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 명문가 이회영의 후손들

21343아 작성일 12.01.12 12: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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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전 재산을 바친 이회영 선생 일가의 사연이 전해져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케 했다.

 

8월 14일 방송된 MBC ‘신비한TV-서프라이즈’에서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우당 이회영 선생의 삶을 재조명 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조선 땅 최고의 부자이자 영의정을 지낸 선조 이항복의 후손으로 누구나 부러워할 이름난 집안의 자제였다.

하지만 1910년 이회영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을사조약이 발발, 이회영은 집과 땅을 포함한 전 재산을 처분하며 만주로 향했다.

 

이회영 뿐만 아니라 다섯 형제 역시 전 재산을 처분했고 당시 40만원이라는 돈은 현재 가치로 6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이회영이 급하게 처분하느라 제 값을 받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자면 약 2조원에 달할 정도다.

 

이 뿐만 아니라 이회영은 노비 문서 역시 불태웠다. 하지만 노비들은 자유를 택하는 대신 이회영과 함께 만주로 떠나 그와 뜻을 함께 하길 원했다. 이회영 선생의 생전 덕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만주로 넘어간 이회영 선생은 독립 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를 세웠고 3,000여명의 독립군을 배출해 냈다. 이들은 청산리 전투 등에 출전하며 큰 공을 세웠다.

 

10여 년동안 독립 운동이 지속되면서 이회영 선생의 일가는 날로 궁핍해 졌다. 하루의 한끼를 제대로 먹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일본 헌병들에게 붙잡혀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일본 헌병의 혹독한 고문은 그에게 조국의 해방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회영 선생의 여섯 형제 중 5명은 모두 독립 운동을 하던 중 사망했고 이회영의 동생 이시영만이 조국의 해방을 보고 초대 부통령까지 지냈다.

 

이회영 일가의 사연은 부인 이은숙이 쓴 ‘서간도시종기’에 그대로 담겨 있다. 민족 반역자들이 판을 치던 시기 꿋꿋히 나라를 위해 힘썼던 이회영 선생의 이야기야 말로 오늘날 사회 지도층이 가져야 할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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