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분인지는 몰라도 네이버지식인 답변에 전라도 홍어에 관련된 답글을 써놓으셨길래
이렇게 펌했습니다. 내공이 깊으신듯하니 읽어들 보시죠?
'홍어' 저는 듣기 좋던덴요 귀엽고 지역 특산물이잖아요. ㅎㅎ 다른 차별적인 단어보다는 훨씬 낳네요
정 억울하면 경상도는 '보리'라고 하면 되요
계몽해 드리죠, 계몽이 되어야 선진국 됩니다. 유럽도 르네상스등 계몽이 되면서 발전했잖아요
냉전시대 개발축이 영남 중심이 된건 이해한다고 쳐도, 일제식민사관처럼 경상도사관을 도입하여 역사까지 왜곡하고, 지역감정을 조장해서 경상도의 독점을 정당화시켜버린 것이 지역감정이 원인이며 그 대상이 된것이 전라도입니다.
충청도는 양반소리를 들어야 하니 속으로만 앓아야 하고, 서울 경기는 떡고물이 떨어지는 영남에 우호적이 될 수 밖에요. 전라도는 반발하니 경상도가 골치가 아픈 겁니다. 덕분에 균형개발 한다고 생색내기로 서해안도 개발 시작 한겁니다. 전라도가 견제 안햇으면, 계속 서울과 서해안은 전쟁준비나 하고 경상도만 집중햇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부분 쓸만한 대기업과 정부요직등 경상도 출신이 장악함에 있어서, 이를 정당화 시키는 도구로 경상도 사관과 지역 감정이 동원됩니다. 서울 경기 삔질이, 충청도 멍청도, 전라도 깡패 경상도는 사나이라는 당연히 부와 권력은 경상도가 차지해야 한다는 논리가 정당화 되고 반발을 최소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몽이 되어야 하죠 그래야 괜히 종로에서 뺨맞고 엉뚱한 한강에서 화풀이 하진 않죠 ㅎㅎㅎㅎㅎ
전라도와 평야지역은 마인드가 부드럽고 융통성이 있습니다. 대륙적인 기질이 강한 성향입니다.
경상도는 산악지역 특성상 고립된 지역이라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하며 추진력이 강한대신 독점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무엇이 왜곡인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지요. 단언컨데 박정희 이전 지역감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호남이 같이 움직인 사건들이 많았지요. 참고로 박정희 대통령은 전라도의 압도적인 지지 덕분에 당선된 분입니다.
좌우 논란
건국초 부터 60년대까지 전라도는 우파성향 경상도는 좌파성향이 강한지역이었읍니다.
건국세력인 한민당은 전라도가 본거지이며 이승만 박사는 전주 이씨입니다. 경상도는 남노당이 주도하는 대구폭동등 좌파성향 폭동이 많았던 지역입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박정희 이후 경상도 독점 이후 민주주의 자본주의 수호자인양 얼굴이 싹 바뀝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엉뚱하게 전라도에 좌파니 *니 하는 논조로 왜곡합니다. 공부좀 하는 영남인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라도의 주장은 독재하지 말자는 것, 민주화 하자는 운동, 경상도만 독점하지 말자는 주장등 좌파하고는 거리가 먼 것들입니다.
*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남인 호남인 다 똑같은 사람이고 격의 없이 대합니다. 문제는 독재로 부와 권력을 지배해 버린 경상도 지배층이 문제입니다. 한번 잡은 것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고, 또한 유지하기 위해 지역감정 조장과 경상도사관 주입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겁니다.
투표성향 오해
투표성향에 대한 오해인데 박정희에 대한 지지는 호남이 영남보다 비슷하거나 높았습니다. 오히려 5~60년대만 해도 영호남 공조하는 성향이 많았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영호남이 같이 움직인 사건들이 많았지요
1970년대 김대중과 선거에서 가까스로 이긴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꿈꾸고 유신헌법을 통해 선거자체를 없애버리고 김대중과 호남에 차별을 가합니다(지역감정의 사실상 시작이죠) 이를 계기로 호남민심도 박정희에게 등을 돌리고 김대중에게 집착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 이후 선거에서 필승전략은 지역감정 조장해서 표가 가장 많은 영남표 확보로 흘러 가게 됩니다.
참고로 50~60년대 부터 경상도 지역은 몰표 성향을 보입니다. 아이러니 하지요
경제성장부분
물론 개발독재를 통해 국부와 위상을 높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냉전시대 미국영향권에 있는 나라치고 발전하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조그만 섬나라인 대만도 위상이 대단하잖아요 일본이 핵심기술 지원하고 미국이 수입해주고 정말 쉬운 구조입니다. 단지 방법과 속도 차이라고 봐야지요
요즘도 우리 수출이 늘어나지만, 앉아서 돈버는건 핵심기술을 지원하는 일본이 버는 구조입니다. 우리도 돈을 벌지만 이윤이 박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환률차익에만 목매게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조선,반도체,휴대폰 이런 산업은 장치산업이라 하여 왠만한 교육수준이 있는 나라가 따라 붙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핵심기술,원료,설비장비 일본등 선진국 지원 없으면 우리나라 산업 올스톱입니다. 이건 알고 계시나요?) 예로 중국 어느새 금방 쫒아오잖아요, 북한도 개방해서 일본,독일등이 지원해주면 우리정도 수준되는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래서 경쟁은 가면 갈수록 치열해 질수 밖에 없습니다. 단지 차이는 디자인과 마케팅의 차이입니다.
결코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유독 경상도 출신이 대기업을 운영하므로 발전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식민시대와 전란을 거친후 아무것도 없는 우리민족이 이만큼 국부를 창출한 것은 정말 다행이고, 또한 핵심기술 확보와 국산화률을 높이면서 일류국가로 거듭나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 있습니다. 그런데 말도 안되는 지역감정에 얽매여 있고 냉정시대 유물인 남북 대치관계 부활은 오히려 우리민족의 퇴보를 부를 우려가 높습니다.
역사적인 악평
역사적인 기록이라며 전라도 악담이 많이 나오죠, 이거 죄다 발췌하면 악담없는 도가 없습니다. 경상도 더 심한 악평 많습니다..(경상도 위주로 역사 악담 모으면 얼굴 못들고 다닙니다). 상대적으로 전라도에 좋은평이 많습니다. 호남이 없으면 조선도 없다, 충절 예의 지향이다 등등 그리고 각 지역마다 악담이 계속 등장하는 것은 왕조국가 특성상 견제에 의한 통치방법입니다.
직장생활 해본분들 사장이나 상사들이 악담을 더 많이 하지요 견제심리입니다. 너를 깍아 내려야 내가살기 때문이지요 넘 간단한 이치 아닌가요. 더구나 각 지방 수령관이 부정부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각 지역민 험담하는 것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기본중에 기본입니다.
과거에도 영남이 우월햇다 ?
이부분까지 영남이 건들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불행히도 왜곡이 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뒷글에서 상세히 부연하지요
결론적으로 농경사회에서 전라도와 경상도는 비교대상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인구에서도 차이가 많이 났고 경제적 동력이었던 호남은 특대우는 아니지만 우대를 받았던 지역입니다. 상대적으로 박해와 차별은 경상도 지역이 많이 당햇읍니다.
농경사회에서 경상도는 하나의 변방에 불과햇습니다. 농지와 산물이 풍부한 서해안 지역이 부와 권력을 장악하엿고, 옛부터 전라도는 조선 8도에서도 인구가 30%에 이를 정도로 살고 싶어햇던 곳입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땅과 바다 그리고 뻘이 있어서 호미만 있어도 먹고 산다고 하여 가장 축복받은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살기 위해 경상도로 많이 거지요 똑같은 겁니다.
보리문둥이
참고로 보리문둥이 라는 표현이 있는데 특정지역 폄하가 결코 아닙니다. 이건 영남인들의 서로 부르는 애칭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심각한 특정지역이 받는 오해를 바로 잡아 역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소개합니다.
경상도 연세 많이 드신분들은 아직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네들이 잘먹고 잘 살았지만 우리는 겨우 30년 밖에 되지 않아다고 말이죠.
구한말 간도 이주, 일본진출등 경상도 지역민들이 다수였습니다. 이유는 먹고살기 힘들엇기 때문이지요. 5~60년대만 해도 경상도는 촌스러웟고, 전라도는 교육수준이 높고,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엇으며 부자들이 많았으므로 '예향' 요즘말로 패션너블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단적으로 5~60년대까지도 지역감정이란 것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애초에 농경사회에서 평야지역과 경상도 지역은 비교대상이 될 수가 없었고 인구도 비교할 수 없이 차이가 있엇기 때문입니다.
경상도는 보리문둥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평야가 적고 수자원이 열악한 지역특성상 보리농사를 많이 지었고 보리 특성상 영양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한센병 환자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일제시대 전라도 소록도에 강제 수용한 이유도, 한센병 환자가 경상도인이 많은 관계로 탈출해서 고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고향에서 먼곳으로 수용하게 된것입니다.
이것도 설이 있는데 보리문동(공부하는 아이들)이 변형된거라는 설이 있습니다. 이인좌 난 이후 200년 이상 정계진출이 좌절된 영남인들이 고향에서 서원을 열어 열공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 서원이 경상도가 최다) 그리고 의견을 제출할때는 대표가 상경하여 상소를 올렸다고 하는데(예를 들면 영남 만인소) 이때 한양사람들이 이들을 보고 보리문동들 또 왔네 하였다고 합니다.
유배에 대한 편견
유배에 대한 편견인데 과거 문인은 전라도, 무인은 경상도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배자는 조선팔도를 주기적으로 돌아 다녓습니다. 문인들 유배자가 전라도에 많은 것은 그나마 편한 곳으로 보낸 전관예우라고 보면 됩니다.
반역반란
민감한 부분까지 왜곡이 심하니 정말 할 말 없네요 바로 잡습니다.
반역 반란인데 이거 경상도 정말 할 말 없습니다. 젤 많았습니다.(이유는 농경사회에서 변방이었고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단 다른지역 반란건만 부각시킨거지요. 그리고 같은 반역이라 하더라도 피해를 심하게 당했습니다.
예를 들면 고려시대내내 김사미 효심난등 신라부흥운동 성격의 반란이 발생하고 무수히 진압당한다. 그나마 우대해주던 경주까지 천민주거지역으로 강등됩니다. 천민집단 주거지인 향소부곡 400군데 중 60%가 경상도에 지정될 정도입니다. 고려시대 경상도 인구는 전체 10%정도입니다.
다른지역보다 경상도 지역에 서민들 성씨가 많고 스포츠에서 좋은 타자와 힘 있는 장사들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평야지역은 상대적으로 학자, 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되지요
조선시대에는 이인좌 난을 계기로 경상도는 과거시험까지 금지됩니다. 지역차별 성격이 전혀 아닙니다. 조선 중기 이후로 자리는 한정돼 있고 양반은 늘어나다 보니 경제적 영향력이 적은 경상도 지역의 출사길을 막아 버린 겁니다. 평야지역은 반란은 일어나도 반란으로만 끝나지요 출사길까지 막지 못합니다. 경제적인 영향력이 너무 컷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반대지요. 같은 사건 잘못이더라도 경상도는 다른지역보다도 상대적으로 면피합니다. 이쯤돼면 이해가시겟죠
역사적인 인물
정말 고치고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 많네요
유독 영남 인물과 지역만 역사에 강조되는데, 그러다 보니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빈약해지고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는 원인이 됩니다. 식민사관과 다를 게 무엇이 있겠습니다. 고치고 바로 잡아야 합니다.
조선중기의 이황,유성룡등만 강조되고 그나마 후기는 이인과 난을 계기로 중앙정계진출이 좌절됩니다. 대부분 경상도 관료는 경주지역, 안동지역만 등용이 이뤄지며, 이또한 지역안배차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나마 고려시대에는 경주마저도 강등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그리고 이들 또한 본관만 경상도일뿐 살기 용이한 평야지역에 거주한 토착민인 경우가 많앗습니다..
일례로 조선 후기 세도가인 안동김씨는 서울 경기지역이 주류이고 그들 스스로도 실질 거주지인 장동김씨라고 자칭하였습니다. 굳이 안동김씨임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실상 조선과 유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곳은 조선의 제2의 수도라 할 수 있는 전주입니다. 역사적인 유물만 봐도 안동과 게임이 안되죠 그런데 배제를 당한부분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훈요십조 논란(필독입니다.)
경상도 독점을 위한 가장 한심한 해석입니다. 후손들에게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고려 창건시 나주지역의 호족의 결정적인 도움을 받앗고 이후 농경사회에서 전라도 위상은 남달랏습니다.(옛부터 농경사회에서 호남은 토지, 바다, 뻘 3개농토가 있다고 하여서 가장 축복받은 땅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두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조작설
구술로만 전해져 오던 훈요십조가 등장한 건 8대 헌종때인데 거란침입으로 소실된 기록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최항과 최제안이 경상도 관료인데, 최제안이 최항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며 가져오게 되면서 조작설이 나오게 됩니다(박해받던 시절에 대한 반발심리이도 있지만 특정지역을 배제하여 상대적인 이익을 누릴려는 정치적인 목적일 가능성)
해석의 차이
지도를 보면서 봅시다. 평소 지도 같은 것은 안보는 분 많죠 ㅎ ㅎ
차령산맥이남 공주강 외 지역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차령산맥 이하라 하게 되면 경상지역, 충청지역, 전라지역 모두 포함됩니다.(고려영토 2/3에 해당합니다.) 경상도는 소백산맥이 따로 있으니 괜찮다구요 ! 그럼 전라도는 노령산맥이 있으니 괜찮겠네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공주강(금강이라는 통설) 외라는 표현인데 금강은 거의 차령산맥 방향으로 곡선도 아닌 u자 형태로 볼록합니다. 즉 공주강(금강) 외라함은 공주강(금강) 위를 지칭하는 겁니다. 설령 아래라 지칭해도 거의 u장형태 안의 지역에 불과합니다. 그럼 다시 정확히 해석하면 전라도는 해당사항 없고 경상도만 지칭하는 겁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닙니까?
그리고 한자어 특성상 외라는 표현은 바깥이라는 표현과 위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었습니다.
즉 고려초 후백제계가 주류인 상황에서 전혀 이치에 맞지않고 다른 훈요십조 내용과 상반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또한 2대 혜종의 어머니는 나주출신입니다.
따라서 실제 기록이라면 차령이남 공주강 위 특정지역만 한정한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실질적으로 이지역에서 왕건이 고난을 많이 격었다고 합니다.
지역감정의 폐혜
지역감정의 폐혜는 상당히 심각합니다. 경상도 권력은 권좌에 있을 때는 당연하게 생각햇지만 야당 10년 하면서 향수를 강하게 느끼고 있으며, 전라도는 아직 배고프다고 느끼고 있고, 충청도도 그동안 양반소리를 듣는게 더 좋아 속으로만 끙끙 앓다가 최근에는 우리도 곁불만 쬐지 말자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강원도도 우리지역 출신 대통령 만들어 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즉 나라와 민족의 장래보다는 지역주의 한탕주의 중심의 폐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된 것에 대해 경상도 권력가는 역사 앞에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영남 권력이 과거의 역사를 인정하고 현재의 주도권의 당위성을 강조했으면 지금과 같은 심각한 지역감정이 발생했을까요 ?
역사 왜곡이 심각하고 이를 계몽하지 않으면 지역감정을 치유 할 수 없고, 다른 지역의 훌륭한 인재가 배제 되면 그만큼 민족적인 손실이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라도 위주로 역사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지요.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경상도 지역은 박정희 이후로 이미 부각될 만큼 부각이 되었습니다.
남북국시대(통일신라 , 발해)
역사적으로 타민족 끌어들인것은 잘못 된거지만 이후 통일 왕조가 유지되는 기틀을 제공하는 시기입니다.
그러지 않앗으면 아직까지도 한반도에 여러나라가 존재햇을 가능성 배제 못합니다.
통일신라 화랑정신 김유신 불국사 첨성대 - 고구려 백제 문명은 파괴된 상태이므로 강조하는 건 이해하지만
천년이 지난 상황에서 강조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잊혀진 고구려 백제 문명도 조명받아야 하는것이 합당합니다. 가야는 망햇어도 계속 재조명 해주고 부각시켜 주잖아요 문제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발해)를 포함한 남북국 시대라고 해야 옳습니다. 지금 분단되어 있지만 북한을 다른 민족 취급하지 않잖아요 같은 이치입니다.
고려시대
왕건은 타민족을 끌여들여 통일한 신라에 대해 감정이 좋지 못햇었고. 신라가 붕괴된지 얼마 안된 시기이므로 신라계를 중용할 이유가 전혀 없지요. 바보가 아닌 이상 말입니다. 물론 통치와 제도 노하우를 참고해야 하므로 일부 등용하긴 합니다. 회사 m&a를 해도 일단 다 정리하지는 않잖아요.
고려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신라계가 장악했다는 말을 하면 배꼽잡고 웃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고려초 권력은 백제계가 장악합니다. 왕건이 애지중지한 신숭겸 장군아시죠 전라도 곡성출신입니다. 전라도 출신 왕비와 왕자, 도선국사 최지몽등 중용하여 권력의 절반을 전라도출신에게 의지합니다. 이후 개성주변 경기도 권력가들이 많이 등장(경상도가 본관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살기편한 평야지역으로 거지지를 옮긴 토착민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호남지역 관료는 이후로도 무수히 많이 배출됩니다.
경상도는 김사미/효심난등(당시로 보면 신라재건운동일수도 있죠)으로 그나마 우대하던 경주까지 천민주거지역으로 강등됩니다. 밀양의 오치재는 까마귀가 반란군을 뜯어먹는다는 뜻입니다.
이후로도 고려시대 내내 신라부흥 운동성격을 띤 반란이 일어나고 무수히 진압당합니다.
참고로 천민주거단지인 향소부곡의 400여개중 200개가 넘는 향소부곡을 경상도에 지정합니다(농경사회에서 경상도는 인구가 적엇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다른지역보다 경상도 지역에 서민들 성씨가 많고 스포츠에서 좋은 타자와 힘 있는 장사들이 많이 배출되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평야지역은 상대적으로 학자, 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되지요
거란등 침략할때 왕의 피난처는 전라도 지역이었습니다. 이또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상도는 과거 신라본토였기에 불안한 것이 이유엿고. 전라도지역은 풍부한 산물과 인구가 형성되어 있어서 재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전라도는 사실상 왕조의 발상지로 우대를 받던 지역입니다. 이성계가 전주이씨이며 전주에 경기전을 지여 6대조와 이성계를 모시고 선비들로 하여금 떠받들도록 하였습니다. 임진왜란때 전라도지역의 피해가 적고 전주사고가 유지된건 왕조차원에서 필사적으로 방어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경제적으론 농지보존이겟죠)
황희정승을 대표로(장수황씨), 전주이씨,전주최씨,반남박씨,광산김씨,나주 남평문씨,순천박씨등 조선을 관통하는 명문가 집안입니다..(vs 경상도 안동지역, 경주지역로 보시면 틀림 없습니다.) 유교사회 조선에서 본관은 절대적인 인사기준이기 때문이죠
결정적으로 조선후기때에는 이인좌의 난(남인출신)을 계기로 반란은 충청도에서 일어났고 다른지역에서도 움직임이 있었지만 영남지역은 남인중심으로 반란이 일어나는 실질적인 액션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대구에 영남토벌비를 세우고 반역향으로 못박고 100년간 과거시험금지가 시행됩니다.(그나마 추풍령 넘어 어렵게 과거시험을 보던 영남지역의 출사길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참고로 과거 사색당파는 학파와 주장의 차이로 갈렷고 지역적인 특색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호남또한 차별이 있었는데 정여립 모반사건입니다. 그런데 실제 액션은 없었고 모략에 의한 당파전쟁에 의한 희생인데 이때 호남 사대부가 싹쓸이 당합니다. 그런데 운좋게 몇년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호남 지역민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면피하고 이순신과 선조는 호남이 없으면 조선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지역도 문제가 발생하면 반역도로 찍힙니다. 충청도는 도까지 강등될 뻔 했습니다.
단지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이 적은 영남이 피해가 심했습니다.
일제시대
조선말 일제의 침탈때 가장 극렬하게 저항햇던 곳이 전라도이며 또한 수탈도 심했읍니다. 그러한 사실을 일제가 악의적으로 탄압하면서 식민사관에도 인용됩니다.
건국초기
건국을 주도한 세력은 한민당인데 전라도가 본거지이며 이승만 대통령은 전주이씨입니다. 사실상 60년대까지 전라도가 주류엿습니다. 박정희도 윤보선과 선거에서 이긴것은 전라도의 압도적인 지지 덕분이죠
박정희 시대 이후
결정적으로 영남지역이 통일신라이후 천년만에 한반도의 주류로 등장한 역사적인 시기입니다.
재계의 10대그룹 대부분이 경상도 출신들로 이뤄지고 전라도 뿐만 아니라 다른지역도 경제개발에서 배제되게 됩니다 물론 냉전시대 미국과 일본축인 영남지역이 개발이 이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역사의 이치입니다. 당분간 한반도의 주류는 경상도가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지만 왕조국가도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나친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지역감정은 어느지역 어느 사회에나 존재합니다. 지금은 경상도가 주류인 사회이고 경제개발의 결정적인 공로를 세웟습니다. 전라도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야 겠지요, 그런데 지나치게 왜곡된 역사에 자존감을 상실한 전라도가 이해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윗글도 전라도 위주로 작성하였지만 어디까지나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전라도 분들이 상심할 이유가 전혀 없고, 다른지역 사람들이 정치인들이 조작한 지역감정에 휩쓸려 일방적으로 특정지역을 매도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다행히 저부터 요즘 젊은세대들은 정치적인 지역감정에 휩쓸린 경우는 매우 드물어진 것 같습니다.
농경사회에 권력과 부를 누리던 전라도, 산업사회에서 국부를 일군 경상도 지역감정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단 건전한 경쟁을 통해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왕조시대를 관통하여 대부분을 주류지역으로 대접받던 전라도가 지나친 피해의식을 가질만한 역사적인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부디 상대를 인정하는 여유를 찾기를 바라며, 경상도 지역은 산업화의 주력세력이자 지리적으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최일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앞으로 국부를 키우고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역활을 담당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주의 이므로 지나친 독점은 모두에게 좋지만은 않은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해안 시대가 도래할 확률이 높으므로 좀더 거시적으로 그리고 대국적으로 발전했으면 합니다.
지역감정이 지나치면 망국의 지름길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따라서 정확한 역사지식에 근거하여 특정지역이 지나치게 왜곡되지 않도록 권장하고 선도하는 정치인들의 역활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상호 존중하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건전한 지역경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올립니다. 짧게 되지 않네요 역사를 관통하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