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프로펠러 공격기A-1스카이레이더 ... 2편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9.11.01 22: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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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군의 스카이레이더는 베트남전부터 소요가 생겼다. 애시당초 미공군은 월남군을 교육시키기 위해 T-28트로이얀을 투입하였다. 당초 월남군교육 목적과는 달리 미군은 파트타임으로 작전에도 참가하였고 격렬한 작전 도중 노후화된 이들 기체에 균열발생으로 미공군은 스카이레이더를 해군으로 부터 도입하였다. 해군은 스카이호크 비행대로 교체중이라 그 잉여분이 제공된 것이다.

이후 미공군이 직접 참전한 65년 이후에는 조종사 구조지원 필요성으로 스카이레이더의 추가 도입이 요구되었고 일부 자체 보유 T-28트로이안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결국 탑재량이나 방어력이 탁월한 해군소유의 스카이레이더가 태국의 특수작전항공단으로 도입되었다. 물론 도중에 대게릴라전기의 중요성을 인지한  미해군이 못 내놓겠다고 "실갱이" 하는통에 한때 공군은 이미 보유한 스카이레이더까지 도로 내주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만큼 대게릴라전기의 보유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사실 정글이나 커다란 수풀로 인해 목표확인이 어려운 베트남의 환경은 고속기체의 근접지원에 제약이 컸다. 실제로 고속기의 오폭사건은 수시로 일어났고 월맹군이나 베트콩은 그점을 십분활용 교전시 접전거리를 줄여 지상공격이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속제트기의 이야기고 스카이레이더의 도입은 이러한 제약을 극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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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 포트 월톤비치 상공을 날고 있는  A-1H(788) Hurlburt Field, Florida, 4407th CCTS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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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리다 비치 상공을 날고 있는  A-1E(132-653) Hurlburt Field, Florida, 4407th CCTS 소속


스카이레이더는 대량 탑재량과 든든한 맷집으로 저공을 체공하며 화력을 퍼붓는 것이다. 천천히 날며 정확하게 퍼붓는 스카이레이더의 위력은 당시 월맹군 문서에 잘나타난다. 미군이 노획한 자료에 의하면 제트기가 오면 접전거리를 줄이라고한 반면, 스카이레이더가 보이면 흩어져서 지면에 밀착해 은폐하라고 하고있다. 그만큼 스카이레이더는 무서운 존재였던 것이다.

물론 단순히 저속으로 날기만 한다면 쉽게 격추될수밖에 없겠지만 스카이레이더는 2차대전방식으로 제작된 까닭에 제트기와 비교해 상당한 장갑을 채용하였고  그결과 웬만한 소총탄에는 격추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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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mm탄에 맞은 스카이레이더 .... 보다시피 구멍은 났으나 무사귀환하였다. 소총탄은 문제가 안되는 것이다. A-1(134-551), 1st SOS 소속, 1972년 3월 18일 Nail 31 SAR 작전중 피탄되어 돌아온 기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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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테일쪽에 맞아서 오른쪽에서 뚫고 들어가  왼쪽 안쪽에서 총알의 흔적이 툭 튀어나온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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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진은 플랩쪽 57mm 맞은 사진, 위와 같은 스카이레이더로 테일쪽에 37mm 플랩쪽에 57mm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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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경 대공포에 맞은 모습... 팔뚝이 들어갈 정도다 일반 제트기면 귀환하기 힘들다. "Warlock 작전시 대공포를 맞고 돌아와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Jim Kelly 파일럿, 해군 A-6과 함게 SAR 임무를 수행하던중 대공포를 맞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수작전대대에 배속되어 위험한 상황의 지상병력지원을 담당하였다. 그들의 임무는 대개 건쉽등을 동원을 동원하기에는 지상병력까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나 굳이 건쉽을 동원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경우에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전쟁초기 아샤우 계곡에서 벌어진 항공지원작전이다.

아샤우 계곡은 101공수사단이 69년 햄버거힐 전투로 유명해진 지역이다. 전쟁 초기만해도 미군은 특수부대 캠프를 두고 있었으나 월맹군의 주요보급루트에 위치한 이 기지를 함락시키기 위해 연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이날의 전투로 기지가 함락되었고 이후 아샤우 계곡은 월맹군의 관할하에 놓였다. 월맹군 소굴이라 미군도 단기정찰 정도만 가능한 지역이었다) .

이날 월맹군 연대의 공격으로 아샤우 특수부대 캠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샤우 계곡은 원래 튜브처럼 생겨서 지원을 나온 기체는 계곡의 양쪽 정상부에서의 대공사격에 노출되도록 되어있었다. 이날의 공중지원에는 공군의 메이어즈 소령과 핏셔 소령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메이어즈 소령의 기체가 대공사격에 피격되어 아샤우 캠프의  활주로에 불시착 하였다. 메이어즈 소령은 캠프에 난입한 월맹군을 피해 즉시 기체를 이탈하였다. 순간 핏셔소령은 지금 구출하지 않으면 메이어즈를 다시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과감한 시도를 하였다. 박격포탄이 떨어지는 아샤우캠프의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한 것이다. 핏셔가 착륙하자 믿겨지지 않는듯 쳐다보고 있던 메이어즈가 핏셔의 기체로 달렸고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우여곡절끝에 메이어즈는 핏셔의 기체에 탑승할수 있었고 둘은 포화를 뚫고 이륙 탈출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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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샤우 캠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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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그란 원 부분이 메이어즈의 불시착한 기체이다. 이미 근처는 포격 흔적이 만연하다.

이날의 용기로 핏셔 소령은 명예훈장을 받았다.

이 외에도 스카이레이더는 미군의 라오스 비밀작전에서는 정찰팀의 탈출시 엄호사격을 담당하기도 했고 조종사 구출작전에서는  적 대공망 제압임무를 담당하였다.
특히 구조작전에서는 적들이 트랩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장시간 해당지역을 날며 적 대공망을 자극해서 사격을 유도하는 위험한 임무를 맡기도 했다. 이는 구조작전의 핵심적인 임무로 구출작전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종전 무렵으로 갈수록 노련해진 월맹군은 웬만해서는  사격을 유도하는 스카이레이더의 비행에 속지 않았다. 실제로 "배트21구출작전"으로 유명한 햄블턴 중령 구출작전의 경우 스카이레이더가 유도비행을 2시간 가량했음에도 월맹군 사수는 끝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에 구출작전에 나선 헬기를 격추시켜 전원전사 시키기도 했다. 그런 만큼 스카이레이더의 역할은 매우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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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작전 출격적인 스카이레이더.... 구출작전에서는 "샌디"라는 콜사인을 사용한다. (602nd SOS - NKP/DaNang - 197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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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작전 출격적인 스카이레이더 (40th AARS Combat Resc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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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출된 조종사와 함께... BOXER22라는 콜사인의 팬텀기 조종사들이 구출팀의 스카이레이더 조종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에서 1, 3번째가 구출된 팬텀기 조종사다.


= 아샤우 캠프 구출 보충자료 =
66년 3월9일에서 10일상에 벌어진 아샤우 캠프 함락사건 당시의 사진자료입니다.
정확히는 피셔소령이 의회명예훈장을 받은 사건이 벌어진 10일과 관련된 것이라 할수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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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레이쿠 기지로 귀환후 촬영한 사진..... 앞서도 언급했지만 오른쪽의 메이어즈가 추락한 당시 이미 월맹군이 외곽진지의 와이어를 돌파한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구하지 않으면 포로가 되거나 사살될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구조헬기는 30분 도착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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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의 기록화... 메이어즈의 뒤는 모습에서 볼수 있듯이 당시 기체는 복좌형 스카이레이더였다.
초기 도입 기체의 경우 복좌기가 많았으나 대량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단좌기들도 많이 보인다.  가운데 초상화의 주인공이 피셔소령으로 보시다시피 의회명예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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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셔소령의 명예훈장 수상기체...  베트남전 최초의 명예훈장 수상기체다. 작전 당시는 카모플라주가 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이후 재도색되었다. 이기체는 그후 한동안 사용되었으나 추락사고로 2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하였다. 이후 여러번의 수리와 재취역을 거듭한후 박물관에 기증되어 오늘날도 보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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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락사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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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어즈의 사진 


이후의 스카이레이더의 이야기.... 

베트남전의 처음부터 종전시 까지 함께하게된 스카이레이더는 베트남화계획에 의하여 미군 보유량의 대부분이 월남공군으로 이전되었으며 72년 라인베커 작전무렵부터 취역하기 시작한 동급 차기 작전기인 A-7D로 서서히 대체되었다  (원래 해군기였으나 그 유용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공군이 개수를 통해 D형을 도입하였다. 스카이호크를 있는 경공격기 모델로 스카이레이더가 종래 수행하던 구조작전의 지상공격에 적합하게 발칸과 로켓을 운용가능한 기체였다) 

그리하여 라인배커 기간에는 스카이레이더와 A-7D코르세어가 잠시지만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후 73년 미군의 완전한 철수로 미군의 잔여 기체 대부분이 넘겨졌고 이들 스카이레이더가 주력이 되어 월남 패망시까지 2년간 공군작전을 담당하였다. 

베트남의 패망이 명백해지자 상당수 기체들은 인근 태국으로 도주하였고 항복을 거부한 월남군 스카이레이더 2기와 AC-119건쉽1기가 수도 사이공 상공에서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월맹군 미사일에 전원격추됨으로서 베트남에서의 스카이레이더 활약사는 막을 내린다.

미공군은 이후 A-7D코르세어를 스카이레이더가 맡았던 경공격과 구출작전 지원에 사용하였고 심지어 대 방공작전에도 투입하였다. 이들 코르세어는 91년 걸프전을 기점으로 항모 축소 항공기 단일화 계획에 의하여 퇴역하고 F-18호넷으로 대체되었다.

 

 

 

 

 

 

제 공 : 미군공격기 50년사 세계최신예기 9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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