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 속 '올림픽 환영축제', 누굴 위한 행사였나?

가자서 작성일 12.08.17 17: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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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 속 '올림픽 환영축제', 누굴 위한 행사였나?

 

던올림픽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인 우리 선수단이 돌아왔다.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종합 순위 5위를 기록한 선수단은 당초 목표였던 '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를 훌쩍 초과 달성하면서 찜통더위에 시달리던 국민들에게 시원하고 짜릿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우리에게 만만한 ‘메달 밭’이 아니었던 펜싱, 체조, 축구, 복싱 등에서 깜짝 메달이 쏟아졌고 펜싱 남자 단체 사브르에서는 한국의 올림픽 사상 100번째 금메달이 나왔다. 수영 박태환의 실격 번복, 유도 조준호의 판정 번복, 펜싱 신아람의 ‘멈추지 않은 1초’ 등 오심 사건들이 국민들을 분노케 했고 여자 배드민턴의 ‘져주기’가 오점으로 기록됐지만 역도 장미란의 ‘바벨 키스’와 레슬링 김현우의 ‘멍든 눈’은 깊은 감동을 남겼다.

 

  2461_4713_4520.jpg   ▲ 개그맨 김준현(왼쪽)과 김원효가 선수단 앞에서 진행을 하고 있다. ⓒ KBS 화면캡처

선수들 귀국길 막았던 대한체육회

 

그러나 올림픽을 대국민 홍보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대한체육회의 무리수가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귀국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1500m 자유형 결승을 끝으로 지난 5일 모든 경기를 마친 박태환은 7일 오후 런던에서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으나 ‘메달리스트들은 13일 폐막식이 끝날 때까지 남아 달라’는 대한체육회의 요청에 귀국 날짜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고, 도망을 쳐서라도 돌아가고 싶다’던 박태환은 결국 지난 11일 인천공항에 내렸다.

 

박태환에 이어 체조 양학선, 복싱 신종훈, 펜싱과 축구대표팀 등이 줄줄이 귀국함으로써 대한체육회의 요청은 무색하게 됐지만 14일 선수단 본진의 귀국에 맞춰 마련된 행사들이 피곤한 선수들에게 끝까지 부담을 주었다. 선수단 본진은 미리 귀국한 선수들과 함께 이날 인천공항에서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가진데 이어 올림픽 특집방송 출연을 위해 서울 여의도로 이동했다. 



밤 8시 5분, 여의도 공원에서 '2012 런던올림픽 선수단 환영 국민 대축제'가 열렸다. 17일 동안 땀과 눈물을 쏟고 돌아온 선수단을 위로하고 환영한다는 의미의 행사였지만 선수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다. 카메라에 잡힌 선수들은 공연을 즐기기보다 스마트폰을 더 자주 들여다보는 모습이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메달리스트들의 호소

 

진행자로 나선 이지애, 조우종, 전현무 아나운서 등은 유도의 김재범, 조준호, 송대남, 레슬링의 김현우, 태권도의 황경선, 이대훈, 체조 양학선 등을 무대 위로 불러 인터뷰했다. “올림픽이 끝났는데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김현우는 “빨리 집에 가서 엄마가 끓여주시는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답했다.



황경선도 “귀국한 뒤 아직 엄마를 보지 못했는데 빨리 집에 가서 안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4년간 가족들의 품 대신 태릉선수촌에서 땀을 쏟아야 했던 선수들인데, 올림픽이 끝나도 ‘공식 행사’에 붙잡혀 가족 상봉을 미뤄야 하는 처지가 안타깝게 비쳐졌다. 

 

  2461_4714_4549.jpg   ▲ 태권도 금메달 2연패를 달성한 황경선 선수가 인터뷰 중이다. ⓒ KBS 화면캡처

이날 ‘국민 대축제’가 진행되는 내내 비가 내렸다. 진행자들이 우산을 써야할 만큼 빗줄기가 쏟아졌다. 야외에 설치된 특설 무대는 미끄러웠다. 



그 무대에서 양학선은 셔플 댄스를 췄고, 김재범, 조준호, 송대남은 ‘춤 3종 세트’를 선보여야 했다. 전현무 아나운서가 신아람에게 “여기 있는 조우종 아나운서와 저 둘 중에 이상형을 고르신다면? 둘 중 하나 안 고르면 죽어야 돼요”라고 말하는 등 무리한 질문이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다.

 

진행도 산만했다. 김지연과 신아람이 유재석의 ‘말하는 대로’를 부른 뒤 진행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는 도중 나머지 펜싱 선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는 바람에 둘의 인터뷰가 끊어지기도 했다. 



기보배와 김법민이 아이유의 ‘잔소리’를 부르는 동안 가사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선수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카메라에 잡혔고, 간주 중 당황한 기보배의 “아 뭐야…” 하는 소리가 그대로 전파를 탔다. 축하 공연 순서에서 이지애 아나운서가 아이돌 그룹 비스트를 소개했는데 무대에는 샤이니가 올라오기도 했다. 

 

  2461_4715_4629.jpg   ▲ (왼쪽부터) 조준호, 김재범, 송대남 선수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 KBS 화면캡처

빗속에서 100분간 진행된 ‘국민 대축제’를 편안하게 즐기는 선수들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었다. 현장에 함께 했던 관객과 TV로 지켜본 시청자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심신이 지쳐있을 선수들이 하염없이 비를 맞고 있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은 안타까움을 느꼈다. 대한체육회 등 관련 단체들의 욕심 때문에 이처럼 선수들이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혹사당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베이징 올림픽 직후엔 ‘빗속 도로 퍼레이드’ 강행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도 한국대표단은 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과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건 역도 장미란을 앞세워 서울 세종로사거리부터 서울광장 구간에서 도로 퍼레이드를 벌였다. 이날도 비가 내려 퍼레이드에 참가한 선수단 전원이 고생을 했다. 



‘피곤한 선수들을 데리고 누구 좋으라고 하는 행사냐’며 반대 여론이 거셌지만 정부와 대한체육회는 행사를 강행했고 퍼레이드 후에는 ‘환영 국민 대축제’에 선수들을 동원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장미란, 박태환, 이용대, 이승엽, 진종오 등 주요 메달리스트들을 청와대로 초대해 오찬을 함께 했다.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메달리스트와 대통령의 오찬’은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직후에도 이어졌다.

 

  2461_4712_4414.jpg   ▲ 중부지방에 쏟아진 폭우로 야외무대에 빗물이 고여있다. ⓒ KBS 화면캡처

시합과 장시간 비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지 못한 채, 경기 중 입은 부상도 치료하지 못한 채 준비된 행사에 얼굴을 내밀어야 했던 선수들.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진정 이들을 배려한다면 선수들이 가족과 먼저 기쁨을 나누고 부상을 치료하고, 피로를 푼 뒤 진심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조금 느긋하게 행사 일정을 잡아야 했다고 많은 사람들은 지적하고 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 순위 5위를 기록했지만, ‘올림픽 정신과 선수에 대한 존중’을 기준으로 한다면 204개 참가국 중 과연 몇 위나 할 수 있을까. 

 

* 위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만드는 단비뉴스에도 함께 실린 기사입니다.

(단비뉴스: www.danb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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