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땡보특집 마지막 편이다. 오늘도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가이들은 도대체 어떤 특수한 '땡보직'으로 군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알고 싶어 이 글을 읽을 것이고, 가장 힘든 군생활을 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던 일부 예비역들은 "내가 사실 땡보" 라며 커밍아웃을 할 지도 모른다.
"땡보가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김공익.. 조공익에게는..."
-디씨인사이드 밀갤러가 단 댓글중
'차라리 현역 갈걸 그랬다'라고 이야기 하는 연예인들마다 댓글로 밟히는 이유는 우리끼리니까 까놓고 이야기 해서, 크리스마스에 눈 치우는 상큼한 기분을 모르고 하는 소리며, 고참이 시키면 군견이나 tv에도 경례를 해야 하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며, 다 뜯어진 맥심잡지라도 감사히 화장실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거다.
"그래서, 현역 갔다 오니까 좋아?"
바로 이런 물음이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내무실에서 먹다 들키지 않으려고 화장실에서 까 먹던 초코파이, 수통에 물을 안채웠다고 두시간동안 탄약고 초소에서 당하던 갈굼, 전투화 안 닦은 날은 대역 죄인이 되어 똥줄 타던 점호, 해 졌는데 커튼 안쳤다고 금방이라도 때릴듯이 화를 내던 고참, 이런 것들을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으니 남자 둘만 모여도 군대 얘기를 하며 밤을 샐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편한 보직을 맡아 널럴한 군생활을 했다고 자랑하더라도 밖에 나가서 때려주고 싶은 미운 놈은 꼭 하나 있고, 전에 이야기 한 것 처럼 이등병이 "군생활 너무 즐거워요~" 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사실, 이번 땡보특집 총정리에서는 tod와 레이더병, 이글라와 스타 운전병, 기상관층병, 철도관리병 등등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했었지만, 이미 '아버지가 스타인 아들 공관병'을 당할 땡보직이 없다. 다시 말해, 자기 집에서 2년 군생활 한 녀석은 신의 아들이라는 '군 면제'와 비교를 해도 오히려 우위를 점한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위의 보직들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까닭에 땡보로 분류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일반 군생활보다 편할 가능성은 엄청 높다)
그래서, 여러가지 상황들을 모두 종합해 주로 어떤 상황이 군대에서는 '편하다'고 할 수 있는지, 그 상황들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총정리답게, 어느 보직을 콕 찝는 것이 아니라, 큰 흐름으로 분류를 나눠보고자 한다. 이름하여, 땡보의 특징 이다.
1. 소수정예
인원이 적을 수록 유리하다. 특히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을 혼자 하는 경우, 앞서 나왔던 당번병이나 공관병, 그리고 스타운전병 등 까지 혼자 하는 일일 수록 편한 경우가 많다. 의무병의 경우, 일반 대대 의무병은 그닥 땡보가 아닌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다른 부대로 혼자 파견을 갈 경우, 이등병이라 하더라도 상대 부대의 병장과 맞먹는 레벨까지 올라가게 된다.
또 하나, 병원 입실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 의견엔 나도 백배 공감한다. 군대에서 아픈 것은 정말 서러운 일이지만, 크게 다치거나 생명이 위독하지 않은 이상 (예를들어 치질로 장기입원) 여름에는 에어컨, 겨울에는 히터, 도서관에는 책 있고, 365일 면회되고, 전화 언제든 마음껏 할 수 있고, 아무도 갈구지 않는 침대에 누워 군생활을 할 수 있다.
다만, 인원이 어중간 할 경우 오히려 더 고달퍼 질 수도 있다. 근무를 서다보니 군생활이 끝났다는 j군(29세,무직)의 이야기처럼 사람이 부족한 곳은 늘 근무인원이 모자란 경우가 많다. 어중간한 숫자 보다는 차라리 많은 것이 나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2. 풀린군번
아직 군대를 가지 않은 가이들이라면, '꼬인군번'과 '풀린군번'의 개념이 부족하리라 생각된다. 쉽게 생각하면 된다. 학교에서 1학년이 파워가 있을까? 6학년이 파워가 있을까? 그렇다. 상명하복을 충실히 시행하는 군대에선 계급이 높은 것도 중요하지만, 서열을 구성하는 인원들의 분포도 중요하다. 위에 12명 있고, 아래 15명 있는 병장과, 위에 4명 있고, 아래 23명 있는 상병 이라면, 상병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풀린군번' 이란 얘기다.
참고로 지난 이야기에 댓글로 달아주신 분은 제대하기 몇 달 전까지 앞에 9명의 고참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병장인데 뭐가 힘드냐고? 위에 고참이 많을 수록, 청소시간 걸레를 잡는 기간은 늘어날 것이고, 근무지원 등의 열외없이 훈련 참석해야 하며, 유격을 왕고가 될 수 있는 비극적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처음 자대에 배치받고 병장이 많고 이등병 쪽이 적다면 '풀린군번', 병장이 적고 이등병이 많다면 '꼬인군번'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수한 보직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수인계를 해주는 고참(사수)이 본인(부사수)과 차이가 많이 날 수록 좋다. 그 고참이 전역하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책임져야 하는 일들도 많아지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병사들 위에는 간부가 있다.
3. 간부와 멀거나, 가깝거나
파견근무나 근무지원, 또는 tod나 gop등 독립되어 다른 간부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을 때, 그 군생활은 편해지기도 한다. 비록 군대에서 느끼는 해방감이나 자유감은 사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융통성 있는 군생활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마음이 힘든 것과 몸이 힘드 것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을때, 대부분 차라리 몸이 힘든게 낫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기에 많은 분들이 그 '고립감' 마저도 '편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반대로, 스타(장군)운전병이나 공관병, 당번병등 높은 지위의 간부와 가까울 경우 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 보안(?)상 사연을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참모총장과 가까운 곳에서 군생활을 했던 한 예비역의 댓글에는 일반 병사가 꿈도 못 꿀 생활들이 담겨있다. 중령만 지나가도 "대대장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외쳐야 했던 나 같은 예비역이 있는 반면, 대령을 '맘씨 좋고 착한 아저씨들' 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비역이 있다는 말이다.
몰디브 해변에서 *텐이나 하는 군생활이라도, 싸이코패스와 함께라면 지옥같을 것이다. 하지만 콧물까지 얼어붙는 북극 같은 곳에서도 훈훈한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한 것, 그것이 진정한 '축복받은 군생활' 이라 하는 것이다.
4. 빽(인맥,혈연,지연)
이 부분을 쓸까 말까 상당히 고민했다. 세상은 항상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줄거라 생각하는 병아리 같은 가이들이 실질적으로 시궁창인 현실을 알았을 때, 가이들이 받을 데미지를 피하기 위해 적지 않을까 했지만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 부분도 적기로 한다.
빽이 있으면 군생활이 편하다는 것은 99.98%의 예비역들이 알고 있다. 왜, 현실에서도 이효리와 문자를 주고 받는 사이라고 하면 괜히 으쓱해 지는 것이고, 아는 형이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소위 '짱' 이라 불리는 존재라면 어깨에 힘 들어가지 않는가.
군대도 마찬가지다. 한 예비역의 댓글에 의하면 꽤 쓰리스타의 아들이 자신과 동기였는데 그 별의 아들이 복무하는 부대에 갑자기 '미니홈피 관리병' 이라는 것이 생기더니, 2년간 미니홈피를 관리하다가 그 병사가 전역한 후에는 그 보직이 사라졌다고 한다. 아는 사람이 군 고위 관계자라고 무조건 편한 군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하게 군생활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본인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도 해당된다. 나는 탤런트 연모씨와 훈련소까지 동기로 훈련 받았는데, 보충대에서 그 씹기도 힘든 밥을 수저로 먹고 있을때, 연모씨는 높은분들(?)과 젓가락짓을 해가며 따로 밥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명 축구선수의 경우는 3박 4일간 축구공에 싸인만 하다가 훈련소로 갔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굳이 특정 보직으로 빠지지 않더라도, 일반 군생활을 하다 사고(?)를 쳐서 영창을 갈 경우, 찬란한 인맥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반성문을 쓰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한, 같은 동네이거나 학교 선배거나 이런 사람들이 고참급일 경우 그들이 있는 동안 어느정도 보호를 받는 특혜를 누릴 수도 있다.
편법이나 편파적인 꼼수(?)를 쓰지 않더라도, 인맥이 찬란한 병사의 경우 주변에서 '알아서 모시는' 경향이 있다. 사단장과 아버지가 동창이라 종종 사단으로 불려가 양주를 마셨다는 댓글도 있었고, 정말 높은 분(?)의 아들이 자대에 가자 중대장이 자기 몸보다 더 소중하게 모셨(?)다는 댓글도 있었다.
일반 병사의 경우 자기 누나가 예쁘거나, 주변 친구들이 김태희 뺨치는 미모를 가진 경우, 편파와 편애적인 고참들의 보호로 편한 군생활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소개팅 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참과 그 여자분의 통화 정도는 시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고참이 앙심을 품어 군생활이 더 힘들어 질 수도 있다.
앞선 땡보특집편에 "뭐라도 좋으니, 제발 편한 보직을 알려달라." 라는 입대 준비중인 가이의 댓글이 있었다. 그 댓글을 읽은 예비역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넌 어딜가도 힘들 것이다."
저주의 말이 아니라, '편하고 싶다'라는 밑 빠진 독은 채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이등병 때 제발 부대에 '난 알아요' 말고 최신곡을 부를 수 있는 노래방 기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병 때 콘테이너에 노래방기계가 들어왔지만, 막상 생기고 나니 인터넷도 하고 싶었다. 병장 때 부대 내 '사이버지식정보방' 이라는 pc방이 생겼다. 며칠 좋다가, 다 필요 없으니 집에 가고 싶었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게 사람이라 '편한 군생활'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어디서 뭘 하든지 그 밑 뚫린 마음을 충족할 순 없다는 얘기다.
또한, 편한 군생활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2년간 파리만 잡은 추억밖에 없는 당번병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제대 후 남들은 훈련 얘기에 팀을 튀며 이야기 하는데 자신은 군대를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할 이야기가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을 다 떠나서라도 함께 힘든 시기를 겪은 소중한 전우들, 사회에 나와서도 종종 연락하며 '그땐 그랬지'를 이야기 할 수 있는 형과 동생, 친구들. 그런 사람들도 없이 그저 몸은 편한 2년을 보냈다면, 아무것도 남는게 없지 않을까.
어디를 가도 마음먹기 마련이고, 처음만 어렵지 하다보면 다 할 수 있다. 군생활이 부담되거나 무섭거나 막연하거나 어려울 것 같다고 겁이 든다면, 내 친구 덕칠이도 하고 왔다는 걸 떠올리기 바란다. 덕칠이는 중학교 시절 만인이 사랑하던 퀸카 여학우에게 남들 다 보는 앞에서,
"야, 잠깐 복도로 나와봐 할 말 있어"
라고 이야기 했다가,
"뭐야. 꺼져. 재수없어"
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친구다. 그 후엔 급식소를 짓고 있던 관계로 도시락을 싸오거나 집이 가까운 친구들은 집에가서 밥을 먹고 오던 점심시간, 밥을 먹고 tv에서 해주던 피구왕 통키 재방송을 보다가 잠이들어 본의 아니게 무단 조퇴가 되기도 하고, 비오는 날 버스에서 덜컹거림에 우산을 휘둘렀다가 옆에 서있던 여학생 머리를 쳐서 기절 시키기도 한, 전설의 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