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남기훈 상사의 남겨진 아들..그리고..

해이닉 작성일 10.04.05 22: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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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였다. 천안함 침몰 사고로 남편과 아버지를 졸지에 잃어버린 고 남기훈(36) 상사의 가족에게는 말이다. 이들은 밥을 조금 먹었고, 학교에 갔으며,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보살폈다. 그러나 아버지의 흔적을 지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남 상사의 두 아들은 5일 아침 학교로 향했다. 실종자의 자녀 중 유일하게 매일 등교한 아이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한 다음날에도 여느 때처럼 책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모두 카키색 바지와 청재킷을 입은 재민(12)이와 재현(10)이는 오전 8시10분쯤 경기도 평택 포승읍 해군아파트 입구에서 승합차를 타고 원정초등학교로 떠났다. 시무룩하거나 무표정한 얼굴에는 초등학생다운 장난기가 메말라 있었다.

아이들의 외할머니 이모(61)씨는 오전 7시15분쯤 음식물을 버리러 쓰레기장으로 걸어갔다. 이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먹다 남은 밥과 갈치 김치, 찌개국물을 버렸다. “안산에서 꽃게를 사왔는데 제대로 못 먹었어. 내가 죽으면 어떡할 거야. 나라도 당분간 있어야지.”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교장의 조례 훈시를 들었다. 전교생 617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박귀옥(58·여) 교장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남 상사의 시신이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 안치된 다음날이었기에 매주 월요일 하는 훈시였지만 오늘만은 쉽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묵념을 해야 할까. 아버지를 잃은 아이를 위로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리 학교 어린이들은 아픔을 나누는 어린이들이 돼야 합니다. 친구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따뜻하게 보듬어줘야 합니다. 알겠지요?”

이 학교는 전교생의 76%인 470명이 해군 장병의 자녀들이다. 아이들은 옆집 아저씨를 ‘삼촌’으로, 옆집 아줌마를 ‘이모’로 부를 만큼 친밀하다. 해군 장병의 자녀들답게 인사를 할 때도 꼭 두 손을 배에 가지런히 모은 채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남 상사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옆집 삼촌’의 죽음을 받아들인 아이들은 어떤 날보다 조용하고, 엄숙하게 조례를 마쳤다.

박 교장과 백성욱(52) 교감, 교무부장은 조례가 끝나자마자 오전 9시쯤 남 상사의 집으로 향했다.자택에는 아이들의 어머니 지영신(33)씨와 외할머니 이씨,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있는 막내 재준(3)이가 있었다. 어색하고 짧은, 하지만 터널처럼 긴 침묵이 흘렀다.

TV에서 남 상사의 얼굴이 나오자 막내가 침묵을 깼다. “아빠다, 아빠다!” 재준이가 텔레비전에 손을 대며 어른들을 쳐다봤다. 아버지의 죽음을 모르는 재준이만은 어른들을 향해 웃고 있었다. 어른들은 어린 재준이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씨가 막내를 등에 업고 밖으로 나갔다. “아빠 보러 가자.”

엄마는 막내아들이 혹시라도 또 TV를 볼까 봐 평소 다니는 놀이방에 데려다 줬다. 지씨는 10여년간 친하게 지낸 주민 A씨에게 말을 걸었다. “애들한테는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한 몸을 바친 거니까 존경해야 한다. 너네들도 아빠 없다고 어디 가서 기죽어선 안 된다’고 이야기했어. 애들 돌볼 때는 괜찮은데, 애들이 눈에 안 보이면 눈물이 쏟아져. 애들이 없으면 남편이 진짜 갔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드는데… 아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A씨는 애써 밝은 표정으로 지씨를 위로했다. “곧 괜찮아질 거야. 살 사람은 살게 돼 있잖아. 여자보다 강한 게 엄마잖아. 우리 힘내자. 나 좀 있으면 남편이 발령난 곳으로 이사가는데 너 보러 꼭 자주 올게.”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지씨는 입술마저 새파랬다. 마치 울음을 참는 듯 오른손으로 입을 가린 지씨는 A씨와 대화를 끝내고 고개를 떨군 채 아파트 안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지씨는 박 교장과 대화를 이어갔다. “아직 장례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실종자 가족과 함께 있는 것보다 학교에 가면 더 빨리 상처를 극복할 것 같아서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선생님도 힘드실 텐데 죄송해요.” “아닙니다. 마땅히 학교가 애를 돌봐야죠. 잘하셨어요. 잘하신 거예요.”

박 교장 일행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때마침 계단에 있는 재민이가 보였다. 박 교장이 재민이를 불렀다. 재민이가 다가왔다. “괜찮은 거야?”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야지?” 재민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임교사 최종욱(33)씨는 검은색 양복에 검은색 넥타이를 하고 나왔다. 1교시 컴퓨터를 시작해 국어 수학 사회 수업을 하는 내내 최 교사는 혹시 재민이가 눈물을 글썽이지 않는지 신경이 쓰여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윽고 점심시간. 배식이 시작됐다. 수수밥, 오징어국, 난자완스, 김치, 마른 새우볶음이 나왔다. 최 교사는 재민이 옆에 꼭 붙어 앉았다. “재민이 난자완스 좋아하지? 선생님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 더 먹어.” 최 교사는 재민이에게 난자완스를 덜어 주었다. “너 야채 안 좋아하잖아. 새우볶음도 별로야? 그럼 새우는 딱 한개만 먹고.” 최 교사는 밥 한 숟가락을 먹고, 재민이를 쳐다보고, 반찬을 집다 아이에게 말을 걸고, 그렇게 식사를 마쳤다.

밥을 다 먹은 재민이는 잠시 웃으며 친구들과 공차기를 시작했다. 공을 쫓아가다 넘어지자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다시 일어선 재민이는 10여분간 놀다 교실로 돌아왔다. 5교시를 앞두고 아이들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서로 밀치며 장난을 쳤다. 맨 마지막에 앉은 재민이는 또다시 웃음을 잃었다. 즐거운 아이들에 둘러싸인 재민이는 마치 작고 외로운 섬 같았다. 한 여학생이 재민이에게 다가와 책상 귀퉁이에 사탕 두개를 살짝 놓고 지나갔다. 최 교사는 “아이들에게도 ‘너무 티를 내지 말고, 재민이에게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주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책상에 놓인 사탕 두 개를 받은 아이는 입술을 꼭 다물었다. 전날 남 상사의 얼굴을 찍은 자신의 휴대전화 사진을 보며 “아빠가 보고 싶다”며 엉엉 울었던 재민이였다. 그러나 사탕 두 개의 위로를 받은 아이는 슬픔을 잊으려는 듯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한편의 소설을읽는 듯한 감정이 이입되네요,

아들들이 기죽지 말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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