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삼성에 약한 건 생존과 탐욕 때문”
[인터뷰] 김용철 변호사 "이번에 펴낸 책은 일종의 유서” 2010년 02월 10일 (수) 15:37:17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원래부터 그랬다. 언론이 삼성을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생존이나 탐욕 때문이다.”(김용철 변호사 본문 인터뷰 중에서)
삼성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며 이건희 일가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김용철 변호사는 지난 2007년 10월 첫 기자회견 당시엔 언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 그는 언론에 대한 불신 만큼은 뿌리깊다. 삼성특검의 봐주기 수사, 법원의 봐주기 판결, 이명박 대통령의 삼성사건의 주범 이건희 회장에 대한 단독 사면 등 모든 과정에서 대부분의 언론은 시종일관 삼성 편에 섰다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08년 삼성특검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 언론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그는 지난달 말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저술했다. 그동안 자신이 알고 겪었던 삼성 검찰 법원 언론에 대한 일종의 고백록이다. 사건이 철저하게 거꾸로 결론이 난 것에 대해 최초 의혹제기자로서 마지막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 김용철 변호사 ⓒ이치열 기자 truth710@
책 대부분이 이건희 일가의 비리와 수사 및 재판과정에 대한 것이지만 김 변호사는 본문의 곳곳에서 언론에 대한 절망감을 표현했다. 그는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실명전환 후 좋은 일에 쓰기로’ 한 약속에서 일부(3000억~6000억원) 재산이 빠진 것에 대해 거의 모든 언론이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목했다.
“삼성이 침묵한 것은 이해가 된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언론의 침묵이다. 비리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재벌이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왜 아무도 따져묻지 않는 것인가”.
일간지들이 책 광고조차 싣지 않고, 기사도 안썼다. 그런데도 9일 현재 교보문고 인터넷주간집계에 따르면 베스트셀러 2위에 올라있고, 종합집계에서도 23위(정치사회 분야 1위)를 기록 중이다. 언론이 외면해도 실제 여론마저 외면하지는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그가 겪었을 언론에 대한 소회를 듣기 위해 지난 5일 서울 청운동의 한 커피숍에서 김 변호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최근 삼성을 보도하는 언론의 세태에 대해 “현재 삼성 홍보팀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삼성 기사를 축소하거나 삭제해 달라는 요구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언론이 알아서 다 해주기 때문”이라며 “요새 언론을 보면 생존의 문제를 넘어 탐닉과 탐욕의 과정으로 간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언론의 영향력에 대해 그는 “과거 공직자 관련 기사를 쓰면 큰 반향을 일으켰던 과거와 달리 요샌 아무리 언론이 문제를 제기해도 모가지 떨어지는 공직자를 찾기 어렵다”며 “전통적인 언론의 사회적 감시기능과 영향력이 많이 약해졌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ytn 노조·mbc <pd수첩> 사건 등 현 정부의 언론인 수사에 대해서도 성토했다. 그는 “과거 검찰 같으면 언론에 대해 절대 이렇게 수사안한다”며 “정권이 바뀌니 검찰의 법해석이 달라졌다”고 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한 데 대한 정리”
-이번 책을 낸 이유와 의미는.
“세상을 향한 마지막 말이다. 이것으로써 내 인생은 완전히 소진됐다. 나의 역할은 이것 뿐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한 데 대한 정리다. 사람들이 책을 통해 (나와 삼성에 대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판단하도록 했다. 책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안한다. 이게 내 팔자였는지 싶다. 어떻게보면 유서와도 같다. 일반인 같은 경우 ‘될대로 되라’는 심정일테고, 종교적 측면에서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동안 잘 살아왔다.”
-왜 이번에 내게 됐나.
“나서기 좋을 때 나서거나 시류에 영합하는 것은 비굴하다. 이건희 비리에 대한 공적인 판단과 절차가 다 끝났다. 불의가 검은 강물처럼 넘실대고 있을 때엔 이기고 지고를 떠나 기록이라도 하기 위함이었다. 이 내용의 배포에 성공한 것으로 만족한다. 또 책 출간시기를 이건희 사면에는 맞추지 않으려고 했다. 이병철 100주기는 전혀 몰랐다.”
-온라인매체나 극소수 일간지를 제외하곤 언론이 책 출간에 대해 냉랭했다.
“과거부터 내 사건은 취재경쟁이 없는 사건이었다. 취재해서 보고만 하는 사건이었다. 언론이 기업광고의 의존도가 높다고도 한다. 언론은 정의로워야 한다고들 하지만 지금은 무기력하다. 다들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인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는 다 같겠지만 중요한 책무를 맡고 있는 검찰 법원 언론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과거 조선일보가 책소개를 하면 잘팔린 시절이 있었다는데 요샌 그렇지 않은 것같다. 메이저 언론에 대한 불신이 이젠 한계에 다다른것 아니겠느냐.”
-이건희 회장 일가의 비리에 대해 특검까지 갔지만 결국 대통령이 사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권력의 공백기에 특검을 통해 일부 기소가 됐지만 결국 희대의 코미디로 결말이 났다. 특검이 온갖 쇼를 해서 내린 결론은 이건희 일가가 조성한 비자금을 이 회장의 돈으로 만들어줬다. 어떻게 된 게 이 나라가 이씨 일가의 나라인가. 모든 부와 권력이 이씨를 위해서 존재하나.”
▲ 김용철 변호사 ⓒ이치열 기자 truth710@
“광고 거부 당한 것 오히려 다행”
▲ 김용철 변호사 ⓒ이치열 기자 truth710@
-삼성의 언론 홍보정책은 어떻게 변했나.
“광고단가의 경우 방송은 시간, 신문은 크기에 비례해 집행되지 않는다. 연간 광고비를 할당한다. 정상적인 마켓에 따라 가격을 주는 게 아니다. 삼성 입장에서 그런 이미지 광고가 필요하지도 않다. 언론이 삼성을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생존이나 탐욕 때문이다. 삼성은 감시받아야할 대상임과 동시에 광고를 주는 광고주다. 그런데 이젠 광고주 측면이 강해져버렸다.
-삼성이 개별 기자나 언론인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나. 언론로비리스트도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얼마가 집행됐는지는 모르고, 그렇게 큰 돈이 아니라는 것만 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앞으로 뭘 하며 살 수 있을까. 시민단체에 가는 것도 과거에서 완전히 변신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빵집을 하고 있는데 하루 종일 그 일에 매달리면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민중의 소리 만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