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수복 시리즈1 - 918만주사변

새싹반일진 작성일 12.05.04 23: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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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필연적으로 망한다 시리즈에 이어, 만주수복 시리즈를 연재 하겠슴돠.

중국은 망한다 시리즈 아직 안 끝낫음. 고건 나중에 삘리 올때 연재 하게스빈다.

커피 안빨고는 도저히 장편을 쓸수가 없어서....ㅡㅡ;


만주수복 시리즈에서는 왜 만주수복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또한 그 실현의 가능성 등에 대해 서술하고, 더 나아가 왜 중국이 분열되는지를 이야기 하겠슴돠. 

물론 제 개인적인 견해라고 보실수 있지만 한가지 가능성으로 참고하여 주시고, 혹시 아나요, 나중의 일을. ㅎㅎ


장학량에 관한 자료들을 보면서 대충 느낀것을 쓰게스빈다.

918만주사변, 일제가 1931년9월18일 심양에서 발동한 만주점령사건, 7일밖에 걸리지 않앗지요.

외부에 알려진것과 달리, 사변을 일으킨게 일본군부가 아닌, 심양주둔 일본군관 두명입니다.

그당시 만주에 주둔한 일본군은 2만명좌우, 조선에 군사5만명좌우 있었죠. 그리고 공군이 없는 상태에 탱크는 커녕 장갑차도 적엇습니다.

그때 당시 동북군벌인 장학량의 군사는 관내15만, 만주지역20만, 정규군이고; 비행기 500대도 있었죠.

장학량의 실력을 일본군부가 평가했었고, 만주점령은 현상태로 이루어질수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심양일본군군관의 제안이 중지되며, 일본에서는 관동군이 서뿔리 사고를 치는것을 제지하려고 사람을 보냅니다.

심양의 관동군군관은 어쩔수 없이 계획보다 며칠 앞당겨 군사 3천명으로 사변을 일으켰지요. 그뒤로 일본군 전체가 어쩔수없이 군사를 발동하는데, 동북3성을 전부 점령하는데 7일 걸렸습니다. 그뒤로 바로 만주국을 건립하고 부의를 만주국황제로 세웁니다.

133613884475198.jpg 탱크 대신 마차.

여기서 왜 쉽게 만주가 먹혔는지를 분석하지요.


1-내부분열:

그당시 중국은 군벌분열상태에다, 국민정부는 공산당소멸에 힘을 기우릴때입니다. 그당시 장개석이 중국을 통일할수 있은 원인은 장학량에게 북경과 대련 등을 내주면서 장학량의 15만현대군을 장성이남으로 끌어들인게 원인이 됩니다.장학량이 그당시 중국내 가장 큰 군벌이고 실력이 가장 강대했죠. 이러한 상항에서 만약 일본군과 싸우게 되면, 장학량의 군사세력이 많이 감소될것을 우려하게 됩니다,여기서 장학량은 자신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본군에 저항하지 않은것으로 보입니다

.(미니키보드 새로 산게 아주 적응이 안되네여...미치긋네...)

2- 정신적 두려움:
장학량이나 장개석이나 전부 일본유학파고 일본의 군사화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일본을 두려워 합니다. 장학량은 일본군 1명이 중국군 10명을 이긴다고 말한바 있듯이, 일본에 대한 과도한 심리적 두려움이 존재하니다. 이점도 부저항정책을 펼친 원인이 된다고 봅니다. 이때 장학량의 나이 30대초반입니다. 

중국인들은 자고로 북호와 동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뭐 지그 보면 유치한거지만, 대학시절, 한족애들이 저와 눈이 마주치면 바로 눈길을 피하고, 2학년전학기까지는 아무도 내옆에 와서 앉지 못하더라구요. 그리고 군사훈련때 장교가 지가 변방에 근무할때 보니 소수민족들이 정말 용맹하더라고 하더이다. 

별도의 얘기지만, 신체적으로도 한족들이 엄청 부실하죠. 이건 제가 오랜시간 중국에서 살아오면서 느낀건데. 정말 동아병부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허접하다구요.

133614067079681.jpg 나귀 타고 다님.

3- 중국식 총명:

이걸 한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울수 있는데, 중국식 총명, 한국인처럼 1%가능성을 보고 달려들지 않습니다. 안될것 같으면 괜한 희생을 하지 않으려는 생존철학이 있죠.그때 장학량고 장교들 고위층들의 공동한 사상이 그러했습니다. 관동군과 붙으면 그뒤 조선군이 있고 일본본토군대가 따라 올것이고. 그러게 되면 일본을 이길수 없다는거죠. 싸우기전에 미리 결과를 인지하는것이죠. 확실히 맞는 사유이긴 하죠. 그리고 일본은 그냥 잠시 들어올뿐 기타 국가들의 간섭으로 오래 있지는 못할거라고 판단합니다. 근데 확실히 전선이 길어지고 미국의 참전 등으로 얼마 있지 못하고 패전하죠. 여기까지도 미리 계산해서 답이 나왔다는거죠. 그래서 공산당정벌에 힘을 기울이고, 일본의 침투에는 부저항저책을 펼치게 됩니다.

별도의 얘기지만, 그후 장학량이 공산당에 설득되어 장개석을 납치하는 서안사변을 일으킴으로서 국민정부가 공산당정벌을 정지하게 되고 일본군과 정면전으로 싸우게 되는데, 것땜에 중국의 역사가 바뀐거죠. 훗날 공산당의 정권교체에 날개를 달아주게 되고, 북한이라는 괴뢰정권까지 부추키게 되죠. 장학량 이넘 진짜 골때리는 넘입니다.

133614014192591.jpg 걸어다님.

4- 중국인의 이기심:

중국에는 엘리트는 매국자다 라는 말이 있습죠... 중국인은 국가이익이나 민족이익보다는 개인이익을 더 중요시 합니다. 중국에서 우리중국~ 하는 자들은 거의 다수 백성들이고, 기득권층이나 엘리트층은 자신이 중국인이라는게 껄끄럽다고 여기죠. 이러한 개인주의가 중국이라는 나라로 하여금 뭉칠수가 없게 되게 합니다. 혀재 공산당정권 겉보기에 단합된것 같지만, 지역파, 공산당내부에도 여러가지 파벌, 그리고 여러 열강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세력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만주 전체를 내주더라도 자신의 개인이익을 손해보고 싶지는 않은거죠. 그리고 그당시 징수시스템으로는 만주의 3천만 인구한테서 별로 세그 거둬 들일것도 없는 그러한 상황이였죠.

현재 중국에서도 고위간부들이 외국과 협상할때도 자신의 개인이익때문에 여러모로 양보를 하는 경우가 아주 많지요. (예하면 프랑스에 자식이 유학하고 있다던지, 독일은행에 몰래 수겨둔 자산이 있다든지, 그러면 국영회사를 겸직하는 당위서기들이 까르푸와 협상할때, 폭스와겐과 협상할때 이래저래 양보를 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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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되고 중국의 경제가 붕괴되고, 미국이 이란을 없앤뒤, 중국에 칼을 들이미는 그때, 일본은 바다로 한국은 육지로 중국을 포위하게 되며, 러시아에게 적당한 이익을 주고 눈감게 하거나 러시아도 끌어들여 중국을 잡아먹게 하면, 그때가서 가장 참조할 가치가 있는게 바로 만주사변일것입니다. 

그당시 일본이 만주에서 석유를 찾아내지 못한게 후날 태평양전쟁에서 미국과 싸우기 힘들어진 이유중 하나인데, 역사는 참 재밌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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