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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 다크 나이트는 단순히 영웅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아니다.
호쾌하지도 않으며, 영웅을 떠받드는 시민도 없다.
영웅은 홀로 고독하며, 그 고독을 받아들인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투페이스다.
타이틀인 배트맨도 주인공이 아니며, 언론의 찬사를 받고 있는 히스레져의 조커 역시,
투페이스의 탄생을 위한 장기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고담의 백기사 하비 덴트의 타락이다.
그것이 내가 이 리뷰의 제목을 영웅과 악당 그 종이 한장 차이의 진실이라고 정한 이유다.
가령 당신은 정의를 수호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바다 위에 배를 타고 서 있다고 하자.
당신이 연락 받은 바로는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비행기를 몰고 있고,
조종석의 굳게 닫힌 문 뒤로는 모두 전*에 물든 사람들이 타고 있다고 하자.
공항에 내리면 연인은 구출할 수 있겠지만, 전*의 창궐은 막을 수 없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당신의 배에는 비행기를 한번에 날려버릴 수 있는 박격포가 있다고 하자.
당신은 원한다면 그것을 사용해서 비행기를 날려버릴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그리고 만약, 당신이 비행기를 날려버렸다고 할 때,
그것으로 인해 목숨을 건진 시민들은, 당신을 영웅으로 추대할 것인가.
아니 그보다 더 전에, 그 사실을 고마워 하기는 할 것인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정의, 구원, 영웅은 얼마만큼이나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 밑은 스포일러로 가득찬 리뷰이다.
만약 당신이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영화를 보고 온 뒤에 이 리뷰를 보는 것을 권장하고 싶다.
이 영화에 대해 아무런 네타없이 내가 느낀 감동을 설명하라는 것을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밑에 휘갈겨 쓴 것은 이 영화에 대한 내 의견이지 이 영화에 대한 사실이 아님을 밝혀둔다.
전체적으로는 영화의 시간대를 따라가고 있지만,
리뷰의 특성상 영화의 시간대에 관계없이 뒤죽박죽으로 내용을 끌어다 놓고 있다.
혼란스러운 점이 있다면 양해 부탁한다.
더불어 몇몇 오타가 있을 수 있음을 밝혀둔다.
최대한 찾아내어 수정할 것이지만,
혹여 내가 놓친 오타가 있더라도 너그럽게 보고 넘겨주기 바란다.
영화의 시작은 '조커 일당' 의 은행털이로 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조커의 수하가 아니라 은행을 털기위해
일시적으로 담합한 각 분야의 전문가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 역시 서로가 서로를 죽이라는 이야기를 듣게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5명
(계획을 짠 조커까지 6명이지만 사실상 1인은 가상의 인물로 조커가 대신 포함되어 있다.
옥상의 2명중 1명은 아래로 내려가 금고를 여므로 5명이 맞다.)
모두가 서로를 죽이는데 망설이지 않으며, 심지어 조커에게까지 총구가 겨누어진다.
사실상 이 부분도 너무 스스럼 없이 서로를 죽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나오지 않지만
'조커의 놀이'다.
상대를 죽임으로서 늘어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범죄자들은 스스럼 없이 서로를 죽인다.
그가 조커라는 것을 알기 전에 우리는 그가 죽을 것이라는 데에 별 감흥이 없었으며,
오히려 가면을 벗고 나타난 것이 조커라는 사실에 대해 더욱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계획을 짠 본인이 본인에게 총구를 들이밀어지게 된다는 계획을 짠다는 것은
사실상 * 짓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상황에서 녀석이 "버스 운전사? 어떤 버스 운전사?" 라고 묻는 대신에
방아쇠를 당겼다면 조커는 다른 패거리가 그러했듯이 죽었을 것이다.
이 장면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조커가 얼만큼이나 위험한 인물이고,
또한 그 역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것은 범죄현장에 총을 들고 들이닥친 가짜 배트맨들,
진짜가 나타나 범죄자들을 제압하고 나서, 가짜 배트맨들은 배트맨에게 묻는다.
"당신이 가진 권리가 무엇인데?"
"당신과 나 사이에 다른 점이 뭔데?"
자신은 하키 보호대를 입진 않는다고 대답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배트맨이지만,
(사실 난 이게 나름의 농담이라고 받아들이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 장면과 연이어 나오는, 개에게 물린 자리를 꿰매는 배트맨의 모습 역시
배트맨도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첨단과학기술로 무장하여,
인류를 초월한듯한 간지를 보여줬던 아이언맨과는 차별화된 모습이다.
자 그럼 우리는 이제, 인간인 배트맨과, 인간인 조커의 싸움을 지켜보게 된다.
눈에서 레이져 빔을 쏘지도 않고,
재생능력도 없으며, 트럭을 집어 던지고 탱크를 으깰정도의 괴력도 없다.
온 도시를 들쑤시는 그 둘은, 고작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한쪽은 미칠듯한 재력으로 무장하고, 한 쪽은 * 광기로 무장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놀란의 다크 나이트가 주목한 점은 배트맨의 재력에 의한 상대의 농락이나 머저리같은 배트맨 신용카드가 아닌,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결이다.
자 그럼 내가 왜 이렇게 인간과 인간의 대결에 대해서 주목하는지, 전작들과 비교해보자.
보는데에 정신안정제가 필요했던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에서 배트맨은
사회적으로 '영웅'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떠받들었으며, 그를 고담의 영웅으로 추대했다.
배트맨은 *같은 배트맨 신용카드를 들고 다니며 조금만 잘해주면 대줄것 같은 여자들을
경매로 사들이는 이벤트도 벌이며 희희낙락하게 지낸다.
사실상, 그가 마스크를 벗어도 별 문제 없을 듯한 상황이다.
거기에 징징대는 로빈과 멍청이도 풀 수 있을 듯한 암호를 푼 고등학생까지 합쳐
고담시의 가면의 영웅은 무려 셋이다.
그는 밤의 영웅, 안티히어로 배트맨이 아닌, 고담시의 위대한 배트맨일 뿐이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에 대한 차기작으로 배트맨: 트럼펫이 있었다.
아마 배트맨과 로빈이 썩 나쁘지 영화가 되었다면,
우리는 조엘 슈마허의 조커를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 더 전작으로 가보자면,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보다는 더 놀란의 영화와 비슷한 점을 주목하고 있는
팀 버튼의 배트맨이 있다.
사실상 팀 버튼의 배트맨도, 놀란의 배트맨과는 조금 다른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트맨이 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영웅으로서 배트맨의 내적 갈등이 아닌,
밤의 영웅 배트맨과 그와 대립하는 적과의 구도,
혹은 적의 과거나 일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잡설이지만,
사실상 히스 레져의 조커와 잭 니콜슨의 조커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볼 때 히스 레져의 판정승이다.
잭 니콜슨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그 영화가 잭 니콜슨에게 부여한 역할은 익살스러운 살인자
조커였고 그러한 틀이 존재하는 한 조커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히스레져의 조커는 완전한 미치광이다.
그는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알프레드의 설명에도 나오듯이.
돈이나 세계정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저 쾌락을 추구하는 자다.
단순히 쾌락에 의한 살인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그의 행동, 그의 심리의 밑바탕에는 인간의 숨기고 싶은 본성을 끄집어내고
그것을 관찰하며 즐기는 어릿광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배정된 역할에서부터 잭 니콜슨의 조커와 히스 레져의 조커는 비교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연기력을 따져보더라도, 히스 레져에게 한 표 던지고 싶다.
잭 니콜슨에게 이러한 역할을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소화해냈을 꺼라고는
생각치 않기 때문이다.
잭 니콜슨은 분명 명연기자이지만,
이러한 광기어린 역할을 맡겨서 이 정도의 싱크로율을 뽑아내리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예를 들어, 톰 행크스에게 이 조커의 연기를 맞긴다면, 그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물론 어떤 의미론 대단한 조커가 나오겠지만,
우리가 보고 느낀 히스레져의 조커는 아닐 것이다.
그
것이 내가 히스 레져에세 한 표를 던지는 이유다.
배역이 다르다 라는 부분에서의 설명이 부족하다면
잭 니콜슨의 조커와 히스 레져의 조커를 비교할 만한 장면을 예시로 들어보겠다.
배트맨이 배트윙(이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박쥐비행기)을 타고 조커를 습격하는 장면과
베일의 배트맨이 배트포드를 타고 조커를 습격하는 장면은
맥락적으로 같은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팀 버튼은 그 장면을 배트윙에 탑재된 머신건으로
조커를 쏘는데 정작 조커가 맞아야 할 장면에서 머신건이 나가지 않고
그가 서 있는 자리의 앞과 뒤로만 머신건이 쏘아져 결국 조커를 맞추지 못하자,
조커가 배트윙을 쏘아 배트맨이 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가면으로 가려진 배트맨의 표정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별다른 대사도 없이 배트윙의 멋진 모습만을 부각시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왜 조커를 맞추지 못했는가"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추측할 수도 있고 장면 자체는 놀란의 것과 같은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여줌으로서 이해시키는' 영화 면에서
팀 버튼의 영화는 이해시키는 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팀 버튼 스스로의 세계를 표현해 낼뿐, 보는 이에게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렇기에 팀 버튼이 영화계의 이단으로 불리며
평론가들로부터 대비되는 평가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놀란의 경우는 조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배트맨은 고함까지 질러가며 조커를 죽일 의도로 배트포드를 몰지만,
결국 조커를 죽이지 못하고 스스로 배트포드를 꺽는다.
그리고 거기에 조커의 대사를 곁들여
"왜 배트맨이 조커를 죽이지 못하는가"
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력에 의한 중무장과 단련된 육체에서 만들어내는 놀라운 전투 능력,
거기에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도,
인간인 배트맨은 결고 조커를 죽일 수 없다.
사람을 죽인다 라고 하는 것을,
배트맨은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놀란의 연출은 팀 버튼의 영화에 비해 현실적이다
즉 예술성이 떨어지지만, 그는 보여줌으로서 이해시키는 영화라는 논제에 대해
충분할 만큼 보여주고 있다..
배트맨의 정체는 누구도 알지 못하고, 그가 법으로 묶여있는 것도 아니다.
(고발자 콜먼에 대한건 조금 이따가 다루겠지만,
이 시점에서 콜먼의 배신이 브루스 웨인의 귀에까지 들어간 것은 아니다.)
사실상 '밤의 영웅 배트맨'은 조커를 죽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도 그럴것이 조커는 살아있음으로서 주위 사람을 죽이는 존재다.
그 한사람이 죽는다면 혼란은 종결된다.
하지만 '인간 배트맨' 아니 브루스 웨인은 그러지 못한다.
단순히 인간을 죽인다는 죄의식 때문이 아니다.
정의를 지켜야 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죽여서 이룩해 낼 수 있는 정의가 옳은가 라는 질문에
대해 브루스 웨인은 그렇지 않다 라고 결론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둘의 사이에, 이 영화의 주인공 하비 덴트가 등장한다.
[사실상 영화 자체의 주인공은 배트맨이고,
조커 역시 단순한 말로 치부하기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모두 담고 있고,
그 탄생부터 몰락까지의 모든 과정을 담은 케릭터는 하비 덴트다.
결국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의 주인공은 브루스 웨인이지만,
이 영화 배트맨 : 다크 나이트의 주인공은 하비 덴트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지방검사인 그는 맡은 일을 명쾌히 처리하며 인격적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얼굴을 내걸고 범죄를 소탕하는 그는 '백기사'라는 칭호를 얻으며
고담시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가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조커는 배트맨을 죽이기 위해 활동하고,
배트맨은 고담시의 새로운 영웅, 하비 덴트를 위해 사라질 것을 고민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법이라는 이름 아래,
하비 덴트는 550여명을 엮어낸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고담시 범죄자의 절반이다]
물론 그 기회를 제공한 것은 홍콩까지 날아가서 라우를 잡아온 배트맨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을 시민들이 알까?
미디어에 드러난 하비덴트와 그렇지 않은 배트맨.
자신의 신분을 공개한 하비 덴트와 그렇지 않은 배트맨.
백기사 하비 덴트와 흑기사 배트맨.
새로이 등장한 영웅,과 골칫거리 영웅.
미디어에 드러난 하비덴트를 보는 시민과 배트맨 때문에 피해를 입는 시민.
잠시 영화 내에서 시민들이 배트맨을 까는 것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
많은 장면에서 볼 수 있지만 배트맨은 무법자다.
조커를 추격할 때 조차,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주차된 차를 터트린다.
물론 그 차는 시민의 것이고 영화 내에서 다루지 않고 있듯이 피해보상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이건 조금 경우가 다르지만 핸콕의 경우와 비교할 수 있다.
핸콕은 자신의 몸으로 불을 끈 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다가 먹는다.
시민이 주의한 것은 그가 불을 껏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아이들로부터 아이스크림을 빼앗아 먹는다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라고, 그것을 찍어서 유투브에 올리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의 예로서 첫째로 들 수 있는 것은
현대 인간은 사회라는 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법이나 규범을 벗어난 존재를 굉장히 나쁘게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소위 범죄자 혹은 아웃사이더 라고 불리는 부류를 말하는데
자신이 틀(사회,규범,도덕) 안에 있는 만큼,
그러한 점에서 벗어난 것은 잘못되고 올바르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시로 들면 진중권도 그런 틀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진중권이 배트맨처럼 정의의 사도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나 쉬쉬하는 문제를 진중권은 가차없이 꼬집고 비판한다.
그것에 대해서 '정치계로 진출하려는 의도로 지금만 저러는 거겠지', 라던가
'자기는 무엇이 잘났다고 저렇게 큰 소리를 치고다녀?'. 라고 해석하는 이는 적지 않다.
그가 하는 말 중 많은 부분이 현대 사회의 큰 문제인 점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그가 틀을 벗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그가 말하는 사실보다,
그의 존재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로 이러한 이기주의는
소위 nimby(not in my back yard) 현상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쓰레기 처리소? 핵 발전소?
그래 그거 우리 나라에 꼭 필요한거야, 근데 우리 마을에 설치 하는 것은 반대하겠어.
왜냐고? 땅값이 떨어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지잖아?
그
게 얼마나 필요한 것이던,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사양하겠어!
(배트맨, 수호자인가 혹은 골칫거리인가)
어떤 옳은 일을 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어떠한 피해가 우리에게 났느냐가 문제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 즉 이기주의임을 이 영화는 끊임없이 시사하고 있다.
자 그럼 영화로 돌아와서,
이제 시민들은 배트맨이 아니라 하비 덴트를 지지하고
법 바깥에서 날뛰는 무법자 배트맨이 사라지길 원한다.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을 구하고, 누구보다도 밤의 거리를 지켜주는 이지만,
결국 누구보다도 많이 노출된 상태에서 피해를 입힌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비리나 기업의 비리, 마약 암거래 상은 '가려져' 있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공개되면 비난당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아니다.
이 배트맨은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밤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상대다.
그리고 이 배트맨은 인명의 구출,
정의의 수호에는 누구보다도 투철하지만,
기물의 파손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범죄의 소탕. 그것이 최우선 목표인 것이다.
시민은 법 안에서, 자신이 피해입지 않는 형태의 범죄의 소탕을 원한다.
이러한 이유로 시민들은 배트맨을 원하지 않고,
심지어 조커에 의한 공개 협박으로 인해, 배트맨은 사지에 몰린다.
(마스크를 벗지 않으면 계속하여 시민들이 죽어나갈꺼라는 협박)
결국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의 정체를 공개하고 더 이상 배트맨이 되지 않기를 결심하지만,
그보다 앞서 하비 덴트가 행동한다.
이 역시 중요한 부분인데, 하비는 자신이 배트맨임을 자칭하고 나섬으로서
진짜 배트맨을 보호한다.
누구보다도 배트맨의 몰락을 이룩해낸 사람이, 배트맨을 보호한 것이다.
사실 이 장면 하나 만으로 배트맨의 존재 의의는 긍정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대부분이 그렇지 않더라도,
배트맨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사람, 다시 말해,
배트맨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 이후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배트맨의 등장과 죽었던 줄 알았던 고든의 복귀로 조커를 잡게된다.
이 부분에 대해 크게 다루지 않는 점은 배트맨이 라우를 잡아 오는 장면이나
이 장면이나 별반 차이가 없으며,
그 점은 전작의 배트맨 영화에 비해서 뛰어난 점,
혹은 곱씹어볼 만한 장면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대하던 배트맨과 조커의 만남.
이 둘이 서로 만나기 전에 영화는 조커의 배경 '조커의 입가에 생긴 흉터의 이유.'
부친에 의한 한번과, 자해에 의한 한번으로 합이 두번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그저 광기를 표현하기 위한 부분이다 라고 말하는데,
일단 조커의 입에는 흉터가 있다.
그 점에서 그의 일화가 사실이던, 그렇지 않던,
조커의 흉터는 조커가 가진 사회에 대한 불신과
그가 혼돈으로 다시 태어난 과정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조커도 그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배트맨의 존재의의에 대해 다룸으로서
두 존재에게 서로 그들만의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리뷰의 초반에 강조했듯이, 이 둘 역시 인간이다.
인간 조커와 인간 배트맨의 만남.
이 둘의 대화[라고 읽고 조커의 독백이라 읽는다]를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돋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사실상 브루스 웨인은 전작 배트맨 비긴즈 에서 갓 태어난 영웅이고,
아직 성숙하지 못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예로 들면 목이 돌아가지 않는 수트 때문에 폭스에게 부탁해 목이 돌아가고 더욱 가벼운 소재의
배트맨 수트를 고안해내는 점에서 그는 미성숙한 존재고 또한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조커는 이미 완숙한 존재이다.
언뜻 미치광이처럼 보이지만 그의 행동엔 분명히 행동 철학이 있고,
그 뒤에는 감춰진 계산이 있다.
몇번이나 죽을 위기를 넘기지만, 운에 의한 것은 단 한번도 없다.
조커가 넘나드는 생과 사의 현장은 그에 의헤 계획되고 그에 의해 실현되는 것이다.
그는 재력이나 지위, 인간관계에서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남자며,
그러한 상태에서 품안의 칼과, 싸구려 다이너마이트 하나면
온 도시를 뒤집어 놓는 것이 가능한 존재다.
그리고 그러한 조커가 말하는 정의와 악의 개념은,
진실이면서도 브루스 웨인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된다.
더더군다나 배트맨이 있어야 조커가 있다는 이야기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 일 것이다.
범죄의 소탕을 위하여 밤의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배트맨인데,
그 배트맨의 존재가 또 다른 악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을, 브루스 웨인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배트맨이 가지는 번뇌의 이유이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
하비 덴트와 레이첼을 두고 조커는 배트맨에게 양자중 한 사람을 선택하게 한다.
결코 두 사람 모두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한 사람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시간에 이르러서 한 명을 선택하게 한다.
이것과 영화에서 쉴 틈 없이 보여주는 조커의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놀란의 영화는 조커라는 인물을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표현해낸다.
물론 만화의 조커와 비교한다면 잭 니콜슨의 조커가 더 조커라는 케릭터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을 실제 사람에 비교하면 애매한 점이 나타나는 반면,
놀란의 조커는 그렇지 않다.
조커가 즐기는 것은 어떠한 목적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난장판을 벌여놓고 그것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만들어 놓은 뒤
지켜보는 과정을 즐긴다.
결과는 메인디쉬를 양껏 취한 다음
달콤쌉싸름하게 즐기는 디저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브루스 웨인은 경찰서를 빠져 나오며,
고든이 누구를 구하러 갈 것이냐고 묻자 '레이첼' 이라고 답한다.
고든은 하비를 구하기 위해서 52번가로 달리고,
브루스 웨인은 레이첼을 구하기 위해 배트포드를 몰지만,
그들은 이미 '조커의 놀이'에 놀아난 것이다.
위치를 반대로 알려준 탓에, 창고에 도착한 브루스 웨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그의 연인인 레이첼이 아닌, 하비 덴트였다.
레이첼을 구하러 간 배트맨이지만,
결과적으로 하비 덴트를 구함으로서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 거듭난다.
아이러니 하게도 조커를 완성시킨 것은 배트맨의 존재지만,
배트맨을 완성시킨 것도 조커였던 것이다.
사실상 이부분에서 우리는 우리의 배트맨의 등장을 알 수 있다.
브루스 웨인은 사적인 이유로 배트맨을 시작했다.
하잘것 없는 범죄자에게 (팀 버튼이 조커로 그려내었던) 부모를 잃은 브루스 웨인이
그 재력을 기반으로 삼아 범죄를 소탕하는 것이 배트맨이다.
즉 대의도 없으며 그저 개인적인 사유로 범죄를 소탕하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고뇌와 번민의 끝에,
범죄자를 소탕하는 브루스 웨인이 아니라
고담시의 흑기사 배트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브루스 웨인에게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내린 그의 결정 끝에,
그의 결정에 대한 대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첫째가 고발자 콜먼이다.
기업체 '브루스 웨인'에 근무하는 사람으로, 배트맨의 비밀을 알아차리고 폭스를 협박하지만,
먹히지 않자 꼬리를 말았다가, 차례로 기우는 대세에 의해 배트맨을 고발하려했던 이다.
누구보다도 배트맨의 마스크를 벗기려 했던 조커는 오히려 60분 내에 그를 죽이지 않으면
병원 하나를 날려 버리겠다고 협박하고, 그런 그를 구하는 것은 브루스 웨인.
즉 배트맨이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사람을 오히려 구해주려고 하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몇이나 될까?
과거의 원수를 용서 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이것은 현재진형형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성장한 배트맨, 즉 정의의 수호자로서 결심을 굳힌 브루스 웨인은,
그러한 콜먼마저도 구해낸다.
람보르기니에 기댄 브루스 웨인을 바라보던 벙찐 표정의 콜먼을,
여러분은 기억하는가?
그리고 또 다시 다가오는 그의 결정에 대한 대가는
[다크 나이트 리뷰 이미지 에는 투페이스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이 사진으로 대체한다.]
투페이스의 등장이다.
그는 조커에 의한 감금의 때에, 의자째로 쓰러지면서 드럼통을 건드려
얼굴의 반을 기름에 적시게 된다.
배트맨에 의해 구출되지만, 강력한 인화성을 가진 기름에 의해
불이 붙으면서 그의 얼굴을 불태우게 되는 것이다.
재밌게도 그의 투페이스 라는 별칭은 그 얼굴이 두조각 나기 전부터 존재해 왔는데,
바로 경찰서장이 된 고든이 그와 함께 일할 때 그를 맘에 들어하지 않아하면서
투페이스 하비라며 낮춰 부르던 때 부터다.
사실상 리뷰의 처음에 쓴 것에 비한다면 하비 덴트에 대해 자세히 다루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 리뷰가 영화를 본 사람이 다시금 그 의미를 곱씹기 위해 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경력이나 배경에 대해서 영화가 크게 다루고 있지 않은 만큼,
필자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이 하비 덴트에게 소중한 사람 으로 나오는 것은 '레이첼' 뿐이며,
하비의 표현에 따르면 레이첼은 하비의 모든 것이며 자신의 반쪽이다.
즉 하비 덴트가 투페이스가 되는 것은 그의 얼굴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절반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첼'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비 덴트의 총구는 배트맨(정의)에게 향할 수 있다.
직접적인 요인으로 보자면 레이첼을 잃게된 경위에는,
사회의 정의라고 부를 그들이 깊게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비가 투페이스로 거듭나게 한 것은 조커지만, 그는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비의 표현처럼 하비에게 있어서 조커는 '뼈를 찾는 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하비가 그런 꼴이 되게 만들고, 그런 상황에 놓이게 만든 것은 조커다.
하지만 그런 조커에게 협력한 것은 바로 경찰(정의)이다.
물론 개인의 사정에 의한 협박이나 주머니에 쥐어진 돈이나,
무언가의 이유는 있겠지.
하지만
"그 정도로 할 줄은 몰랐어"
라고 말하던 그들이 과연 정말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저, 그들이 수호해야 하는 정의보다는,
눈 앞의 현실을 더욱 갚지게 여겨,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의 가치를 잊어버렸기 때문일까.
결국 계기를 제공한 것은 조커지만, 그의 판에서 놀아난 것은
누구보다도 정의를 숭고히 여긴 남자와, 그런 그를 몰락의 길에 빠트린 타락한 정의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조커의 '혼돈이론'을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은 하비의 행동으로 그 사례를 입증해준다.
조커가 그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 총구를 자신의 머리로 향했을 때,
하비 덴트가 바로 그를 쏘지 못한 것은 무너진 확립된 질서에 대한 혼란.
즉 공황(panic)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내뱉는 조커의 말들은, 하비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찌르는 불편한 진실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하비덴트를 투페이스로 거듭나게한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투페이스의 탄생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조커지만,
그는 뼈(쾌락)를 쫒는 개 처럼 즐거운 상황을 만들어 뒀을 뿐,
그 뼈를 만들어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것은 타락한 정의이다.
그리고 조커를 필두로
그가 양면이 앞면이던, 그리고 이제는 한쪽이 검게 타버린 동전을 튕기면서
상대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은,
그러한 기회를 얻지 못했던 레이첼에 대한 그의 슬픔을 표현한 것이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단지 총을 든 하비 덴트에게 절절 매는 인물들을 볼 수 있다.
영화는 항상 상대의 손을 비워두거나
혹은 하비가 인질을 잡음으로서 그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지만,
그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악몽.
타락한 백기사 하비 덴트 그 자체이다.
타락한 정의에 의해 악이 탄생한 것에 대한 점을 너무 깊게 파고 들지 않은 점은,
오히려 좋았다고 할 수 있지만,
[대게 이런 것을 깊게 파고 들면 평론에서 현대 사회를 너무 비판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실제로도 '추격자'에서 나온 경찰과 전 서울시장의 모습을
너무 나쁘게 표현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었다.]
그 메세지가 너무 숨겨져 있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은 아쉽다.
하비 덴트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인물들을 차례로 응징한다.
조커는 그의 '평등'한 기회에 의해 살아남고,
남자 경찰과 마피아는 그의 손에 죽게된다.
그리고 하비 덴트가 분주히 타락한 정의에게 심판을 내리는 동안
우리는 또 다시 재밌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한 배엔 일반 시민이 타고 있고, 한 배앤 악질적인 범죄자들이 들어차 있다.
그리고 조커는 두 배에 기폭장치를 쥐어주곤 결단을 강요한다.
양쪽 배에 기폭장치를 쥐어주곤 12시까지 기폭장치를 작동시켜
한 배를 터트리지 않으면 두 배 모두 폭파시켜 버릴 것이라는 이야기.
한 쪽은 범죄자이기에 자신이 살기위해 기폭장치를 건드릴 것이고,
한 쪽은 그런 악질적인 범죄자들을 위해 죽지 않기 위해 기폭장치를 건드릴 것이다.
댓글에도 나온 이야기고 보면서 필자도 보면서 생각했던 부분인데,
아마도 이 배의 기폭장치는 자신의 배에 달린 폭탄의 기폭장치였을 거라는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배를 폭파시키고, 그 폭파가 자신의 배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이 느낄 절망은, 조커가 즐기는 혼돈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하지만 이 것은 보기좋게 무너지고 마는데,
의외로 두 배 모두 기폭장치를 건드리지 않는다.
이건 아직 사람들에게 구제의 여지가 있다는 면모를 보여주는 한 편,
나약한 인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범죄자 집단의 흑인과, 시민 집단의 노인에 기폭장치를 집을 때.
그 누구도 말리지 않으며, 오히려 건네주기까지 한다.
시민 집단의 경우에 볼 수 있듯이 찬성이 더 많이 나오며,
또 찬성이 더 많이 나오자 안도의 한숨이 이 곳 저곳에서 들림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 즉 이기주의라는 부분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장면과 더불어
역시 성장한 배트맨의 면모를 볼 수 있는데,
그는 광대가 인질이라는 것을 알아내자마자 고민하지 않고
swat의 총구가 자신을 겨눴을 때조차,
변명하지 않고 그저 그들을 처리하고 더욱 많은 인질을 구출해 내는 것으로써
그의 성장을 표현해낸다
이제 밤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브루스 웨인은 박쥐 가면을 쓴 남자가 아니라
정의를 수호하는 흑기사 배트맨 그 자체인 것이다.
물론 거기서, 죽일 수 있었던 조커를 살려냄으로서,
그가 결코 인간적인 면모를 버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고든의 위기에서도, 배트맨은 훌륭히 그의 가족을 구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있어서 비록 생명으로서의 하비 덴트는 구하지 못했지만,
타락한 백기사, 하비 덴트 마저도 구해낸다.
그의 업을 자신이 스스로 짊어진 채 말이다.
이것으로 이 영화는 인간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 성장한 이유,
배트맨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을 설명하며 그 과정을 담아낸다.
훌륭하다고 할 만큼이나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함께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해 나는 만점을 줄 수 밖에 없다.
나는 항상 예술과 인기는 반비례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예술을 창조해 내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그 예술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쓰지 않던 영화 리뷰를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 차기작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이 나오는데,
아마 조커의 재등장은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개인적인 감상이라면 놀란의 시리즈에서 히스 레져 이외의 조커는 보고 싶지 않다.
혹여 조니 뎁이라면 그의 조커 연기는 꽤나 잘 들어 맞을꺼라고 생각하지만.
니뎁 형이라도 히스 레져의 조커에 비한다면 한 수 접어줘야 할 것이다.]
아마도 3편의 등장은 확실시 되지 않나 싶다.
영화 역사의 신기록을 때려부수고 있는 작품이고
스토리의 전개가 배트맨의 성장을 담고 있는 만큼,
이제 시작과 성장을 담았으니 그 성장한 배트맨의 모습을 담을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이 영화가 크게 히트 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마저 있는데,
아쉽게도 필자는 미국에서 본 사람이며,
이 영화의 대박이 결코 히스 레져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영화는 확실히 배트맨의 간판을 내 걸은 놀란의 재해석에 의해 새로이 창조된 고담이며,
배트맨스러운 느낌은 오히려 많이 퇴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습게도 이 영화는 다른 어떠한 영화보다 배트맨의 박쥐에 대한 인상을 강렬히 남긴다.
그는 밤에만 활동하며 초음파를 시선으로 삼는 등, '박쥐' 같은 분위기를 많이 채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의 색이 바래냐면 또 그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사실이나 어떠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견이 있으면 저런 의견도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것을 '틀리다'고 치부하지 않는 만큼이나.
나는 내 의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은 가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이러한 생각이 처음에 사실이 아닌 의견이라고 적은 이유다.)
나는 이제 생애 처음으로 배트맨 영화의 3번째 시리즈를 기다리며 이 리뷰를 마칠까 한다.
아마 읽는데 10분 조금 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 글을 작성하는데 4시간 이상을 소모했기 때문에 길게 시간을 소모한 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없지 않아 있다.
너무 긴 리뷰인 만큼, 많은 사람이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보아준 사람이 있다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천재는 단명한다 라는 빌어먹을 말을
온 몸으로 증명해준 히스 레져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p.s 위에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이 영화에 대한 사실을 서술한 것이 아닌,
이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저의 의견을 적어둔 글입니다.
제 마음대로 영화를 해석하는건, 이러한 부분에서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는건 감사한 일입니다만.
제가 쓴 글이 꼭 배트맨 다크나이트의 기준점이 되는건 아니라는거죠.
인간 vs 인간의 구도는 제가 본 관점이고,
조커의 흉터에 대한 이야기도 제가 본 관점에서 이럴수도 있다는 이야기이지,
여러분에게 이 건 이런 거니까 그렇게 알아! 라고 강요하는게 아닙니다.
쪽지 보내는 분들은 모두 답변해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덧글이나 쪽지로, 잘 보았다고 말씀 남겨주시는 분들 그리고 여러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