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공비 6명이 먹었던 밥그릇
[위] 적들의 시체모습
1996년 9월 18일,
강릉으로 침투했던 북한 특수부대는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 22전대 대원들로 당시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
이들에게는 흰쌀 정량과 보약을 지급, 기지 안에 인민학교 및 고등 중학교를 설치,
승조원 가족 중에 교원을 선발 배치 하는 등,
자녀들의 외부 접촉도 차단했을 정도로 신원보호에 만전을 기했던 북한의 최정예 부대였습니다.
(김정일이 친히 방문하여 1명과 1개사단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함)
( 무장공비 생존자 이광수 증언 )
그당시 북한 무장공비는 북한군이 흔히 사용하는 AK소총이 아닌 총번없는 M-16소총을 들고 남하했습니다.
잠수함이 좌초되어 정체가 탄로나자 잠수함에 있는 승무원 10명 정도를 쏴죽이고
특수부대원들끼리 도망을 치기 시작했었는데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물경 몇만명의 병력들이 북한 특수부대를 포위하기 위해 산을 이잡듯이 뒤졌는데 그사이로 교묘히 빠져나갔습니다.
아직 포위망이 구축되지 않은 산지에 이등병이싸리나무를 구하러갔다가 돌아오지 않아서 가보니까
철사로 목이 감겨 죽어있어서 비상이 걸린적도 있었죠.
강원도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특전사가 투입되었는데
첫 전사자는 이병희 중사로(전사 후 일계급 특진) 레펠 강하 후 전방 약 20m 전방에서
수색 중이던 이병희 중사를 정찰대원이 저격하여 전사하였습니다.
이병희 상사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재대일이 지났음에도
장기복무를 신청하여 복무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위를 더 안타깝게 했습니다.
(레펠 중 헤드샷은 오보입니다.)
고 이병희 상사는 당시 소속부대에서 통신부사관이었고,
당시 투입되었던 북한의 무장공비들은 아군의 지휘관과(어깨의 파란견장), 통신병을 1차 주요 표적으로 교육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장공비들은 남한 국방군을 만나면 노란색을 보고 쏘라고 지시받았습니다.( 생존자 이광수 증언 )
헬멧의 노란색을 쏘면 머리 정중앙을 쏘게 되고 가슴의 계급장을 쏘게 되면 정확히 심장을 명중시키게 되었기 때문이죠.
( 그 후로 계급장 로우비지 색으로 교체)
당시 이병희 상사의 시신을 검사하던 중 머리를 관통당하면서도
탄창 5발을 발사한것이 확인되어 주위에서 ' 역시 특전사 ' 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특전사는 총 6명의 공비를 사살했는데 그 중 2명을 사살한 장선용 원사님은 현재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작전당시 특종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멍청한 방송사들이 조명과 카메라를 켜는 바람에
위치가 노출되어 공비 수색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때당시 친북단체 한총련은 " 북한 잠수함이 표류한 것이다 " 라는 발표를 하기도 해 질타를 받았습니다.
( 표류했다는 놈들이 버섯따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총으로 쏴죽이나? )
그리고 마지막 한명의 북한 공비가
휴전선 근처에 떨어진 팔 하나만 남겨두고
실종되는 바람에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수만명의 인(人)이 장벽을 뚫고 살아돌아간것으로 추측됩니다.
피해 - 사망18명(군인:12·예비군:1·경찰:1·민간인:4), 부상2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