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의 할아버지 이종한때 이미 월산月山(츠키야마)으로 성을 갈아버렸다. 즉 창씨개명을 한것이다.
이명박이 오사카에서 태어날 당시 7살인 아키히토(明仁) 왕세자가 있었고, 일왕은 히로히토(裕仁)이었습니다. 이명박 부친은 왕세자의 明과 일왕의 裕를 따서 이름을 지으면서, 히로히토가 현 일왕인지라 부득이 피휘(왕의 이름자를 피하는 것)하여 글자만 다르고, 뜻은 비슷하고 (넓을 박, 넉넉할 유) 음은 같은 히로(博)를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月山明博은 일본 이름으로 매우 잘 된 이름입니다. 발음도 좋지만 뜻도 매우 좋지요. [동산에 밝은 달이 떠서 널리 비취다]
이명박 부친은 뼛속까지 일본을 사모한 것 아닐까요? 일본사람들은 李明博을 [리 아키히로] 라고 읽을 것입니다.
전 일왕과 현 일왕의 이름을 한자씩 딴 한국 대통령 이름이 일본인들에겐 일본인 2세인 페루의 전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 이상의 느낌을 줄 것입니다.
후지모리는 일본으로 도망왔다가 부패 및 인권유린으로 본국으로 송환당했었죠.
( 이상, 문함대 까페에서 펌)
아래는 츠키야마 아끼히로 의 일본생활 가족사진
오른쪽 앉아서 여아를 안고 있는 사람이 아끼히로 리의 아버지
보도와는 달리 아끼히로 리씨의 가족은 풍요롭게 살았던 것같다.
이명박 대통령 부친 이충우씨(1981년 작고)가 일본 오사카에서 생활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처음 발견됐다.
이 대통령 가족은 1945년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망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배가 대마도 인근에서 가라앉아 모든 것을 다 잃고 맨몸으로 고향 땅을 밟았다. 때문에 일본 생활과 관련된 기록들은 하나도 없어 일간스포츠가 입수한 이 사진은 이씨의 일본 생활을 보여 주는 유일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노부히로(68·島田伸宏) 일본 시마다목장(현 게이항우유) 사장의 고모인 에이코(84·英子)는 이씨가 1935년 오사카 시마다목장에서 일했을 때 동료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재일동포 2세 김득수(63)씨를 통해 본지에 공개했다.
김씨는 "에이코씨가 '다른 사람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충우씨(여자 아이를 안고 앉아 있는 사람)가 시마다목장 공장장이어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라고 전했다.
최근 이 사진을 본 이 대통령 누나 귀선(79)씨는 "세월이 너무 흘러 긴가민가하지만 자세히 보니 젊었을 때 아버지 모습이 맞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또 60대 중반의 귀선씨 친척도 "얼굴 생김새를 보니 언니(귀선씨) 아버지가 맞다. 사진 속의 여자 아이 얼굴도 코와 눈매를 보니 지금의 언니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귀선씨는 이 사진을 본 뒤 에이코씨에게 전화를 걸어 사진을 보내 준데 대해 감사의 인사말을 전했다. 귀선씨는 에이코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진짜 에이코씨가 맞느냐,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기회가 되면 만나고 싶다"라고 했다.
에이코도 "귀선씨의 일본 오사카 방문을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귀선씨와 에이코는 히라노구가미소학교를 함께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의 가계(家係) 호적 정리 입니다.
경주이씨(慶州李氏)
시조 이알평(李謁平)
본관(本貫) 경주(慶州)
경주이씨 가문의 돌림자는 규(圭) - 종(鍾) - 우(雨) - 상(相) 이라고 한다.
경주이씨 이알평 국당공파 사이트에서 확인
사이트 주소
http://cafe.naver.com/mokgongs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68
** 이명박家의 호적은 바로 1923년부터 시행된 일제관청에 의해 유지돼 왔던 일본어 호적이다.
돌림자를 사용한 것을 살펴보면
증조부 ("규" 자 사용 안함), 조부 ("종" 자 사용)
부 이덕쇠 ("우" 자 사용안함)
이명박(본명 이상병을 보면 사용하나, 현재 이름은 사용안함, 형제들 "상" 자 사용)
■ 족보 --- 조부 이종한(李鐘漢) -- 월산(月山, 일본명 스키야마로 개명)
그런데 민족문제 연구소의 친일 민족 반역자들을 정리해둔 친일 인명 사전에
이종한(李鐘漢) 의 이름이 보인다는 것이다.
한자도 같고.. 다만 동일 인물인지, 현재 민족문제 연구소에 확인 중이다.
아니면 다행이지만, 만약 동일 인물이라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 족보 --- 부(父)- 이덕쇠(李德釗) -- 이충우(李忠雨) 로 개명
/// 개명 전 족보상 이름
이명박의 두 형(이상득, 이상은)의 일제시대 호적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상은씨도 출생지 기록이 일본출생이며
아버지 이름이 이덕쇠로 되어 있다
이명박의 조부의 호적에 나타난 이귀선 씨의 일제시대 호적
이명박의 큰누나이며, 집안 장녀, 일본 출생이라고 기록 되어 있다.
/// 개명 후 족보상 이름
이명박의 일본 출생기록 및 부친의 개명이름
■ 족보(가계 家係)
증조부는 이수발(李秀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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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는 이종한(李鐘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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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쇠(李德釗)/부(父)-이충우로 개명 , 이무특(李無特), 이경특(李景特)--부(父)의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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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본명 이상병) , 이상득(李相得)-형제 , 이상은(李相殷)-형제
이귀선(李貴先)-여자형제 , 이말분(李末紛)-여자형제
이명박의 아버지 덕쇠(德釗)는 그가 33세 되던 해에 경주이씨의 돌림자인 雨를 사용하여 충우(忠雨)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경주이씨 돌림자인 상(相)자로, 딸들의 이름은 귀(貴)를 돌림자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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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서도 호적은 있었다. 당시의 호적은 양반이라는 신분을 과시하고. 과거 때 신분을 증명하는 데 사용된 중요한 문서였다. 호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양반들의 재산인 노비문서의 역할도 했다.
노비(奴婢)에서 노(奴)는 남자 종을, 비(婢)는 여자 종을 의미했다. 종들은 아버지를 모르고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노비 문서의 성명을 예로 들면 이뿐이는 伊伊로, 개똥이는 介로, 칠돌이는 七乭 등으로 표시했고,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돌쇠, 떡쇠, 마당쇠 등 쇠(釗)자가 많았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양반, 상놈, 노비로 갈라진 신분제도는 일본 총독부에 의해 처음으로 파기됐다.
미국에서는 피비린내나는 남북전쟁을 통해 1863.1.1. 노예해방선언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일본 총독부가 상놈과 노비를 모두 명령 하나에 의해 해방시킨 것이다.
그리고 일본식민시절인 1923년 조선총독부가 조선호적령을 제정하면서 한국의 호적이 비로소 법에 의해 국가행정 차원에서 관리되기 시작하였다.
과거 신분제도가 있었을 때, 양반이든 상놈이든 신분은 본인이 원해서 얻는 신분은 아니며 태어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신분이 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명박의 아버지가 위의 이름에 의해 노비신분 출신이었을 것이라고 손가락질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앞서 밝힌 대로 원하던, 원 치 않던 신분의 굴레에서 태어났으므로, 아무도 손가락질이나 비난을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밝히지 않고, 그의 자서전을 왜곡하여 그의 부친이 유교 풍을 이어받은 양반타입이라고 왜곡하고 미화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손가락질 하고 비난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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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한 기자가 파헤친 내용을 정리하여 올려봅니다.
이명박이 쓴 자서전(신화는 없다) 과 어머니에 실려있는 출생부분의 내용은
모두 8개인데 모두가 허위다.
" 신화는 없다 " 와 " 어머니 " 에 실린 출생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 우리 아버지 이름은 이충우, 3형제 중 막내였다. 할아버지의 땅뙈기는 두 형이 차지했고 아버지 혼자서 친구들과 함께 1935년에 총각으로 일본에 갔다.
자리 잡고 저축하여 한국에 나와 반야월 채씨 여인과 결혼을 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6남매를 낳았다.
아버지는 전통적인 유교 풍을 이어받은 양반 타입이었다.
남자 돌림자는 "상" 자, 여자 돌림자는 "귀" 자인데 나 혼자만 돌림자를 이탈했다.
명박이라 지은 것은 어머니 태몽 꿈에 크고 밝은 달이 치마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
----------- 라고 써있다.
그러나................
이명박이 숨겨놓은 호적을 보면 진실은 아래와 같다.
ㄱ. 이명박의 아버지 이름은 원래 떡쇠(德釗)였고, 1907년 생, 어머니는 1909년 생.
1907년 생
1935년 29살 -- 일본으로 건너감
1938년 32살 -- 소화14년 이름을 이충우(李忠雨) 로 바꿈 (소화1년은 1925년)
ㄴ.할아버지 땅뙈기를 큰 아버지 두 사람이 나누어 갖고, 아버지 혼자 일본으로 갔다는 말은 거짓이다.
할아버지의 땅뙈기는 무특, 경특, 덕쇠 3형제 중 경특이 혼자 차지했고, 무특과 덕쇠는 오사카에 건너가 나란히 이웃하여 대가족을 이루고, 창씨를 스키야마(月山)로 고쳐서 살았다.
이명박의 일본 이름은 스키야마 아키히로
ㄷ. 아버지 덕쇠가 1935년에 총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1935년에는 이미 3남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1930년에는 귀선, 1933년에는 상은, 1935년에는 상득이 태어나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 채씨 여인과는 1931년에 혼인했다.
이명박이 지금에서야 밝히고 있는 덕쇠의 도일 연도는 1927년이다.
ㄹ. 3형제 중 아버지 혼자만 일본에 갔고, 큰 아버지 둘은 조선에 남아 있었다는 말도 거짓이다.
2형제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이웃하여 살았다.
ㅁ. 어머니의 본이 ‘반야월 채씨’라는 것도 거짓말이다. 그의 모친은 " 인천 채씨" 다.
ㅂ. 부친이 모친이 결혼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6남매를 모두 낳았다는 말도 거짓말이다.
4째인 "귀애" 는 1938년에 포항(영일군 의장읍 덕성동)에서 낳았다.
어머니가 귀국한 것이다.
어머니 채씨는 1938년에 이미 귀국해 있었다.
그 후 이명박과 이말분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 사실은 이명박과 그 아래 동생 말분 을 일본에서 다른 여인이 낳았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더구나 위 두 개의 책을 보면 이명박과 이말분은 어머니 채씨로부터 혹독한 서자 취급을 받았다.
주측컨데 이명박과 동생 말분은 어머니 채씨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 일본여자(?) 에게서 낳은 자식이었을 수도 있다.
ㅅ. 아버지가 전통적인 유교풍을 이어받은 양반타입이라는 말도 거짓이다.
일본 총독부가 양반-상놈-노비의 계급을 없애면서, 양반 가에만 유지돼 오던 호적을하류계급에도 만들어 주었다.
그 이전에는 양반 가에만 호적이 있었고, 그 호적에는 노비들의 이름도 있었다.
호적은 즉 양반 가의 노비문서이기도 한 것이다.
호적에는 아무렇게나 불리던 노비들의 이름이 이런 식으로 기록돼 있었다.
개똥이 는 ‘개동(介童)’이로, 이쁜이’는 이분(伊粉)으로, 떡쇠는 덕쇠(德釗)로
이명박 가문에게는 ‘덕쇠(德釗)’라는 이름이 싫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아버지인 덕쇠는 32세(1938년)에 이름을 충우로 바꾸었고, 이 개명사실은 옛날 호적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명박은 1974년 구-호적을 버리고, 새로운 호적으로 바꾸었으며, 새로운 호적에는 이 개명사실이 깨끗이 지워져 있다.
이충우는 태어날 때부터 이충우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소위 호적 세탁인 것이다.
이명박은 법정 다툼에서 호적이 유실될 우려가 있어 1974년에 재-작성 하였다고 변명하지만
영일군에서 보관하는 호적이 수만 명에 이를 터인데, 유독 이명박의 호적만 유실될 우려가 있다는 것도 우습다.
또한 똑같이 영일군에서 보관하는 호적인데 구호적은 유실우려가 있고, 신호적은 유실우려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더 어이가 없다.
또한 기록을 옮기려면 원래 것대로 옮겨야 한다.
가정법원 호적과에 가서 확인해 보니 개명사항은 필수 기록사항이라 한다.
ㅇ. 남자 돌림자는 ‘상’자, 여자 돌림자는 ‘귀’자인데 이명박과 밑에 동생은 돌림자를 이탈했다.
이명박은 그의 자서전에서 자기 바로 아래 여동생의 이름을 ‘귀분’이라 기록했지만 호적에는 말분 으로 분명하게 기록돼 있다.
명박이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다.
이명박의 아래 동생의 이름이 말분 인지를 모르는 기자들은 이명박 한 사람만 돌림자를 이탈한 것으로 알고 왜 이명박 혼자서만 돌림자를 이탈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명박은 한자의 뜻 그대로 어머니 태몽꿈에 크고 밝은 달이 치마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고 변명했다.
그렇다면 어머니로부터 이명박과 함께 서자 취급을 받은 말분이는 어째서 돌림자를 이탈하였는지 다시 물어야 할 것이다.
혹 이명박과 말분이의 돌림자 이탈은 그 둘이 어머니 채씨가 낳은 자식이 아니고 다른 여자 (일본인???) 에게서 낳은 자식이기 때문에 서자취급을 했고, 돌림자를 사용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54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