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훈련 후기

버드화이트 작성일 14.10.18 13: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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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훈련 후기

 

10월 13일 새벽 6시 기상했다. 아침부터 화장실을 못가서 그런지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일찍 일어나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6시 50분쯤 동원훈련장 가는 버스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만났다. 만사가 귀찮은 듯한 얼굴. 그랬다. 그들은 동원훈련장을 같이 가는 사람들이였다.

7시되어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운동장 화장실에 갈려고 가는 길에 버스가 보였고 동원버스냐고 물으니 맞다고 하더라.

나는 오줌만 싸고 동원훈련버스를 탓다.

7시 40분쯤 되어서 버스는 출발했다. 한 명이 이곳 훈련장이 아닌데 버스를 탓기에 인솔자분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주느라 시간이 걸렸다.

 

버스를 타자 잠이 들었다. 버스는 잠을 자기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다. 1시간쯤 잤을까? 버스는 아직도 달리고 있었다. 2시간이 지나야 위병소같은 곳에 도착했고 나는 내릴 준비를 했다.

인솔자분은 명단을 간부에게 주었다. 간부는 예비군 소령이였다.

그리고 예비군 소령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실사격 있습니다.

본인은 부대 행정병이 였고 포대실사격훈련때에는 열심히 주변에서 사주경계만 했고 포는 멀리서 보기만 했다.

실사격이라니.

 

여튼 우리는 내렸다. 내려서 명단에 있는 곳으로 갔고 나는 3포대 탄약병이라는 직책을 얻어 그곳으로 갔다. 작년에는 전산오류로 중사가 되어 근로중대 행정보급관이라는 유니크한(인사기록관을 제외한 대대전간부가 모르는)직책을 얻어 잠만자는 혜택을 누리는데 작년의 꿀이 이렇게 돌아오는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고 나는 3포대로 갔다.

총기를 받으니 드는 생각은 이걸들고 어떻게 다녔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총기를 들고 생활관으로 가니 이등병처럼 보이는 상병이 있었다. 생긴건 이등병이데 계급은 상병이였다. 그래도 일은 잘했다.

 

여튼 총기를 집어 넣고 잠을 잤다. 자고 나니 창설식을 한다고 하더라.

 

단장은 대령 대대장은 중령 그리고 가장 큰문제점은 현역은 1명뿐이라느것이였다. 전부 파견병사들 이라고 그랬다.

13년부터 법이 바뀌어서 예비군들로만 이루어진 대대를 창설하여 싸운다는 것이다.

창설식에서 대대장은 우리에게 현역고 같은 패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는 천하의 예비역이였고 우리에게 패기는 없었다.

 

하지만 으쌰 으쌰 하는 생각으로 목소리는 내주었다.

사실 재수없게 일찍오는 바람에 맨앞자리에 앉아서 어쩔 수 없었다.

 

창설식이 끝나고 밥을 먹었다. 자장밥 역시 먹을 것이 못되었다.

점심을 먹고 나가 피엑스로 향했다. 피엑스는 사람이 넘쳤고 피엑스병은 시옷 된소리로 시작되는 비읍 거센소리는 내면서 물건을 팔고 있었다. 예비군을 피엑스에서 통제하다는 것을 불가능했다.

 

점심을 먹고 훈련에 나갔다. 대포는 한국전쟁때 쓰이던 155MM 대포

멀리서 봤을 때 105mm였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155mm가 맞았다. 개량전의 대포였다.

방열 훈련을 준비했다. 도와주는 병사는 2명 일병과 이등병 게임은  끝났다 하지만 조교에게 게기다가 퇴소당한 사람이 있었서 그냥 열심히 하기로 했다.

정말로 퇴소당하는 줄은 몰랐다.

 

방열을 끝낸시각은 약 30분 아무도 다루어 본적이 없는 대포였다.

하지만 다음 방열을 끝낸 시각은 45분 점점 늦어졌다.

3번 방열을 시키니 예비역들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졌다.

 

3번정도 끝내니 저녁먹을 시간이였다.

저녁을 먹으니 야간에도 방열을 한다고 하더라.

야간방열은 더욱 열의가 없었다.

 

야간방열을 끝내니 한시간 정도 쉬었다.

 

8시가 되어서 훈련을 끝내고 출동준비를 했다.

 

이제 쉬는 시간

생활관에 텔레비전이 없었다. 끔찍했다. 게다가 본인은 핸드폰을 내버렸기에 할 수 도없었다. 다만 8시에 핸드폰을 나누어 주었고 핸드폰 깔짝하다가 졸려내 그냥 내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6시 기상나팔이 울렸다.

정말로 끔찍했다. 기상나팔소리는 현역시절 안좋은 기억들을 떠올리게 했다.

생활관 들에서 시옷 된소리로 시작되는 욕들이 솓아져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본인은 일어났다. 씻기위해서

씻고 다시 누웠다.

아침식사는 첫 번째였다. 아무도 먹으려 들지 않았지만 소령들이 와서 밥먹으라고 하니 어쩔 수없이 일어나 밥을 먹었다.

 

먹고 잤다. 8시까지

8시가 되니 포 사격 훈련장으로 간다고 한다. 간부포반장이 왔다. 전역준비중인 하사였다.

매우 다행스러웠다. 준비를 4시간에 걸쳐했다.

사고가 나면 안되었기에 천천히 준비했다.

하지만 어제와 다르게 예비역들은 오늘은 빨랐다.

방열과 발톱을 박기 까지 걸린 시각은 약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후에 예비역들은 그늘로 사라졌다.

나역시

사실 14명에서 방열준비를 하는데 얼마나 걸리겠는가?

 

귀찮아서 그렇지.

 

 

방열을 끝내고 그늘진곳에서 전부 쉬기 시작했다. 우링게 실사격에 대한 공포는 없었고 그저 놀러온것일 뿐

 

점심을 먹으니 실사격 준비를 했다.

고폭탄이 들어오고 멀리서 장약까지 들어왔다.

 

문제는 우리였다. 과거 다락대에서 예비군이 실사격 훈련하다가 20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교관들의 신경은 날카로웠다.

우리도 짧은 생을 마감하기는 싫었기에 조심했다.

 

그리고 사격이 시작되었다. 총 12문의 대포에서 발사된 포탄은 약 30여발 소리는 컸다. 충격파가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사건은 발생했다.

 

제퇴기가 뒤로 밀리면서 한 사람의 총을 강타했고 총은 휘었다.

무지하게 웃겼지만 교관들은 웃지 않았다.

다쏘고 포신을 닦고 부대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문제는 다시 발견되었다. 한 명이 총을 분실한 것이다.

다행이도 찾았다.

그래서 우리부대가 맨처음에 나갔다. 총을 찾느라고 1포대는 훈련장을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였다.

 

우리는 부대로 들어가 다시잤다. 저녁에도 자고 오전에도 자고 오후에도 자도 예비군은 졸렸다. 분명 군복에는 옵션이 달라 붙어 있을 것이다. 피로도 100상승.

 

저녁에 정신교육을했다. 한명이 개겼다가 쫗겨났다.

대대장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얼마뒤 전역이라 당신이 뭐라하든 상관 없다.

역시 대포중(대령포기중령)은 무서웠다.

 

그리고 야간에 근무까지 섰다. 말번 하루가 길었다. 그냥 잘려고했는데 현역병이 이등병이라 참았다. 일병이였으면 그냥 자는데.

 

마지막날에는 점호를 했다. 국군도수체조도 했다. 다 까먹은 줄 알았느데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소총사격과 병기본이 있었다. 총쏘는 것이 중요했기에 별 한 것은 없었다. 개인 9발을 쐇고 합격 못한 사람은 PRI를 했다.

 

예비역에게 PRI를 시킬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그래도 했다. 필자도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갈준비를 했다. 마지막 훈련이라고 해서 관물대를 전부다 빼기 시작했다. 다행이 이것은 예비역에게 시키지 않았다.

내가 부대에서 쓰는 것은 나무관물대였다가 후에 침대생활관으로 바뀌면서 철제로 바뀌었다. 역시 신형이 가벼운듯했다. 총기손질을 끝내고 우리는 퇴소식을 준비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끝났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버스는 역시 수면제였다.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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