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세금]
전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평범한 시민입니다. 제 피 같은 세금을 돌이켜 보건데, 저는 민주 시민들의 정부에 세금을 내왔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저 오르기만 하는 세금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지요.
그러나, 귀머거리 같은 행동을 하는 비민주적 국가권력에게, 저의 세금은 사치에 불과합니다. 시민과 권력의 관계는 받고 주는 (계약적 사회)관계입니다. 우리의 대통령이 말한 것같이 ‘사원과 CEO'의 관계 따위가 아닙니다.
예전에, 누군가가 민주주의란 무엇이냐? 라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집단화된 사람들의 행위를 구성하는 것이 정치이며, 그 정치를 하는 방법(政體)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화된 집단은 그 행위를 구성할 때 ‘토론과 협의’라는 수단을 사용합니다.
화성에도 다녀오며 시내에 자기부상열차가 둥둥 거리는 상상 속의 2000년을 무려 8년이나 넘어선 지금의 대한민국은 훌륭히 민주화된 시민들이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부터 이런 민주국가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치에 대하여 한 말씀 올리려 합니다.
[집회의 의미. 그리고 불법집회 대 강경진압]
지난 며칠간 수십 차례에 걸쳐 수만의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전국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정결히 자신의 주장을 폈던 많은 집회들은 실로 4.19를 일궈낸 민주시민의 후예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민들의 상대는 눈, 코,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시민의 대표’ 였습니다. 20여 차례가 넘게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주장을 폈음에도 대표의 귀는 만들어 지지 않았습니다. 토론과 협의를 요구한 시민의 요구는 국어가 아니라 영어나 외계어로 외쳤는지, 대표들은 들었는지(혹은 이해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의 무심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시민의 확성기가 되어야 할 자랑스러운 의무를 띈 언론 중 일부는, '촛농이 떨어진 거리'를 보도하며 시민들이 외친 주장의 맥을 짚지 못했습니다.
태산이 높은 것은 한 줌의 흙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지난 며칠간 무려 5천만 인구가 사는 이 나라에서 수만의 (직접적) 목소리는 흙조차도 되지 못했습니다. 시민의 대표들은 그들의 소리를 듣기보다는, 인터넷에서 지도자의 퇴진을 요구한 한 고등학생의 신상조사에 더욱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밖의 다른 관심사들은 각자 찾아보세요. 홍보만화 그리기, 군 장병 상대로 정신교육하기 등등 무수히 많습니다.)
결국 이런 태도는 단지 소고기 문제를 넘어서, 그것을 포괄하는 ‘대표 불신’으로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이렇게 잘 키운 대표들의 (헛) 대응은 ‘주도자가 누구냐’라는 어마어마한 소리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민주주의 정치의 기본을 무시한 우리 ‘민주정부의 대표’들의 연속 삽질은 시민들의 실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불만과 실망을 푸는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했음에도 불구하고 20여 차례동안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아직도, ‘불법행위를 한 집회이므로 강경진압이 허용된다.’ 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단언컨대, 당신은 지금의 사태와 관련 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현재 상황에 대하여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했으며 또 얻을 의지 역시 부족한 분입니다.
조금 더 시민의 편으로 기울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무기도 없는 시민에게 구둣발과 방패 공격, 물대포로 대응한’ 유능한 경찰의 성급한 판단 역시 일을 키우는 데 한 몫 단단히 했다고 봅니다. 경찰청장의 ‘청와대 사수’ 명령을 꼭 그런 5공 시절의 진압 방법으로 이뤄야 했을까요?
(물론 문제는 경찰 이전의 대표들의 태도에 있긴 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괜히 그 잘못까지 뒤집어쓰는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찰의 대응 방법도 결코 잘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집회 해산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해산 방법은 알 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런 강경 진압 방법 말고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네요.)
토론과 협의는 민주주의 정체의 원리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부여했던 ‘시민의 대표성’을 박탈하자는 논의 역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시민의 말을 듣지 않는 시민의 대표에 대하여, 탄핵 및 인적 쇄신의 요구를 하는 것이 전혀 말도 안 되는 요구는 아닙니다. (그런 요구도 못하면 큰일이지요.)
[‘오’늘도 ‘대’충 ‘수’습해선 안 된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에서 아직까지 완전한 대표성을 띄는 주장 혹은 개인/집단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집회 참가자라고 해서 그 주장들이 완전히 겹치는 것도 아닙니다. (각양각색의 개인들의 사고가 일치하길 바라는 것이 더 이상하지만) 그러한 이유로 지금의 상태를 혼란 상태라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이런 혼란 상태를 수습하고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역시 ‘민주주의로 돌아가라’ 가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다시 무시하고, 그저 제압하는 수단으로 해결하기엔 우리 시민의 의식이 너무 깨어있기 때문입니다.
‘재협상하기로 했으니 이제 그만해야 하는 것 아니냐. 국가와 정부를 더 흔들어서 무엇을 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 부분은 여기서 더 이상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정보의 부재 및 그 접근에 노력하지 않는 분이라고 또 다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뉴스, 신문 각자 찾아보세요.
[4.19와 5.18]
우리 시민은 우리의 손으로 정권을 바꿔본 경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군홧발에 대응하여 무기를 들고 폭도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저항해본 경험도 있습니다. 허나 다 옛날 일입니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금부터 새로, 다시 써야합니다.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방패가 되어주지는 않습니다.
공부가 급하십니까? 생계가 더 중요하십니까? 지금 당장이 중요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일을 하십시오. 그러나 당신마저 포함되어있는 ‘시민들’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한없이, 또 한없이 부끄러워하십시오. 그것이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