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위험에 빠트린 사건 TOP 5.

개세랴뇨 작성일 14.01.08 12: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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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심각한 사안이었음. 번호는 위험도와 무관함.

 

 1. 1983년 소련 미사일 경보 오류.

 모스크바 인근의 세르푸쇼프-15 벙커는 소련의 조기경보위성 '오코'의 관제소가 있는 벙커였다. 1983년 9월 26일, 이 벙커의 당직사관이었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의 임무는 위성의 활동을 관측하고 핵공격을 당할 조짐이 보이면 상급자들에게 보고하는 것. 만약 핵공격을 당한다 판단되면 상호확증파괴를 위해 전면 핵보복을 한다는게 소련의 방침이었다.

 자정이 좀 지나고, 한 기의 핵미사일이 소련으로 날아오고 있다는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3주 전 대한항공의 여객기가 소련에 격추당한 일이 있었고, 거기에다 그 여객기에는 미국 상원의원까지 타고있다 사망했기에 미소간의 관계는 최악이던 시절.

 하지만 최근들어 정찰위성과 연결된 시스템이 오작동이 심했고, 레이더 수준이 수평선 너머 감지하기에는 성능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며, 핵공격이 고작 한 발의 미사일로 시작될거라 생각하지 않은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는 오류로 판단하고 상급자에게 알리지 않고 경보를 해제. 잠시 후, 4기의 미사일이 추가로 감지됐다. 하지만 이 역시 오류로 판단하고 경보 해제. 경보를 해제한 사유를 뒷받침할 제대로 된 근거는 위의 사유 외에는 하나도 없었다.

 결국 미사일은, 위성과 구름이 만들어낸 빛의 산란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페트로프가 옳았던 것. 한낱 우연일 뿐인데 지구가 날아갈 위기라니 으어어...

 하지만 상급자들은 왜 선빵을 안 갈겼냐며 페트로프를 매우 질타했고, 그의 이러한 영웅적 행적은 없던 취급을 당했다가 1990년대가 되어서야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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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사진. 잘생겼네.

 

 

 

 

 

 2. 쿠바 미사일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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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네디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가 '소련이 앞서나가는 미사일 전력을 따라잡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앞서있었다는게 함정. ICBM만 해도 미국은 몇십 기, 소련은 4기. 미사일 방어능력도 미국이 앞서있었다. 케네디가 비둘기파임에도 이러한 매파스러운 행보를 보인 이유는 소련 서기장이었던 흐루쇼프가 '우리는 미사일을 소시지처럼 줄줄이 만들어낸다'며 이야기하고 다녔기 때문. 동독에서 만드나, 왠 소시지.

 이러한 미국의 미사일 양산에 대응할 방안을 찾던 흐루쇼프는 1962년 5월,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기로 한다. 소련에서 직접 발사하여 미국을 노릴 수 있는 ICBM의 수는 고작 20기 남짓이었고, 이마저도 제대로 명중할 지 의심되는 상황이었으나, 쿠바에서 미국까지 닿을 수 있는 중거리미사일만은 성능이 딸리긴 해도 수가 많았기 때문. 추가로, 배치에 성공한다면 이후에 미국이 알아차리더라도 '서베를린의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며 서베를린을 화제의 중심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메리트도 있었다.

 흐루쇼프는 배치를 결심하고, 카스트로와 접촉한다. 카스트로는 피그스 만 침공과 경제 제재 등으로 인해 미국을 경계했고, 소련의 핵전력우위와 쿠바의 군사적 보호 획득이라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협상 성공. 비밀리에 미사일 관련 부품, 미사일 전문가, 호위 병력 등등이 쿠바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흐루쇼프가 이렇게 미국 코앞에서 막장행각을 벌인 이유에는 피그스 만 침공 때 케네디가 적극적인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을 보아 비둘기파임을 파악하고, 이번 미사일 배치에도 충돌을 피하고 협상을 할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사일 배치는 10월까지 진행되었다. 미국도 운반되는 화물이 소련이 보장했듯이 '무역화물'이라고는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지만, 미국은 방어용 병기로만 생각했지 코 앞에서 핵미사일 배치같은 막장행각을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 와중에 커티스 르 메이는 핵공격을 주장하는 비범함. 정찰기인 U-2를 보내지 못한 것도 이런 정보부재에 한 몫 했는데, 8월 30일 소련 동부 사할린 섬 위에서 U-2가 비밀리에 정찰을 하다 격추되어 소련에게 엄청한 항의를 받았기 때문. 거기다 9월 7일에는 중국 서부에서는 CIA가 운용하던 정찰기가 또 격추되어서 이 이상 정찰기를 보냈다가는 외교전에서 불리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미국은 정찰기의 한계를 깨닫고 천조국스럽게 코로나 정찰위성을 쏘아올렸고, 해군도 정찰에 가담한다. 이 둘은 쿠바에 들어오는 화물이 단순한 방어용 무기치고는 뭔가 이상하다는 정보를 보내왔고, 미국은 확신을 가지고 U-2를 다시 보낸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미사일 기지 건설현장 사진 928장.?

 밝혀진 미사일의 정체는 충격이었다. 쿠바에서 발사된 미사일들은 미 본토와 알래스카 대부분을 타격할 수 있었다. 작정하면 소련이 선제타격으로 미국의 주요도시를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 미 수뇌부는 난리가 났다. 국가안보회의가 소집되고 대응책이 6가지가 나온 상황. 대인배질무시, 외교전을 통한 압력, 쿠바에 경고, 미사일 반입 봉쇄, 르메이가 좋아하는 미사일 기지 폭격, 쿠바를 공격한다전면적 침공.

 수뇌부 대부분은 전면적 침공을 주장했다. 소련은 쿠바를 공격해도 그냥 지켜보고 있을거라는 것. 하지만 쿠바를 공격하면 소련이 서베를린을 가만둘 리가 없었고, 이는 미국이 서유럽에서의 이미지가 대폭 깎일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결국 직접적인 봉쇄를 하기로 결정.

 미국은 쿠바에 접근하는 선박은 국적과 화물종류를 불문하고 공격을 할 것임을 경고함과 동시에,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면 이탈리아와 터키의 미사일을 철수하는 교환을 제안. 소련은 처음에는 경고를 무시하며 강행하려 했지만, 미국이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규모로 전쟁준비를 하자 결국에는 쫄아서 협상에 응한다.

 이로써 미사일 위기는 끝이 나고, 이러한 위기가 또 일어났을 때에 대비해 워싱턴-모스크바 핫 라인 개설이 된다. 그리고 흐루쇼프는 일을 저지른데에 대한 댓가로 지지기반이 약화되어 2년 후 실각. 

 

 

 

 

 3. 노르웨이 로켓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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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노르웨이와 미국의 과학자들이 만든 Black Brant 로켓이 노르웨이 북서부에서 발사되었다. 이 로켓은 군사용이 아닌 오로라 관측을 위한 순수한 과학용이었으나, 문제는 속도나 비행 형태가 Trident SLBM과 흡사했다는게 문제였다.

 소련 붕괴 후 4년이 지나 냉전이 끝난 상태였지만, 러시아는 레이더에 이러한 미사일(사실은 로켓이지만.)이 잡히자 초긴장 상태였다. 발사지역에서 러시아까지 미사일이 도달하는데는 고작 10분이기 때문.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은 비장의 카드인 핵가방을 꺼내어 핵미사일의 자동발사를 허가했고, 러시아의 잠수함은 핵발사를 허가받고 보복을 할 준비를 했다.

 다행히 로켓은 러시아 상공을 벗어나 발사 24분 후 목표지점에 떨어졌다. 사실 과학자들은 실험에 관계될 30개국에게 실험사실을 통보했으나, 레이더 담당자들에게는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망할 관료주의 뻐큐머겅.

 

 

 

 

 

 4. Able Archer 83 훈련. WEE 캠페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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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러시아는 강경파 레이건이 이끄는 미국이 허세SDI 계획을 진행하자 일방적인 핵공격을 당하는게 아닌가 두려워했고, 국가보안위원회와 총정보국은 이러한 핵공격의 징후를 감지하기 위해 대규모 첩보작전을 실행한다.

 그러던 도중, 1983년 11월 2일 NATO가 Able Archer라는 암호명으로 훈련을 시작한다. NATO 가입국의 정상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었고, 무선침묵이 이어졌으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던 절차가 시행되었다. 이전과 다른 훈련에 수상해하던 가운데, 이번 훈련에는 Pershing II 핵미사일의 사용까지 전제하는 훈련이라는게 파악되자, '선제 핵공격 하기 전에 눈가림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갖기 시작한다. NATO는 훈련용으로 DEFCON을 1까지 올렸을 때, 이를 실제로 착각한 요원의 보고가 있기도 했고, 미국이 핵공격을 준비하고있다는 잘못된 정보가 들어오기도 했을 정도로 소련에게는 긴장의 연속.

 소련은 나치 독일에게 당한 트라우마로 선제 공격을 당하는 것에 매우 민감해했고, 이러한 NATO의 의심스런 움직임에 만일을 대비해서 선제 공격을 준비한다.

 다행히 훈련은 11월 11일에 무사히 종료되었다. 미국은 소련이 이렇게까지 준비한 사실을 몰랐다가 조깅 중에 감시망을 뚫고 영국으로 망명한 첩보원에게서 이런 사실을 듣게된다.

 

 

 

 

 

 5. 탄피 분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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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XX년, 대한민국 병사가 훈련 중 탄피 하나를 분실하고 만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출처] 세계를 위험에 빠트린 사건 TOP 5.|작성자 윈드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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