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정태창 작성일 06.02.10 08: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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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공 : 어중간


'왕의 남자'는 몇 가지 미흡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잘 만든 사극이다. 잘 만든 사극이요, 영화인 것인데...... 안타깝게도 이 영화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이미 심하게 왜곡되었다. 대중적 흥행을 위해 설치해놓은 요소만 지나치리만치 각광을 받고, 그 외에 오히려, 이 영화가 각광을 받아야 할 요소들은 묻혀져버렸다. 특히, 엉뚱하게도 이 영화가 의 '떠오르는 샛별'처럼 되어버린 것은 너무나 아쉽다. 대중들의 눈에는 그런 것밖에는 보이지 않나보다.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또한 더 아름다운 남자. 뭐 이런 것들.

좀 불편하면서도 관념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대중문화와 매스미디어의 본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시청각 이미지를 전달해줄 수 있는 매스미디어. 그 매스미디어를 도구로 하는 대중문화. 그런데 이 전달된 시청각 이미지라는 것. 인간의 이미지...... 이 인간의 이미지라는 것은 항상 관음증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이 처럼 조각상이 되었건 처럼 그림이 되었건...... 하다못해 화장실벽에 그려진 음란한 그림들처럼 조잡한 기교로 행해진 것이라고 해도...... 인간에 의해 재현된 인간의 시각적 이미지라는 것은 관음증이라는, 확실히 건강하지는 않은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 조각가가 그런 관음증을 염두에 두고 조각했을리는 만무하다. . 콘텐츠의 제작자도, 수용자도 누구도 관음증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작자의 은밀한 의도와, 수용자의 은밀한 감상은 서로의 이해관계를 정말 무의식적이고도 은밀하게 만족시켜주게 되는 것이다.

굳이 밀로의 비너스를 언급하게 되는 이유는, 그야말로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하던 것들에도 인간의 성욕과, 그 은밀한 만족으로서의 관음증이 스며들어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에는, 그 어디나 하다못해 이라도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에 아주 조금이라도 성적인 의도가 숨어들게 되면 그것은 관음증이 된다.

흠.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이렇게 길게...... 아. 이러한 인간의 시각적 이미지를 대량 전달할 수 있는 매스미디어를 도구로 하는 대중문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관음증을 전제로 한 산업이다.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중문화라는 것에 인간이 컨텐츠로 등장하는한, 대중문화는 어떻게 해도 관음증의 혐의를 벗어던질 수가 없다. 이는 대중문화 제작자들이 아무리 으로 컨텐츠를 제작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는, 즉 와는 독립되어서, 인간의 시각적 이미지 자체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문제인 것이다. 특히 현대 대중문화처럼 아예 대놓고 관음증을 하여 끊임없이 관음증을 재생산하는 구조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실 관음증만큼 쉽게 돈벌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도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인간의 무의식적이고도 은밀한 을 그 든든한 보루로 하여...... 현대의 정신적(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육체적이기도 한)인 큰 바빌론, 바빌론의 음부, 즉 거대한 매춘산업, 그야말로 공인되고 전세계적으로 하나의 단일 유통망을 거의 형성하고 있는 라고 하는 철옹성이 세워져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중문화는 하나의 거대한 정신적 사창가에 불과하다. 그것은 더욱더 은밀하고, 더욱더 깔끔하고도 적절하게 - 사람들의 관음증 욕구를 만족시켜준다. 아마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 대중문화를 접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 자신의 성적 환상의 대상으로서의 을 무의식속에, 때로는 의식속에 대놓고 간직하고 있을 것이며, 개중 몇몇은 그 성적환상을 극대화하면서 은밀한 자위행위에 열중하고 있을 터이다.

영화가 되었건 연극이 되었건 드라마가 되었건 그것은 일종의 이며, 이런 '예술' 형식들이 연극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가정하면, 굳이 그 배우들이 아름답거나 잘생겨야 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연극배우들을 보면 대부분 외모 관리야 잘하고 있지만, 외모가 캐스팅의 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 사회에서는 이미 연극은 일종의 에 들어가며, 예술이 가질 수 있는 혹은 라는 밝은 측면과 이라는 어두운 요소 중에 전자를 훨씬 강조하고 있는 예술형식이기 때문이다. 연극을 떠나서 어떤 예술이던 순수 예술의 측면을 강조하는, 특히 예술 그 자체의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예술형식에서는 그 performer의 외모는, 시각적 요소가 예술 자체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중요한 요소라고는 볼 수 없다. 예컨대 국악인이나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의 외모를 생각해보라. 그들은 선남선녀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왜 들은 외모가 중요시되는가? 소위 말하는 잘 빠진 여성 댄스 그룹은 왜 그렇게도 수없이 리스폰되는가? 동방신기는 무엇인가? 왜 대중적인 가수들은 평균 이상의 외모가 강제되는가? 이는, 대중문화에서의 음악은 시각적 요소와 강하게 혼합되어 있고, 시각적 요소가 가미된 이상 이미 매춘이라는 멍에를 지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는 얼마나 많은 남성들의 자위를 위한 성적 환상으로 활용되었을까? 물론 그런데 적절히 활용될 수 있다는 측면이 그녀를 그렇게도 강력한 문화아이콘이 되게 해주었지만 말이다.

하다못해 아나운서마저도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매춘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그래왔듯이 당연하게도 대중문화의 매춘 대상은 주로 이어왔다. 의 시장은 항상 상대적으로 작고, 지금도 작지만, 확실히 성장하고 있는 참이다. 앞으로 여성의 지위가 더 높아지고 억압된 여성의 성욕이 더욱 양지로 나오면 나올수록 이 틈새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며, 어쩌면 전통적인 의 시장을 압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압도했거나 비등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우리 대중문화의 수용자들은, 그 혹은 그녀가 는 말을, 일종의 야릇한 흥분상태에서 서로 주고 받는다. 대부분의 경우 누구도 공개적으로 자신의 관음증을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특히 여성의 경우. 그러나 여자도, 당연히, 인간이다.) 남성들의 경우 자기들끼리의 대화에서는 공공연하게 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대부분의 공식적인 관계에서 이 관음증은 철저히 은폐되어 있다. 그러나 그 관음증은 확실히 의식에도, 그리고 무의식에도 강하게 자리잡게 되며 때때로 많은 사람들은, 그 혹은 그녀를 떠올리며 자위행위를 하는, 아주 적나라한 방법으로 스스로의 성욕을 분출하게 마련이다......

이쯤되면 관음증 부분, 그리고 대중문화가 어떻게 관음증을 매개로 매춘하는가에 대해서는 알아들으실 분들은 다 알아들으셨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

대중문화는 끊임없이 성담론을 재생산하며, 끊임없이 관음증의 새로운 대상, 즉 사람들에게 팔릴 만한 대상을 찾아나선다. 한번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볼까? (덧붙여 말하자면, 이렇게 대중문화가 끊임없이 성담론을 재생산하는 것은 현대인에게 크나큰 성적 스트레스를 가져다주고 있다. 우리의 성욕은 그들에 의해서 된다.)

이라는 고정된 시장은, 변함없이 그 굳건한 위치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경쟁도 치열하고 워낙 안정된 시장이라서, 돈벌이가 쉽지만은 않다. 그리고 아름다운 남녀는 너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성공하는 스타들은 대부분 수명이 짧다. 뭐 이런 저런 이유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 멀리까지는 거슬러 올라가기 힘들고......

한 때 이 성담론의 화두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 짭짤한 화두를 생산하고 강력하게 유통시킨 것은 다. 모든 언론과 방송사들은 확실히 돈벌이가 될 이 이라는 화두를 일종의 돈벌이에의 흥분 상태에서, 일종의 로까지 끌어올렸었고, 그에 맞춰 수많은 불륜 드라마와 영화들이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 즉 그 유명한 다. 이 영화는 애초에 문근영이라는 한 어린 여자를 위한, 그녀를 매춘시키기 위해 세팅된, 한 마디로 말해서 정말 더러운 영화였다. 여고생의 교복을 입고 나타난 우리의 어린 창녀에게 한국인들은, 정확히 말해 한국남자들은 열광했고, 문근영은 그야말로 상상 속에서 수천만번도 넘게 유린당했을 터이다. 성서 말씀대로 이라면 현대인들은 도대체 예수의 눈에 어떤 존재들일까? 각설하고...... 뒤 이어 나온 역시 로리타 열풍에 섞여들어볼까 했지만 실패했다. 는 그리 오래보지 않아도 일종의 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제니는 시종 일관 벗고 있다.

이 에 대해서 언론은 침묵했다. 왜냐하면 이건 아무래도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제, 드디어 와 관련된 성담론. 이다.

한국 사회와 같이 성적으로 경직되고도 위선적인 사회에서, 하다못해 간통죄마저 법적으로 처벌되는 이 위선국가에서 동성애나 기타 성적 소수자 담론은 애초에 입 밖에도 내기 힘든 일종의 터부였다. 그런데 역할은 대중문화가 앞장서서 도맡았다. 왜? 사람들이 그런 성적소수자 성상품을 즐길지는 미지수지만 최소한 은 강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워낙 델리키트한 주제라 많은 시도들이 삽질로 끝났었는데, 이제 기억나는 이름은 다. 아름다운 여성, 그런데 목젖을 꿀꺽하던 그 광고는 아직도 기억한다. 수많은 언론과 매체들이 이 웬만한 여자보다 훨씬 아름다운 트렌스젠더에게 주목했다. 우리는 하리수 담론이 생산되는 과정을 보면서, 착각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성적 소수자 담론이 생산되기 전에 일단 시장에 포섭되어 매춘부터 시작되었던, 그런 서글픈 현실만이 엄존했을 뿐이었다.

뭐 그 외에도 성적소수자를 다룬 많은 문화컨텐츠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뭐 라던지......) 아, 내가 최근에 주목했던 컨텐츠는 광고였다. 무슨 의도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이 광고 시리즈는 아주 적절하게, 우리가 성적소수자 담론을 생각할 때 갖게 되는 묘한 거부감과 당혹감, 그리고 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특히 그 레슬링 선수들이 경기하는 cf는, 나는, 보고서 섬뜩했다. 마치 대중문화라는 거대괴물이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비웃음과도 같은 광고...... 는 그 비웃음...... 그리고 시청자들의 무안함.

......

먼 길을 돌아서 이제 이야기를 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왕의 남자 이야기는 간단하게 끝낼 참이다. 하고 싶었던 말의 대부분은 왕의 남자로 대변되는 대중문화의 매춘이었지, 왕의 남자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는 잘 만든 사극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처음부터 흥행을 강하게 목적으로 갖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서 역에 이준기라는, 외모외에는 그다지 볼 것이 없는 배우를 캐스팅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감우성이나 정재영 등의 숙련된 배우들에 비해서 이준기의 연기는...... 그 느낌은 에 에릭이 뻘쭘하게 서있었던 느낌하고도 비슷했다. 여튼...... 이 영화에서 정말 칭찬하고 싶은 배우는 정재영과 감우성이며, 그리고 당시의 느낌을 정말 적절하게 재현한 것. 그리고 광대라는 요소를 참신하게 극적으로 승화시킨 것. 등인데...... 그런 것들은 전부 묻혀졌다. 어디서 난데없이 이준기라는 놈이 나타나서 영화를 다 드셔버렸다. 흥행을 노렸던 영화제작자로서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있겠냐만은, 진지하게 문화컨텐츠를 감상하고자 하는 몇몇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영화가 이렇게 의 아이콘으로만 기억되어야 하다니...... 그렇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다.

나는 이준기 개인에 대해서는 당연하지만 아무런 가치판단을 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라는 문화아이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는 아주 복잡다단한 대중문화매춘의 복합체다. 그는 일단 확실하게, 무엇보다도, 이며, 야오이물의 성적환상을 적절하게 투사해줄 수 있는 대상이며, 이며, 두말할 것 없이 이며, 마지막으로 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도 복잡다단한 관음증을 모두 만족시켜줄 수 있는 코드이다. 게다가 그가 출연한 영화가 애초에 매춘만을 생각한 영화가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영화였기 때문에 그의 가치는 더욱 더 강하게 상승했다. (예컨대 노랑머리2 같은데 이준기가 출현했다고 생각해보라) 어쨌든 그의 대선배는 이며, 그는 그 계보를 잇는 대중문화의 성적 아이콘이다. 그가 단순한 남창이 아니라 배우로 성공하려면, 그의 선배인 장동건이 그랬듯이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할 터이다......

아, 하나 빼먹은 것이 있다. 이쯤해서 언론이 뭘하는지 얘기해볼까. 의 흥행이 감지되자 언론은 바로 이라는 새로운 성담론을 소개했다. 크로스 섹슈얼이라는 건 간단히 말해서 남자는 여자처럼, 여자는 남자처럼 치장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과연 영어 어감도 좋고 사람들에게 거부감없이 또다른 적절한 성담론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언론이라는게 이렇게 감각이 빠르고 머리도 좋다!) 만약에 이 담론이 성공만 한다면, 이는 화장품, 의류, 가방, 신발, 기타 등등 모든 패션 산업과 영화, 드라마, 기타 모든 문화패션 관련 산업에서 또 한번 를 하게 해주는 빅히트가 된다. 언론은 이미 충분히 흥분해있다. 그렇지만 조금 예상해보자면, 아마 이후 이런 계열로 해서 성공하는 영화는 어려울 것 같고...... 이 영화는 조선시대, 즉 현대와는 유리된 시대를 배경으로해서 성적환타지를 전개한다는 점이 또한 절묘하다. 이게 현대로 오게 되면...... 아 그런 영화 하나 있었다 이미. 뭐 한 남자를 부부가 동시에 탐하는 영화였던가? 흠...... 하튼, 이 영화의 성공을 계기로 또 쓰레기 감독들이 쓰레기 영화를 양산해내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뭐 그렇고. 하여간에 언론으로서는 이 . 즉 수많은 여자들과 극히 일부의 남자의 성적 환상마저 만족시켜줄 수 있는 아이콘을 찾아낸 것은 그야말로 대수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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