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표지이야기 2부-요동치는 정치권]
5월29일 17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무소속 유시민 전 의원도 여의도를 떠났다. 유 전 의원은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집권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서기도 했다. 앞으로 ‘지식소매상’, 혹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게 될 그가 <한겨레21>과 정치인으로서는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6월3일 취임 100일을 맞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주요 소재였다.
유시민 전 의원은 “이전 정부의 장관을 지냈던 사람으로서의 국민의 선택을 받아 당선된 현직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은 결례”라면서도 “혹시 이 대통령이나 측근들이 <한겨레21>을 본다면, 대통령은 혼자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뭉친 사람들이 공무원 및 국민과 함께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꼭 살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있다.
=정치가 여론을 수렴해주지 못하니까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오는 것이다. 불과 5년, 10년 전만 해도 시민들이 여의도에 있는 주요 정당 당사 앞에서 시위를 많이 했다. 이제는 정당과 정치에 기대하는 것이 없으니 국회나 정당 앞으로 가는 대신 직접 청계광장이나 광화문, 거리로 나가고 있다. 정치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정치 이외의 수단을 통한 정치’가 집권 초기부터 나타나고 있는데, 굉장히 위험한 현상이고 국가적으로 볼 때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지난 5년간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둘러싸고 언론과 지식인 사회에서 펼친 담론을 종합해보면, 이런 조건에서는 누구도 성할 수 없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대통령이 됐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지난 5년간 특히 미디어는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과잉 기대를 한없이 부추겼다. 지난 대선을 봐라. 마치 메시아를 뽑는 선거 같지 않았나. 이렇게 된 데에는 대통령의 의도와 무관한 많은 객관적 요인도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 개인의 문제는 없나.
=사실 지난 선거 때 상당히 걱정스럽게 봤다. 이 대통령 본인부터 유세를 다니면서 ‘분식집 사장님, 장사 안 되죠. 내가 잘되게 해줄게요’라는 말을 했다. 지금의 수급 구조에서는 미용실이나 분식집이 장사가 잘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영세 자영업이 만성적 공급 과잉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구조의 조정이 필요하고, 국민 개개인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뒤따른다. 그런데 어떤 메시아가 내려와서 누구도 알지 못했던 절묘한 해법을 제시해 단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대책 없는 기대를 보수 언론이 지난 5년간 불러일으킨 것이다. 일부 진보 언론도 거기에서 면책되기는 어려운데, 이 대통령이 이런 환경을 너무 무시했다. 스스로 대책 없는 기대를 부풀린 측면도 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불가피한 것 아닌가.
=물론이다.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고, 당선되고 난 이후에는 리더십과 철학, 통치 스타일, 의사결정 방식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금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내가 누구보다 문제를 잘 알고 있고, 내 말대로 하면 해결된다’ 이럴지 모르지만 지도자가 늘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학습이다. 이 대통령은 학습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경우는 어떤가.
=바로 쇠고기 협상에서 ‘내가 제일 잘 알아, 내가 설득할게’ 이런 태도가 나타났다. 전혀 모르는 분이 ‘축산농가의 피해가 있지만 그건 돈으로 대책을 세우면 되고, 결국 소비자의 이익이야’ 이런 건데, 도장 찍을 때 협정문이나 읽어봤는지 모르겠다.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거다.
유 의원도 참여정부에서 복지부 장관을 지낼 때,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나.
=우리는 철저히 부처 간 협조체제 안에서 협상을 진행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경우 광우병은 인수공통(동물로부터 사람에게 감염되는) 전염병이라 당연히 협상문에 도장을 찍으려면 농림부와 복지부 등 관계부처 장관이 합의해야 한다. 참여정부에서는 위생조건을 협상할 때 통상교섭본부와 농림부, 복지부가 끊임없이 협의했고, 농림부가 갈 때도 복지부에 의견을 물어왔다. 복지부가 OK 해주지 않으면 합의 못했다. 지금 복지부는 뒤로 빠져서 구경만 하고 있다. 부처 간 협조체제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이 대통령의 ‘학습 의지’를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학습 능력’은 있다고 보나.
=의심스럽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하루 차량 220대 지나가는 톨게이트를 찾아서 예산 낭비를 줄이라고 했는데, 그런 톨게이트는 국내에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얼마 뒤에 또 그런 말을 했다. 청와대에서 아무도 ‘대통령님,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그런 말씀은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누군가 말했는데, 귀담아듣지 않았을 수도 있다. 참여정부에서는 나부터가 ‘대통령님, 안 됩니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이 대통령에게 필요한 건 뭔가.
=장관들 기능이 거의 죽어 있고 (청와대) 수석들이 책임은 안 지면서 뒤에서 움직여서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는데, 대통령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는 사실, 자신보다는 정부 공무원들이 아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관계장관 회의에서 장관 세워놓고 쿡쿡 찔러서 아무거나 물어보고, 대답하지 못하면 사정없이 깨버리고 하면 그 다음부터는 해당 부처에서도 장관의 영이 안 선다. 그건 공무원 사회를 완전히 죽이는 거다. 장관도 실국장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중앙인사위원회에서 만든 장관 리더십 매뉴얼에 나와 있다. 질책할 일이 있으면 따로 독대해서 하면 된다.
이 대통령의 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위기와 비교되기도 한다.
=큰 차이가 있다. 참여정부 때는 개별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거의 다 높았다. 심지어 종부세에 대한 지지율도 높았다. 그런데 대통령의 정치 행위, 혹은 말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았기 때문에 대통령의 낮은 인기가 지지도 높은 정책의 수행을 때로는 방해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영어몰입 교육부터 시작해 0교시 부활이나 우열반 등 교육정책, 최근 쇠고기 파동이나 한반도 대운하까지 지지도가 높은 정책이 거의 없다. 유일하게 높은 것이 공직사회 때리기다. 이건 ‘철밥통’에 대한 국민의 정서적 반감 때문에 높을 수밖에 없다. 이걸 빼면 나머지 정책의 지지율은 바닥이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렇게 낮아진 것은 단순히 정서적 이유가 아니라 국민이 원치 않는 정책을 무작정 밀어붙인 데서 오는 현상이다. 양상이 완전히 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