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더러운 입을 다물라

가자서 작성일 09.06.30 23: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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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더러운 입을 다물라. [아름드리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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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로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펼친 노무현 대통령.

 

 

 

 

 

 

 

서해교전과 노무현이 걸어온 길..


1. 남북 간의 해상 교전과 고 박정희 대통령


노통을 비난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정치, 경제, 외교, 군사…. 모든 면에서 트집을 잡다가 하나하나 반박을 해 대면 맨 마지막에 비장의 카드로 들고 나오는 게 ‘좌파 정권, 친북 정권’입니다.  물론 대북 퍼주기도 주된 소리지만, 조금 격조가 높은(?) 양반들은 서해교전을 트집을 잡죠.


왜 대통령이 서해교전 추모제에 참석을 하지 않느냐? 김정일의 윤허가 떨어지지 않아서 못 가냐? 관심이 없느냐? 왜 유가족들을 청와대에 초청을 해서 위로를 하지 않느냐? 군의 최고 통수권자로서 그럴 수가 있느냐? 역시 빨갱이 정권, 친북 정권 맞구나!!


에궁… 스토리가 하도 뻔해서……


한번 따져 봅시다. 한나라당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뻘의 정권이 집권을 하고 있던 시기와 비교해 보죠. 뭐….

 


남북 간의 해상에서의 무력 충돌은 주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 사이에 집중이 됩니다. 원인은 60년대 말이 되기 전까지는 북한도 아직 해상 세력이 강력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70년대 중반 이후는…. 쩝…


아주 슬픈 얘기지만… 왜 70년대 중반 이후 남북 간의 해상 충돌이 감소했는지는 잠시 후에 소개해 드리죠.

 


자, 순서대로 굵직한 사건들로만 몇 가지 뽑아보죠.

 

1967년 1월에는 강원도 거진 동쪽 해상에서 명태잡이 어선을 보호하던 우리 해군 초계 호위함(PCE-56, 650톤급)이 북한 해안포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합니다. 승조원 79명 중 39명이 전사하죠. 얼마 전 서해 교전과는 비교도 안 될 일이죠.


당시 해군 함정이 침몰당하고 거의 승조원 절반(39명, 참고로 서해교전 전사자는 6명입니다.)  이 전사한 이 대형 사건에 이후 추모제가 매년 거행되었다거나 추모비가 건립된 바를 알지 못합니다.


추모제나 추모비가 없는데 대통령이나 장차관 그리고 해군 참모총장이 참석할 수가

없었겠죠.

 

 


다음은 1970년 6월에 서해안 연평도 부근 공해상에서 어선단 보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우리 해군의 120톤 급 방송선을 북한 해군이 공격을 해서, 승무원 20여 명이 대부분 사살당한 채 납치당한 사건이 있습니다.


연평도 하니까 꽃게잡이가 떠오르시죠?

이 글의 주제인 서해교전도 결국 꽃게잡이가 문제였으니까요. 거의 같은 장소에서 우리 해군 함정이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후에 20여 명의 생떼 같은 젊은 목숨이 어디 하소연 한번 하지 못하고 죽어나갔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박정희 대통령이 추모제를 매년 열어 꼬박꼬박 참석했다거나 아니면 이들의 분전을 기리는 추모비를 건립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974년 6월28일에도 동해안 거진 앞바다에서 북한 해군 함정 3척의 공격을 받고 우리 해경 경비정 863함이 격침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죠.


이번엔 오징어잡이 어선 보호하다가. 참 이 사건을 보면 맘이 아픈 게…

기본적으로 당시 해경은 지금과 달리 장비나 훈련상태 그리고 기지의 시설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한 상황이었고, 또 나중에 떠내려온 전사자들의 상태를 확인해 본 결과 최후까지 필사의 접전을 벌이다 장렬히 전사한 걸로 판단이 되기 때문이랍니다. 가령 인양된 시체 6구 모두 구명복 착용에 관통된 다리의 지혈을 위해 옷을 찢어 동여맨 채 발견되는 등 .. 밀리매니아로서  현장의 격렬한 전투가 그려져서 맘이 이만저만 아픈 것이 아니었죠.


게다가 사건 2주일 후에 전투 현장에서 163마일이나 떨어진 영일만에 김시오, 김원한 두 순경의 시신이 떠내려 온 겁니다. 이 두 순경 분의 고향이 경북 울주군과 경북 영일군으로, 자신의 고향에 부모, 형제, 처자를 찾아 먼길을 떠내려 왔다고 해서, 유가족과 많은 사람의 맘을 참이나 아프게 했던 걸로 유명하죠.


다시 이 글을 쓰면서 그 당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려니 처자식이 있는 가장으로서 맘이 정말 무겁군요.


나중에 해경에서는 1986년 12월 30일에 이 사건을 포함한 해경 창설이래 순직, 전사한 호국영령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충혼탑을 건립합니다.

 


충혼탑 건립이 언제라고요?

 

1986년… 고 박정희 대통령 사후 만 7년 후에…
그나마 이 충혼탑은 이후 역대 정부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가 2002년 4월과 6월에 성역화 작업이 실시되고, 2003년 4월에 조경공사가 추가로 실시되었답니다.

 


2002년과 2003년이 언제죠? 누가 당시 대통령이었죠?
건국 이후 친북좌파에 빨갱이, 북한 퍼주기, 김정일 따까리, 그리고 서해교전에 관심도 갖지 않고, 추모식에 참석도 안 하고, 유족들 청와대에 초대도 안 하고, 원호금도 당시 화재로 사망한 거리의 여성들보다 적게 줬다고 악다구니를 들은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 시절에 저 충혼탑의 성역화와 조경공사가 실시된 게.. 참 우습지 않나요?

 


누구는 매년 추모제에 참석도 하지 않고, 추모탑도 건립하지 않고… 뭐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어도 호국의 상징과 반공의 기수, 국가 안보의 화신으로 남아 있고, 누구는 그동안 군사정권이 관심도 두지 않던 호국 영령에 대한 배려를 해도, 국방에 관심도 없는 빨갱이 대통령 소리를 들어야 되니….


DJ와 노통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양심이 있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사회인이라면, 이 상황이 얼마나 불평등한지…… 제가 따로 첨언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매번 제 글에 노통 욕하며, 엉망진창의 상황인식으로 노통과 DJ를 좌파 정권이라고

욕하는 양반들께 한마디 합니다.

 

에이라.. 나쁜 놈들 같으니라고……

눈이 있으면 보고,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하고, 가슴이 있으면 느껴 봐 !!


왜곡될 대로 왜곡되고 편향될 대로 편향된 상황인식을 가지고 누구에게 "이 모든 게 언론의 왜곡 보도 때문이라는 거냐!" 라고 호통치기 전에 어떻게 이런 일 하나 제대로 국민에게 온전히 전달해 주지 못하는 쓰레기 언론 시스템에 기대어 거의 10년이 넘게 쓰레기 같은 상황인식을 하고 있냔 말이다. 반성해 보란 말이야… 에이… 그런 쓰레기 신문을

보고 눈도 가리고, 머리도 멈춰 세우고, 가슴도 묶어 놓은 채, 황당한 맹신을 가지고 여기저기서 호통이나 치고 다니는 네 모습을 보란 말이야!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아까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한 70년대 중반 이후 남북한 간의  해상 충돌 감소 원인을 말씀드리죠.


증강된 북한 해군력을 견디지 못하고 74년의 해경 경비정 침몰 이후 더 이상 북한이 주장하는 군사분계선 연장선을 넘어가는 걸 포기한 덕분이죠.


쉽게 얘기하면 고 박정희 대통령은 더 이상의 강경책을 포기하고 북한의 12해리 주장에 한 수 접고 들어갔다는 얘깁니다.

 

 

 


2. 서해교전과 노통


이제 보수적인 분들의 정신적 지주인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벌어진 남북 간의 해군 교전 이후 그 양반이 어떻게 처신을 했는지 소개를 해 드렸으니, 이번에는 서해교전 이후의 노통의 행보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드립니다.


서해교전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방에서 북한 해군의 기습공격으로 우리 해군 함정이 침몰당하고 윤영하 소령을 포함한 6명의 해군이 전사한 사건을 말합니다.

이 사건 이후, 노통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2003년 6월에만 서해교전 관련 행보입니다.

 

 

 


(1) 노 대통령, 서해교전 희생자 추모


[YTN   2003-06-27 19:51:01]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교전 1주년을 앞두고 오늘 오후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해 당시

침몰했다 인양된 고속정 참수리 357호 전시장을 둘러본 뒤 서해교전 전적비에 헌화,

묵념하고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2) 노대통령, 보훈처 부 승격 약속


[YTN 입력시각 : 2003-06-25 16:47 ]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 청와대에서 지난해 서해교전 전사자 부모 등  국가유공자 유족 2백2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면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3) 서해교전 부상자에게 전화 위로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 19일 서해교전 당시 다리를 잃고 최근 현역에 복귀한 이희완 중위에게 전화를 걸어 격려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전화 통화에서 이 중위의 건강상태를 물은  뒤 “이 중위의 용기가 많은 국민에게 큰 힘을 줄 것”이라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겠지만 전사자들 몫까지 열심히 근무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서해교전일 즈음에만 전사자 가족들을 챙기는 게 아니고 설날에도 꼬박꼬박 선물도 하고 관심도 표명합니다. 2005년 설날 직전의 mbc의 기사를 보시죠.

 

 

 


(4) 유가족에게 설 선물

[mbc 2005-01-31]

 

● 앵커: 청와대는 노무현 대통령 내외 이름으로 지도층 인사와 소년소녀 가장,

 경찰과 소방관 가족, 서해교전 희생자 가족 3,989명에게 설 선물로 전주 이강주와 지리산 곶감

등 농촌 특산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사회]  김주하 앵커 

 

 

 


(5) 유가족들과 청와대에서 오찬

또 별도로 유가족들과 청와대에서 오찬도 함께하고요.

 

[KBS 2007-05-02]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일 낮 군 작전 및 해외파병 임무수행 중 순직한 장병의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이날 오찬에는 고(故) 윤영하 소령 등 서해교전 전사자 유족 10명과 고 민병조 중령 등 동티모르 파병 순직자 유족 10명, 지난 3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순직한 다산부대 고 윤장호 하사 부모 등 모두 22명의 유족이 참석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아직도 조국을 위해 순직하거나 산화한 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더욱더 많은 관심을 표명해 주신다면 저는 더 좋겠다는 바램이 있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정도의 발자취라면 적어도 누구에게 서해교전에 관심이 없다거나

유가족들을 방치해 놓았다거나, 왜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았느냐 라는 식으로 욕을 먹을 상황은 아니라고 봐야죠.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화재사건으로 사망한 거리의 여성들 가족이 1억 원의 보상금을

수령하였지만 처음 서해교전 전사자 가족들이 국가로부터 3천만 원 남짓한 보상금을 받은 걸 보고, ‘전사자들의 목숨이 창女의 목숨보다 헐값이냐?’라는 식의 막말을 듣는 걸 보면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이 나라의 언론 중에서 제대로 된 언론이 단 하나라도 있기는 한 건지 막막하네요.


당시 이렇게 보상금이 적었던 이유도 사실 따지고 보면, 고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 제정된 군인 연금법 시행령의 사망보상금 규정에 따른 것인데 말이죠.

결국, 이 규정은 노무현 정권 출범 2년째인 2004년 1월 군인연금법시행령이 개정되어서 적과의 교전 과정에서 전사한 군 장병의 유족들이 최고 2억 원의 사망 보상금을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죠.


생각할수록 정말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전사한 장병이나 장교들의 유가족들이 그나마 제대로 된 보훈 조처를 받게 된 것도 그렇게 빨갱이 친북 좌파 정권 소리를 듣는 노 대통령 임기 중의 법 개정 덕분이니.


참고로 대략 3천만 원 선의 국가 보상금을 받은 서해교전 유가족들은 이후 국민적인 성금의 모집을 통해서 24억 원가량을 추가로 전달받게 됩니다.

 

 


글을 대략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아무리 중립적으로 생각해 봐도 노통과 DJ 임기 중에 적어도 보훈문제와 관련해서는 역대 군사정권 그 누구와 비교해 봐도 꿀릴 게 없는데, 어찌 저리도 왜곡되고 편향된 인식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는지… 그것도 그렇게 확신에 차서 호통을 치고 다닐 정도로…. 우리 언론… 이건 지난번 글에도 언급했지만, 프레시안, 오마이, 한겨레, 경향을 모두 포함해서,  정말 문제 있는 거 아닙니까?


최소한 국민에게 기초적인 균형감을 줄 정보는 제공해야 되는 거 아닌지… 지난번 글에 몇몇 진보 진영 분들이 발끈하셨죠?


한번 자신의 스탠스가 과연 균형감이 있기는 했는지 한번 점검해 보실 기회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3. 노통의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


마지막으로 예전에 썼던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한번 더 언급하고 마치겠습니다.


6.25 이후 50년째인 2000년 6월에 ‘6.25 전쟁 50주년 기념 사업단’이 결성되고 산하 사업으로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단’이 조직됩니다. 2003년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 계획이 짜이죠.

 보수진영으로부터 원조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DJ 정권에서 말이죠. 이 3년 동안 전사자 유해 781구와 유품 2만 6천여 점이 수습됩니다.


그런데 2003년 6월 보수진영에서 2번째 빨갱이 정권으로 찍힌 노무현 정부가 이 사업을 영구 사업으로 전환합니다. 육군 본부 유해발굴 담당부서가 정규 편제로 전환되죠. 물론 사업 예산도 넉넉지 못하고 인력도 많이 부족하지만, 노통이 집권한 이후 1천여 구 이상의 전사자 유해가 추가로 발굴이 되고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흠…


역대 군사정권…. 말로는 가장 국방문제에 앞장서고 전사자나 유가족 챙겼을 것 같은 그들의 임기 중에 아무런 관심 갖지 않았던 일들을, 그거 해 봐야 보수 세력으로부터 좋은 소리 한 마디 듣기는커녕 여전히 빨갱이 소리에, 좌파 친북 정권 소리 밖에 듣지 못하고 더군다나 이제는 기억하는 국민 하나 없는 환경에서….


나름대로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묵묵히 보훈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해서 집행한 두 개혁 정권에 밀리매니아이자 군사문제에는 보수주의자인 저는 무한한 찬사와 존경을 표명합니다.


***


이 글은, 군사문제에 있어 박학다식 하신 어떤 네티즌의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흔히 빨갱이,좌파 라 불리는 지난 10년의 정권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붉은색을 칠할때 항상 쓰였던 단어.. 서해교전(제2연평해전) 이죠.

(매우 길지만 읽어보시면 도움 되실 겁니다-사진은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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