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6.25 참전 용사셨습니다. 제가 82년 생인대..
84년도에 돌아가셨다고 부모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돌아가신다음에..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두분이서
춘천 근처의 공동묘지에 할아버지 쉴곳을 마련해드리고 한달에 정기적인
월세를 50가까이 냈던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작년이죠. 신기한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6.25 전쟁끝나고 할아버지께서 무릎에 총알이 박혀있다는
말씀을 늘하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전쟁이후 전역하게 되셨고..다리를 져셨기때문에 할머니께서
생계를 꾸리셨다고 전해들었습니다. 할머니께서도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보훈처에 몇번이고 항의를 했지만..
나라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주질 않았다고합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는 꽤나 집요하신분이신대.. 어머니께서 집요하게 할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파시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소속한 부대 이름을 할머니께 전해듣고 그때당시의
군사기록부터 작전 기록등을 엄청나게 발품팔아서 돌아다니며 읽어본뒤.. 할아버지께서
나라에서 인정받을 만한 공적을 발견후 보훈처에 제시하셨다고 합니다.
덕분에 나라에선 돌아가신지 30년이 지나서야 할아버지의 공적을 인정하고 무공훈장중 가장낮은
'화랑'훈장을 3개를 부여하고 국가 유공자로 인정하였습니다.
몇가지 알고보니.. 훈장을 하사받은 군인에겐 죽을때 까지 연금이있다고 하더군요.
근대 그 시스탬도 조금 웃긴거라.. 같은 훈장을 받은 군인한태는 중복으로 쳐서 하나의 훈장만 인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전쟁중 총을 무릎에 맞으셨다는 기록을 어머니께서 또 집요하게 알아보셨으나..
당시 군병원의 기록들이 너무 미미해서 기록을 찿을 수가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웃긴거 같습니다. 총알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하는 전쟁터에서 군병원 기록이라뇨;;
이게 말이나 되는걸까요?;;
나라에서 할아버지 생전에 인정해주셨으면.. 할아버지도 돌아가실때 더 맘이 편하셨을탠대..라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께서도 식당전전하시면서 힘들게 사시지 않으셨을탠대.. 이런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직계 가족이셨던.. 저희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들 께서도.. 혜택이 참 많으셨을탠대..말이죠.
무엇보다.. 억울한건.. 할아버지께서 무능한 아버지였다는.. 오해를 받으셨다는게..
그이후로 할아버지를 춘천 공동묘지에서 현충원으로 옮겨 드렸습니다.
현충원으로 옮겨드리면서 인치식을 하는대.. 현충원의 깨끗함과 경건함에 한번놀랐고..
인치식을 하는 진지한 분위기에 나라에서 드디어 대우를 받으시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저희 할아버지 같으신분들 얼마나 많으실까요..
무지하고.. 기력도 다하시고.. 나라에 인정못받은 전쟁영웅분들..
나라를 위해 일하고.. 희생하신분들을 나라에서 꼭 챙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