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통일로 인한 가상 시나리오

한두살머근애 작성일 10.01.15 12: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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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도약!2010]

"느닷없이 찾아온 統一韓國"

"살인적 실업률·배타적 감정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10)'통일한국' 대비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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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통일 시나리오
2013년 어느 날.군부대 시찰을 마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망한다. 한국 정부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 세계 언론은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과 향후 권력구도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다. 세계의 시선은 한반도로 향했다.

김 위원장은 2008년 처음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셋째 아들 정은을 후계자로 낙점,권력 승계작업을 진행했다. '강성대국'원년을 선포한 2012년 노동당대회를 통해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후계체제가 확고히 자리잡기 전에 김 위원장이 세상을 뜨면서 북한 체제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절대 권력자인 김정일의 퇴장은 북한 체제에 균열을 몰고 왔다. 20년 가까이 후계자 수업을 받았던 김 위원장과 달리 김정은에게는 권력 기반을 구축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에 의해 최고 지도자로 옹립됐지만 상징적인 1인자에 가까웠다. 정치나 정무 경험이 일천했던 김정은의 입지는 불안하기만 했다. 오히려 후견인인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원이 최고 실세로 부상하고 있었다.

김정은은 불안한 권력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사상 통제와 체제 단속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대외적으로는 핵무장 노선을 고수하는 등 초강경 태도를 취했다. 국제사회의 압박은 거세졌다.

2009년 기습적으로 단행한 화폐 개혁으로 큰 충격을 받았던 경제도 더욱 피폐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북한 파워엘리트 내부에서 분열 양상이 나타났다. 권력승계 과정에서 김정은의 눈 밖에 난 당 고위 간부와 군부세력들이 은밀하게 세력을 결집했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난 이복형 김정남과 친형인 김정철의 측근들도 혼란을 틈타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국방위원회,당 중앙군사위원회,인민무력부 등 '핵심 군부'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일부 야전 군단장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북한 주민들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갖가지 대민 선전 · 선동에도 불구하고 빈사 지경에 빠진 북한 주민들은 3대째 이어지는 세습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과 약탈,방화 사태가 일어나고 김정은을 비난하는 낙서와 벽보가 나붙었다.

노동당 대회가 열린 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새벽,평양 인근은 자욱한 포연과 요란스런 총성에 휩싸였다. 반(反) 김정은 세력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기계화 군단 등을 앞세워 평양으로 전격 진입한 것.북한 지도부와 핵심 군부세력은 즉각 반격에 나섰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휴전선에 배치된 전연부대에서도 전투가 발생하는 등 북한 전 지역에서 유혈충돌이 일어났다.

배고픔과 불안을 이기지 못한 주민들은 경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대거 중국 국경을 넘었다. 중국은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북한 국경 지대에 인민 해방군을 전진 배치했지만 몰려드는 난민을 모두 막아내긴 역부족이었다. 일부 휴전선 경비도 무력화되면서 주민은 물론 일부 북한 군부대가 월남하기 위해 집단 탈영하기도 했다.

북한이 군부 간 무력충돌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주민 보호와 동북아 안보를 내세워 평화유지군(PKO) 파병을 결정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유엔사령관의 지휘하에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가 공동 파병을 결정했다. 반란군이 시간이 갈수록 세를 불리면서 내전을 자체 종결할 힘이 없다고 판단한 김정은 세력은 울며 겨자먹기로 유엔의 중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유엔은 즉각 북한 정부와 반군 정부를 정전 협상 테이블에 앉혔고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북한 내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중국 러시아 국경과 휴전선을 통한 북한 주민들의 이탈은 계속됐다. 국경 지역에는 대규모 난민촌이 형성됐다.

유엔은 현 상태로는 동북아 평화 유지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남북한 통합 문제를 본격 논의하기 시작한다. 미국이 유엔 감시하의 남북통합을 주장하자 중국이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중국으로선 한국이 주도하는 흡수통일로 북한 체제가 사라지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중국은 주한미군 철수를 한반도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중국과 미국은 여러 차례 협상 끝에 미군을 남한 지역에만 주둔시키고 대만과의 통일 문제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조건으로 합의를 이뤄낸다. 한국 정부는 국가연합 형태를 거친 단계적 통일을 주장했으나 북한 주민들은 하루라도 빨리 남한 주민과 같은 대우를 받으려 했다. 결국 북한은 유엔 관리하에서 남북통합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가 실시됐고,결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나타났다. 통일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왔다.

한반도의 허리를 동여맸던 철조망이 사라지고 남북이 통일합의서에 서명하던 그날,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성을 울렸다.

그러나 북한의 개방과 시장경제 체제 전환을 유도해 점진적인 통일을 모색해 왔던 한국은 갑작스러운 통일에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통일기금은 마련돼 있지 않았고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을 흡수할 정도로 충분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민 한 명이 짊어진 통일비용은 독일 통일 때 서독 국민 한 명이 감당해야 했던 것보다 3배나 많았다.

통일정부는 세금 인상과 재정지출 삭감을 통해 막대한 통일재원을 마련하는 데 나섰다. 통일된 지 5년여가 지나자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정은 파탄지경에 처했다. 경제성장률도 해마다 떨어졌다. 남북한 경제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북한의 산업시설에 투입됐지만 이미 세계 최대의 제조업 기지로 발돋움한 중국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북한 주민들조차 한국이나 중국산 제품을 선호했다. 북한 내 제조업 가동률이 현격하게 떨어지면서 실업률은 30%를 웃돌았다. 살인적인 실업률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북한 주민들은 남쪽으로 대거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 동남아 등 외국인 노동자에 비해 숙련도가 낮았다. 당의 결정에 복종하고 의존하는 데 익숙해 있던 북한 근로자들은 한국 사회에 금세 적응하지도 못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지역은 수적 우세를 앞세운 북한 노동자들이 점령했고,크고 작은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공원이나 지하철역 등지에는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북한 주민들이 즐비했다. 반면 한국의 투기꾼들은 북한으로 대거 몰려가 땅투기에 열을 올렸다.

DMZ 등 때묻지 않은 북한의 자연을 활용한 관광단지 개발 등의 프로젝트들이 줄을 잇자 달러와 위안화를 한 뭉치씩 들고 북으로 향했다. 한국전쟁 이전 부동산 소유권을 주장하는 소송도 줄을 이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북한 여성들은 술집 등을 전전했다. 서울 강남 유흥가에는 '북한 아가씨 대기 중'이라는 문구가 붙은 술집이 성업 중이었다.

통일 정부는 북한 이주민들을 위한 임대주택과 소형주택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주택단지가 들어설 지역 주민들이 정부청사로 몰려가 반대시위를 벌이는 사태가 속출했다. 술집에서 남북한 출신끼리 시비가 붙어 싸움을 벌이는 사례도 빈번했다.

독일 통일 후 동서독 주민들이 서로를 '오씨(Ossi · 게으른 동독놈)','베씨(Wessi · 잘난 체 하는 서독놈)'로 비하해 부르던 모습이 그대로 재연됐다. 반세기 넘게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온 남북한 주민들은 서로를 이방인 취급했다. 영 · 호남보다 훨씬 지독하고 고약한 지역감정이 온나라를 뒤덮었다. 차라리 옛날이 나았다는 자조 섞인 푸념들도 일상화됐다. 통일 한국은 여전히 분단된 상태였다. 과거를 단절하지 못했고,그렇다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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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나리오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안 된 채 갑작스런 통일을 맞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경기개발연구원 등 국내외 기관의 통일 시나리오,소설 '국가의 사생활'(이응준 저) 등을 참고했으며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유호열 고려대 교수,조동호 이화여대 교수,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 대북 문제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작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한국경제 사이트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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