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무얼 먹고 살란 말인가. 국민의 기본권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대통령은 물러나야 마땅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국적인 시위대가 정권퇴진을 주장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외친 구호다. 얼핏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와 광우병의 위험을 경고하며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는 현재 한국의 모습이 연상되겠지만 이는 2001년 12월 아르헨티나의 얘기였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촛불시위를 보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났던 아르헨티나의 소위 '냄비시위'와 이로 인해 정권이 붕괴됐던 과거가 떠오르는 건 이 두 사건이 민생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한 지금의 MB정권과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델라루아 정권이 꼭 닮은꼴이라는 점도 여간 예사롭지 않다.
수도권 시장 출신 대통령이라는 것, 보수우익을 표방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우선 똑같다. 또 MB는 7%의 경제성장과 교육정책의 개혁을 약속해 대통령이 됐고 델라루아는 5%의 성장과 교육개혁 그리고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세워 대권을 잡은 것도 일치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보성향이 강한 페론당의 오랜 집권으로 노동자천국이라던 아르헨티나에서 대기업, 특히 외국계기업들의 요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노동법 개정을 추진해 노조와 대립각을 세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도 약속이나 하듯 빼 닮았다.
나아가 50%대를 오르내리던 지지도가 두세달 만에 20%대 초반으로 급락한 것도 신기할 정도로 동일하다. 친미 성향의 교수들과 경제학자들이 정부의 주요 포스트를 장악했다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이 두 정권은 지구 반대편이라는 공간을 뛰어넘는 쌍둥이 정권이 아닌가 헷갈릴 정도다.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냄비시위대에 의해 쫓겨난 델라루아 정권은 경찰력을 동원한 과잉단속이 문제였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보다는 무력진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대통령궁을 향해 물밀듯이 밀려오는 시위대를 막지 못한 경찰들은 최후 수단으로 기마경찰대를 투입했고 이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경찰력에 한계를 느낀 정부는 국경수비대의 투입을 고려하고 군부의 개입을 요청하지만 군부는 민간시위대를 진압하는 데 병력을 투입할 수는 없다며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최후의 보호막이 없어진 델라루아 대통령은 결국 사임을 결정하고 대통령궁 옥상에 헬기 대기를 명령한다. 시위대를 피해 우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보자는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