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상했던 게 있었습니다.
300을 재밌게 보긴 했지만,
그 엄청난 영상에 가슴이 두근반세근반 거리기는 했지만.....
그걸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대체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때때로 300 같은 경우는 히틀러에게 인용될 정도로 어떤 숭고함이나 장렬함의 표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300을 두고 곰곰히 생각을 해봤을 때, 저는 그것이 영화 300에는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럼 숭고함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라는 옛날 우리나라 영화까지는 살짝 무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장 최근의 예로 슬램덩크까지,
정말 그 장면만 생각하면 밥을 먹고 있든 뭘하든 눈물샘이 찡해지면서 호흡이 가빠오는
그런 감동이란 것을 내가 느낀다는 것,
그거이, 대체 무엇일까라는 걸 집요하게 파들어가 봤거든요.
강백호는 척추에서부터 퍼져오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그 아픔이 온 몸을 휘감는 상황에서도
안감독에게 다가가 말합니다.
"영감님의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난.....난......지금입니다!"
그리고는 다음 순간, 뭔가 울컥 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보여주죠.
마지막에 서태웅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까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어차피 그 옛날 반공이데올로기의 싸구려 영화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에 진지구축을 하고 그들은 하나씩 죽어가면서도 자신들의 임무에 매달립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곳에서 끝까지 기관총을 쏴대고 수류탄을 던져가면서 말이죠.
그리고 그들은 최후를 맞이합니다.
좀 더 다른 예로 말아톤 같은 영화도 그렇습니다.
분명히 한계가 있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존재가
뭔가를 하기 위해 달리고, 웃고, 완주를 합니다.
여기서, 제가 좋아하는 그 숭고한 모습들의 본질이 뭔지를 깨달을 수 있었죠.
그건 엄연히 지어져 있는 자신, 혹은 상황의 한계지점을 넘어서 좀 더 높은 지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 열망의 허덕임과
그에 따라주지 않는 모든 여건, 그리고 그것들을 넘어서기 위해 발버둥치는 일종의 자아희생에 관한 것입니다.
이때까지, 정말 재밌다고 여겼던 칼의 노래나 반지의 제왕 같은 소설들도 그러한 면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300으로 돌아와보면,
사람 머리를 베어넘기고 다리를 작살내며 코뿔소를 죽이고 코끼리를 절벽으로 밀어 떨어뜨리는 그들의 그 움직임에는
그 숭고함이라는 게 전혀 배어들어 있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축차적인 투입으로 인한 소모전의 양상이라도,
그만큼의 대군을 3일 밤낮으로 상대한다는 건
엄청난 체력적 소모와 그 체력적 소모를 견디는 정신적인 강인함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300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한 번 쌈질하고 나면 이건 뭐 메딕한테서 스팀팩을 공급받은 마린들도 아니고....
너무 쌩쌩하더라는 말이죠. ㅋㅋㅋㅋㅋ
그 굳건하고 쌩쌩한 육체의 비주얼 속에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려는 인간의 몸부림, 그 절박한 느낌이 깃들게 만든다는 건
애시당초 무리가 아니었을까 하네요.
아마도, 300을 재미없다고 느끼는 수많은 분들은 그런 면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