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세종시 업고 3조1000억원 꿀꺽?
[116호] 2009년 12월 04일 (금) 09:17:42
시사인 이오성 기자
“서울대가 이렇게까지 흔들린 적이 없다. 대체 서울대를 법인화하면 뭐가 좋은지 이해가 안 간다.”(최갑수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
“정운찬 총리는 서울대 총장 시절 (미국 명문대들과 비교해) 서울대뿐만 아니라 연·고대 정원도 너무 많다고 여러 차례 말했던 분인데 왜 자꾸 그러는지 모르겠다.”(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서울대가 세종시 논란의 한가운데에 섰다. 서울대가 일부 단과대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대신, 정부가 서울대의 ‘법인화’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빅딜설’이 나오면서부터다. 11월22일 교육과학기술부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서울대 법인화 법안)에 대해 관계 부처 간 협의를 끝내고 12월에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11월5일 서울대 공대가 세종시에 정원 6000명의 ‘제2캠퍼스’를 짓는다는 계획을 마련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17일 만이다. 11월17일에는 이장무 서울대 총장이 정운찬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세종시 제2캠퍼스보다) 서울대 법인화 법안 통과가 더 급하다. 법안이 해결돼야 제2캠퍼스를 논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튿날인 11월18일에는 교과부와 기획재정부가 차관 회의를 갖고 서울대 법인화 문제를 조율했다. 19일에는 교과부가 서울대에 ‘세종시 제2캠퍼스 안’을 만들어달라고 했고, 20일에는 서울대가 ‘세종시 특별대책팀’을 꾸려 회의를 진행했다.
숨가쁘게 추진된 법인화 계획
11월21일에는 정 총리가 “정원을 늘려서라도 서울대의 세종 캠퍼스 설립이 필요하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교과부가 서울대 법인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밝힌 건 그 다음 날이다. 11월25일에는 세종시 기획단의 고위 관계자가 “서울대가 캠퍼스 이전 조건으로 3조5000억원 지원을 요구했다”라고 말했다고 서울신문이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세종시 기획단 측은 이를 부인했다). 정말이지 ‘숨가쁘고 음침하게’ 추진된 계획이다.
서울대 법인화 법안은 교과부가 지난 9월 입법예고할 때부터 말이 많았다. 서울대가 법인화 된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서울대가 정부로부터 독립한다는 뜻이다. 서울대의 법적 지위는 현재 ‘정부 부속기관’이다. 학교 재산은 국가와 지자체 소유이고, 교직원은 공무원이다. 학교 조직을 개편하거나 5급 이상 고위직 인사를 단행할 때는 관계 법령에 따라야 한다. 매년 3000억원 이상의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지만, 이른바 ‘품목별 회계’가 적용돼 예산을 대학 마음대로 쓸 수 없다. 학교 발전기금 등을 받을 수는 있지만, 수익사업은 불가능하다.
서울대 법인화가 추진되면, 서울대는 3조1000억원에 달하는 국공유 재산을 무상으로 양여받는다.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이런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진다(표 참조).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사립대학처럼 ‘이사회’가 된다는 것이 가장 상징적이다(이전에는 대학평의원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였지만, 서울대 구성원들은 교과부의 업무명령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이사회는 학교 운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총장을 선임할 권한을 가진다. 모든 인사권은 총장이 가진다. ‘교육?연구 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수익사업도 벌일 수 있다. 공무원인 교수와 교직원은 법인 직원 신분이 된다.
이번 법안에서 특히 논란이 된 게 ‘서울대가 보유 또는 관리하고 있던 국·공유 재산에 관하여 다른 법률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게 이를 무상으로 양여한다’(서울대 법인화 법안 제25조)라는 대목이다. 서울대가 보유한 국·공유 재산 총액은 무려 3조1000억원에 달한다.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현행 수준으로 계속 받도록 했다. 더욱이 이 돈은 품목별이 아닌, ‘총액’으로 지급된다. 정부 간섭 없이 자유롭게 돈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07년부터 서울대가 이런 요구안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기획재정부가 난색을 표해 법인화가 좌절되곤 했다. 교과부 관계자조차 “생각보다 빨리 부처 간 이견이 조율됐다”라며 놀라워할 정도다.
이러니 서울대 ‘특혜’ 시비가 일 수밖에 없다. 정용하 교수(부산대·정치외교학)는 “가뜩이나 정부 지원을 가장 많이 받는 서울대에 국·공유 재산까지 준다면 특혜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서울대 땅이 부산대와 비교해 50배나 많다. 이 땅을 담보로 은행 대출만 받아도 서울대는 재정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대가 관리하고 있는 국유지는 서울 관악구 캠퍼스, 수원 농생대 부지, 지리산 학술림 등 전국 11곳에 총 1억9230만㎡(5817만 평)에 달한다. 이철우 의원(한나라당) 같은 여당 인사조차 11월26일 경북대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서울대 법인화는 새로운 공사(公社)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 지원을 받는 법인화에는 찬성할 수 없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지난 9월 총투표를 실시한 결과 재학생 79%는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했다.
정용하 교수는 지역 대학의 고사 위기도 염려했다. “세종시에 서울대 캠퍼스가 들어서게 되면 ‘빨대효과’로 인해 지방 인재도 다 그리로 몰릴 것이다. 그나마 지역에 남아 있던 교육 기반이 모두 무너질 것이다”라는 게 정 교수 생각이다. 이태기 공무원노조 대학본부 정책위원장은 “서울대가 법인화되면 지방대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학교 발전기금을 모으고, 학교기업을 만들어 수익사업을 벌이겠지만 서울대가 아닌 지방 대학에 발전기금을 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결국 재학생 등록금을 올리거나, 교직원을 서서히 감축해 비정규직으로 돌리면서 수익을 내려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법인화 찬성하는 교수 직원 별로 없다”
당장 서울대 구성원들의 반발도 거세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 9월 학생 대상으로 법인화 찬반 투표를 벌인 결과 79%가 반대했다. 대학이 법인화되면 이사회가 마음대로 등록금을 인상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최갑수 교수도 “법인화가 되면 학교 문제를 다루는 논의구조에서 교수와 직원이 빠진 채 이사회가 전권을 쥐게 된다. 학교 행정이 이사회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서울대 한 교직원 역시 “몇몇 고위직이나 사립대 연봉을 부러워하는 일부 교수를 빼면 서울대 법인화에 흔쾌히 찬성하는 직원이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밖으로는 특혜 시비, 안으로는 구성원의 반발에 부딪치면서도 서울대가 법인화를 추진하는 까닭은 뭘까. 서울대 관계자는 “대학에 자율성과 책임성을 줘야 국립대의 연구 및 교육 경쟁력이 강화된다”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의 자율성과 사회적 책무성을 제고하여 교육 및 연구역량을 향상시킨다’라는 교과부 입법안 문구를 그대로 반복했다. 이 관계자는 등록금 인상과 교육 공공성 훼손이 염려된다는 지적에 대해 “기초 학문을 육성하고, 학비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것이 법인화의 전제 조건이다.
서울대는 법인화와 관련해 한 번도 등록금을 인상하거나 기초 학문을 배제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언론이 너무 앞서나간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 소속 한 교수는 “학교 측은 자율성 확보가 법인화 추진의 명분임을 내세우지만, 법인과 이사회 등 고위직을 위한 자율성 확보일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사회가 대학을 장악하면 그 다음 수순은? 법인화 반대론자들은 ‘대학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들은 국립대가 법인화되면 상당수 대학기관이나 교수들이 대학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기 위한 장사치로 전락하리라고 주장한다. 특히 대학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임금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교수와 임직원이 양산될 것을 염려한다.
이 경우 제일 먼저 위협받는 건 ‘돈을 못 벌어오는’ 기초 학문 교수다. 대학의 사회 비판 기능도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태기 정책위원장은 “서울대 법인화 논란이 아니라, ‘민영화·기업화’ 논란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라고 주장한다. 이 위원장은 “서울대 법인화는 신자유주의 경쟁의 마지노선이었던 국립대마저 시장에 내다파는 격이다”라며 대학이 ‘학문자본주의의 전당’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최갑수 교수도 “1990년대부터 국립대 법인화 논의를 꾸준히 펼쳐온 곳이 다름 아닌 삼성경제연구소다. 대학에서 자본주의 비판 이론을 생산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기업과 재벌이 서울대 법인화를 가장 반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자율성 얻어야 대학 발전
서울대 법인화 논의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가 희망하는 대학을 대상으로 국립대를 법인화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물꼬를 텄고, 2004년 정운찬 총장(현 국무총리)이 TF팀을 꾸리면서 본격화했다. 정 총장은 당시 “(서울대 법인화는) 말하자면 사립대가 되는 것이고 하나의 커다란 기업이 되는 셈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6년 현 이장무 총장이 법인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고, 올해 들어 연구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법인화 추진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세종시 논란의 중심에 서울대 이전 문제가 등장하면서 다시 서울대 법인화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2005년 7월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은 전국 46개 국립대에 법인화에 대한 의견을 물은 바 있다. 당시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32개교(69.5%)로, 긍정적이라는 의견(4개교, 8.8%)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법인화를 반대하는 까닭은 ‘사실상 민영화로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 방기, 지역과 대학 규모별 격차 심화, 수익사업 위주의 대학운영으로 인한 기초 학문 붕괴, 등록금 폭등으로 인한 국민부담 가중’ 등이었다.
서울대 법인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교육 현실이 4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데 서울대가 정부의 비호 아래 법인화를 추진하는 건 과도한 ‘탐욕’이라고 지적한다. 강준만 교수처럼 지역 균형 발전을 연구해온 이들의 입에서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어 할 말조차 없다. 서울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라”는 푸념이 나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