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정권 바뀌자 1800 돌변

가자서 작성일 08.06.09 02:56:37
댓글 0조회 850추천 4

[오관철 기자가 본 쇠고기협상 과정] 농식품부, 정권 바뀌자 1800 돌변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06.08 23:47

 


ㆍ"OIE기준 절대적 아니다"서 "OIE기준 따라" 뒤집어

ㆍ청와대 각본에 맞춘듯 … '하인리히 법칙'과 닮은꼴

#1. 기자가 농림수산부(현 농림수산식품부)를 출입하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때인 2006년 말부터이다. 당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농림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30개월 미만 살코기'만 수입하기로 돼 있는 수입위생조건을 위반한 미국산 쇠고기는 전량 반송 또는 폐기처분했다. 손톱만한 뼛조각만 나와도 가차없이 검역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당시 기자는 농림부로부터 미국산 쇠고기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됐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고 밤 10시 무렵 기사처리를 위해 회사로 달려간 기억도 생생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놓고 한·미간 힘겨루기가 시작된 것은 미국이 지난해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받으면서부터다. 미국뿐 아니라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도 농림부에 상당한 압박을 가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을 위해서는 쇠고기 시장을 전면개방해야 한다는 게 재경부와 외교부의 논리였다. 그러나 당시 박홍수 농림부 장관은 "OIE 기준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미국산 쇠고기 검역은 통상문제가 아닌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안"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2. 2008월 4월. 18대 총선이 끝난 지 하루 뒤인 4월10일 농식품부는 출입기자들에게 '한·미 쇠고기 협상이 11일부터 열린다'는 소식을 알렸고, 협상은 8일 만에 타결됐다. 밀고 당기는 과정없이 협상이 마무리된 것이다. 광우병 감염 우려가 큰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하는 협상임에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퍼주기도 그런 퍼주기가 없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돼 있는 수입위생조건에 서명한 뒤 우리 측 대표단은 기자회견장에서 미국 협상단 대표와 손을 맞잡고 웃는 표정으로 사진기자 앞에 서기도 했다. 미국 축산업계가 '환상적(fantastic)인 협상결과'라는 논평을 내놓을 만하다.

이처럼 쇠고기 협상 주무부처인 농식품부의 입장을 180도 변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1년반 사이에 달라진 것은 정권이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바뀌었다는 점, 한·미 FTA가 타결됐다는 점, 미국이 OIE로부터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점 등이다. 되돌아보면 참여정부 때도 OIE 결정을 반영해 연령·부위 제한없이 쇠고기를 수입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집요했고, 이를 한·미 FTA와 연계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결국 농식품부가 기존 입장을 포기하고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을 타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이 축산업에 전문성이 없는 농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맞춰 한·미 쇠고기 협상을 타결하려 청와대와 외교통상부가 '각본'을 짜고, 농식품부는 이에 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 쇠고기 협상에 참가했던 농식품부 관료는 최근 기자들에게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여전히 쇠고기 협상이 굴욕적으로 타결됐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성난 민심'을 아직도 모르고, 졸속협상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다보니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란 게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

한·미 쇠고기 협상은 실패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하인리히 법칙'과 닮은꼴이다. 1930년대 초 미국 보험회사의 관리·감독자였던 하인리히는 노동재해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결과를 통해 1대 29대 300의 법칙을 발표했다. 1번의 대형사고가 나기 전에는 그와 유사한 29번의 작은 사고가 있고, 그 작은 사고들 주변에서는 300번의 이상징후가 감지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한·미 쇠고기 협상 전부터 이명박 정부의 독선적 국정운영, 여론수렴 부재, 미국 편향적인 외교정책 등과 같은 '이상징후'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쇠고기 협상결과는 대형사고가 아닌 29번의 작은 사고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굴욕적인 쇠고기 협상결과와 이명박 정부의 잇단 실정(失政)이 '하인리히 법칙'에서 말하는 더 큰 대형사고로 이어질지 우려스럽다.

< okckyunghyang.com >
가자서의 최근 게시물

정치·경제·사회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