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쓰다보니 긴글이 되어 다시 짧게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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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같은과 친구였고, 동네에서 삐삐와 전화로 매일이 멀다하고 만나던 친구였던 녀석이
16년지 지난 지금에서 계속 꿈에 나타납니다.
삶이 가끔 삐걱거릴때나, 참기 힘든 허전함이 손바닥과 입주위를 맴돌땐 그 친구 생각에 걱정이 앞서고,
잘 살 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꿈을 꾸고 일어나면 가슴을 한번을 쓸어 내립니다.
1996년, 그 녀석을 처음 본 해입니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던 저는 그 녀석 넉살에 금방 적응하고 친해질 수 있었고,
학교 생활도 즐겁게 보냈습니다.
총학 선거를 준비하면서도 먼 곳에서 응원을 해줬고, 엠티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있으면
무릎을 빌려주며 일어나기를 한참 기다려 줬던 녀석입니다.
전주시내 작은 찻집에서 레몬티 두잔으로 4시간을 서로 이야기 했었고,
서로의 이성관이나 사회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제가 따로 짝사랑하던 녀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사이에서 좋은 말들을 해주며
중립적인 이미지만 보여줬습니다. 나중에 알게됐지만 여자에 쑥맥이였던 저는, 절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중략)
그런 이후 집안 사정에 의해 전 자퇴를 하고 서울로 올라오게 됐습니다.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몸과 마음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게됐습니다.
어느덧 그 녀석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살게 되더군요.
그 후 몇년간 알럽스쿨을 통해, 그 후 싸이월드, 지금은 페이스북을 통해 찾아보려했지만...쉽지가 않았습니다.
연락하고 만나서 뭘 해보겠다고, 그 녀석의 소식이 궁금해서 찾는건 아닙니다.
이런 맘 아실까요?...단지 잘 살고 있다는 그 소식 하나면, 입가의 웃음으로 마음이 평온해 질 것 같은...그런
여기에 적은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도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 그 녀석의 정보가 악용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혹시 전주에서 90년도를 보내신 분들...
전주 중앙여고
익산 원광보건대
고사동 비처럼 음악처럼, 천변과 객사사이 단골 (현재 없음)
효자동 (구)한국통신 사거리 포장마차 단골 (현재 없음)
김 수 인
소식을 아시는분...
잘 살고 있다는 메일 하나만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애 엄마가 되었을 겁니다. 그 행복을 멀리서나마 기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