 부대까지 들여보내는데 시간이 걸린다. 난 휴가 복귀해서 부사수로 위병소 근무를 섰고, 마침 백병장이 위병조장 근무를 서고 있었다. 휴가의 아련함에 젖어 부대 밖 자유롭게 날아가는 철새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마침 나와 함께 근무를 나갔던 김상병(동대문에 대형 브랜드 샵이 자기네 집이라고 뻥치다가 걸림)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부대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저스. 위병소 앞에서 차가 빵빵 거리며 대대장이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차 들어 옵니다~' 라고 외치질 못했고, 백병장은 급히 달려나와 문을 열었다. 대대장이 탄 차가 들어가고, 백병장은 방탄모를 집어 던진채 대략 7분 32초간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 보며 딱 한마디를 던졌다.
"미쳤냐?"
비슷한 말로는 '개념없냐?' 또는, '돌았냐?' 정도의 말이 있다. 앞으로 군입대 하는 가이들이라면, 즐겨듣게(?) 될 것이니, '욕'의 개념 보다는, 선후임간 의견교환의 '다리'역할을 하는 단어로 알아두면 되겠다. 이등병이라면 이런 말들도 다리가 덜덜덜 떨릴 정도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항상 기억해야 하는 것! 말을 한 당사자는 듣는 사람보다 별로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이다. 백병장의 경우도, 나와는 다른 소대였기 때문에 한참 만날일이 없다나 나중에 작업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그 날의 일을 기억 못할 뿐 아니라 내가 몇소대 이등병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에게 '찍혔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혼자만의 생각일 가능성이 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쫄면 안된다. 쫄면 지는거다.
가이들이 휴가를 복귀 한 이후, 이등병이라고 봐주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분명 전에 한 번 하는 걸 보기만 한 군대의 기술적인 것들이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을 것이고, 호시탐탐 갈굴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일병들의 눈길에 뭐든 흠 잡힐 것들이 발견될 것이다.
막내는 어디서나 힘들다. 밑에 후임이 들어왔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부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반 차이 없는 까닭에 같이 갈굼 당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야속하겠도 병장이나 상병은 일병을 혼낼 것이다. 이등병 누구누구를 왜 잘 안가르쳤냐고 말이다. 이등병은 그 때 한번 일차적으로 데미지를 입고, 일병이 불러서 이야기를 할 때 다시 한 번 데미지를 입는다. 뭘 하는 피곤하고 어리버리한 시기이니, 그저 훈련소때의 기억을 더올려 세 가지만 잘 지키며 버티길 바란다.
스피드 - 신속하게 (잘하든 못하든 a급으로 보임)
사운드 - 목소리는 크게 (의욕적으로 보임)
센스 - 분위기 파악의 레이더는 항시작동 (이게 98.72% 라고 보면 된다)
군대가 아무리 좋아져도 이등병은 힘들다. 계급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니 힘들 수 밖에 없다.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존심만 세우거나 괜히 한 번 욱하는 성질에 사고를 쳤다간 결국 피해는 자신이 입을 수 밖에 없다. 다만, 부당한 일에는 절대적으로 소대 고참이나 간부에게 도움을 청하길 바란다. 그것을 상급자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이야기 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것 보다 현명한 일이다.
2. 한 달 고참을 잡아라
사이가 좋든 나쁘든 가장 짜증 나는 것이 '한 달 고참' 이다. 군생활이 같이 풀려 거의 동기처럼 지내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한 달 고참은 일병을 달자마자 당신을 갈구려고 할 지도 모른다. 어제까지 같이 이등병이 었는데, 오늘 일병을 달자마자 '이등병은 개념이 없어' 이따위의 말을 하며 말이다. 그 고참이 줄(?)을 잘 서서 박쥐처럼 다른 고참들에게 아부한다면, 사실 방법이 없다. 하지만 어이없이 윗 계급의 흉내를 낸다면, 조용히 이야기 하거나, 언제 한 번 단 둘이 있을 때 터 놓고 이야기 하길 권한다. 주의할 점은 그 고참의 동기가 소대에 2명 더 있고, 당신은 동기가 없다면, 그냥 무조건 잘해줘라. 어차피 한 달 차이는 짬 먹으면 친구가 된다. (예외인 경우도 있으니, 이건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센스에 맡기도록 하겠다)
참고로, 나는 5개월 정도 차이가 나는 고참이, 이상하게 상병을 달자마자 나를 유독 갈구기 시작했다. 당시 말년병장들이랑 친하게 지낸 까닭에 질투를 하거나 안 좋게 봤을 가능성이 크다. 다들 훈련할 때 나는 보일러병과 이것 저것 작업을 한다며 빠졌으니, 이상한 복수심을 가지고 갈궜을 거라 생각한다.
갈굼은 대부분, 그 고참이 내 앞 순번의 불침번이고, 내가 다음 순번이라면, 나를 깨워서 내가 일어나면 '고참이 깨우는데 빨리 빨리 안 일어나냐?' 따위의 이야기를 던지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 그리곤 *쉬의 전기가 약하다느니, 수통에 물을 꽉 채우지 않았다느니, 평소 터치하지 않는 부분까지 들먹이며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한다. 그리곤 근무가 끝났으니 뽀글이를 해서 먹고는 국물을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자고, 나는 근무를 이어서 서게 되는 것이다.
내가 불침번 신고를 하고 인원,총기,온도 체크를 끝내고 돌고 있을 때, 그 고참이 마침 라면국물을 버리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눈이 마주쳤는데, 한심하다는 식의 표정으로 비웃음을 날리고는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이다. 난 따라 들어갔고, 쓰고 있던 모자를 집어 던지고 그 고참을 불렀다.
(중간 심의상 생략)
사실, 그때는 사고(?)를 한 번 쳐서라도 군기교육대나 영창에 며칠 들어가 있다가 다른 부대로 가는 것이 나을거라는 판단에 벌인 일이었다. 몸싸움같은 건 없었고 차근차근 설명한 뒤 물었다. 집에가면 너만한 동생이 있고(난 군대를 늦게갔다), 아까도 깨우기 전부터 이미 잠이 깨 있던 상태였고, 요즘들어 이상하게 갈구려고 하는 것 같은데 더는 못 참겠으니까 지금 왜 갈구는지 얘기를 들어보고 같잖은 얘기면 지금 화장실에서 사고치고 다른 부대 갈라니까, 말해보라고 얘길했고, 나름 명확한 답변을 들었다.
"미안해"
이런 방식을 따라하라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지만, 이런 것은 개인적으로 px를 같이 가자고 이야기해서 풀든지, 아니면 갈구는 고참이 한 둘이 아닐 경우 분대장에게 상담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해결이 안되면 소대장과, 그래도 해결이 안되면 중대장과 이야기 해 보길 권한다. 마찰을 피할 수 있도록 보직을 바꿔준다든지, 아니면 여러가지 해결책 중 하나를 꺼내 제시할 것이다. 선후임간 갈등 문제가 당신 하나 뿐이겠는가. 수 많은 병사들이 겪었고, 부당한 일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체계가 잡혀있다. 특히 요즘 군대는 '상호존중'을 강조하는 추세라, '가혹행위'나 '갈굼'에 엄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당사자와 해결이 안되면, 무조건 도움을 청해라. 혼자 쫄아 있는 것 보다 바보같은 일은 없다.
3. 악마같은 고참도 사람이다.
이등병시절, 누구나 마음에 하나쯤 '사회에 나가서 집을 찾아가고 싶은' 고참이 한두명 정도는 있다. 마치 악마같은 일병 중 그 대상이 있을 것인데, 일병이 왜 악마 같아지는 지는 다음 매뉴얼에서 이야기 하도록 하고, 그 악마같은 고참은 정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고, 태생이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 고참의 가족이 면회를 오면, 그 고참역시 집에서는 '귀한 아들'이고, 부모님 앞에서는 한없이 작은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을 갈구는 고참이 있다면 그만큼 잘해줘라. 자기한테 잘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나쁜짓(?)을 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주의할 점은 이용당하지는 말아라. 잘해주라는 이야기가 px에 대려가 월급 다 써가며 먹을 것을 바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소포로 뭔가가 도착하면 하나 나눠 준다든지, 그 고참이 힘든 일을 하고 있으면 다가가서 도와준다고 이야기를 한다든지, 하기 싫더라도 크게 경례를 한다든지, 같이 근무를 서게 되면 이것 저것 물어보거나 그 고참이 하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든지, 이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라는 얘기다.
내가 이등병 막 전입왔을 때, 백일휴가도 가기 전에 이미 말년휴가를 다녀와 집에 갈 날을 기다리는 신병장이 있었다. 내가 나이가 많음을 알고는, 어차피 자기는 집에 갈 사람이라며 둘이 있을 땐, 나에게 '형'이라 부르며 담배를 피우던 사이인데, 그때 신병장이 해 준 이야기가 있다.
"형, 여기 괴물 없어. 사람 사는데야.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마"
그 이야기는 내 군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군생활을 현재의 전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일부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이야기였다. 지금 닥친 상황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때 마다 마음을 빼앗기고 충동적이며 우발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일부이고, 2년후면 나간다는 생각을 중심에 놓는다면, 무슨일이 일어나든 간에 어느정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글을 보고 있을 입대 예정자나 이등병, 그리고 전역만이 희망이라 생각하는 군인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국방부 시계는 지금도 가고 있다.
그리고, '소원수리'나 '마음의 편지' 라며 고참들의 못된짓을 적어 내거나, 부조리, 금품갈취 등의 행동을 적어서 내라는 시간이 종종 찾아올 것이다. 그 편지의 효력은 크다. 하지만 후폭풍은 더 크다. 나는 이등병시절, 점호가 끝나고 잠자리에 누우면 상병들이 일명을 소대 뒤편으로 불러내고, 다음엔 이등병이 불려나가고 주루룩 서서 설교듣는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별 생각없이 마음의 편지에 "점호 끝나고 자꾸 소대 뒤편으로 불러내서 잠을 못잡니다. 잠 좀 자게 해 주십시오" 라고 썼다. 물론, 이 설문은 무기명으로 진행된다.
어떻게 되었을까?
몇 시간 후, 소대장들이 모두 중대장 실로 불려가고, 소대장들은 다시 돌아와 분대장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분대장은 소대로 돌아와 쓰레기통을 걷어 차거나 전투화를 벗어 집어 던지고, 모두들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초 살벌모드가 진행된다. 짜증난다는 듯 연신 화를 달래는 제스쳐를 취하던 분대장 하나가 입을 연다.
"어떤 색히냐?"
무기명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잠시 후 소대장이 들어와 이야기 할 것이다.
"다 눈 감아. 잠 안재운다고 적어낸 사람 조용히 손들어. 눈 감아 임마."
오케이. 여기까지. 그날부터 잠은 잘 자게 될 것이다. 점호시간 이후에 후임병들 불러내서 이야기를 하다가 걸리면 영창을 보낸다는 중대장의 지시가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눈 감아'로 무기명이 보장될까? 다행히 나는 친한 고참들이 많이 있었던 까닭에 무사히 넘길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왕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마음의 편지는 정말 절박한 상황일 때 써라. 그리고 마음의 편지 보다는 분대장과의 상담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간부에게 직접 털어 놓는 것을 추천한다. 마음의 편지나 소원수리가 나오기 전까지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등등 부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고 있었다는 이유로 계급장을 떼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신중해야 한다. 내 경험상, 뒤에서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앞에서 대 놓고 이야기 하는게 통했다. 짬을 먹어가며 알게 되겠지만, 나중엔 다 친구가 되고 형이 되고 동생이 된다.
어느 고참이 악마 같이 보일지 몰라도, 악마는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죽지마라
백 번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것 없는 이야기다. 제발 군대에서 죽지 마라. 정 죽고 싶거든 죽기 전에 보급관이나 중대장이나 대대장 찾아가서 일단 휴가를 달라고 해라. 솔직히 말해라. 나 죽고 싶으니까 휴가나 다 쓰고 죽게 일찍 휴가 끊어 달라고. 휴가도 다 못쓰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한가. 특히, 군생활이 힘들어 죽고 싶은 거라면, 1년만 버텨라. 후임도 몇 명 못 받아보고 백날 낙엽쓸고 눈 치우고 잡초 뽑다가 죽으면 뭐하나. 상병 달아도 죽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있다면, 역시 사단장에게라도 편지를 써라. 나 세상 그만 살라니까 휴가 갔다 와서 죽게 포상휴가나 하나 달라고. 초코파이만 먹다가 죽으면 쪽팔리지 않은가? 나와서 떡볶이라도 하나 먹고 죽어야 할 거 아닌가. 사단장에게 편지 쓸 깡이 있다면, 분명 그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진짜 편지를 쓰더라도, 그 일은 해결될 것이다.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내가 전지현 뺨 때리고 지금 돌아오는 애를 소개시켜 줄 테니까, 죽지마라. 이 매뉴얼을 읽는다면, 죽고 싶을 때 꼭 방명록이든 댓글이든 남기길 바란다. 너무 사랑했다는 것은 행위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목숨바칠 정도로 사랑한 여자친구라면, 2년만 기다려라. 여자친구에게는 2년 기다리길 바래놓고, 자신은 왜 못기다리는가. 2년 기다려서 제대하고 다시 만나서 얘길 해라. 그리고 한가지 더, 2년도 기다리기 힘들어 하는 여자친구라면 지금 헤어진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 그 여자친구가 '나 또 결혼하고 싶어. 다른 남자랑'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댄 어떻겠는가. 내가 술 한잔 살테니까, 만나서 소주 한잔 급하게 꺾고 잊어라. 소주 한 병 원샷하고 다 토하고 나면, 속이 좀 개운해 질 것이다.
집안이 어려워서?
정말 징기스칸이 한 이야기인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다.
그대가 절망할 때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때 아버지를 잃고 집에서 쫒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하였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었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는 징키스칸이 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꼭 군생활에 관련되지 않더라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글이라 생각된다. '저건 특별한 경우고'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나 당신이나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 소중하다. 나를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자기 자신마저 자신을 하찮게 여긴다면, 누가 소중하게 생각해 줄 것인가.
계급장에 짝대기는 시간이 지나면 올라갈 것이다. 애타게 기다린다고 빨리 오는 게 아니다. 후임들도 많이 생길 것이고, 지금은 다 '내 일' 처럼 생각되는 것들도 손을 털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고참들도 시간지 지나면 집에 갈 것이고, 위의 고참들을 다 보내고 나면 당신 역시 집에 갈 것이다. 조급해 하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긴장의 끈을 놓치도 말기 바란다.
사회에 나오면 군생활은 추억이고 안주거리가 된다. 군대가 전부가 아니다. 지금 처한 상황이 힘들다고 해서 도피하려고 하거나 끈을 놓아버리려고 하지 말아라. 엉킨 것은 풀면 된다. 26사단 신교대 성경책에 누군가 낙서했던 말처럼, 길을 모르면 물으면 되고, 길을 잃으면 헤매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늘 잊지 않는 것이다.
죽지마라!
ps. 잠이 안와서.. -_-;; 한 밤에 게시판 도배 좀 해봤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