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아십니까 !!!!!!!!!!!!

킥오프넘 작성일 11.01.13 00: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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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살던  성서 초등학교

 

 학생 5명이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갔는데 아이들은 결국 돌아오

 

지 않았으며, 부모들은 경찰서에 실종 사건을 신고했습니다.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사건이였으나 아직도 미궁에 빠진 사건 입니다.

 

그후 11년이 지난 2002년 9월 26일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등학교 신축 공사장에

 

서 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었으나, 범인은 끝내 잡지 못했습니다. 2006년 3월 25일자로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남에 따라서 이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1990년대에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으며 경찰과 군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여

 

아이들을 찾았으나 2002년 11년 6개월 만에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기까지 전혀 해결

 

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어린이들이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고 잘못 알려져 흔히 개구리 소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사건 당시 경찰은 그동안 연인원 약 50만 명을 동원, 이들의 행방을 찾았으나, 잘못된

 

 제보와 소문만 무성할 뿐 지금까지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하였으며, 1993년에는 실종

 

어린이 부모들이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사건 발생 후 5년이 지

 

난 1996년에는 수사본부장이 대구경찰청 청장에서 달서경찰서장으로 바뀌고 각 경찰서

 

에서 차출된 수사요원들도 복귀하였습니다.


경찰은 11년 동안 국내 단일 실종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의 인력을 동원하였으며,

 

 제보도 잇따라 1991년 325건, 1992년 97건, 1993년 131건 등이 접수되었지만 모두 허

 

위였습니다.

이 사건은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어린이는 물론 우체부 등 온 국민이 개구리

 

 소년 찾기 운동에 참여했으며, 1992년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 "돌아오라 개구리 소

 

년"이 제작되었습니다.그러던중2002년 9월 26일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에서 유골

 

 4구와 신발 5켤레가 발견되었고

경북대학교법의학팀에 의해 개구리소년은 타살로 결론

 

내려졌습니다. 2004년 3월 26일 경북대학교 병원 영안실에서 합동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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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건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1. 개구리 소년들은 우연히 탄피를 줍게 되고 그것을 더 찾으러 다니다가

 

    우연히 군사지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군인은 북한간첩으로 착각 한명을 사살후

 

     큰 잘못을 저지른게 발각될까 우려 나머지 아이들을 사살했다는 의견.

 

   (당시 군부대 주변 총성과 어린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는 제보 당시

    정치인 및 군간부의 사건은폐의 가능성)

 

 

2. 정신이상자의 소행

 

    당시 정신이상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제보에 의하면

 

    유골이 발견된 장소를 정확히 지적했다고함.

 

 

 

 

3. 살인범은 아이들 아버지중 한명이다?

 

  당시 아이들 아버지중 한명이 용의자 선상에 오르며 사람들의 비난을 사기도함/.

 

 

 

4. 당시 밀렵꾼의 총기사고다?

 

  밀렵꾼이 사냥을 하다가 실수로 한명을 죽이게 되자 나머지 아이들도 사살했다는 추 정

 

 

 

공소시효는 벌써 끝난지 오래입니다.

 

공소시효 그딴거 끝났을 지라도 누가 죽였는지는 밝혀야 돌아가신 분들도

 

덜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십몇년이 지난 지금 잊혀져 가고 있는 사건입니다.

 

지금 살아있었다면 30대가 되어있겠죠 누군가의 아버지로 가장으로 행복한 가정을

 

꾸릴수 있었는데 너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합니다...

 

너무나도 무서웠을 아이들.

 

엄마가 보고싶어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아이들..

 

그리고 차가운 흙속에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누군가에 의해 그렇게 묻혀져 버린 그들.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1991년 3월 26일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댓글중에 있던건데요

 

나는 개구리소년 사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분석을 내리고

 

그에 따른 수사가 이뤄지기를 관계 당국에 바라면서 이 보고서를 올립니다.

 

 

 

 


 1.  아이들이 입은 상처 자국은 3명 모두 같은 무기로 나타났고 두개골에 나타난

  

  <ㄷ>자형 무기는 정확히 가위로 판명됐다.

  

  가위는 휴대하고 다니기에 부적절한 도구라서 집이 아닌 외부에서 여러 명이 가위로

  

  가격을 했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2.   3명 중, 우철원 25군데, 조호연과 김영규 두 명이 입은 25군데를 합해 3명이 무려 50여

  

  차례나 가격을 당했다.

  

  따라서 만일 아이들이 결박된 상태였다면 아이들은 이미 저항력이 상실된 상태이기

  

  때문에 3명에게 무려 50여 차례나 * 듯이 가격할 필요성이 없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결박된 상태가 아니라는 입증이다.

  

  반대로 아이들이 결박되지 않은 상태였다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고

   

  최소한 한 명이라도 달아날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범인에겐 3명에게 50여 차례나 가격할 시간적 여유가 주어질 수가 없다.

 

 


3.  그렇다면 아이들은 일정 간격을 두고 한 명씩 순차적으로 공격을 당했다는 것 만이

  

  가장 설득력을 실어준다. 따라서 순차적 공격을 당할만한 장소라면 외부인의 출입이 극히           

  

  제한된 가정집만이 가장 유력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가위는 한 집에 하나밖에 없는 도구이고 3명은 같은 가위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범인은 반드시 한사람의 소행이라는 결론이 떨어진다.

  

 


4. 아이들의 나이는 9세에서 13세의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범인이 성인이고, 또 남자라면

  

  주먹과 발길질만으로 제압이 충분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굳이 흉기를 사

  

  용해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행에 사용한 무기가 가위임을 감안해볼 때 범인은 여자(어른)가 분명하다는

  

  최종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5.  2002년 9월 26일 오전 11시 30분 경.

  

  유골이 와룡산에 묻혀있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관(6명)이 신고자 등, 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후 5시경까지 장장 5∼6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유골 4구를 발굴했고

  

  뒤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온 유족들도 유골 4구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즉시 현장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전경을 투입하여 다음날 아침까지 철야 경비를

  

  섰는데 다음날 발굴현장이 아닌 100여미터 떨어진 다른 곳에서 1구를 찾았다며 밤사이에

   

  느닷없이 1구가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서 중점이 되는 것은 유해발굴 첫날 수거한 유류품 중 두개골 4구팬티가 4점,

  

   그리고 신발만 5켤레가 나왔다는 것이다. 두개골이 4구이고, 팬티가 4점이면

  

  신발도 4점이어야 하는데 신발만 5점이며 두개골 1구는 100여 미터 떨어진 다른 곳에서

 

  발견됐다. 그렇다면 신발 1점도 추가로 발견된 장소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따라서 범인은 아이들 4명을 죽였고, 의도적으로 신발만 한 켤레를 더 집어 넣었다는

  

  계산이며 추가로 발견된 1구의 정체는 개구리소년이 아니라는 명백한 입증이 된다.

 


6.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김영규 군의 두개골은 점퍼에 쌓인 채 엉덩이에 붙어있

  

   었으므로 제2 장소로 이장한 것은 움직 일 수 없는 기정사실이다.

   

  생각해 보라!

   

  유골을 이장할 때 범인은 5구를 한꺼번에 묻지, 4구 만 한곳에 묻고 나머지 1구를 다른

  

  곳에 버렸다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따라서 유골이 4구가 나왔다는 것은 즉 유족 중, 한사람이 범인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증폭시키고도 남는다.

  

  아울러 공식적으로 dna 감식기록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한 아이들 5명 중, 1명은 어딘

  

  가에 반드시 살아있다는 의혹을 떨쳐낼 수는 없다.

 


7.  어떤 사건을 막론하고 처음엔 가족부터 점차 주변인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수사의

  

  기본인데 경찰은 오직 실종 쪽으로만 몰고 갔었고. 뜻밖에도 유골이 4구만 나오자 당황

  

  한나머지 어디서 1구를 대체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렇치 않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8.  현재, 개구리소년 해당 경찰서 전직 수사관이 경북대 의대 법의학 교수인 某씨를

   

  <수사기밀 유출> 혐의 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에 있다.

  

  이제 공소시효가 불과 8∼9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공개수사의 원칙을 무시하고

  

  수사기밀 누출 혐의로 고발했다는 것은 국민들을 우롱한 처사일 뿐만 아니라

  

  유전자 감식에 무슨 말못할 비밀이 담겨있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9.  여기에다 유족 중 한사람은 경제력이 좋고 게다가 某씨의 사촌 형이 대구의 모 경찰서

  

  고급 간부 였다는 점이 가족 수사를 비켜간 것 아니냐는 강한 의혹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불거지고 있다.

  

 

 

=정황 자료=

 

10. 유골 발굴 당시 유골은 4구만 나왔고, 1구는 다음날 부근에서 발견함.

 

11. 국과수로 올라간 유골 중 1구는 경북대 의대로 되돌려 보냄

 

12. 유골발굴 당시 한 아이의 누나(김모양 당 11세)의 행적이 일주일간 행방불명.

 

13. 아이가 집을 나갔으면 점심때가 되면 어련히 들어올텐데 실종 당일 오전 11시경에

  한 아이의 엄마는 아들이 없어졌다며 찾으러 나선 점.

 

14. 한 아이의 아버지는 유족들에게 <아이들이 실종됐다. 동네방송을 해달라> 고

  성화를 댔고 아이들이 와룡산으로 갔다며 유족들을 와룡산으로 이끌고 간 점.

 

15. 유족 중, 한아이의 할머니가 한 아이의 집에 가보니 그 집은 평소 문이 잠기는 집이

  아닌데 그날따라 대문인지 골방인지가 잠겨 있었다는 점.

 

16. 아이들이 실종된 지 두 달 후에 한 아이의 집으로 걸려온 전화 내용 중

  그 아이의 엄마는 아들과의 통화에서 보였던 덤덤한 대화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로서의

  행동이 분명 아니라는 점.

 

17. 유족 중에 범행동기로 작용될 수 있는 괴소문(공식적으론 말할 수 없음)이 아이들 실종

  전부터 온동네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것이 범행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내포돼 있다.

 

18. 발굴 당시 유골이 4구만 나왔다는 것은 개구리 소년 한 명이 살아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

  므로 한 명은 반드시 살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부모가 자식을 죽일 수는 없기 때문 이다.

  

 

 

 

 

그렇다면 범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결정이 난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 위에서 밝힌바와 같이

1)   특히 아이들이 없어지면 경찰에 신고하고 좀더 기다리는 것이 통례인데

   

  그 아버지는 다음날 아침 즉각 방송국에 실종신고를 내는 등,

  

  처음부터 일사천리로 실종으로 몰고 가기 위한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렇다면 경찰은 발굴된 1구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며,

  

  법의학 팀들도 경찰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을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중요한 요소를 언론들도 전혀 의심을 갖지 못했고,

  

  유골이 마치 처음부터 5구가 발굴된 것처럼 보도됐다는 사실에 대해 매우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시민단체 또는 각 매스컴은 지금이라도 유전자 감식 자료를 내사하여

  

  그 결과를 국민 앞에 공개하고 그에 따른 확실한 재수사가 이뤄지기를 시민의 한사람으

  

  로서 강력히 촉구하 는 바입니다.

 

  

*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나는 경북대 의대 법의학 교수인 모 교수에게

 

  유골 발굴 첫날 4구만 나왔는데 밤사이에 어떻게 해서 1구가 늘어난 것인지

 

 거기에 대한 답변과 아이들 5명의 유전자가 모두 확인이 됐는가? 라는 6개항에 걸친 질의서

 

 의 내 용증명을 보냈으나 현재까지 3주가 다 돼가도록 답변이 없다.

 

 

 

자, 이제 정리를 합시다.

 

이건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랄일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이상태에서 정체된다면

그야말로 치안이 마비된 상태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접하는 국민들은 더이상의 정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 저자에 대해 대단하니 뭐니 하는 단순 격려에 머물것이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경찰, 검찰, 시민단체, 여성단체, 각 공공기관, 그리고 청와대에까지

진정을 올리는 범 국민적 자세로 전환하여 사건 해결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광범위하게 알려나가야 할 것임을 재삼 강조하는 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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