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입대했다.
별 느낌 없었다. 주서듣기론 겨울 에 가는게 여름보단 낫더라 그정도뿐 아무 느낌 없었다.
여친하고도 헤어진 상태였다.
의정부 306 보충대로 갔는데 주변사람들이 춘천 102로 많이가서 나도 글로 갈줄 알았다.
의정부는 몇번 와보긴 했었다.터미널이 참 후졌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 기간병이라고 하나? 선봉!!이란 경례구호를 썼던거 같다.여기 밥맛은 죽을때까지 못 잊을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관악부 활동을 해서 특기병 지원했으나 첨보는 악보를 주며 불어보라 했는데 못불어서
바로 탈락했다. 입대날 바로 이브날이라 종교활동가서 초코파일 먹었다.교회만 할줄 알았는데 절에서도 행사 있었다.
입대첫날 초코파이맛은 그닥이였다. 이곳서 1주일정도있었다. 보급품 받고 사단 신교대 배치를 기다렸다.
동기들 상당수 같이 배치되었다.
나는 25사 신교대로 가게 되었다. 이곳의 풍경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경기도라 그런지 주변은 거의 평지였다.6주간 훈련을 받았다.
안경이 망가져 매훈련마다 고생이 많았다.지금도 기억나는건 훈련소 첫날부터 난 전역 디데이를 체크하는
미친짓을 했다. 수양록에다가.. 그후 자대가서 분대장이 수양록을 검사를 했다.관례라고 생각했다.
자살방지라던가..뭐등등때문이였을것이다.나의 전역 디데이 체크한 것을 보고 3달간은 갈굼당했다.
중대로 소문이 퍼져나갔으니까.중대내에선 덕분에 유명해졌다.
훈련은 뭐 그저그랬다.기억에 남는건 크레모아 격발 시범이였다.
빛이 소리보다 빠르다....암튼 그걸 눈귀로 확이했으니까..6주는 꽤 길었다.
기나긴 훈련소 마친후 자대로 가게 되었다.파주시 파평산 근처였다.자대는총 세번 옮겨졌다.
페바-지오피-페바 후 전역했으니..전부 파평산 주변이였다.
자대 배치후 우연히 사격을 나가게 되었다.근데 웃긴건 선임들이 가기 싫어해서 내가 가게 되었는데 한 2주고참이랑 갔나? 했다 바로 이놈 사격이었다 펜저 파우스트 3..밑에 격발기가 부리가 된다.무반동총이였는데 자대가자마자 신기한 경험..
암튼 이때 한번 쏴본거로 인하여 당시 kbs청춘 신고합니다란 프로그램 1회가 우리 부대였는데 내가 가서 저 화기 집중 교육을 하는 웃긴 일도 있었다. 단지 한번 쏴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그리고 "로우"였나? 그것도 했다.
자대 생활은 힘들었다 매일 갈굼당하고 긴장의 연속이고 눈깔구 다니다 제일 무서운게 고참들의 활동화 모습이였다.
한창때는 고참들의 활동화도 기억을 했다..이름들이 써져있으니까.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다 조은 기억이다. 그러다가도 선임들이 건내주던 담배 한대의 맛은 지금 피는 담배 맛??? 비교불가.
2월에 자대를 갔다.점오때 귀돌이를 선임 누군가가 챙겨줬다. 정말 따뜻했다.
식사집합후 취사장 갈때 당시 장갑이 없어 식판이 정말 손에 달라붙을거 같았다.
경험있는사람은 알거다 한겨울에 맨손으로 식판 잡을때의 그 느낌..ㄷㄷㄷ
1년간 지오피 생활을 했다.사진의 장소는 실제 내가 근무한 곳이다.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나중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 하난는 정말 잘간다라는것..
작업 도중 웃긴 일화가 있다.불모지 작업웅이였는데 한창 여름이였구 사회 얘길 하며 노가리 깔대였다.
선임 하나가 나와 내바로 위 고참에게 "야 지금 학생들은 방학이겠지?" 언제까지 하냐?라는 질문을 했는데..
당연히 8월 중순까지라도 누구라도 대답할 것이다.근데 내 바로 윗고참의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였다.
"네 고3때까지 합니다"...당시 듣던 모든 소대원들은 미친듯이 웃었다 .나는 짬이 안될뿐더러 그사람도 내 윗 고참이라
웃음을 참을 수밖에...
나는 자대가자마자 유탄수 보직을 받았다.k-2에 통하나 단다고 해서 그렇게 무거울줄 몰랐다.
후에는 기관총사수 말년에야 k-2들고 다닐수 있었다. 자대처음 갈때 총기피탈 방지끈이란게 있었다.
총기분실을 막기 위해서였나?당시 총기분실 사고가 많았다 지오피 갔다온후로는 사라져버린 유행이였다.
기관총 부사수시절 예비총열 챙기는 건 정말 귀찮았다.
몸이 아프니까 군시절 생각이 많이 나네요.
생각나면 또 쓰겠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