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 장군과 아무 관계도 없는 김두한, 김을동
재미만을 추구한 무책임한 영화작가나 드라마작가들,
친일반공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된 독립운동가의 명예를 되찾아 주어야한다.
김좌진 장군의 수하에 있던 사람이 이승만 정부때 요직에 맞게 되자 자신의 업적을 부풀리기 위해
청산리 대첩에서의 수훈을 세운 김좌진 장군을 시대의 걸출한 영웅으로 부각시켰다. 사실 청산리 전투에서
큰 수훈을 세운 사람은 홍범도 장군으로 북한에서는 홍장군님만을 영웅시 한다.
여하튼 김좌진 장군은 업적보다 부풀려진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나 독립유공자는 사실이며 시대의 영웅이 되었다.
이때 종로바닥 깡패였던 고아출신 김두한은 정치에 입문하면서 자신을 뛰어난 인물로 부각
시키기 위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 거짓말을 한다.
당시 친일반공주의 매국노들이 홍범도와 대적해 김좌진을 내세운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좌진은 전투공노도 왜곡되고 그 가계도마저 김두헌을 앞세운 친일 매국노들에 의애 왜곡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더구나 드라마 영화로 그 거짓을 더욱 정당화시키고 친일깡패들을 미화시켰다.
김두한은 안동 김씨가문에 찾아가 자신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니 돌림자를
달라고 해서 두한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정치에 입문하게 되면서 사실인 것처럼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이것이 지금까지 김두한과 김을동 심지어 송일국의 명예까지 미쳐서 지금까지 후광을 보고 있다.
김을동과 김두한은 부녀지간이 맞지만 김좌진 장군과 김두한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고 깡패의 정치적
거짓말일 뿐이다.
참고로, 김두한은 전후 반공청년단을 조직, 무수한 시민들을 처형시켰으며, 그중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라고 함.
김두한은 1918년생이라고 알려졌는데 만약 이것이 정확한 것이라면 청산리대첩이 일어날
당시 김두한은 일곱살이 아니라 세살이어야 한다. 더 웃긴 건 그로부터 3년뒤 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울었다는 김두한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김두한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 김좌진은 청산리대첩
이 일어난 해로부터 10년뒤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과연 김두한어린이는 새파랗게 살아있는 김좌진장군님이 7년뒤에 죽을 거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예언이라도 할 수 있는 "무당깡패"였던 것일까?
김두한의 아버지가 김좌진이 아니라는 건 최근 역사학계의 정통 상식이다
김좌진 장군님과 김 계월 이라는 여성과의 인연에 대하여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김두한 이라는 아이를 김좌진장군과 서첩 김계월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며 조선과 동아일보에서도
기사화 하였다는 점이다.
청산리 전투를 통하여 일본군을 무찌른 김좌진 장군님이 기생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고
여덟살된 아들과 함께 목적지(전장)에 이르러 8년만에 김좌진 장군을 만났다는 기사를 작성하게 된 이유가
석연치 않다. 더군다나 천황에게 충성을 다하자며 떠들어대던 친일 매국신문들이 김좌진 장군님의 승전보도 아닌
알려지지 않은 자식의 기사를 싫게된 이유는 분명히 김좌진 장군님을 흠집내기 위한 숨겨진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는게 상식적일 것이다.
그 무섭던 일제때 깡패로 성공하려면 친일을 안하고 어떻게 살아 남았겠나?
여기서 중요한 건 김두한이 싸움실력으로 "일제에 격렬하게 투쟁"해서 요주의 인물이 되고 예비검속을 받아야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김두한은, 열여덟의 나이에 감옥에 갔다 나와 이름을 바꾸고 유격대에 숨어들어 항일투쟁을 한 김일성과는 달리 어디로 숨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으며, 유관순처럼 죽지도 않았고, 그저 예비검속만 정기적으로 받으면 됐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대단한 독립운동가일 리는 없는 것이다─, 그냥 "깡패", 그것도 아주 "훌륭한 깡패"였기 때문에 요주의 인물이 된 것이라고 보는 게 가장 사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비검속이라는 곤욕을 통해 나름의 호협심과 반일애국심을 키운 것만은 분명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국심이 있어도 깡패는 깡패인지라 무식한 두뇌에 뿌리를 뒀던 그의 애국심은 해방뒤 잘못 전도되어 자생적 민족세력의 어느 한 분파에 몸담고 있던 천삼백여명의 진정한 애국자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가엾은 철도파업간부 여덟명을 생매장하는 등─학자들의 말이 아니라 김두한 스스로 한 말이다─ 이승만의 정치깡패로서 도살행위만를 일삼다가 시름시름 앓며 죽어가는 가련하고 한심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김두한이라는 한 인물의 대강적 정보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으로 우리가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러한 허술한 김두한의 날조마저 눈감아주고 치켜세워주면서 국민들을 속여야만 했던 이승만 · 박정희정권(일본이나 중국만 역사왜곡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역사왜곡을 실컷 해먹고 또 해먹은 나라다)의 추악한 실상에 관한 것이다. 그들이 김두한의 삶을 날조하는데 공범자노릇을 해야만 했던 이유가 고작 그를 정치깡패로써 이용해먹어 국민들을 때려잡고 반대세력들을 죽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이승만노망여우, 박정희대일본제국육군소위의 명맥을 이어받아 전두환대머리새끼가 광주의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러한 아픈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역사일뿐이며─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아픔이란 겪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역사도 발전하는 것이다. 북의 경우 그러한 아픔을 겪지 않고 너무도 빨리 훌륭하게 친일세력들을 청산했다는 데에 오늘날의 경직된 모습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아직도 김두한후손은 독립유공자로서 정치깡패의 얼굴에다 독립투사탈을 쓰고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으며
그 유치한 친일매국노는 반공으로 매국노의 험집을 가리고 지금도 정권을 이어가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는 주체적이지 못하고 외세에만 의존해야만 했던 명분없는 그들의 독재정권의 실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김두한이라는 한 가련한 고아 · 거지 · 깡패의 삶을 산 인물만을 보아도 그 대강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글은 맹꽁이님의 글입니다....
이제 다시는 방송,영화,술자리입담에서 조차 역사를 왜곡하고 깡패를 미화하지 말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