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강호".. 유리감옥이 싫어요

릴리알렌 작성일 10.01.24 02: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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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강호'예요. 저는 나이가 어려서 세상에 대해서 아직 잘 알지 못해요. 7개월 정도 밖에 살아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저에게 요즘 큰 시련이 닥쳤어요.

 

정확히 말해서 작년 12월 23일부터였죠. 처음에는 사람들이 저의 멋진 외모와 용맹한 성품을 추켜세워줘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모두가 올해는 너의 해가 될 거라며 너도 나도 제 이름을 입에 올렸거든요.

 

그때부터 일이 잘못되가고 있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는데...

 

저에게 닥친 시련이 뭐냐구요? 들으시면 아마 깜짝 놀라실 거예요. 전 요즘 2m 남짓의 공간에서만 생활해요.

 

생활이라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네요. 그냥 갖혀 있어요. 자존심 상해서 이런 말까진 안하려고 했는데, 꼼짝 없이 '구속' 당하고 있는 거예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도 구청 사람들은 절 이 작은 공간에 '처' 넣었어요. 그러면서 저보고 '멋지고 신비롭다'고 말해요. 다들 저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니까요.

 

 하지만 전 요즘 그러한 과도한 관심은 '폭력적'이라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답니다. 사생활이 없는 연예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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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원구청 외관 노원구청은 노원구 여기저기에 호랑이 특별기획전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걸어두고 구민들의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시민들의 항의에도 아랑곳 않는 노원구청

 

제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아시면 더 놀라실 거예요. 여기는 바로 서울의 '노원구청' 로비랍니다. 21세기 민주주의 나라에서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요? 오늘로 이곳에 갖힌 지 한달 정도 됐는데 한시간이 일주일 같고, 하루가 1년 같아요. 

 

이 좁은 곳에서 갖혀 있다보니 예전의 멋졌던 제 머리 스타일도 이제 유지가 안 되네요.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었다는 영화 <올드보이>의 최민식 아저씨의 머리 모양으로 점점 변해가고 있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풀죽은 제 모습을 보신 시민분들 중엔 저를 도와주시려고 한 분들도 꽤 있었어요. 권연숙씨 같은 분은 "좁고 공기도 좋지 않은 곳에 두달씩이나 갇혀서... 왜 세금으로 이런 짓을 하는지 정말 창피합니다.

 

이건 학대예요. 빨리 풀어주세요..."라는 항의 민원을 노원구청 홈페이지에 접수했어요. 민원을 넣어주신 많은 분들은 저에겐 한줄기 빛과 같은 희망이었답니다.

 

 '그 민원만 처리되면 나도 자유를 얻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건 순진한 제 오산이었어요.

 

신호재 총무과 7급 주임은 제가 좁은 아크릴관에 갇혀서 수많의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에 대해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게 좋은 체험기회가 되고 있다는 많은 주민들의 말씀이 있다"면서 제가 받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댓글을 달았어요.

 

얼마 전에 시민단체에서 몇몇 분들이 노원구청을 직접 방문해 항의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도 저의 '천부범권'은 되찾을 수가 없었어요

 

사람의 '잠깐의 즐거움' 위해 '두달의 극심한 고통'을 겪는 강호와 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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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청에 전시중인 호랑이 강호와 범호

 

물론 노원구청에서는 시민들의 항의 때문인지 저의 편의(?)를 봐주려는 노력을 했어요. 원래 전 더욱 좁은 1.5m 공간에서 지냈거든요. 지금은 조금 넓어져서 2m구요. 고맙다고 해야 하나요?   원래 흙을 부비고, 넓은 곳을 신나게 뛰어다녀야 하는 본성을 가진 저로서는 2m도 갑갑해 미쳐버릴 지경이라구요.

 

저는 또 절대 '아침형'이 될 수 없는 야행성 '올빼미' 스타일인데, 여기서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해요. 너무 시끄럽고 복잡한 이곳 분위기도 저에겐 정말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있어요.

 

혼자서 교도소 독방에 있는 '고독함'까지 느껴야 했던 저를 위한답시고 노원구청은 아크릴관 안에 '범호'까지 넣어 버렸답니다. 친구가 생겨서 예전보다 덜 외롭긴 하지만, 저 때문에 애꿎은 범호는 이게 무슨 고생인지, 한편으론 범호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냥 나 혼자 이 악물고 버텨볼걸...'이라는 후회도 가끔 한답니다.

 

범호도 점점 저처럼 용맹한 기운을 잃어가고, 타고난 본성이 뒤틀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어요. 우리는 정말이지 '노예'나 다름이 없어요. 우리를 '전시' 해놓은 구청은 '잠깐의 눈요기'를 위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감내하는 우리에게 단 한푼의 임금도 주지 않거든요. 하지만 구청에서 사육사 아저씨에게 하루에 65만 원씩이나 준데요. 그 돈을 우리는 구경 해본 적도 없어요.

 

구청에서는 이 좁은 공간에서 있는 저희에게 무료함을 달래라며 볼링공과 탱탱볼을 넣어줬어요. 제가 이빨이 가려워서 공을 물어 뜯을 때마다 저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제가 재밌게 놀고 있다'고 오해하는 것 같아요. 그게 아닌데... 또 가끔 '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나' '누구를 위해 나의 자유가 박탈되야 하나'와 같은 생각을 곱씹다 화를 참지 못하고 아크릴 벽면에 두 손을 치고 손톱으로 벽을 긁어대면 사람들은 또 호기심에 찬 눈으로 저를 바라봐요. 저의 진짜 심정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없나봐요. 아니면 사람도 아닌 '저따위' 생명체 정도는 사람을 위해서 고통스러워도 된다고 생각하나봐요.

 

한번은 이 생활이 너무 힘에 부치고 온 몸은 지쳐 있어서 평소처럼 범호랑 전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려 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데리고 구청을 방문한 한 아주머니가 "원래 호랑이들은 잠을 많이 자고 오래 누워 있나요? 하루에 잠을 얼마나 자는 거죠?"라며 사육사 아저씨에게 물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일어나 활발히 움직이라는 '눈치'까지 받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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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호와 범호 노원구청 안 로비에 2M 남짓의 공간 안에서 호랑이들이 누워있다.

 

 

자연사박물관 유치 위해 자연을 존중하지 않는 노원구청

 

이곳에 있다보니 7개월 어린 나이에도 이제 세상을 조금 알 것만 같아요. 제가 여기서 자유를 박탈 당해야 하는 이유도 알 것 같구요. 노원구청 출입문 바로 앞에서 두 사람이 서서 시민들에게 서명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범호가 그러는데, 노원구청이 노원구 불암산에 국립자연사박물관을 건립하고 싶어해서 시민들에게 서명받는 거래요. 작년 여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계획을 세운 이후부터 말이에요. 저희는 그 목적을 위한 '홍보용'으로 이렇게나 비참하게 '이용'당하고 있는 거랍니다. 

 

그런데 신호재 주임은 "국립자연사박물관을 불암산에 유치할 수 있길 기대하고는 있지만, 이번 전시의 제 1의 목적은 아이들의 교육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했대요. 아이들이 괴로워하는 저를 보고 신기해하는 것이 좋은 교육인가요?

 

저의 자유를 위해 얼마 전 이곳을 항의 방문했던 전경옥 동물자유연대 전략기획국장은 저의 야행성 기질 때문에 "낮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고 그러는 것 자체가 호랑이들에게는 굉장히 큰 스트레스"라고 말하면서 저의 고통을 대변해 주셨어요. 그리고 말 못하는 저를 위해서 제가 이곳에 갖혀 있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 될 수 없다"고도 말했대요.

 

"구청이 생각하는 '교육'이라는 것의 전제부터가 잘못됐어요. 물론 사람들이 처음으로 가까이서 다른 생명체를 보면 신기해하고 즐거워하죠. 하지만 그것이 자연에 대해서 더 배울 수 있다거나, 자연을 사랑하게 된다거나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요. 전시를 보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생기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자연을 사랑하는 건 자연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지켜주는 것이에요.

 

그리고 가까이서 보는 게 과학적인 교육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이 자연 환경에서 타고난 본성에 알맞게 살아야 하는 생태체계를 이해시키는 것이 진짜 과학 교육이죠. 한번 보는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호랑이의 막대한 스트레스를 그냥 넘길 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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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원구청 입구 노원구청 출입문 바로 옆에서 노원구 불암산에 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하기 위해 필요한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오늘도 많은 어린이들이 저를 구경하러 이곳 노원구청에 왔어요. 나도 어린이인데, 같은 어린이라도 누구는 구경하고 누구는 구경 당하는 이 현실이 저로선 슬퍼져요.

 

어린이들이 저를 처음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신기하고 즐거울 순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즐거움은 잠깐인데 비해서 저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업는 정도라는 걸 노원구청은 왜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걸까요.

 

국립자연사박물관 때문인가요? 자연사박물관을 위해서 왜 자연의 일부인 저희 호랑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나요. 지구는 지금 사람이라는 종이 지배하고 있지만, 우리 호랑이들도 지구에서 같이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걸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노원구청은 앞으로 한달 더 범호와 저를 여기에 가둬둘 거래요. 저희는 심신이 극도로 지쳐있어요. 여러분 저희를 고통으로부터 제발 해방시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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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n_rcm_s.gif btn_blog_s.gif btn_detail_s.gif▲ 강호와 범호

 

 

 

 

출처: 오마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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