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백골단 예비역의 글-(점점 더 심해지네 개떼들) [아고라 펌]
솨파이프와 화염명...그리고 깨진 보도블럭과 짱돌이 하늘을 가르던 시절.
그땐 살기 위하여 최루탄과 방패와 장봉으로 오로지 살기 위하여 명령에 복종했다.
무서웠다. 닳고 닳아 시퍼렇게 날이선 솨파이프와 눈앞에서 잡아먹을듯 이글거리는 화.염.병이...
명령에 복종했다기 보다는 생존본능이 어느 정도는 작용했기에 그토록 몸부림쳤는지도 모른다.
의경 463기...사복중대 백골단에 복무했던 정확히 10년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최루탄 독이 올라 물집이 잡히고 화*에 그을려 콧등과 손등에 흉터가 생겼어도 후회하지 않았고 난 군목무를 성실히 이행했노라고 자위하며 살아왔다.
정권이 바뀌고 시위문화가 바뀌면서 학생위주 폭력시위가 촛불을 손에든 시민 위주의 비폭력 평화집회로 바뀌었다.
얼마전에 이곳에 글을 남겼다...
일부 폭력적인 몇명의 전경과 그리고 의경이 있더라도 전체 전의경은 우리의 아들이요, 동생이기에 다른 눈으로 보지말고 이해해주자고....
어제 뉴스를 보고 오늘 인터넷을 살펴보면서 내가 올렸던 글이 왜 그리도 허무한 목소리였는지 알게 됐다. 아니 내자신이 이토록 초라해 보인적도 없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서 의경출신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물어보면 부끄럽지 않게
의경출신이라 대답하며 살아왔다.
이젠....
이젠 더 이상 떳떳하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후배들 때문에....
내가 근무했던 폭력시위의 최전방이라 불렸던 광주에서도 여자와...그리고 손에 아무것도 쥐고있지않은 단순 가담 시위자는 진압의 대상으로조차 생각하지 않았다.
똥물과 거름을 뿌리던 일반 시민들의 시위에서 그들은 우리 부모 같았기에 같이 눈물을 흘리며 그냥 그 자리에서 목석처럼 끊는 물과 냄새나는 오물을 뒤집어 쓰고 버텨냈다.
전의경 후배들이여...
진압의 대상자가 흉기를 들고 폭력시위를 했다면 난 내 후배들을 끝까지 옹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촛불을 들고 비폭력을 외치며 가녀린 몸으로 전진하는 시위대가 여자와 늙어 주름진 우리 아버지들이었다면 함께 눈물을 흘리며 그냥 버텨냈어야 할 것이다.
'밀어'라는 명령이 핑계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밀어'는 방패와 소화기를 사용해 폭력을 사용한 '밀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위대를 물러나게 하라는 명령이요
밀려오는 방패와 그대들의 모습으로도 국민들은 그 명령에 부합되게 물러 났을것이기 때문이다.
물러나지 않았다고 핑계대지 말아라...방패로 찍어 피를 보지 않아도 윗(?)사람이 시키는 연행도 할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몇 장의 사진을 보면서 너희들이 사용하는 폭력은 선배들이 그랬던 살기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피곤하고 귀찮아서 휘두르는 폭력이요 손안에 사정을 두지 않는 기계적인 폭력이란것을 느끼게 되었다.
시위자를 연행하면 특박에 휴가를 간다는 것은 전의경을 제대한 선배들은 모두 알고있다.
아니 벌써 누군가로부터 고생(?)의 댓가로 금일봉을 하사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명심하거라.
진압에도 감정이 있어야 하고 또한 자기주장이 있어야 함을....
적어도 자기주관이 있다면 촛불을 든 국민들에게 그토록 모진 진압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폭력으로 피를 흘리고 과잉진압으로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는다면 그때부터는 더이상 명령 때문에 움직이는 불쌍한 우리 아들, 우리 동생이 아니라 독재자의 수족이 된 개떼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