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가 있지만 이 영화는 스포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영화의 영상에서 보여주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영화는 재난영화의 모습을 했지만 중력, 생명, 종교, 가족, 삶 등으로 요약되는 우리 모습에 대한 영화입니다. IMAX3D로 감상을 했는데 영화 전체의 흐름과 같이 3D의 극적인 효과는 두어번 정도만 나오는 것 같더군요.기존 흥행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흥행성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2주 연속 1위를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의아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을 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지요.아무튼 영화는 여러 장면과 영화적 장치들을 통해 저런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줍니다.제가 파악한 것들 그리고 그 중에서 기억하는 것들만 몇 가지 적겠습니다.
주인공들은 무중력상태, 즉 지구에서의 삶과는 떨어져 있는 상태에 놓여있지요. 하지만 산드라블록과 조지클루니는 끊임없이 지구에서의 삶에 대해서만 얘기합니다. 무중력상태이지만 사실은 무중력상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뜻하는 것은 중력이 없는 곳에서도 우리의 삶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소소한 삶을 구심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얘기해 줍니다. 중력은 우리가 모르게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제목이 중력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산소부족으로 고생하던 산드라블록이 러시아의 정거장에 들어간 직후 산소를 들이마시며 무거운 우주복들을 벗어 던집니다. 그리고 화면은 산드라블록의 전신 모습을 보여주죠. 근데 그 모습은 마치 자궁속에 있는 아기의 모습처럼 몸을 동그랗게 움츠린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요? 산소가 마치 엄마의 자궁을 가득채운 양수처럼 산드라블록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모든 것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요. 이것은 사랑이라는 의미로도 전이될 수 있습니다.산드라블록 세상을 떠난 딸을 기억하며 공허함과 사랑 사이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죽은 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도 중력입니다.
또 영화에선 종교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나약합니다. 삶에 있어서도, 슬픔에 있어서도. 산소도, 중력도 없는 우주에서는 미약한 존재일 수 밖에 없죠. 어쩌면 우주쓰레기(debris)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댈 곳이 필요합니다. 중력이 필요한 것이죠. 러시아 사람이 정교회를 믿는 것과 중국인들이 불교를 믿는 것은 마찬가지로 인간의 나약함을 보완해주는 버팀목이라는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랑은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 장면이 조지클루니가 산드라블록의 환상으로서 등장해 힌트를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조지클루니의 흰색 우주복은 마치 천사의 백색을 띄듯 강조됩니다. 이것이 굳이 기독교의 천사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에겐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중력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전 장면에서 산드라블록이 그 소유즈(탈출선)에서 교신을 시도하는데 지구에서 한 남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아마 동남아어였던 것 같습니다만)로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소리가 우주를 넘어 들려옵니다. 산드라블록은 삶을 포기하고 그 소리에 마치 아기가 된 듯 잠시 잠에 들죠. 아기가 되는 겁니다. 말소리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아기가 되는 겁니다. 모든 아기가 그렇듯 아직 알아듣지 못하는 자장가 소리에 잠이 드는 겁니다. 알아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느껴지는 겁니다. 그 중력이 말이죠.
마지막 장면에서 땅을 손으로 움켜쥐며 하는 "Thank you..."라는 한마디는 누구에 대한 Thank you인지 관객들은 모릅니다.신을 향한 감사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감사일 수도 있고, 조지클루니에 대한 감사일 수도 있지만 저는 삶 그 자체에 대한 감사로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살던 산소, 물, 중력, 땅에 대한 고마움처럼, 삶을 느끼며 삶에 감사를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