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방위 태세는 완벽:국방부 수뇌부와 본사 좌담회〉
연합신문(1949년 05월 26일)
대한민국 성립과 더불어 과거 군정시대의 국방 경비대로부터 국군으로 그 질·양적 비약을 본 우리 강토 방위의 간성 대한민국 국군은 그동안 제주도 폭도진압, 지리산 소탕전 최근에는 개성지구 등 38선 일대에서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어 국민의 신뢰는 날로 두터워 가는 한편 장차로는 失地 북한을 접수하기 위한 유일한 실력체로서 그 존재가 날로 국민 앞에 크게 나타나고 있음은 더 말할 것 없는 바로 현하 미군 철퇴설로 인한 국내적 불안 및 인방 중국의 심상치 않은 사태 발전과 소위 북한 괴뢰정권 軍의 南下企圖 역시 노골적으로 표시되고 있는 이 때 본사에서는 지난 23일 하오 6시부터 본사 중역실로 蔡 秉德 육군총참모장·孫 元一해군총참모장·丁 一權육군참모부장·金 錫源 제1사단장·작전국장姜 文奉 대령·虎부대장 金 鍾五대령 등 그야말로 국군 최고 수뇌 간부를 일당에 초빙코 본사측으로는 梁又正 사장 이하 전무 편집국장 등 참석 하에 본사 편집副局長 安燦洙씨 사회로 국군 창건 이래 최초인 군수뇌부 對 언론인의 군사행정을 중심으로 현하 긴박한 국방정세 전반에 걸친 획기적 대좌담회를 개최하였는데 특히 이 날 군무 다망한 가운데에도 본사의 뜻을 통찰코 빠짐없이 참석한 국군 제 장정은 이 날만은 ‘군’이란 딱딱한 맛을 벗어제치고 허심탄회하게 그동안 국민 일반의 의혹을 사고 있던 춘천부대 월북사건의 진상 또는 해군 함정월북의 불가피성 등을 명쾌하게 해명한 바 있어 아직도 의혹을 풀지 못하는 국민에게 군의 근본 태도를 명시한 바 되어 앞으로 군민협조에 큰 계기를 이르는 의의 또한 컸으며 방금 李대통령을 중심으로 일대 국민운동의 형태로 그 성립을 촉구하고 있는 태평양동맹 및 한미군사협정의 필연적 의의를 실례를 들어 말하고 또한 해군 장비 문제 등에 언급되어 육군작전이 있을 때마다 은연한 힘을 주고 있는 해군작전 당면 성격을 설파하는 등 유사이래 초유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우리 군대의 전략·전술을 밝히는 뜻깊은 좌담회는 화기애애한 가운데 원만히 진행되어 하오 8시가 지나 끝났다.
△출석자 씨명:국군총창모장 채병덕소장, 해군총참모장 손원일소장, 육군총참모부장 정일권준장, 제1사단장 김석원대령, 작전국장 강문봉대령, 호부대장 김종오대령
△본사측:양우정 사장, 任周彬 전무, 金元圭 편집국장, 안찬수 편집부국장, 安사회부장, 金成洛 政經부장, 金定台 기자, 李志雄 기자
양우정:우리 국방부 수뇌 여러분을 이 자리에 모시게 된 것은 본사의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40년래 잃었던 국권을 찾은 이 마당에 있어 그를 수호하고 질서를 닦으며 불철주야로 노력하시는 우리 국군 영수 제위에게 우리는 평소부터 감사와 기대를 가져 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실지 북한을 통합하여 조국의 완전 광복을 염원하는 민족적 과업을 해결하는 것은 오로지 위대한 우리 국군의 두 어깨에 달려 있으며 국군의 일동일정은 곧 3천만의 관심을 모으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내적으로 대외적으로 일순의 방심도 허락치 않는 이 때를 당하여 우리 국군의 동정을 정확하게 보도하고 또는 군으로부터 국민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을 지상을 통하여 널리 퍼지게 함으로써 국민으로 하여금 군을 더욱더 믿게 함은 현 단계에 있어서 우리 언론기관이 걸머진 국가적 사명으로 알고 우리 연합신문은 종래부터 국방부 및 국군의 활동을 정확히 보도해 왔던 것이며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될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국군 영수 제위를 모시고 우리가 묻고 싶은 말, 군에서 국민에게 보내는 말 등을 관이라 민이라 할 것 없이 흉금을 터놓고 기탄없이 이야기해주시기를 바라며 인사 말씀에 대할까 합니다. 그리고 사회는 편집국 부국장 안찬수군이 맡아 보기로 되었으니 그리 아시고 진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안찬수:지금 국민 일반은 국군의 혁혁한 공훈에 많은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군을 신뢰하고 있는데 앞으로 실지 북한을 회복함에 있어 국민이 알고 싶은 말, 또 군에서 일반 국민에 하고 싶은 말 등을 군기에 저촉되지 않는 한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로서의 질문 요항을 소개하면
첫째, 국군은 민족적 유감사이기는 하나 공비의 도전에 대하여 누차의 실전을 전개하였으니 이 실전에서 얻은 체험담을 제1사단장 김석원대령께서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석원:우리 민족은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민족으로서 근자에 와서 외인의 침범을 당하였으나 우리 민족도 교육하고 훈련시키면 세계 어떤 민족에 비하여서도 손색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자신했다. 원래 나의 전투경험으로는 일본군대에서 30여 년 간이나 종사했던 만큼 그들의 지도 방법 및 군기 훈련을 많이 체험한 바인데 해방 후 한때 우리 나라의 청년들의 동향을 보고 내심 한심하게 생각한 때도 있었으나 그 후 내가 국군에 몸을 던지게 되자 제일 먼저 걱정한 것은 우리 나라 청년들이 실전에서 막상 생명을 걸고 싸움에 어떻게 생명을 바치나 근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금번 개성 전투에서 나의 기우는 일소되고 그 왕성한 사기와 훌륭한 전투력은 ‘과연 화랑도의 정신을 받은 자 다르구나’라는 느낌을 새삼스럽게 하였습니다.
안찬수:금년 개성 송악산 전투에서 장렬한 전사를 한 10용사에 대하여서는 국민 일반이 크게 감동한 바인데 이들에게는 군의 교육 방침 등에 대하여 말하기 바랍니다.
김석원:국군에서는 보통 민족국가를 위하여 최후의 피 한 방울까지 바칠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점 각 일선 연대장을 비롯하여 중대장 일병 사이에 이르기까지 애국 애족정신이 철저하게 주입되고 있어 공비에 대하여서는 이를 결사적으로 대전하겠다는 정신이 그 얼마나 철저한가를 증명한 것이 금번 10용사의 장거이었으니 당시 세계를 ?目케 하던 일본의 소위 상해폭탄 3용사 같은 것은 우리 十勇士에 비할 바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본 3용사는 그것이 國際戰場이었다는 것과 기술적으로 보아도 생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10용사는 당시 공비에게 포위되어 전멸의 위기에 처해 있던 자기 부대를 구출함과 동시에 나아가 전군에게 그 열렬한 사기를 표시하여 국군의 귀감이 되게 하였으니 즉 박격포탄·유탄포탄의 신관을 빼 들고 그것이 터질 때에는 이미 죽을 것을 각오한 것이므로 그 장렬한 심사는 도저히 누구의 지시로 되는 것은 아닌 것이란 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금번 10용사의 장거는 국민 역사에 위대한 교훈을 남긴 것입니다.
안찬수:금번 사건에 있어 개성주민의 눈부신 활약은 이미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바이거니와 그 상세한 활동 경위를 말해 주기 바랍니다.
김석원:개성부민은 금번 사건 이전부터 다소 포성에는 순치되어 왔으므로 해서 타지방 주민에 비하여 국방에 대한 인식이 평소 강하였습니다. 금번 전투에서 개성시민이 보여준 물심양면적인 협력은 국민 다같이 칭송하는 바이거니와 특히 대한청년단원 7백여 명은 당시 우중임에도 불구하고 개성역에서 송악산까지 십리길 을 포탄 운반 기타 수송 작업에 헌신 노력하였으며 애국부인회원은 군의 취사업에 아침 저녁으로 수고를 다하여 일선 장병에게 든든한 인상을 준 것은 사기 앙양에 큰 이바지를 했습니다.
안찬수:그럼 이번에는 지리산·제주도 등에서 빛나는 공훈을 세우고 개선한 육군참모부장 정일권준장께서 특히 지리산지구 전투에 관하여 말해 주기 바랍니다.
정일권:작년 10월 麗順반란에 있어 반군 수괴 홍순석·김지회 등은 북로당의 지령을 받고 여세를 몰아 지리산에 입산 후 6개월 간 갖은 술책으로 도량해온 그들은 북로당에서 보.내....오.는 지령 즉 여순반란을 계기로 소위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군사행동을 취한다느니 남한의 남로당 세포의 무장·봉기 등이 있을 터이니 끝까지 항전하라는 따위 허무한 지령에 속아 2백여 명의 반란군과 백여 명의 무장 폭도를 규합하여 금년 3월 초에는 대담하게도 국군의 주둔 근거지를 야습하여 오는 등 활발한 준동을 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국군은 이들을 결코 强敵視한 일은 없으며 예상되는 장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 장소로 알고 준작전행동을 개시하여 단시일 내 소탕 완료를 목표로 이들에게 반격을 가하였는데 이에 당황한 반군은 지리산에서 덕유산까지 880킬로의 도정을 매일 140리씩 도주하였는데 이를 추격하는 국군은 사기 왕성하여 총 추격리정 880킬로(그 중 3분의 1은 자동차로)를 행군하여 마침내 홍순석·김지회 등을 위시한 반군 전부를 섬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국군의 전체면에서 볼 때 하나의 작전이라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것이며 전초전의 성격도 못되는 한 개의 큰 훈련이었다. 원래 남로당과 북로당배는 장래할 그들의 유격작전의 근거지로 강원도의 오대산·덕유산·백운산·지리산 등을 중요시하여 인원 보충과 기타 교육지도에 있어 철저를 기하여 왔으며 무기 공급과 식량 등 확보에 노력해온 만큼 단시일 내에 진압 당하게 된 데 대하여 당황하고 있으며 한편 금번 개성지구 전투에서 한꺼번에 4백 명의 사자와 6백 이상의 부상자를 낸 것 등으로 그들에게 준 타격은 큰 것이었다.
안찬수:금번에는 호랑이부대로 이름난 38선 제일선부대 지휘관 김종오대령으로부터 그쪽 이야기를 해주기 바랍니다.
김종오:병사의 사기에 대하여서는 먼저 말한 김석원대령이나 정준장과 동감입니다. 일전 해주지구에서 공비의 불법 월남사건이 발생하여 제일선 산병진지를 시찰 나간 일이 있는데 그 때 내가 본 제1선 병사의 눈초리는 모두 불타는 듯 “공격 명령은 언제 내립니까”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이 나의 일선 시찰중 중요한 인사말이 되었던 것이다. 처음 총탄이 날아 왔을 때에 병사들이 어떻게 대하나 하고 나 역시 약간 근심된 바 있으나 금번 충돌이 생긴 일주일 동안 2백 미터의 거리로 대치한 국군과 소위 인민군과의 대전에 있어 우리 중포는 적에게 큰 타격을 주어 이로 말미암아 약 1개 소대의 적은 該지점에서 퇴각할 일이 있는데 그 때 그 부락민 전부가 우리 쪽으로 넘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노인·부녀자를 같이 한 이들 월남동포들은 모두가 국군을 수호신과 같이 경이하는데 그 태도가 너무나 비굴한 것을 보고 “이북 공비에게 대하듯 그렇게 쩔쩔 맬 필요가 없다”라고까지 타일러 준 일이 있는데 이와 같이 같은 동족으로서 자기 나라 군인을 무서워함을 볼 때 애처러웠으며 그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 주민이 국군에게 대한 신뢰감은 만점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들 공비가 문자 그대로 공비인 소치는 이들은 혹은 농꾼이나 산꾼같이 가장하여 便衣隊유격전을 전개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여자 복장까지 하고 출몰하는 것이니 앞으로 신문보도상 소위 ‘북한군’이니 할 것이 아니라 ‘공비’로서 그들을 호칭할 것이며 적개심을 앙양해야 할 것으로 인정합니다.
안찬수: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제일선 장병의 진충정성이 국군을 빛나게 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위에서 항상 지도에 노력하는 국군 통솔 지휘본부를 대표하여 국군 전반에 걸친 더구나 금번 춘천 사건 등을 포함하여 채총참모장으로부터 말해주기 바랍니다.
채병덕:과거 군정 3년을 통한 경비대 시대 때에는 정책 담당자인 미군 고문과 한인측 지도자와는 그 의도가 근본적으로 달랐으니 그들 미인은 우리를 명실 그대로 경비대에 그치게 하려고 했었고 따라서 사상 교육 등에 있어 불철저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경비대 출발 당초부터 ‘이것은 장차 국군의 모체이다’라는 관념이 철저한 기본 목표를 향하여 노력해 왔었었다.
3년 간에 걸친 불철저한 과도기중에 시달린 국군정신은 자칫하면 국민에게 오해를 산 일도 있었으며 그 포화점이라고 할 것이 여순반란의 애통사였던 것이나 이를 계기로 그 후 숙군을 단행하여 인적 요소를 갖추는 한편, 그동안의 토벌전에서 전투 능력을 함양한 국군은 대한민국 국군으로서 모든 작전 태세를 완비함과 동시에 계속 불순분자를 추방하여 마침내 지리산·제주도 혹은 38선에서 보는 바와 같은 훌륭한 실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는 전번 姜太武·表武源 등과 같이 아직도 색채를 선명히 하지 않는 반역분자도 있어 국민 앞에 미안스러운 일이 생기게 되었으나 근본적으로 금번 월북사건이 여수사건과 다른 점은 즉 여수사건에는 40명 의식적 선동분자의 망발에 부동하여 2,000명의 병사가 이에 추종했지만 춘천·홍천 월북사건에는 병사 가운데서 그것이 모략이라는 것을 자각하였을 때 독자적으로 행동하여 홍천대대 중 일부는 중대장 이하 보무 당당히 원대에 복귀하였으며 실탄도 없이 적에게 저항하고 용감히 전사한 것이다. 현하 미군 철병설 기타 정치적 불안에서 헤매이고 있는 일반 국민이 많음을 볼 때 한심할 일이며 국군은 이들 온갖 국민의 의혹을 풀기 위하여서는 계속 숙군을 단행할 것이다.
안찬수:다음에는 육군작전국장 강문봉대령으로부터 말하기 바랍니다.
강문봉:작년 4월 이래 군은 누차의 토벌전을 계속해 왔으나 10월 반란사건 때에는 전술상으로 말하는 작전까지에는 이루지 못하였으나 準作戰을 해본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항상 국군은 여유있는 작전을 해왔다고 자신한다. 그 이유로는 첫째 인적 구성에 있어 위로 최고 지도부의 인물을 얻은 것을 비롯하여 동료와 밑으로 하사관·병사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
둘째 편성·훈련·장비 등에 있어 당면한 적에게 대하여 충분한 물량적 여유를 가졌으므로 해서 작전에 지장이 없었었다. 한편 그동안 신뢰할 수 있는 동료와 우수한 청년 장교를 많이 잃은 것도 사실이니 제주도 파견군 지휘관이었던 朴珍景대령, 여순평정의 수훈자 白仁基대령, 호남의 명지휘관이었으며 육사 육성의 공로자 魏大善대령 등을 잃었다는 것은 큰 손실이었다. 그러나 그의 유지를 받은 후배가 陸續함을 생각할 때 두.려.울 바 없으며 더구나 금번 국내 소란 작전에서 체험한 바는 누차의 숙군으로써 종래 사상적으로 애매하던 자에 대하여 그 정체를 포착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수확이었고 ‘여순훈련’의 귀중한 경험은 가까운 장래의 돌발사태에 낙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안찬수:육군 여러분의 확고한 소신과 부르짖음은 이로써 충분하였으며 국민의 신뢰감은 두터워질 것입니다. 다음에는 해군을 대표하여 해군총참모장 손원일소장께서 금번 월북 함정사건 내용을 포함한 해군 전반에 亘하여 말해주기 바랍니다.
손원일:우리가 해군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근대식 구성요소를 갖춘 해군일 것인데 우리 해군에는 지금 그 최중요 구성요소인 군함 없는 해군이 있을 따름입니다. 약간의 함정이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水線이 얕고 기뢰구축에 쓰이는 掃海艇 아니면 기뢰부설 등에 쓰이는 施設艦인데 대개가 목조 소형선이며 공격력, 장갑 모두 낙제 이하의 것입니다. 그동안의 활동 경과로는 작년 여순사건 당시 육군의 상륙작전에 호응하여 군대수송 등에 노력한 바 있으며 동해안에 있어서 소위 인민군의 해상으로의 공작대 남하를 방지하기에 목숨을 다하고 있는 한편 왕왕 신문보도상으로는 해군 작전이 없었던 것 같이 알려지고 있으나 기실 육군 작전이 있을 때마다 동원되어 온 것입니다.
해군 창건 이래 실질적으로 적에게 포문을 열어보기는 여순사건 당시인데 개전 초에는 備砲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소총으로써 상식에 벗어난 艦行動 즉 ‘영웅작전’을 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 때 여수지대에 육군을 양륙시키기 위하여 좁은 동해협에 저돌적으로 진입한 수송함대는 산꼭대기에서 노려보는 적에게 수면상에 명확한 표적을 제공한 것 밖에 안되었었는데 대항 무기 즉 소총으로 응전하였으나 전세는 상식적으로 우리에게 불리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타개코자 7척의 소형함정이 적 전면 수역에 분산 進航하여 육탄 또 육탄으로 육상 3백미터 지점까지 접근함으로써 적을 수개 지점에 분산시킴으로 해서 육군의 상륙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類似작전이 해군에게 얼마나 불리하였음인가는 동수역에 진입한 배(艇) 중 어떤 것은 3백여 발의 피탄을 했으며 이에도 굴하지 않은 우리 해군은 패잔 반란군의 근처로의 이동을 방지하기에 갖은 애를 다 썼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비로소 상부로부터의 備砲허가를 받고 그 후 2일 간이란 단시일 내에 造兵廠의 전 능력을 동원하여 대포를 설비하고 육군의 수송 옹호에 협조하였다.
그 밖에 밀수방지란 국가 경제전에 지대한 의의를 갖는 경비에 해당하고 있는데 작년 일년도에만 해도 무려 16억 원이란 다액의 밀수물자를 압수하여 세관에 압송하여 국가 경제 건설에 기여했다.
지금 우리 해군은 그 행동 거리에 있어 치명적 제약을 받고 있어 우리가 요구하는 시간적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애로에 부딪쳐 있으며 함정의 방탄장치가 거의 없으므로 피탄했을 때에는 관통이란 이중적 손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5월 12일 함정월북사건은 우리의 불행사 중 불행사로 국민 앞에 사과하는 바인데 이에 특기할 것은 육군에서 월경했을 때에는 지휘관 없이 일부 귀환도 가능하나 해군은 일단 해상 근무를 하게 되면 배는 좁은 데다 그 구조로 보아 브레이크를 일단 모략분자에게 파악당하고 보면 기관실이나 갑판에 있는 승조원은 그 생살권을 지배당함으로 동요할 기회를 잃게 되는 까닭에 추종할 수밖에 없으며 원래 승조원은 각개 단위로 무기를 휴대하지 않고 일정한 격납처에 비치해 둠으로 반동분자에게 무기격납처를 선제당하면 그만인 것이다. 물론 정신교육의 불철저로 자인하여 방금 그 대책을 강구중이니 앞으로 그런 불상사가 없을 것이다.
해군이 당면한 지급요망사는 무기이다. 현대적 해군의 전략적 무기로는 네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것은 즉 군함·해군기지·항공기·상선대가 그것인 것이다. 첫째, 군함은 하루 이틀에 될 수 없다고 치자. 다음 기지인데 원래 기지라면 방어력이 있어야 함을 전제로 하는데 현재 이것이 시설된 곳은 鎭海 한 곳이다. 그나마 연합군 진주 당시 그들의 방어시설 철거공작에 의하여 거세되었으며 또한 일제 해군도 진해를 군항으로 보다는 要港視 하여 그 전략적 가치에 치중해 온 까닭에 천연적 시설에는 혜택을 입고 있으나 방어 시설이 없음이 약점인 것이다. 항공기는 두 말 할 것 없이 이 점에는 ‘제로’이다. 막상 단 한 대의 초계용 비행기도 없는 것이다. 다음 수송선에 대해서도 현재 해운국에 약간 수를 보유하고 있으나 유사시에 장비 기타 등에 시간적 제약을 받으므로 이 역시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한편 항공기의 필요는 비단 전술적 의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현하 국민경제의 암이 되어 있는 밀수 방지에 있어 정
상적인 항로를 이탈하여 항해하는 수상한 선박을 감시하는 초계비행용에도 절대 필요한 것이니, 가령 이를 이용하여 정확한 정세판단을 할 수 있었다 할진대 밀수방지에 있어 십배·백배의 성과를 보았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한 국민 여론의 협조를 기대한다. 이와 같이 해군의 ‘무기’인 전기 네 가지 중 한 가지 흡족한 것이 없는데다가 인재마저. 육군에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혹은 일본 군대·만주·중국 등 군대에서 실전의 경험이 있는 이가 많지만 우리 해군에는 고작해야 종래 상선 계통에서가 아니면 전혀 무경험자로서 출발하였던 것이다.
안찬수:최근 북한방송 혹은 월남해 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은 그들 ‘북한괴뢰군’은 2개월 내에 부산까지 자신있게 밀고 내.려.온.다는 소위 南伐說을 유포시키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국군은 어떠한 태세로 임하고 있는가 蔡소장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채병덕:소위 남벌설은 작년 10월을 위시하여 금년에는 2월에 온다는 등, 4월에는 틀림없으리라는 것과 같이 일방적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국군의 태세는 완벽하나 군기상 더 언급할 수는 없고 다만 현재까지의 소충돌로써 이것이 본격적인 남벌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저쪽에서 여러 가지 각도를 의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즉 우리는 그들이 만약 본격적 공세를 취하여 올 때 피동에서 주동으로 과연 전세를 달리하여 대할 것인즉 거듭 말하거니와 현하 국내외의 정세에 의하여 군으로서는 아직도 도발행동을 한 일은 없으며 앞으로 그들이 공세를 취하는 그 시기를 포착하여 한숨에 국군은 실지 북한을 접수할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회나 정부나 국민은 일치하여 군사력의 배경이 되는 국민 총역량을 결속해 주기 바란다.
손원일:그 점에 대해서 나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의 국군·해군 실력으로라도 북한측의 해군을 물리치기에는 부족이 없다는 것이다. 명령이 내리면 우리 해군은 유동적 작전선을 따라 언제든지 38이북을 맹공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안찬수:믿음직한 여러분의 기개를 잘 알았습니다. 그러면 장차 실지 회복이 있어 물론 평화적 수단에 의한 남북통일이 전 민족의 염원이겠으나 만약 무력에 의하여서라도 실지를 회복해야 할 시기에 있어 군을 과연 어떠한 작전으로 이에 당할 예정이신지 좀 구체적으로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채병덕:(苦笑를 하면서) 그곳은 절대적 군기밀이니 언급할 수 없습니다. 우리 생각에도 우선 군사행동에 앞서는 것은 정치력입니다. 정치에 관해서는 대통령께서 말할 것이며 그것이 실패했을 때 군을 동원하는 방법론에 관해서는 언급할 수 없으나 백번 승산이 있으니 국민은 안심하기 바란다.
안찬수:그러나 우리로서는 가장 알고 싶은 것이 그 점인데?
채병덕:38선이 터지는 그 날만 두고 보십시오.
정일권:전쟁은 목전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 조직을 전시태세로 편성 못한 것이 유감입니다. 국가예산이나 인적 동원을 지금부터 십분 준비해야 할 것이므로 군·경·민 일체가 지금보다 더 요청되는 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찬수:최근 인방 중국에서 중공군의 제승이 연속 보도되고 있는데 이와 같이 蔣정권의 국민정부를 착착 쳐부수고 진격하는 중공군의 동태가 우리에게 영향하는 바 적지 않다고 보는데 이에 대하여 언급해주기 바랍니다.
손원일:인접 국가가 공산화되고 있음은 우리로서 슬퍼하는 바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비관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 자주적인 태세로 이에 대비하면 문제는 간단한 것이므로 염려 없다고 생각한다.
정일권:의복이 몸에 맞아야 입듯이 중공은 중공, 우리는 우리인 것이다. 중공의 과거역량으로 보아 그 정책에 허다한 무리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그 약점을 포착하여 장차 북한공산배와 불법 합작하는 날이 있으면 우리는 기선을 제압할 심산으로 있는 것입니다.
채병덕:중공군의 승전은 우리에게 좋은 일은 아니나 인접 국가의 동요에 턱없이 흔들림은 5천년 역사와 동양에 있어서 ‘민주보루’를 자부하는 우리가 취할 바 아니며 절대 걱정 없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발칸 반도에 있어 그리스에서도 적색세력이 준동하고 또한 아프카니스탄에서도 그러하나 그 민족적 자주 전통이 있는 곳에서 얼마나 공산주의에 반항하는 저항력이 강한가는 사실이 증명하는 바로 우리 나라도 이와 같은 것이다.
민족국가 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세의 절대적 영향만을 생각하는 자는 의지가 약한 탓이며 대한국민으로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마저 불건전한 것이다. 우리는 끝끝내 동양에 있어서 이 ‘민주보루’를 자부하고 나아가자.
김종오:나는 毛澤東이 화북 전승지구에서 최근 한 연설의 구절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중 “우리는 이제 바탕을 농촌에서 도시로 옮기자”라는 말은 의미심중한 것으로 광범한 영토와 부패한 봉건세력을 역이용함으로써 그들은 군민을 이간시키고 국민정부를 패지에 몰아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저번에 대통령의 남한순시 귀환 감상담 중에 있는 것과 같이 우리는 ‘방공블럭’을 새삼스럽게 결성해야 할 것입니다. 일전에 金日成대학에서 이탈하여 월남한 여학생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 지식층 여러 사람들이 다같이 ‘방공블럭’이 국제적으로 결성될 때 우리의 민족 역량은 무한량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이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채병덕:이 때를 당하여 의타주의에서 벗어나 폭력으로라도 동양의 민주보루를 자부해야 할 기백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이에는 太平洋防衛條約·韓美軍事協定이 절대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의타주의가 아니라 우리 나라가 해야할 정당한 방위 수단이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이들 협정 체결을 주저하는 인사가 국회를 비롯하여 일반국민, 언론인까지도 우리가 주장해도 미국이 응하지 않을 것이라 하여 냉담한 태도로 방관 태세를 취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해하기 곤란하다. 저번 체결된 북대서양조약이 인구 불과 30만 밖에 안되며 국토로 보더라도 우리와 비교가 안되는 소국 룩셈부르크가 선창장이며 주동자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후 벨기에·네덜란드 등 소국이 역시 룩셈부르크와 주동이 되어 그 어마어마한 북대서양방위동맹을 체결했음을 상고할 때 우리는 그보다 수십배 수백배의 국토와 인구를 가지고 있는 우리가 북태평양동맹의 주동이 못된다고 낙담한다면 이는 일로 위축되어 가는 국가 성격을 표시하는 것밖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李대통령이 애써 부르짖고 있는 태평양방위동맹 체결에 적극적인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며 기어코 이를 성취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대주의가 아니고 민주보루를 자부하는 이 마당에서 세계가 민주·공산이란 두 개의 주류로 대립되어 있는 때인 만큼 이를 막아내기 위하여 국민 각계가 이 동맹성립의 추진력이 되어 일대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안찬수:우리 社는 종래도 그러하였거니와 이에 한층 분발하여 그 주지를 국민 앞에 선전할 것을 서약합니다.
채병덕:이 일은 일부 언론·정당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고 국민 전체의 참여로 이루어질 것이며 이 때까지로 말하면 일부 언론의 방관적 논조가 이 동맹 추진의 브레이크가 되었다는 것을 지적코자 합니다.
안찬수:다음은 순서를 처음 화제로 돌리어 금번 10용사의 공훈 등으로 다대한 감명을 받고 있는 국민 일반에게 전사·전상 장병 및 유가족으로부터 하고 싶은 말을 김석원대령께서 말하기를 바랍니다.
김석원:이 문제는 참으로 중대한 것이며 군도 신중 태도로 유감 없기를 기하고 있거니와 특히 전사장병 유가족과 부상자에 대한 위문을 많이 해주기 바라며 그 중 부상으로 불구자가 된 군인에 대하여 갱생의 기회를 주고자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양우정:현재 군사후원단체가 있습니까?
김석원:없습니다.
채병덕:국군은 국민의 군대인 만큼 이것이 내 군대라는 의식이 철저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38선이 있다는 객관적 정세에 현혹되어 국군에 대하여 냉담한 자를 많이 보고 있음은 유감사인 바 38선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더 국군에게 대한 친애감을 두텁게 해 싸워야 할 것이다. 일제 때의 예로만 보더라도 내 군대도 아닌 그들에게 대하여 서로 기차역전 전송을 하느니, 통행인이 경의를 표하는 등 갖은 일을 다 했는데 내 아들 내 친척이 직접 나라를 위하여 싸우고 있는 이 마당에서 국군에 대한 친애감을 더 가져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徵兵制를 왜 실시 않느냐”고도 하나 원래 징병이란 지원병의 성적이 좋아야 원만히 될 수 있는 것으로 지원병에 응모를 잘하지 않는다고 하면 징병제도 실시의 의의는 없어지는 것이다.
김석원:국군은 제주도·지리산·38선 전투에서 처음으로 전사자를 처리하게 되었는데 이번 10용사 같은 이의 후대가 국가적으로 보장된다면 앞으로도 10용사는 계속해서 나오게 될 것이다.
안찬수:그런 각도에서 우리 社는 적극적 필봉으로 협조하겠습니다.
김석원:금번 사건에 있어 개성과 汶山지대의 동포의 열렬한 迎送 풍경은 장병의 사기를 드높인 바 있다. 그러나 지방보다 서울에서는 그 열이 미약하였음을 볼 때 섭섭하였습니다. 앞으로 훈공이 현저한 자에 대한 論功이 뚜렷하여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채병덕:방금 논공훈장 규정 및 도안이 賞勳局에 회부되고 있어 머지 않아 그 실시를 볼 것이다. 그리고 금번 10용사의 유골은 장충단공원 안에 적당한 장소를 택하여 이 달 말일 경에 합장하며 祠堂도 건립할 작정입니다. 또한 내월 초에는 역시 장충단에서 국군전사자 제2회 합동위령제를 거행할 터인데 이에는 앞서 제1회 합동위령제 때 빠진 102명의 영령과 새로 모신 500여 명을 합한 6백여 주의 영령을 위령코 그곳에 안치하여 그곳을 찾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인의 명복을 빌게 하는 한편 국민에게 애국하는 정신을 주입케 할 것입니다.
안찬수:그러나 이것을 널리 국민 앞에 소개하여야 할 책무는 비단 언론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직접 관할하는 군에서 사실이 있는 즉시로 많은 재료를 수집하여 언론계·기타에 배부하여야 할 터인데 이 때까지를 보면 10용사의 공훈 소개도 본사가 솔선한 데 비하여 군의 보도자료 제공이 뒤진 감이 있음을 생각할 때 군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채병덕:그 점 연합신문에 감사하는 한편 책임을 느낍니다.
김석원:책임을 느낍니다.
안찬수:앞으로 수단을 다하여 충훈공로 선전에 본사는 적극 협력할 것을 다시 한 번 서약합니다.
채병덕:미군 철퇴를 계기로 南伐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대한국민이 있다면 그들의 머리는 180도 회전시켜야 할 것이다.
손원일:남벌설을 조금도 우려할 것 없습니다. 우리 실력으로 북한군쯤의 방어에는 문제 없으니 안심하기 바랍니다.
안찬수:약소민족의 비애라고 할까요. 우리에게는 소총탄환 한 개의 제작시설이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북한 공비군은 소총탄환·박격포탄환 등을 평양에서 自手로 만들고 있다는데 국군의 총포탄환은 대개가 미국제인지라 작년 맥아더장군이 李대통령에게 언약한 바와 같이 “한국이 침범당할 때에는 미국은 자기 나라 一州가 침범당하는 것과 동일시하고 원조 운운” 한 바는 있다고 하나 근자에 와서 종래 적극적이던 對중국군 원조가 질량적으로 대폭 저하되듯이 우리 한국도 이와 같이 미국의 관심에서 사라질 우려가 있다고 보는데 이 점 채소장께서…….
채병덕:우리는 확신을 갖고 현 단계에 있어 우리 국군이 동양 제일이라는 것을 자부하고 있고 또 그렇다. 만약 남벌 기세가 보이면 이쪽에서 먼저 압록강까지 쳐밀고 갈 것이다. 우리 국군이 동양 제일이라는 것을 재인식할 때 지프로 두 시간 남짓이면 돌파되는 38선이 문제가 아니라 동양 전체의 민주보루로서 남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태평양동맹과 한미군사협정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김석원:국민 다수는 장차 남벌이 있을 것을 예측코 근심하는 편도 있으나 지금 정예 국군은 38선상에 빈틈없이 배치되었으며 만약 월남할 때에는 상부의 명령 한 마디로 충분히 때려부술 작정이며 장차로도 만주에 공산군이 있을 때에는 국토의 위협을 받을 것이므로 장차 이에 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태평양동맹은 정치이니까 정치로서 해결할 것이며 우리로는 의타심을 버리고 花郞道로 돌아가 獨立獨步로 만사를 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안찬수:물을 것은 많으나 예정을 시간보다 지났으며 여러분의 시간관계상 이만 할까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양우정:귀중한 시간을 타서 귀중한 말을 많이 들어 감사, 이에 더할 바 없습니다. 우리들은 충실히 여러분의 그 자신만만한 임전태세와 충용무쌍한 국군의 전모를 국민 앞에 소개하여 국가 융성의 이바지에 대할까 합니다. 거듭 감사합니다.
출처: DEFENCE KOREA 조은성님.
사진출처: 아 6.25 그때는 자유를 이제는 통일을 네이버 블로그
사진은 국군창설이후때인가.. 미국 장관의 한국방문에서 38선인가에서 영접하는 모습일겁니다. 한국전쟁 1년전 언론인터뷰에서의 한국군 수뇌부의 인식에 대해서 볼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생각되어서 올려봅니다. 보시면.. 북한 인민군에 대한 정보부재가 심각하다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한 편으로는 선견지명을 갖고 있는 모습들도 볼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나오는 연합신문은 YTN 즉 현재의 연합뉴스가 아닙니다.ㅡ_ㅡ; 1949년 1월 22일 양우정 사장이 만들었던 언론입니다.1962년 1월 1일 자진 폐간하였습니다.
한번 전쟁 1년전 우리군 수뇌부가 언론에서 보여준 인식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인터뷰 내용입니다. 인물별로 색깔을 넣어서 제대로 알수 있게 해보았습니다만.. 좀 칼라풀해서 눈이 아프시다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요..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