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이 우익이라고? 정말?

가자서 작성일 08.06.14 16: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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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이 우익이라고? 정말?  (아고라 환상을횡단하기님글)

 

인터넷 진보 운동의 효시였던(거기서 노사모도 나왔음)안티조선 운동 이후로 조중동을 묶어서 우익이라고 보는 관점이 많은것 같습니다. 사설이나 몇몇 기사들 그리고 광고주의 목적까지 합치면 우익이라는 레떼르가 옳게 들릴 수 있겠지요. 그러나 섬세하게 보면 전체적인 틀에 오점을 남기는 균열은 꼭 있기 마련입니다. 예컨데 조선일보의 세계면이나 문화면등이 그렇지요.

 

몇년 전에 노회찬씨가 조선일보의 퀄리티에 관해서 매우 훌륭하다고 자평한 적이 있습니다. 즉시 진보진영과 노사모들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매도되었지요. 그렇지만 조선일보를 꼼꼼히 읽어 본다면 꼭 틀린말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면에서 소수 뮤지션과 언더그라운드를 집중하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세계면에서 이라크 전쟁의 무모함을 객관적으로 다루는 기사도 본적 있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진보적 지식인들의 책 소개도 간간히 보입니다.

 

이런 조중동의 면모는 이면의 무의식적 난망이라고 보여집니다. 예컨데 라캉이 했던 칸트에 대한 위대한 해석에서 예시했듯이, 사드와 칸트의 관계는 뒤집힌 역전의 관계, 쉽게 설명하자면 칸트의 윤리적 언명의 무의식적 진실이 사디즘의 창조자이자인 사드라는 거지요. 이런 라캉의 논리를 그대로 인용해 보자면 조선일보의 문화면은 말 그대로 조선일보의 무의식의 단락이라고 볼 수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사드의 논점에서 조심할게 무조건적 언명인 칸트적 윤리 법칙은 오히려 문화란이고 사디즘적 집착은 정치란이 아닐지요.. 예컨데 소고기 문제에 대해서 조선일보가 먹어라!라는 입장을 취할때 그 입장은 대중들에게 사디즘적인 요소로서, 즉 대중들을 조롱하고 명령하는 초자아적이고 외설적인 반응을 보충하고 있지요.

 

표준적인 조중동의 레떼르에서 불가능한 오점이 문화란이라고 본다면 재미있는 역전이 나오는 거지요. 조선일보는 표준적인 영역에서 오히려 진보성을 성취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달라붙은 사디즘적인 정치 언명에서 우익의 논리를 불러온다. 이런 모순이야 말로 섬뜩한 조중동의 이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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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 이 글을 아고라 메인에 올라갈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현학적인건 아니고요. 현학의 의미는 통속적인 이해와 다른 거지요? 오히려 전문 용어의 남발로 이해하는 쪽이 빠르다고 봅니다ㅎ 밑 글을 이어 붙힙니다^^

 

우익들은 항상 옳은 말을 한다, 그러나...

 

우익들의 전도된 태도들에 대해서 논해 보자면 이런 겁니다. 그들은 이제 더이상 민족주의자나, 전통적인 보수파들의 논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시장경제 받치는 그들의 개방주의는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심지어 한국이라는 아이덴티티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하지 않습니까? 이럴때 그들의 논리는 옳습니다. 그들은 개방주의, 세계화등등을 정치적으로 이야기할 때 쇄국론등의 민족 이면에 있는 어떤 비 본질적인 요소(예를들어 한민족은 이미 다민족이었다등등의 버전..)를 거론하며 그것을 옳게 정립시킵니다. 예컨데 적어도 그들은 언어상 옳다는 겁니다. 영어 교육론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영어가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떠나서 그들이 한글을 고작 몇백개의 언어중 하나로 보는 태도는 옳다고 밖에 말할 수 없지요.

 

오늘날 인터넷에서 시니컬한 반응이 촛불 집회를 냉소적으로 보는면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미리 선을 그어놓고 그것들이 이미 일종의 정치적 행위라던가, 아니면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반응이라고 꼬집어 이야기 합니다. 그것들에 일종에 거리를 두고, 흡쓸리지 않는 것이 마치 이성적인 태도인양 말하지요. 여기 또한 그들의 언어는 옳습니다. 촛불 집회는 원래부터 정치적이었고, 이상주의적이고 감상적인 반응이 대중을 이끌었지요.

 

이렇게 거리를 두고 똑똑한척 하는 그들, 현대 시대가 낳은 산물은 이들입니다. 자신을 이성적이라고 믿는, 예컨데 기독교도인들을 단지 믿는다는 사실, 비이성적인 믿음이라는 사실 때문에 불쾌해하며 까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매우 혼재되어 있어서 보수주의자인 경우도 있고, 아니면 우리 모두 일 수 있지요. 이런 냉소적인 반응, 예컨데 어느 아이덴티티에도 말 그대로 속지 않고 딴죽을 거는 이들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사로잡는 함정이 있지요.

 

역전된 논리로 보자면 '진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면?

 

이런 믿음은 즉자적으로 자신을 이성적이라고 정립시킵니다. 그러므로 사실 이들은 자신이 이성적이라는,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 진정 의심을 모르는 종교인들이지요. 왜 그럴까요? 예컨데 이들이 내미는 텍스트들중 소고기 문제만해도, 수많은 텍스트들에 한가지를 이미 수입 찬성의 입장에서 거른것에 불과하지요.

 

소고기 수입 찬성을 말하는 자들의 논리를 보면 이렇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방대하고 정확한 지식들이 있는데 대중들이 전적으로 광우병을 부풀리고 괴담을 퍼트리는등 비이성적으로 휩쓸리고 있나"등등의 논리들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 순진한건 이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대중이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계몽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매우 초보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에 머물고 있는 거지요.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지요.

 

현대 철학에서 보면 텍스트는 이미 일정부분 주체의 선택, 즉 프레임에 따라서 걸러지게 됩니다. 즉 광우병에 관련해서 진짜 바른 텍스트가 존재한다는 믿음이야 말로 환상이며, 존재하지 않는건 광우병 괴담이 아니라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고있는 그 자신이라는 거죠. 즉 그들은 소고기 광우병이 비이성적이고 정치화되었다는 사실에 있어서는 맞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판단에서 덫에 걸리고 마는데, 바로 자신이 만든 덫, 진정한 믿음은 자신이 이성적이라는 믿음이라는 거죠.

 

표준적인 생각과 다르게 더 순진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은 냉소적인 그들이지요. 그들은 똑똑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보수주의는 자유 민주주의의 양태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이상한 믿음이나 열정적인 반응에 닭살이 돋는 부류지요. 어떻게보면 파시즘과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자유주의와 닮아 있는데, 그러면서 자신들이 사로잡힌 이데올로기는 둘러보지 못하는 바보들이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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